< 제 90장.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01 >
화려한 장포를 입고 있던 노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벽우진의 목소리는 귀의 바로 옆에서 들렸다.
뜨거운 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다.
‘피하는 건 늦어!’
노인이 이를 악물고서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면서 양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단순히 피하려고 하다가는 등에 공격을 당하기 십상이기에 아예 그가 먼저 공격적으로 대응한 것이었다.
물론 치명타를 노린 일격은 아니었다.
스으윽!
그런데 양손 어디에서도 손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벽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노리고서 팔을 크게 휘둘렀는데 말이다.
“역시 모르는 모양이군.”
우득!
노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대되었다.
곧게 잘 뻗어 있던 그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여서였다.
뒤이어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에 입 역시 크게 벌려졌다.
“끄어어억!”
얼마나 깔끔한 일격이었는지 새하얀 뼈가 너무나 깔끔하게 피부를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콰앙!
“자, 장로님!”
손날로 노인의 상완골을 아작 낸 벽우진이 그대로 뒤통수를 잡고 냅다 바닥에 찍었다.
그 모습에 아부를 떨던 중년인의 두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심상치 않은 폭발에 화들짝 놀란 것이었다.
“끄으으···.”
“호오. 장로였어? 그럼 알지도 모르겠는데? 아니면 아는데 모르는 척 했던 건가?”
중년인의 외침에 마지막에 힘을 뺀 벽우진이 눈을 빛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육대마가의 장로라면 아는 게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네놈의 사제는···.”
“응응. 말해봐.”
기어 나오듯이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벽우진이 귀를 기울였다.
방금 전과는 너무나 다른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노인의 목소리에 집중했던 것이다.
“뒈질 때가 돼서 뒈진 것뿐이다···!”
“싫으면 마.”
콰직!
피투성이는 되었어도 나름 형태는 유지하고 있던 노인의 머리가 짓뭉개졌다.
벽우진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땅에 처박은 결과였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진 노인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서 벽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말해줄 입이 아직 좀 남아 있거든. 큰 기대는 되지 않지만.”
“이 노옴!”
달려든 네 명 중 가장 큰 덩치의 노인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포효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신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컸던 덩치가 더욱 커졌던 것이다.
“야수마가 출신인가.”
구척은 될 법한 신장도 신장이지만 근육 역시 범상치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짐승처럼 털까지 난 모습에 벽우진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헝헝헝!”
“저런 게 가능하기는 하구나.”
말은 들었어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벽우진은 살짝 놀랐다.
소문으로만 듣던 것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는 컸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세 명도 각각 자리를 잡고서 벽우진에게 쇄도했다.
전방을 야수마가의 장로가 맡자 셋은 알아서 흩어졌던 것이다.
쌔애액!
정확히 사방을 점유하고서 펼치는 협공에 벽우진은 순식간에 갇혔다.
허공 말고는 딱히 피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네놈의 그 오만함이 널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글쎄 안 죽는다니까 그러네.”
양옆에서는 혈천마가와 탐천마가가, 그리고 뒤에서는 천패마가의 장로가 벽우진을 노리고서 쇄도했다.
각자 최고의 절초를 펼치며 벽우진의 목숨을 노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은근슬쩍 허공 쪽을 비워두었다.
‘제아무리 운룡대팔식이 대단하다고 하나 그래 봤자 한계가 있는 법.’
‘몸을 띄우는 순간 끝장이다.’
셋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야수마공을 극성으로 일으킨 장로는 본능만 남았기에 협공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세 사람의 협공이면 육대마가의 가주도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때문에 셋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공격했다.
스르륵.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벽우진의 무위가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완벽하게 포위를 했다고 여겼지만 그건 세 사람만의 생각이었다.
“헙!”
벽우진은 네 명의 공격을 너무나 쉽게 흘려냈다.
아니, 거의 동시에 이어진 협공을 여유롭게 피해내는 것을 넘어 반격까지 했다.
맨손으로 혈천마가와 탐천마가의 공격을 맞받아쳤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띄웠다.
휘리리릭!
곤륜파가 자랑하는 운룡대팔식이 장엄하게 펼쳐지며 벽우진의 신형이 단숨에 야수마인의 어깨에 내려섰다.
“크아아앙!”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벽우진의 기척에 야수마인이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벽우진을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야수마인이 몸을 흔드는 것보다 벽우진의 용천혈에서 뿜어진 진기가 육신 안으로 파고드는 게 훨씬 빨랐다.
부르르르!
서늘하다 못해 시린 벽우진의 진기는 따로 침투경의 수법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야수마인의 전신을 흐르는 마기를 아무렇지 않게 흐트러뜨리며 내부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야수마인의 혈맥과 경맥들을 모조리 헤집었다.
“케헥!”
이윽고 거대한 동체가 휘청거리더니 주저앉으며 검게 죽은 피를 토해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모조리 망가진 것이었다.
“이익!”
별다른 반응도 하지 못하고 야수마가의 장로가 쓰러지자 나머지 세 명이 이를 악물고서 달려들었다.
특히 벽우진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던 혈천마가와 탐천마가 장로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벽우진에게 속절없이 밀렸던 게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좋지 않아.’
반면에 천패마가의 장로는 미간을 좁혔다.
그의 본능이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왔던 것이다.
벽우진에게 달려들면 안 된다고 말이다.
“네놈들은 알고 있느냐? 청민을 죽인 놈이 누구인지.”
검붉은 마기와 시커먼 검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파고드는 걸 직시하며 벽우진이 물었다.
야수마인은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묻지 못했지만 나머지 셋은 달랐다.
정상은 아니어도 이지는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벽우진은 세 사람을 차례대로 쳐다봤다.
“닥쳐라!”
“우리가 말해줄 것 같으냐!”
“그럼 하나만 묻자. 알아, 몰라?”
새까만 검강이 벽우진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기분 나쁜 검붉은 색을 가진 거대한 장인이 땅거죽을 한 차례 쓸고 지나갔다.
벽우진의 하반신을 노렸다가 실패한 것이다.
“알고 싶으면 방법이 하나 있지. 무릎 꿇고 항복하면 말해주겠다.”
“모르는 모양이군.”
천패마가 장로의 말에 벽우진이 피식 거렸다.
낌새를 보아하니 나머지 셋도 모르는 모양새 같아서였다.
그러는 사이 방금 전에 피해냈던 두 공격이 재차 벽우진에게 날아들었다.
“알아봐 줄 수는 있지. 네놈이 성의를 보인다면.”
“됐다.”
콰아아앙!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시커먼 검강이 박살났다.
벽우진의 목을 노리던 공격이 건성으로 휘두른 손등에 의해 산산조각 났던 것이다.
동시에 탐천마가의 장로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잡았다!”
그러나 동료의 희생은 남은 이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아주 찰나지만 벽우진의 움직임을 잡아주었던 것이다.
그걸 혈천마가의 장로는 놓치지 않았다.
쯔아악!
손에서부터 시작된 검붉은빛의 거대한 장인이 반으로 갈라졌다.
벽우진의 코앞에서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양옆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쩝!
갈라진 장인은 순식간에 벽우진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혈천마가의 장로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삼켜진 이상 싸움은 끝났다.
‘맛있게 먹어주마.’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묘한 외모의 그가 얇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이제 곧 중원제일인이라 불리는 벽우진의 피 맛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벽우진을 흡수하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던 것이다.
“너에게만 너무 좋은 일을 만들어준 것 같은데.”
“그럼 너도 혈천마가로 오던가. 본가는 모든 마공을 포용한다.”
“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남자로서의 쾌락을 놓치고 싶지는 않은지라.”
천패마가의 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쾌락 중 하나를 포기하기는 싫어서였다.
“말했을 텐데. 음양교합과는 비교도 안 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그건 모르는 거지. 그나저나 강하긴 더럽게 강하군. 괜히 패선, 패선 거리는 게 아니었어.”
순식간에 장로 세 명이 전투불능이 되어버렸고 죽은 마인들은 백 명이 훌쩍 넘었다.
그것도 한 식경이 채 되기도 전에 말이다.
그렇다고 마인들이 약한 게 결코 아니었다.
하급마인이면 중원에서는 절정고수 중에서도 강한 축에 들어가는 자원들이었다.
다만 벽우진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것뿐이었다.
“그래 봤자 허약한 중원인일 뿐이지. 제법 강할 뿐. 어···?”
“왜 그래?”
기고만장하던 장로의 표정이 일변했다.
갑자기 동공이 흔들리며 안색이 창백해졌던 것이다.
“뭐, 뭐야 이거?”
퍼엉!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벽우진을 집어삼켰던 검붉은빛의 구가 폭발했다.
그리고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벽우진이 걸어 나오며 둘을 쳐다봤다.
“피, 피해라!”
그때 탐천마가 쪽 장로가 소리쳤다.
왠지 모르게 다급한 음성으로 둘을 향해 경고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경고를 다 듣기도 전에 파육음이 들려왔다.
“어라?”
천패마가의 장로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이 이상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주르륵.
그러나 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뜨끈한 피와 함께 지독한 고통이 엄습했던 것이다.
“컥!”
상황은 혈천마가의 장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벽우진이 그의 모가지를 움켜잡았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잡아먹은 거냐?”
“크으윽!”
“뭐, 말해줄 리는 없겠지. 네놈들이 일일이 기억하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네놈은 쉽게 죽여선 안 될 것 같구나.”
허공에 들린 채 버둥거리던 장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그건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몸 전체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만! 그마안!”
전신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몸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했다.
그가 익힌 무공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혈액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던 것이다.
더불어 지독한 고통이 함께 엄습해오자 장로가 비명을 질렀다.
“제발, 제발 그만···!”
머리, 팔다리 할 거 없이 전신에서 수증기를 뿜어대던 장로가 이내 축 늘어졌다.
한순간에 폭삭 늙어버린 모습으로 흐느적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참혹한 모습에도 벽우진의 눈빛은 싸늘했다.
지금껏 잡아먹은 이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어서였다.
“피, 피가 모자라···.”
힘의 원천인 피를 잃은 장로가 어느새 시체가 되어버린 천패마가 장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신이기는 했지만 아직 피는 따뜻했다.
더구나 천패마가의 장로인 만큼 쌓은 마기 역시 상당할 터였기에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흡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느릿한 그의 움직임이보다 벽우진이 빨랐다.
쾅!
몇 배는 가벼워진 그를 바닥에 메다꽂은 것으로도 모자라 발바닥으로 단전을 박살냈던 것이다.
그것도 확인사살을 하듯 짓이겼기에 단전은 물론이고 내장들과 척추도 끊어졌다.
“허어업!”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워하도록.”
싸늘한 눈빛으로 혈천마가의 장로를 내려다보던 벽우진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날아와서 천패마가의 장로를 격살한 무상검이 얌전히 손아귀에 들어왔다.
< 제 90장.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01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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