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7장. 뒤통수 조심해라. -03 >
열 명의 몸놀림은 확실히 달랐다.
또한 전술적이었다.
단순히 공격하고 죽이는 것을 넘어 공간 자체를 이해하고 있었다.
서로가 어느 곳을 노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쿠르르릉!
거기에 강력한 공력이 합세하니 대기가 진동했다.
열 명이 일으킨 마기가 그물망처럼 벽우진을 조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자기들 딴에는 대단한 협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벽우진에게는 아니었다.
촤라라락!
열 명이 힘을 합쳐서 만든 무형의 그물망이 한순간에 찢어졌다.
벽우진의 기운에 속절없이 찢어발겨졌던 것이다.
“큭!”
그리고 벽우진의 공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혼천천귀대원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던 무형지기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백인대장들의 전신요혈을 노렸다.
은밀히 다가가 기습적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한데 이번에는 결과가 좀 달랐다.
“이 정도쯤이야!”
감지조차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일반 대원들과 달리 백인대장들은 가까스로 사혈을 피해냈다.
완벽히 회피하지는 못하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만은 피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벽우진에게 달려들었다.
“제법인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치명상은 어찌어찌 피해내고서 쇄도하는 백인대장들의 모습에 벽우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라서였다.
“죽어라!”
“공동산과 함께 묻어주마!”
아직까지 누구도 넘지 못했던 간격을 넘은 열 명의 공격이 벽우진에게 집중됐다.
검강이며 도강이며 온갖 공격들이 벽우진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꽈아아앙!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 벽우진을 덮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뒤흔들렸지만 백인대장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벽우진이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를 이번 충돌로 인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에 백인대장들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크아아아!”
“하아압!”
연이은 폭발로 인해 벽우진이 서 있던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같은 동료에게 자신의 공격이 날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벽우진의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어서였다.
투둑. 투두둑.
하늘 높게 솟구쳤던 흙덩이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공격을 멈춘 백인대장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전력을 다하기는 했으나 벽우진을 죽었을 거라 장담하지는 못해서였다.
“이 정도면 죽지 않았을까?”
“호신강기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만능은 아니지.”
“이미 소모한 내공이 얼마인데. 다들 알잖아. 무형지기를 저렇게 사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력과 심력이 소모되는지를.”
“이대로 뒈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가지각색의 복장을 하고 있는 백인대장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이대로 죽었으면 싶어서였다.
웬만해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었지만 벽우진은 달랐다.
공동파조차도 아래로 내려다봤던 그들이었으나 벽우진은 그러지 못했다.
퍼엉!
짙은 먼지구름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그리고 그 안에 벽우진의 시체가 있기를 기원하며 제자리에 서서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던 백인대장들 중 한 명의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소리도 없이 날아온 무언가에 직격으로 맞아 절명한 것이었다.
“젠장!”
“아직 살아 있어!”
“괴물 같은 자식!”
장대한 체구의 동료가 뒤로 넘어가는 광경을 보기 무섭게 남은 아홉 명의 백인대장들이 이를 악물고서 달려들었다.
뿌연 흙먼지로 인해 아직 벽우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다들 알고 있었다.
벽우진이 살아 있음을 말이다.
“조심···!”
어느 순간 들려오는 파공성에 아홉 명 중 한 명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외침이었다.
그가 소리친 순간 이미 한 명의 머리통이 날아갔던 것이다.
안구 한쪽을 터트리며 머리를 관통한 공격에 달려들던 중년인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으아아아!”
“말했잖아. 부족하다고.”
퍼엉! 펑!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백인대장들이 하나둘 튕겨져 나갔다.
모두 똑같이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살아남은 이들은 달려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도망치는 순간 뒤통수에 공격이 날아들 것임을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허장성세일 수도 있어!’
다른 이도 아니고 백인대장들의 협공이었다.
제아무리 벽우진이라도 멀쩡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안타깝게도 빗나갔다.
한줄기 바람에 먼지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광경은 달려들던 여섯 명을 절망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빌어먹을.”
움직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바람이었고 착각이었다.
벽우진은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왼손의 검지만 펼친 상태로 말이다.
“펑.”
벽우진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지 무섭게 작은 체구의 백인대장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날렸다.
갈 지(之)를 그리듯이 경신술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퍼석.
전력으로 경신술을 펼쳤음에도 장년인의 머리에는 구멍이 뚫렸다.
“뭣들 하느냐!”
그때 뒤쪽에서 묵직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강대한 마기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대, 대주님!”
“어서 공격하지 않고!”
공동파에 도착한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던 혼천천귀대주가 움직였다.
심지어 그의 곁에는 두 명의 부대주도 함께였다.
벽우진의 등장과 함께 장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세 사람이 끝내 움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벌써 반이나 죽었지만 남아 있던 백인대장의 얼굴은 밝았다.
대주와 부대주들과 함께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놈도 결국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니까!’
움직임이 극히 적었기에 체력적으로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나 공력 소모는 상당할 터였다.
물론 고수인 만큼 축적된 내공의 양이 상당하겠지만 그래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백인대장들은 이번에야말로 벽우진을 끝장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혼천천귀대가 단 한 명에게 무너진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교주님이라면 모를까.’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인간의 탈을 벗어난 존재인 교주라면 홀로 혼천천귀대를 도륙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대단한 무인이 마제였다.
하지만 눈앞의 벽우진은 그 정도까지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좀 상대할 만 하겠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온갖 거만을 떠는 벽우진의 모습에 부대주들이 입술을 비틀었다.
건방져도 너무나 건방져서였다.
그래서 둘은 벽우진에게 현실을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었다.
왜 중원인들이 천년신교라는 네 글자를 두려워하는지 말이다.
카앙! 캉!
“소용없다!”
예의 시작되는 무형지기 공격에 혼천천귀대주가 포효했다.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적일 정도로 대단한 공격은 아니었다.
벽우진만큼 세밀하지는 못해도 그 역시 무형지기를 다룰 줄 알았고.
그리고 무형살인강이라는 경지는 어느 정도의 수준만 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쌔애애액!
사방에서 파고드는 무형지기를 가르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대주의 장검이 벽우진에게 쇄도했다.
그가 흐트러뜨린 것도 있지만 부대주와 백인대장들이 신경을 끌어주었기에 가능한 접근이기도 했다.
터엉!
태산조차 뭉개버릴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일검을 벽우진은 가볍게 막아냈다.
하지만 공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벽우진이 대주의 검을 막은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이리 떼처럼 마인들이 달려들었다.
두 명의 부대주들과 다섯 명의 백인대장들이 벽우진의 빈틈을 물어뜯겠다는 듯이 쇄도했다.
‘확실히 수준이 올라갔어.’
단 세 명이 합세한 것뿐인데도 수준이 몇 단계는 상승했다.
게다가 멀쩡한 세 명과 달리 백인대장들은 상처투성이인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벽우진에게 쇄도했다.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러니 두려워 할 수밖에 없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투지 자체가 달랐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는 투지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공의 고하가 아닌 정신력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천년마교는 남달랐다.
‘하지만 물러나지 않은 건 내 사부님과 사백님, 사숙님들도 마찬가지였어.’
전멸당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지난번 정마대전 당시 곤륜파의 도인들은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죽을 걸 알고 있었고, 멸문지화를 당할 걸 알았다.
하나 그럼에도 곤륜파의 선인들은 끝끝내 자리를 지켰고 중원무림이 힘을 결집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자신들을 희생하면서까지 말이다.
터터터텅!
하나같이 치명적인 사혈만을 노리고서 파고들던 일곱 명의 공격이 막혔다.
벽우진의 손짓과 함께 생성된 일곱 개의 장인이 그들의 공격을 정확히 막아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장인은 단순히 막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죽어라.”
마치 사신의 사형선고처럼 벽우진은 너무나 싸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애초에 그가 머나먼 공동파까지 온 이유는 목진자를 도와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전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진명마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공동산까지 직접 날아온 것이다.
“끄아악!”
“켁!”
부지불식간에 펼쳐진 일곱 개의 상청인(上淸印)이 부대주들과 백인대장들에게 뻗어나갔다.
피해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이 놈!”
그 모습에 혼천천귀대주가 시뻘게진 얼굴로 연거푸 검을 휘둘렀다.
자신을 상대하면서도 일곱 명을 몰아치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음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단숨에 네놈의 목을···!”
경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십여 합을 나누기도 전에 대주의 검이 박살났던 것이다.
몇 차례 부딪치지도 않았건만 두 동강 나는 애검의 모습에 대주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것이다.
푹!
그리고 그 틈을 벽우진은 놓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는 순간 무상검을 찔러 넣었다.
퍼퍼퍼펑!
뒤이어 곳곳에서 육편이 치솟았다.
상청인의 집요한 추격에 결국 일곱 명 전부 폭사한 것이었다.
“이런 개 같은···.”
심장이 꿰뚫린 혼천천귀대주가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양손은 무상검을 쥐고 있었다.
혹시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붙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관통이었다.
“외롭지는 않을 거야.”
무심한 얼굴로 대주를 쳐다보며 벽우진이 말했다.
그러면서 좌우를 힐긋거렸다.
시산혈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주변을 가리키면서 말이다.
“큭큭! 이겼다고 좋아하지 마라. 진짜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피차일반이야. 나 역시 고작 진명마가랑 혼천천귀대에 만족할 생각 없어.”
“지독한 절망이, 곧 중원에 도래할 것이다···.”
회광반조인 듯 혼천천귀대주의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번뜩였다.
그러나 벽우진은 그것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검을 뽑았다.
“뒈져, 그냥.”
“컥!”
더 이상의 지껄임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듯이 거칠게 배를 차며 검을 회수했던 것이다.
“히이익!”
“도, 도망쳐!”
그리고 그 광경이 도화선이 되었다.
백인대장들에 이어 부대주들과 혼천천귀대주마저 쓰러지자 공동산을 올라 왔던 마도문파들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벽우진을 상대할 자신이 없기에 도주를 선택한 것이다.
“어딜 가려느냐!”
“올 때는 마음대로 왔어도 갈 때는 안 되느니라!”
“모조리 추살하라!”
다급히 몸을 내빼는 그들의 모습에 목진자가 포효하며 몸을 날렸다.
전세가 역전되었기에 이 기세 그대로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 뒤로 공동파의 제자들이 악에 바친 얼굴로 뒤따랐다.
“날 잊으면 안 되지.”
무상검을 납검한 벽우진이 양손을 활짝 펼쳤다.
이윽고 도망치는 혼천천귀대의 뒤통수로 수십 개의 지풍들이 쏟아져 내렸다.
< 제 87장. 뒤통수 조심해라.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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