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7장. 뒤통수 조심해라. -02 >
목진자가 자괴감에 몸서리칠 때 갑자기 허공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날아오는 파공음이 들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뭐지?”
“무슨 소리야?”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소리에 두 마인이 목진자를 공격하던 것도 멈추고 하늘 위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때 여기저기에서 단말마가 들려왔다.
“커헉!”
“켁”!
“뭐, 뭐야!”
사선으로 내리꽂는 공격에 혼천천귀대는 물론이고 힘을 보태러 온 마도문파의 마인들이 고꾸라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에 하나같이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로 쓰러졌던 것이다.
“이야~! 많이도 몰려 왔네. 확실히 쪽수는 더럽게 많구만.”
“자, 장문인!”
멀리서 들려오는 음성에 목진자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거리가 상당한 모양인지 아니면 어둠 때문인지 아직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진자는 알았다.
너무나 익숙한 음성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피피피핑!
그러는 사이에도 마인들의 죽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가뜩이나 깜깜한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공격이 날아오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놀라운 점은 공격이 너무나 정확하게 마인들만 노린다는 점이었다.
마치 정확히 보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움직여!”
“넋 놓지 말고 피해!”
“누가 그걸 몰라서···. 컥!”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공격에 뒤늦게 마인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퍼퍼펑!
회피하는 것까지 감안했다는 듯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은 정확히 마인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운 좋게 피해내도 어깨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미, 미친!”
“도대체 누구기에 이런 무력을 보이는 거지?”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 광경에 목진자의 앞에 있던 두 조장들도 몸을 떨었다.
혹여나 자신들에게도 날아올까 긴장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목진자의 두 눈가는 촉촉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지원에 크게 감격한 것이었다.
쉬이익!
이윽고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혼천천귀대의 눈에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검을 타고서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이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어검비행술!”
마치 신선처럼 검을 타고서 날아오는 인영의 모습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검술을 펼치는 이도 드문 마당에 어검비행술로 날아오는 걸 보자 다들 감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감탄은 얼마가지 않았다.
동료들을 죽인 게 바로 저 인영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마인들은 하나같이 살기를 폭발시켰다.
놀라운 구경을 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건 그들에게 있어 저 자가 적이라는 점이었다.
“잠깐만. 눈에 익은데?”
“패선 아냐?”
“안녕?”
무상검을 타고서 날아온 벽우진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 혼천천귀대는 이상하게 몸이 굳어졌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는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오히려 무자비하게 찍어 누르는 듯한 위압감에 혼천천귀대가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이곳에?”
“네놈들에게 이를 가는 곳이 하나 생겼거든. 그러기에 왜 그렇게 설쳤어? 가뜩이나 많은 적을 더 만들어버렸잖아?”
펑!
목진자의 앞에 서 있던 둘 중 한 명의 어깨가 날아갔다.
동시에 오른쪽 팔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벽우진의 지풍에 팔 한쪽이 날아간 것이었다.
푸하하핫!
뒤늦게 상처 부위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마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주시하기만 했다.
그런 그를 목진자는 단숨에 처리했다.
벽우진이 제법 숫자를 줄였다고 하나 그래도 아직 많은 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목진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 완전 늦지는 않은 모양이야.”
“와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비슷한 처지에 돕고 살아야지. 천년마교에는 갚을 빚이 있기도 하고.”
“근데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목진자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감숙성의 정도문파들조차 제때 지원군을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벽우진은 그들보다 빨리 공동파에 도착했다.
심지어 곤륜파가 자리 잡은 곤륜산은 감숙성보다 서장에 훨씬 더 가까웠는데 말이다.
“말했잖아. 천년마교에 이를 가는 이들이 있다고. 중원에는 개방도들만 있는 게 아냐.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는 것도 한두 번뿐이고.”
“그렇지요.”
짐작 가는 곳은 없지만 목진자는 일단 맞장구를 쳤다.
벽우진 한 명이 온 것만으로도 천군만마가 온 듯 든든해서였다.
또한 자신의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점도 깨달았다.
만약 그가 다른 이처럼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성격이어서 벽우진을 질투만 했다면 이런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알다시피 나 역시 이 놈들에게 관심이 아주, 매우 많거든.”
“죽여!”
“패선은 고작 한 명이다!”
“모조리 공격해라!”
조장급 하나가 죽었지만 혼천천귀대의 기세를 꺾기에는 부족했다.
백인장급도 아닌 조장급이었기에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살의를 불태웠다.
강자존의 절대법칙 속에서 자라온 이들이었기에 고수의 등장에 겁을 먹기보다는 호승심이 타올랐던 것이다.
“요놈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장문인은 애들부터 챙겨. 부상자들은 뒤로 빼고.”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벽우진을 향해 짓쳐드는 혼천천귀대를 보며 목진자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실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벽우진에게 달려드는 혼천천귀대의 숫자는 언뜻 봐도 구백 명 가까이 되었다.
거기다 눈치를 살피는 이들을 합치면 배에 달했고.
때문에 목진자는 피투성이의 몸이었지만 벽우진의 옆에 섰다.
“잡것들 상대하는데 장문인의 손까지 더할 필요 없어. 일단 제자들부터 챙겨. 싸우는 건 그 다음에 생각하고. 혼천천귀대만 있는 게 아니니까.”
툭.
무상검에 타고 있던 벽우진이 바닥에 내려섰다.
그러자 무상검이 벽우진을 호위하듯 주변을 빙빙 돌았다.
마치 다가오는 자들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죽어라!”
“이곳을 네놈의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목을 따주마!”
제정신이 아닌 이들만 모아놔서 그런지 다들 이기어검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막강한 무력을 지닌 건 알지만 단 한 명이기에 모두가 덤벼들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천산에서 결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다치고 죽더라도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쯧쯧. 어리석은 중생들이로고. 아, 중생들이라는 표현은 너무 과분한가? 저급한 마교 종자들에게 사용하기에는.”
“뒈져랏!”
강자존의 절대법칙을 숭상하는 마교도답게 쇄도하는 마인들의 표정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참에 벽우진의 목을 베겠다는 듯이 사방팔방에서 개미떼처럼 짓쳐들었다.
“싫은데?”
퍼퍼퍼퍽!
뒷짐을 지고 있던 벽우진이 히죽 웃었다.
지척까지 혼천천귀대의 마인들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 있던 이유를 벽우진은 실력으로 증명해냈다.
주르륵.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던 마인들이 멈춰 섰다.
선두에서 쇄도하던 이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간격을 남겨 두고서 정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뭐, 뭐야?”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왼쪽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렇다고 벽우진이 움직인 것도, 허공을 빙빙 도는 검이 쇄도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심장이 꿰뚫린 상태에서 선두에 서 있던 마인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냥 죽어.”
“미, 미친···.”
정확히 심장이 관통당한 마인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물경 백이 넘는 마인들이 한순간에 절명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살기등등하게 달려들던 혼천천귀대가 멈칫거렸다.
장내에 내려앉은 싸한 느낌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뭐 해? 안 오고. 설마 천하의 천년마교도가 겁을 집어먹은 건가? 나한테서? 그런 거야? 응?”
“닥쳐라!”
“마교가 아니라 신교다!”
벽우진의 도발에 잠시 머뭇거렸던 혼천천귀대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방금 전과 달리 무작정 덤벼들지 않았다.
오감과 기감을 최대한 끌어 올리며 벽우진의 공격에 대비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벽우진이 무슨 수를 써서 동료들을 도살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르다!’
‘무슨 수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더 이상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달려드는 혼천천귀대원들의 눈빛은 형형했다.
절대 벽우진의 얕은 수법에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강하게 서려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벽우진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웃고 있지 않았다.
턱.
벽우진을 호위하는 듯이 원을 그리며 배회하던 무상검이 얌전히 앞으로 날아왔다.
그런 무상검을 벽우진은 부드럽게 잡았다.
어느새 코앞까지 마인들이 다가왔음에도 그는 느릿하게 무상검을 움켜잡았던 것이다.
“죽어라!”
동시에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혼천천귀대원들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죽은 동료들이 넘지 못했던 거리를 지나쳤음에도 자신들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였다.
동시에 그들은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사술도 사술이지만 동료들이 죽은 이유는 방심이 크다고 여긴 것이다.
“아직 좋아하기는 이른데 말이지.”
“···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하게 무상검을 잡은 벽우진은 그대로 횡 베기를 펼쳤다.
딱히 힘을 준 것도 아니고 마치 장난처럼 가로로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횡 베기에 세상이 갈라졌다.
적어도 달려들던 마인들에게는 말이다.
“뭐야?”
“갑자기 왜 세상이···?”
갈라진 세상이 기괴하게 비틀어지는 광경에 마인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중얼거림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게 마지막 유언이었던 것이다.
푸하하학!
뒤늦게 곳곳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양분된 마인들의 시체에서 피가 솟구쳐 허공과 바닥을 적셨던 것이다.
그리고 벽우진의 주위에 시체의 산이 쌓였다.
“미, 미친!”
“저게 같은 인간이라고?”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혼천천귀대를 지원하기 위해 공동산을 올라온 중원의 마인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었지만 그래도 상대가 천년마교의 마인들이었다.
그것도 일반 마교도가 아니라 천년마교를 대표하는 오대무력조직 중 한 곳인 혼천천귀대원들이었다.
한데 벽우진은 그런 이들을 마치 썩은 짚단 베어 넘기듯이 썰어버렸다.
휘이이잉.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전투가 일순 소강상태에 빠졌다.
모두가 똑같은 심정으로 벽우진을 쳐다봤던 것이다.
“싸우러 온 사람들 어디 갔나?”
단 한 명의 지원군이었지만 그로 인해 벌어진 결과는 놀라웠다.
혼자서 수백 명을 멈춰 세원 벽우진은 자신이 왜 패선이라 불리는지, 천하제일인에 가장 근접한 무인으로 불리는지를 증명했다.
파파파팟!
그러나 혼천천귀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일반 대원들이 도륙 당하자 이번에는 백인대장들이 나섰다.
총 열 명으로 이루어진 백인대장들이 말없이 벽우진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호오.”
괜히 백인대장이 아니라는 듯이 열 명이 흩뿌리는 마기는 농밀했다.
또한 쓸데없이 주둥이를 나불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서늘한 살기를 내뿜으며 벽우진에게 쇄도했다.
순식간에 벽우진을 포위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부족해.”
< 제 87장. 뒤통수 조심해라.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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