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7장. 뒤통수 조심해라. -01 >
목진자의 얼굴에 결연한 기색이 서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그는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청성파가 이미 천년마교의 공격에 무너진 뒤였다.
그렇기에 공동파 역시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혼천천귀대(混天千鬼隊)가 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오대무력부대 중 가장 인원이 많은 전투부대이면서 정신이상자가 많은 부대가 바로 혼천천귀였다.
워낙에 정신병자가 많은, 괴상한 마인들로 득시글거리는 부대가 혼천천귀대였기에 처음 그들이 나타난 것을 봤을 때 목진자는 침음을 흘렸다.
숫자도 숫자이지만 상대하기가 께름칙해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예가 본산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과, 속가제자들이 상당수 모여 있다는 점이랄까.”
청성파가 공격당한 후 정도무림의 수많은 대문파와 명문세가들은 사천성으로 향했다.
천년마교의 육대마가가 등장한 만큼 힘을 보태기 위해 사천성으로 집결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동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북해빙궁과의 전쟁으로 입은 피해가 워낙에 컸기에 제갈현 역시 권유만 했을 뿐 부탁하지는 않았다.
공동파의 사정을 뻔히 알기에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만약 본산을 비웠다면···.”
목진자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를 비롯해서 최정예가 사천성으로 떠났다면 공동산 역시 청성산과 마찬가지로 마교도들로 인해 초토화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 공동파의 전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끝난 건 아니지만.”
“키키키키!”
“다 죽여라! 싹 다 쓸어버려!”
전투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미치광이처럼 혼천천귀대의 깃발을 흔드는 마인의 앞으로 수십 명의 혼천천귀대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 듯한 모습으로 공동파의 제자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크아악!”
“끅!”
그로 인해 경내의 곳곳에서 피가 솟구쳤다.
혼천천귀대의 마인들도 죽어갔지만 그 이상으로 공동파의 제자들이 쓰러졌다.
숫자도 숫자지만 마인들의 실력이 범상치가 않아서였다.
특히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드는 공격에 공동파의 제자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
“진형을 구축해! 절대 틈을 주지 마!”
“혼자 싸우지 마라! 버겁다 싶으면 둘이서, 둘이 안 되면 셋이서 달려들어!”
광소와 괴소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일대제자들이 소리쳤다.
이제는 중진이라 할 수 있는 일대제자들이 사형제들을 독려하며 악전고투하는 모습에 중앙에서 전선 전체를 조율하던 목진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함께 싸우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누군가는 지휘를 해야 했고, 그만한 역량을 지닌 이는 공동파에 그 밖에 없었다.
“커헉!”
“사매! 큭!”
청성파가 당했기에 미리 대비를 했지만 그럼에도 혼천천귀대는 강했다.
괜히 마인이 아니라는 듯이 파죽지세의 기세로 공동파를 밀어붙였다.
자신들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말이다.
“크크크! 아주 맛있게 생긴 년이로구나!”
“아, 안 돼!”
“자고로 운우지락은 혈향과 함께 해야 더욱 운치가 있는 법이지!”
부끄럼도 없는지 중요한 부위만 작은 천 쪼가리 하나로 가린 마인이 공동파 여제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단숨에 목을 베어버렸던 남자와 달리 여제자는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단숨에 여제자의 옷을 찢어버렸다.
“꺄아악!”
“크흐흐흐!”
한순간에 나신이 된 여제자가 황급히 두 손으로 치부를 가렸다.
반항하기보다는 치부를 가리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인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음흉하게 웃으며 여제자의 뒤태를 감상했다.
“이 노옴! 그 더러운 손 떼지 못하겠느냐!”
그때 한 곳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희롱당하는 사매의 모습에 청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마인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왜? 네가 만지려고? 아니면 맛을 보고 싶은 건가? 난 셋이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긴 한데.”
서늘한 검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청년의 검을 향해 마인이 여제자를 내밀었다.
피하지 않고 검로에 여제자를 들이밀었던 것이다.
“흐읍!”
그 모습에 청년이 황급히 검을 회수했다.
마인과 자신의 사이에 사매가 끼어버리자 회수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병신 같은 놈.”
마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역시나 명문정파 녀석들은 고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그가 청년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검을 찔러 넣었을 것이었다.
사매를 죽이지 않고도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푹!
그래서 그는 청년을 한껏 비웃으며 쥐고 있던 낡은 박도를 던졌다.
정확히 청년의 심장을 향해서 말이다.
“제, 젠장···!”
“네놈이 죽는 이유는 딴 거 없다. 나약한 정신머리 때문에 뒤지는 거니까 조용히 위로 가라.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사, 사형! 사형!”
불의의 일격에 심장이 관통당한 청년이 이내 허물어지는 모습에 머리채가 붙잡혀 있던 여제자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내 청년의 눈동자에서는 빛이 사라졌다.
“자자,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볼까? 사실 내 진짜 무기는 따로 있지. 바로 이 아랫도리야말로 내 최강의 무기이자 천하제일병기이지!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더 말이야!”
“꺄아아악!”
가까스로 가리고 있던 마인의 양물이 튀어나오는 광경에 여제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런 광경은 공동파 경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남자를 탐하는 이도 있었다.
“너 좀 예쁘장하게 생겼다?”
“히이익!”
우락부락한 체구의 마인이 느물거리게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에 한 남자가 싸우다말고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음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마주하자 본능적으로 물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 오너라. 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터이니. 흐흐흐!”
“저, 저리 가라!”
“어허! 방금 전까지 달려올 때는 언제고!”
남자가 결국 줄행랑을 쳤다.
차라리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치욕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리고 본능이 계속 말해주고 있었다.
혼자서는 눈앞의 마인을 쓰러뜨리기 힘들다고 말이다.
‘협공을 펼쳐야 해!’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는 마인을 곁눈질하며 남자가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주위는 이미 난장판이었다.
난전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혼천천귀대와 공동파의 제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술래잡기는 이쯤 했으면 하는데.”
“히익!”
귓불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에 남자가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중앙에서 전선을 조율하고 확인하던 목진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초반에는 어찌어찌 잘 막아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선이 점차 어그러지고 있었다.
모두가 다 함께 절치부심하며 공동파를 재건했지만 역시나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점차 혼천천귀대에게 밀리는 제자들의 모습에 목진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공격이 하루만, 아니 반나절만 늦었더라도···.”
목진자는 아쉬움에 목이 메었다.
청성파와 곤륜파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목진자는 감숙성의 속가제자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청해성과 감숙성은 맞닿아 있기에 어쩌면 공동파를 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공동파의 장문인으로서 감숙성의 모든 정도문파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연락망을 구축해 두었던 것이다.
혹시 모를 사태가 발발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기로 약조도 한 상태였다.
“아니, 징조만 알았더라도!”
목진자가 피를 토하는 듯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런 그의 주먹은 핏줄이 터질 정도로 강하게 쥐어졌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아쉬웠으며 자신의 모자란 능력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를 너무나 작게 만들었다.
“허업!”
“장문인! 더 이상은···!”
고군분투하며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일대제자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혼천천귀대만 해도 감당이 안 되는데 적들이 더 늘어났다.
감숙성에 암약하고 있던 마도와 흑도의 무리들이 합세한 것이었다.
그 숫자만 물경 천에 달하자 목진자의 표정이 해쓱하게 변했다.
“우리도 구대문파 좀 무너뜨려 보자!”
“구대문파가 별 거냐!”
“어차피 칼침 받으면 뒈지는 건 똑같아!”
“무공서고부터 찾아라!”
고수는 많지 않았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더구나 혼천천귀대를 상대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공동파의 제자들에게 수많은 적들은 치명적이었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지치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걸 증명하듯 겨우겨우 유지되었던 전선은 순식간에 허물어졌고, 사방에서는 비명과 단말마가 속출했다.
“이 놈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제자들의 모습에 목진자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이미 전부 다 난전에 돌입했기에 의미도 없었고 말이다.
“어허. 어딜 가시나.”
“장문인이면 장문인답게 비슷한 급과 놀아야지.”
“큭!”
양쪽에서 파고드는 묵직한 경력에 목진자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강으로 두 개의 경력을 해소했던 것이다.
동시에 목진자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우리 둘이면 과분하지.”
“암. 몰락한 공동파 따위야.”
“대주도 아닌 것들이!”
목진자의 눈이 붉어졌다.
대주도, 부대주도 아닌 기껏해야 조장급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두 명이 시시덕거리자 분통이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비록 위세가 과거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구대문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문파가 바로 공동파였다.
“대주가 왔으면 이미 목 위에 있는 건 날아갔지.”
“우리 대주는 진짜 미친놈이라 말도 안 해. 그냥 머리부터 뎅겅 잘라버리지.”
“악력으로 터트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적어도 칼로 베면 고통은 덜하잖아?”
“근데 궁금하긴 하다. 머리통이 터지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쌔애액!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는 것인지 만담을 펼치고 있는 둘을 향해 목진자가 전력으로 검을 뿌렸다.
단숨에 둘을 처치하고 대주를 찾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마공에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복마검법(伏魔劍法)을 극성으로 펼쳤음에도 두 마인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어이쿠!”
“꼴에 장문인이라고 한 수를 가지고 있기는 하네.”
“그래 봤자 대성도 못했지만.”
두 마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위력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복마검법의 성취도가 상당히 낮았기에 둘은 이죽거리며 목진자에게 쇄도했다.
“큭!”
형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난잡한 공격이었으나 문제는 그 안에 깔린 마기였다.
워낙에 강맹한 기운이 서려 있다 보니 별 거 아닌 초식인데도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두 마인은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젠장! 젠장!’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을 제자들을 떠올리자 목진자가 다급해졌다.
한시라도 빨리 눈앞의 둘을 처치해야 하는데 마인들은 그런 그의 속내를 알고 있는 것인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달려들면 물러나고, 그래서 이동하려고 하면 달라붙었다.
마치 그를 농락하듯 말이다.
픽! 피픽!
그 결과 목진자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둘 늘어갔다.
다행히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출혈과 피로가 누적되어 간다는 점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벽 장문인의 실력을 가졌더라면···!’
예전에도 부러워했었지만 지금은 더욱더 벽우진의 무력이 부러웠다.
벽우진이었다면 이깟 놈들 쯤은 단칼에 베어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벽우진이 아니었다.
콰콰쾅!
복마검이 맹렬하게 펼쳐졌지만 두 마인은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게 그의 검역에서 빠져나갔다.
역시나 부족한 성취도 때문이었다.
완벽한 복마검이었다면 적어도 팔다리 하나 정도는 이번 공격에 내놓아야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목진자의 수준은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슬슬 끝내자고. 고작 공동파 하나 지워버리는데 시간 끌 필요 없잖아?”
“얼추 정리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목진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분한 건 저 말이 틀리지 않다는 점이었다.
피피피핑!
한데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제 87장. 뒤통수 조심해라. -01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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