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264화 (264/325)

< 제 82장. 오는 건 마음대로 와도 가는 건 아냐. -02 >

한줄기 바람에 폭발로 인해 일어난 먼지구름이 단숨에 가셨다.

그리고 공격을 받았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멀쩡한 모습의 벽우진이 나타났다.

분명 제대로 일권을 맞았음에도 벽우진의 옷에는 그을린 자국도 없었다.

호신강기로 완벽하게 막아냈음을 모습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 모습에 중년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명마가의 이인자인 자신이 벽우진의 상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죽어! 죽어라!”

한순간에 도출된 결론을 인정하기 싫다는 듯이 중년인이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쉴 새 없이 쌍권을 내질렀다.

멱살을 잡을 정도로 가까운 상태였기에 망설이지 않고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광분해서 날리는 주먹질 치고는 위력이 대단했다.

절륜한 마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기에 파괴력이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콰앙! 쾅! 꽝!

그러나 무지막지한 마기를 머금은 공격도 벽우진에게는 소용없었다.

얇은 호신강기 하나로 중년인의 맹렬한 난타를 모조리 막아냈던 것이다.

심지어 벽우진은 뒤로 밀리지도 않았다.

충격마저도 완벽하게 소화했던 것이다.

“으아아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중년인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끝내지 못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기에 중년인이 악을 쓰며 공격을 퍼부었다.

두 손뿐만 아니라 두 발도 전부 이용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어떤 공격에도 벽우진은 굳건했다.

쿠웅!

오히려 너무나 쉽게 그를 들어 올린 후 바닥에 내려찍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들 듯이 너무나 손쉽게 들어 올린 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던 것이다.

“커억!”

등짝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중년인이 입이 저절로 벌렸다.

아찔한 고통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콰앙! 쾅!

벽우진은 중년인을 무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짐짝처럼 그냥 들었다가 내려찍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단순한 공격에 중년인은 아무런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고, 공력이···!’

등짝에서부터 시작되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중년인은 신체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사나운 기운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공력을 끌어올리려고만 하면, 반항하려고만 하면 그 사나운 기운이 자신의 혈맥을 갈가리 찢어놓아서였다.

“끄으으윽!”

멱살에서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기운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혈맥을 찢어발겼다.

말 그대로 무인으로서의 중년인을 사정없이 망가뜨렸던 것이다.

“벌써 지치면 재미없는데. 네놈들이 저지른 짓을 떠올려 봐. 네놈들의 손에 죽은 이들이 열 명이 넘어.”

“흐으! 흐으!”

고통에 신음하던 중년인이 이를 악문 채로 벽우진을 노려봤다.

얼마나 강하게 이를 악물었는지 이빨은 비틀려져 있었고 잇몸에서는 피가 줄줄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독기만은 여전했다.

“상관없다고? 하긴. 천년마교 놈들은 원래부터 글러 먹었다고 얘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

“크큭! 네놈이 이겼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이다. 곧 네놈의 눈앞에 지옥이 도래할 것이다.”

전신의 혈맥이 모조리 찢어졌기에 중년인은 더 이상 무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또한 제대로 걷지도 못할 터였다.

근육 역시 갈가리 찢어놓았으니까.

한데 그럼에도 중년인은 조소를 멈추지 않았다.

“그 전에 네가 먼저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데 말이지.”

뿌득!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기에 벽우진은 멱살을 놓았다.

대신 발로 중년인의 어깨 한 쪽을 지르밟았다.

“커헉!”

육신은 망가졌지만 그렇다고 신경마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고통은 적응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깨뼈가 분질러지자 중년인이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벽우진은 그런 중년인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서 뒷짐을 지고 있던 손 하나를 풀어 허공에 지풍을 날렸다.

쌔애액! 쌔액!

건성으로 날린 지풍이었지만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제갈현과 개왕에게 차륜전을 펼치던 흑의무인들이 갑자기 날아온 지풍에 팔다리가 꿰뚫리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장문인!”

“주둥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벽우진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합격진이 허물어졌다.

가까스로 유지되던 합격진이었기에 한 축이 무너지자 한순간에 무너졌던 것이다.

“이놈들!”

뒤이어 개왕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흑의무인들을 제압했다.

알아내야 할 게 많기에 죽이진 않았던 것이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온 거 같은데.”

“크크! 이 몸이 네놈이 원하는 걸 말해줄 것 같더냐? 본교는 중원 놈들에게는 굴복하지 않는다.”

빠르게 전장을 수습하는 제갈현과 개왕을 일별한 벽우진이 다시 중년인을 쳐다봤다.

하지만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게 전부임에도 중년인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악에 찬 눈빛으로 벽우진을 쏘아봤다.

“그렇다고들 하더라고. 난 겪어 보지 못했지만.”

“날 이겼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교주님에 비하면, 아니 가주님과 비교해도 난 보름달 앞의 반딧불 정도도 안 되니까.”

“오, 다행인데? 사실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나 많이 실망했거든. 진짜 이 정도 수준이 천년마교의 마인인가 싶었거든.”

“건방진 녀석!”

“그건 네놈이고.”

벽우진이 피식 웃으며 반대쪽 어깨로 짓밟았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처절한 비명소리가 공터를 갈랐다.

“허억! 헉!”

“괜찮으십니까, 장문인?”

“제갈가주보다는 멀쩡해. 상처가 제법 깊은 것 같은데?”

벽우진에게로 제갈현이 다가왔다.

그런데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의복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그 부위에서 새빨간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실력들이 뛰어나서요. 예상 밖의 수준이었다고나 할까요.”

“지혈부터 하고 금창약 발라. 바깥도 정리가 다 된 모양이니까.”

멀리서 달려오는 서진후를 확인하며 벽우진이 말했다.

하지만 제갈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 안 죽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심해 보이는 것뿐 괜찮습니다. 오히려 방주님께서 내상을 좀 입으셨습니다. 저를 지켜주시느라고.”

“난 괜찮아. 아직은 정정하니까. 이 정도 상처야 늘 있는 거지. 근데 이 녀석들 잠깐 살펴봤는데 약간 이상해.”

“어떤 점이요?”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모르겠는데 공력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기가 느껴지지 않아.”

개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인은 마인 특유의 기질이 있었다.

정공과는 달리 역천의 무리로 공력을 쌓았기에 특유의 패도적인 기세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사로잡은 마인들에게서는 그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발전한 건 너희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너희들보다 우리가 더 빠른 편이지.”

“개선했다는 말이렸다?”

“맞아. 마공을 연구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장담컨대 죽어라 고생해도 찾지 못할 거다. 스스로 드러내기 전에는. 크흐흐흐!”

누워 있던 중년인이 키득거렸다.

당황한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한 사람만은 달랐다.

“아직 네 주제를 깨닫지 못한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내 끝은 죽음일 텐데. 고문? 분골착근? 다 해 봐. 근데 분명히 말해두는데 내 입에서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을 거야.”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크크큭!”

이미 자신이 이겼다는 듯이 중년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세 사람을 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던 것이다.

“참고로 주둥이는 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냐.”

“도구는 도구일 뿐이지. 검이 말하는 걸 봤나?”

중년인의 시선이 무상검으로 향했다.

그러자 제갈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놈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딴생각 하는 놈이 한 명도 없을까.”

“없다. 비록 반쪽짜리라도 본교의 가르침을 배운 아이들이다. 네놈들에게 실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고 보면 알겠지.”

장담하는 중년인을 점혈하며 벽우진이 개왕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쪽은 자신이나 제갈현보다는 개왕이 전문가일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정보력도 가장 뛰어나고.

“제가 보조하겠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하고.”

“최대한 서둘러서 알아내겠습니다. 만천무제의 무덤도요.”

제갈현에 이어 개왕이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전투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이쪽은 달랐다.

그렇기에 개왕이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했다.

“부탁해.”

“맡겨주십시오.”

“청범이는 사로잡은 놈들 인수인계하고.”

“예, 사형.”

벽우진은 장내를 빠르게 정리했다.

알아낼 것도 많았지만 부상을 입은 자들의 치료 역시 중요해서였다.

특히 아무 이유 없이 죽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기에 벽우진은 서진후와 함께 서둘러 움직였다.

거대한 석조기둥이 줄지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널찍한 대전의 태사의에 한 명의 장년인이 앉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만인을 찍어 누르는 듯한 무거운 존재감에 호출을 받은 흑의복면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조아렸다.

“육반수에 있던 아이가 지시를 어겼다며?”

“예. 제갈세가주와 개왕을 잡기 위해 독단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흑의복면인이 독단적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자신과는 연관이 없음을 확실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독단적이라. 왜 그랬을까?”

“파, 파악 중입니다.”

“근데 구절서생과 개왕 둘이서 그 아이를 쓰러뜨릴 수 있나? 내가 기억하기로 진명마가주의 동생이 거기 책임자로 갔다고 들었는데.”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가 흑의복면인에게로 향했다.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엎드려 있던 흑의복면인은 몸을 떨었다.

“맞습니다. 진명마가주의 하나뿐인 동생이 총 책임자입니다. 그리고 파악하기로 혼자라면 모를까 육반수에 투입된 전력을 감안하면 구절서생과 개왕 둘 만으로는 버거운 게 사실입니다.”

“근데 왜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

장년인이 재차 물었다.

그러나 흑의복면인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 확실하게 파악된 것이 아니기에 가정을 말할 수는 없어서였다.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냐?”

“서, 서두르겠습니다.”

“그럼 확실하게 파악한 것들만 말해 봐.”

“육반수에 심어 두었던 기반이 모두 와해되었습니다. 개방의 주도 하에 무너졌는데 알아낸 것은 전무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근데 총 책임자가 붙잡혔잖아?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건 죽었거나 사로잡혔다는 뜻인데.”

몇 년 동안 만들어둔 기반이 무너졌음에도 장년인은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애초에 장난삼아 만들기도 했고,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었기에 잃어도 그만인 곳이었다.

나름 재미있게 잘 구경하기도 했고 말이다.

“사로잡혔다고 해도 개왕이나 구절서생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호오. 이번에는 확신하네?”

“반적우 역시 자랑스러운 본교의 교도이지 않습니까. 자긍심을 아는 자이니 함부로 발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맞아. 재능은 부족해도 긍지를 아는 녀석이기는 했지.”

장년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희미하게 떠오르기는 했다.

재능에 비해 욕심이 많기는 했어도 잔머리를 굴리는 성격은 아니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알아보도록.”

“존명.”

“더불어 장난감 역시 날려버려. 마지막은 성대하게 장식해 줘야지. 안 그래, 은마각주?”

“그리 하겠습니다.”

장년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미끼를 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말 그대로 장난감이었으니까. 오히려 걸려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잠시나마 무료함을 잊게 해줄 장난감.

장년인에게는 육반수가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무릎걸음으로 대전을 나가는 은마각주를 보며 이내 육반수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 제 82장. 오는 건 마음대로 와도 가는 건 아냐.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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