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6장. 신성(新星). -01 >
진짜 살기를 품고서 목을 찔러오는 위지건의 검극을 향해 심대현이 몸을 날렸다.
그러자 위지건의 입술에 조소가 맺혔다.
위지건의 눈에는 자만이 지나쳐 만용을 부리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호기도 적당히 부려야 한다는 걸 내 친히 알려주마. 원래 그런 건 윗사람이 알려주는 것이니까.’
쌔애애액!
백색의 검기가 일순 더욱 빨라졌다.
검속이 더 빨라진 것도 있지만 검극에서 검기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었다.
콰직!
달려드는 입장에서는 더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는데 놀랍게도 심대현은 그 검기를 박살냈다.
피하지도, 그렇다고 튕겨내지도 않고 그냥 단순히 주먹으로 부숴버리자 위지건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이런 결과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었기에 놀란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까드득!
검기가 서려 있는 검신을 심대현이 아무렇지 않게 움켜잡았던 것이다.
그것도 찌르는 와중의 검을 말이다.
“무슨!”
솟구치는 검기를 부순 것도 모자라 단숨에 자신의 애검을 붙잡는 심대현의 모습에 위지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아무리 검을 잡아당겨도, 휘둘러도 붙잡힌 애검을 좀처럼 빼낼 수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로 놀라면 쓰나?”
“이 새끼가!”
심대현의 이죽거림에 위지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검에 주입하던 공력을 배로 늘렸다.
회수할 수 없다면 이대로 손가락을 잘라버릴 작정이었다.
규칙에도 살인만 안 된다고 했지 다른 주의사항은 없었기에 위지건은 망설이지 않고 검강을 일으켰다.
키이이잉!
이윽고 막대한 공력이 주입되자 검이 울부짖었다.
갑작스러운 진기에 검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위지건이 바랐던 심대현의 비명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심하긴. 생각해낸 게 겨우 검강이냐?”
“······!”
위지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검강이 제대로 펼쳐졌음에도 여전히 그의 애검은 심대현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었다.
손가락을 잘라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서지려는 듯 기괴한 마찰음을 내고 있는 모습에 위지건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거들먹거리기에 뭔가 있는 줄 알았는데, 완전 허당이네?”
퍼억!
심대현이 히죽 웃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발이 시원스럽게 위지건의 복부를 강타했다.
말하는 순간 기습적으로 공격했던 것이다.
“크헉!”
벼락처럼 쇄도한 발차기에 위지건의 몸이 새우처럼 휘었다.
그래도 꼴에 검객이라고 손에서 검을 놓지 않은 것이다.
“헤에.”
고통이 부들부들 떨면서도 악착같이 검병을 붙잡고 있는 모습에 심대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먹고 날린 발차기인 만큼 당연히 꼴사납게 나뒹굴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결과가 다르게 나와서였다.
“개새끼가 감히!”
반면에 위지건의 분노는 극도로 치솟았다.
버러지라 생각했던 심대현에게 농락당하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노성을 토해냈던 것이다.
동시에 그의 좌수에서 강기가 솟구쳤다.
권장각에는 그 역시 일가견이 있기에 좌수로 공격한 것이다.
콰아앙!
하지만 화려하게 솟구쳤던 수강은 심대현의 투박한 주먹질에 산산조각 났다.
심대현 역시 권강으로 위지건의 일수를 맞받아쳤던 것이다.
“큭!”
그 충격으로 위지건의 신형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속절없이 휘청거렸던 것이다.
“너무 실망스러운데. 좀 더 분발해 보라고. 어제의 거만했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라고. 그래야 나도 좀 상대하는 맛이 있을 거 아냐?”
“닥쳐라!”
비아냥거리는 심대현의 말에 위지건이 결국 폭발했다.
검은 붙잡혀 있고 왼손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위지건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끝까지 잡고 있던 검까지 놓으며 쌍권을 내질렀던 것이다.
쿠아아앙!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는지 위지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무지막지한 공력이 쌍권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심대현은 그것을 보고도 히죽 웃었다.
검객이 스스로 검을 놓은 것만큼 쪽팔린 것도 없어서였다.
“온갖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더니.”
“죽여 버리겠다!”
“어이, 살인은 안 돼. 실격패라고.”
쑤아아앙!
심대현의 이죽거림이 들리지 않는 건지, 아니면 분노에 눈이 돌아간 건지 위지건은 대답 없이 주먹부터 내질렀다.
애초에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기에 두 개의 권강은 순식간에 심대현의 면전 앞까지 다가왔다.
말 그대로 압사시켜버리겠다는 듯이 무지막지한 크기로 심대현을 찍어 눌렀던 것이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통했겠지만.’
살벌한 백광을 번뜩이는 두 줄기의 거대한 권강을 보며 심대현은 입술을 비틀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허술한 공격이었기에 심대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공력만 많은 멍청이의 공격에 맞아줄 정도로 나는 어설프게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니까.’
심대현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첫 수를 교환했을 때부터 심대현은 알아차렸다.
위지건이 전형적인 만들어진 무인이자 후기지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까지는 압도적인 공력으로 인해 손쉽게 참가자들을 쓰러뜨렸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쩌저저적!
“무, 무슨···!”
피할 수 없는 거리였기에 자신만만한 얼굴로 쌍권을 내지르던 위지건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자신의 전력이 담긴 권강이 너무나 허무하게 박살나서였다.
심지어 심대현은 별로 어렵지 않게 그의 권강을 부숴버렸다.
딱히 큰 힘을 쓰지 않았다는 듯한 얼굴로 말이다.
쌔애액!
게다가 심대현의 반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오른손으로는 두 개의 권강을 산산조각 냈고 나머지 왼손으로는 여전히 붙잡고 있던 검을 던졌다.
마치 비검술이라도 익힌 것처럼 너무나 정확히 그의 단전을 향해 검을 날렸던 것이다.
“큭!”
단전이 꿰뚫린다고 해서 즉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대현 역시 그걸 노리고서 검을 던진 것이었고.
때문에 위지건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서 황급히 옆으로 이동했다.
턱!
“어딜 가시나.”
절묘한 순간에 파고드는 검을 피했을 때 그의 귓전으로 뜨끈한 김이 느껴졌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심대현이 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것이었다.
권강이 충돌하면서 분명 상당한 거리가 벌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쫘아악!
말을 마침과 동시에 심대현의 우장이 위지건의 뺨을 시원스럽게 타격했던 것이다.
“끄아악!”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너무나 찰진 소리와 함께 위지건이 비무대의 끝까지 날아갔다.
따귀도 따귀지만 손에 실린 힘이 상당했기에 비무대 끝까지 날아간 것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끼긴 했는데, 역시 손맛이 있네. 때릴 맛이 있는 면상이야.”
“이, 이 버러지 새끼가···!”
“발음이 새니까 더 병신 같아서 좋은데?”
“크아아앙!”
순식간에 부어오른 볼로 인해 발음이 미묘하게 샜다.
그리고 그걸 심대현은 놓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소재로 이용해서 위지건을 더욱 도발했던 것이다.
결국 위지건은 눈이 뒤집히며 심대현에게 달려들었다.
“어이구 무서워라.”
똑같이 심대현의 뺨따귀를 날리겠다는 듯이 위지건이 수강을 줄기줄기 내뿜었다.
따귀를 날리는 것을 넘어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는 심보가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심대현은 오히려 웃었다.
위지건의 얼굴에 떠오른 속내처럼 어떻게 공격하려는지 그의 눈에는 너무나 훤히 보였던 것이다.
짜아악!
괜히 명문세가의 자제가 아니라는 듯이 위지건은 순식간에 심대현과의 간격을 좁혔다.
하지만 살벌한 기세와 달리 성과는 없었다.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는 손과 함께 그의 고개가 반대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반대쪽 뺨에 따귀를 맞았던 것이다.
“끄헉!”
정신이 번쩍 들다 못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고통에 위지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짜악! 짝!
허공에 붕 떠올라 있는 위지건을 심대현이 마치 장난감 다루듯이 양쪽 뺨을 번갈아 때렸던 것이다.
두 발이 땅에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연거푸 날리는 따귀에 위지건의 얼굴이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랐다.
하지만 심대현은 두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 그마···!”
입술은 진즉에 터졌고 두 눈 역시 보기 흉할 정도로 부었다.
양쪽 뺨은 시퍼렇게 변한지 오래였고.
그러나 심대현은 그것을 알면서도 따귀를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켁!”
모욕적일 정도로 따귀를 날리던 심대현이 끝까지 이죽거렸다.
그를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형제들을 깔아보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더구나 벽우진까지 같이 있던 자리이지 않았나.
‘이 정도에서 멈출 수 없지.’
심대현의 시선이 빠르게 심판의 위치를 살폈다.
일방적인 폭력에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다.
승패가 결정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를 말리러 접근했던 것이다.
퍼퍼퍼퍽!
다가오는 심판의 기척을 느끼며 심대현은 더욱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왼손으로는 위지건의 멱살을 붙잡고서 오른손으로 쉴 새 없이 양쪽 뺨의 따귀를 날렸던 것이다.
“그, 그만···!”
“심 소협.”
더욱 거세지는 따귀에 위지건이 퉁퉁 부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심대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따귀를 날렸다.
그러자 결국 다가오던 심판이 그를 불렀다.
“아, 예.”
말리는 기색이 완연한 그 목소리에 심대현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움직이던 오른손을 멈췄다.
마음 같아서는 딱 일 각, 아니 반 각만이라도 더 때리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심판은 그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윽.
대신 심대현은 멱살을 놓기 전에 위지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정확하게는 위지건의 왼쪽 귀에.
“운이 좋았네. 다른 곳이었으면 반병신을 만들었을 텐데. 아니, 숨도 못 쉬고 있었겠지.”
부르르르!
서늘하다 못해 스산한 말에 위지건이 몸을 떨었다.
이상하게도 살기 하나 서리지 않은, 담담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었는데 위지건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분하면 언제라도 찾아와. 대신 목숨은 걸어야 할 거야. 네 목숨과 네 가문을 함께 말이지. 그렇게 못할 거면, 앞으로는 그 따위로 깝치지 마라.”
위지건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무슨 말인지 너무나 명료하게 이해되었기에 위지건은 마른침을 삼켰다.
동시에 그의 뇌리로 본가를 찾아오는 패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것만은 안 돼!’
북해빙궁주와 사왕성주를 홀로 때려잡은 절대고수가 패선이었다.
또한 알게 모르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그를 따르고 있는 만큼 벽우진이 나선다면 그 어떤 곳에서도 위지세가를 도와주려 하지 않을 터였다.
“승부는 났네. 그만 떨어지게.”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래도 귓속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이 붙어 있었기에 심판이 손을 까딱였다.
그만 떨어지라는 뜻이었다.
“예.”
심대현 역시 할 말은 다 한 상태였기에 머뭇거리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굳이 과한 행동으로 심판에게 밉보일 필요는 없어서였다.
“판박이네, 판박이야.”
“당연하지. 내 제자인데.”
승자를 발표하는 심판의 모습이 아닌 비무 시작 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심대현을 쳐다보며 당민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예의 바르고 고분고분하던 심대현이 위지건을 때려잡자 자연스레 옆에 앉은 친구가 생각나서였다.
“굳이 저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두려워 하는 게 낫다.”
“그건 아는데 너무 과해.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 제 76장. 신성(新星). -01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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