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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패선-243화 (243/325)

< 제 75장. 군계일학(群鷄一鶴). -03 >

벽우진의 시선이 11조의 비무대로 향했다.

두 번째로 경기에 나서는 이가 바로 11조에 있어서였다.

“완전 멋있었어요.”

“그래?”

“예. 첫 일격에 승부를 낸 것이잖아요. 상대방의 허를 찔러서.”

“무인들의 싸움도 재미있지?”

“재미있다기보다는 좀 살벌하죠. 하하!”

배혁문과 나란히 앉아서 비무대를 지켜보던 석정후가 머쓱하게 웃었다.

구경하는 입장에서야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했지만 막상 저 비무대 위에 자신이 서 있을 걸 생각하자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왔다.

갑자기 소변도 마려웠고 말이다.

“아직은 경험이 없어서 그래. 질리게 구르고 구르면 네 몸이 먼저 반응할 거야.”

“으아! 크!”

벽우진이 씨익 웃으며 온갖 감탄사를 내뱉는 배혁문을 가리켰다.

마치 자신이 참가자라도 된 듯 한껏 이입해서 괴상한 자세를 취하는 배혁문의 모습에 석정후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오!”

한데 그때 뒤쪽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말이다.

“백륜?”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배혁문만큼이나 피가 끓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소리를 지르던 백륜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자제하겠습니다.”

“아냐. 편하게 봐, 편하게.”

석정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십분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저 모습이 싫은 건 아니었다.

무공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만 하더라도 두 손에 땀이 나는데 백륜은 오죽할까 싶어서였다.

“잘 봐둬. 다른 이들의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니까. 뭐,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 크게 얻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안 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육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는 드문 것 같아요.”

“이제 시작했으니까. 아마 중간중간 격이 다른 녀석들을 볼 수 있을 거야.”

“사형들이나 사저들처럼 말이죠?”

“맞아. 구룡도 있고.”

벽우진이 석정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11조의 비무대를 쳐다봤다.

“사저가 나왔어요!”

“나도 봤다.”

“흐음. 상대가 낭인 같은데? 그것도 산전수전 다 겪은 닳고 닳은 낭인.”

들뜬 석정후와 달리 당민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한 자루 창을 등에 멘 사내에게서 상당히 위험한 냄새가 풍겨서였다.

사나운 맹수와도 같은 기도에 당민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비무대를 오르는 심대혜를 쳐다봤다.

“좋은 상대가 되겠네.”

“걱정 안 되냐고 묻기에는, 대혜도 만만치 않지.”

“암.”

벽우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짙은 신뢰가 서려 있었다.

누구보다 심대혜가 흘린 땀방울을, 쏟은 노력을 잘 알아서였다.

“···이러다가 진짜 서른두 개 중 일곱 자리 차지하는 거 아냐. 그럼 안 되는데.”

당민호가 미간을 좁혔다.

뿔뿔이 흩어진 곤륜파의 제자들과 달리 사천당가는 한 조에 세 명이 모두 모이는 불운이 닥쳤다.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 셋 중 둘은 탈락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아무리 잘해도 사천당가가 차지할 수 있는 본선의 자리는 하나뿐이라는 걸 뜻했다.

“그건 모르지. 비무대회는 워낙에 변수가 많으니까. 하루 내내 경기가 계속 치러지니까.”

“근데 얼굴에는 왜 자신감이 서려 있어?”

“난 우리 아이들을 믿거든.”

“쳇!”

말은 저렇게 해도 당민호는 알았다.

벽우진이 얼마나 자신만만해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게다가 벽우진의 제자들은 이미 용봉회에서 한 차례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한 바 있었다.

‘하필이면 왜 같은 조를 뽑아서!’

당민호가 이를 갈았다.

무작위로 번호표를 뽑았음에도 왜 같은 조에 걸렸는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이미 완성된 대진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었다.

“후우!”

“힘내. 그래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어디야.”

“약 올리는 거냐?”

“한 자리 차지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거다. 이번 비무대회에는 진짜 난다 긴다 하는 애들 다 나온 거 너도 알잖아.”

벽우진이 눈짓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황보세가의 대력장룡(大力掌龍)이 한껏 맹공을 펼치며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럼 뭐해. 너한테 밀릴 것 같은데.”

“내기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 써? 그냥 즐겨. 어쩌면 이게 마지막 네 인생의 마지막 비무대회일지도 모르는데.”

“이걸 때릴 수도 없고.”

당민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얄밉기 그지없는 벽우진을 때릴지 말지 주먹을 불끈 쥐고서 진심으로 고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벽우진은 오히려 웃었다.

“누가 맞아주기는 한데?”

“아오!”

“그만 흥분하고 지켜 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켜보는 것밖에는 없으니까.”

“크흠!”

당민호가 콧방귀를 끼었다.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까지 돌리는 모습에 벽우진은 피식 웃으며 심대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시작하려나 봐요.”

“그런 것 같구나.”

심대혜가 비무대에 올랐을 때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배혁문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양일우가 첫 경기를 깔끔하게 승리로 장식한 것처럼 심대혜 역시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응원했던 것이다.

“사저가 이겨야 될 텐데!”

“지켜보자꾸나.”

벽우진의 말에 배혁문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11조의 심판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시작을 알렸다.

‘후우.’

비무대에 올라온 심대혜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전투와 전쟁은 제법 많이 겪어 봤지만 이처럼 많은 관중들 앞에서 비무를 치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야유를 동시에 받으며 대결을 치러야 했기에 심대혜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

‘사부님께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

평소와 달리 조금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천천히 다독이며 심대혜가 마음을 바로 잡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앞에 선 상대를 빠르게 살폈다.

싸우기 전에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더구나 기이하게도 그녀와 마주치는 무인들은 묘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마치 타도 곤륜파를 외치는 것처럼 말이지.’

아무리 용봉회 때 실력발휘를 했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견제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남들을 핍박하거나 위협을 가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거만한 모습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고.

‘이유 없는 악의도 있는 법이니까.’

관심이 높아질수록 비례해서 커지는 견제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알 수 없는 것에 굳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대신 심대혜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목표는 우승.’

막내가 노래를 부르듯이 끊임없이 흥얼거린 그 단어를 심대혜는 곱씹었다.

출전한 이상 목표는 우승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자.’

심대혜에게 있어 이번 비무대회는 보여주고 증명하는 자리였다.

벽우진에게 제대로 무공을 전수 받았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리였기에 심대혜는 각오를 다졌다.

적어도 못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고 말이다.

“시작!”

그러는 사이 심판이 시작을 알렸다.

두 사람 다 준비가 된 듯하자 망설이지 않고 비무를 진행시켰던 것이다.

스윽.

하지만 비무가 시작되었음에도 상대방은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등에 메고 있던 창의 중단을 잡고서 날카로운 눈으로 심대혜를 주시했다.

‘신중한 성향인가.’

대개 지금까지는 심판이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공세를 취하는 이들이 많았다.

선수필승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어서였다.

더구나 오늘 몇 경기를 치러야 할지 누구도 알 수 없었기에 최대한 서둘러 승부를 내는 게 유리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달랐다.

‘일격필살? 아니면 거리를 재는 건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사내를 주시하며 심대혜 역시 몸을 틀었다.

사내를 정면에 두고서 움직임을 주시했던 것이다.

특히 심대혜는 사내의 발에 특히 집중했다.

아무래도 상대방의 무기가 창이다 보니 거리에 신경 쓸 수밖에 없어서였다.

‘승부는 거리에서 난다.’

사형제 중에 창을 다루는 이는 없지만 거리 싸움에는 익숙했다.

또한 실전 역시 적지 않게 겪었기에 심대혜는 이 승부가 어디에서 갈릴지 깨달았다.

파아앗!

그런데 그때 사내가 움직였다.

신중하게 거리를 재면서 심대혜의 움직임을 살피던 그가 느닷없이 창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스슥!

기습처럼 심장을 노리고서 쇄도하는 창격이었지만 심대혜는 침착했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옆으로 이동해 상대의 공격을 피해냈던 것이다.

촤르륵!

한데 상대의 반응도 기민했다.

마치 심대혜가 피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찌른 상대에서 창을 휘둘렀다.

그것도 피하기 어렵게 사선으로 내리그으면서 말이다.

‘이건 피할 수 없을 걸!’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는 창대의 모습에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실전으로 다져진 그의 연격인 제아무리 곤륜파의 제자라고 하더라도 피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게다가 상대는 패선의 제자들 중에서도 크게 알려진 게 없는 여제자였다.

그런 만큼 사내는 이번 대결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를 잡고 내 이름을 알린다!’

용봉회 이후 마치 구룡의 대항마처럼 떠받들려지고 있는 게 곤륜의 제자였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중원무림에는 구룡과 곤륜파의 제자들만 있지 않았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후기지수들도 존재했다.

‘내가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심장을 노렸던 창극이 단숨에 단전을 향해 내리그어졌다.

제대로 맞는다면 허리가 사선으로 양분되고도 남을 위험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공격을 펼침에도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살인은 안 되지만 그렇다고 대충 봐주면서 비무에 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

비무에서 부상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소문대로라면 이 정도 공격은 크게 무리 없이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조금 다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금속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퍽!

대신 그의 창날이 비무대에 박히며 불똥을 튀겼다.

놀랍게도 심대혜가 그의 일격을 완벽하게 피해냈던 것이다.

쌔애액!

그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그와의 간격을 좁히며 검을 찔러왔다.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간결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그의 명치를 노렸던 것이다.

‘똑같이 나오겠다?’

심장도 아니고 명치를 노리는 일검에 사내의 두 눈매가 매서워졌다.

방금 전 자신이 펼친 공격과 똑같은 방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용해주지!’

사내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는 순간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땅에 박힌 창대의 탄성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허공으로 붕 떠올랐던 것이다.

‘이대로 등 뒤를 잡아서···!’

순식간에 반원을 그리며 심대혜의 뒤로 넘어갔던 사내가 두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심대혜의 신형이 흐릿해져서였다.

동시에 오른쪽 옆구리가 서늘해졌다.

수많은 실전으로 벼려진 그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하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퉁!

그 경고를 사내는 무시하지 않았다.

아니, 곧바로 받아들여 창대를 다시 한 번 튕겼다.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휘리리릭!

하지만 방향전환이라면 심대혜도 일가견이 있었다.

운룡대팔식을 극성으로 펼치며 벌어진 간격을 순식간에 좁혔다.

“치잇!”

창을 다룰 거리를 절대 주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드는 심대혜의 모습에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만만하게 봤는데 의외로 직접 붙어보니 예상 외로 까다로웠다.

‘그렇다면!’

< 제 75장. 군계일학(群鷄一鶴).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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