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242화 (242/325)

< 제 75장. 군계일학(群鷄一鶴). -02 >

친구지만 간혹 벽우진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런 벽우진의 결정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말고.”

“너도 솔직히 인정하잖아? 네가 정상은 아니라는 걸.”

“아닌데. 난 지극히 평범한데?”

“너 혼자만 그리 생각할 걸?”

당민호의 시선이 청민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선택이 잘못되었다.

벽우진의 사제인 청민이 그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아참. 여기에 내 편은 없지.”

“그러니까 네 편이 잔뜩 모여 있는 곳으로 가.”

“안타깝게도 거기는 대신 재미가 없어. 통통 튀는 맛이 없다고나 할까.”

“네가 불편해서 그래.”

“우리 서로의 명치는 때리지 말자.”

당민호가 키득거렸다.

그러면서 역시 이 맛에 벽우진을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가솔들은 그를 너무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 했기에 이런 맛이 없었다.

“난 다른데? 내 명치 때리는 이가 적어도 곤륜파에는 둘 이상 있어.”

“그건 좀 부럽네.”

당민호가 진심으로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 있는 청민만 하더라도 벽우진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서진후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외롭진 않잖아?”

“병 주고 약 주기냐?”

“사실만을 말했을 뿐.”

“곤륜파와 석가장이라.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기는 하네.”

달리 황금세가라 불리는 곳이 석가장이었다.

물론 그 석가장이 석정후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곤륜파와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벽우진의 선택 중에 실패한 것은 없었다.

‘만약 이 녀석이 석가장의 주인이 된다면···.’

당민호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때는 곤륜파가 다시 한 번 도약할 게 분명했다.

무력과 금력을 다 같이 손에 쥐고서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진짜 무섭겠는데.’

이미 무력만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게 바로 곤륜파였다.

거기에 금력이 더해진다면 천하제일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딱히 그 칭호에 신경은 안 쓸 것 같지만 말이지.’

당민호의 시선이 제자들에게 향해 있는 벽우진에게로 향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의 친구는 딱히 명성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거절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형님께서는 아이들이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습니까?”

“너희? 아니면 우리 아이들?”

“사천당가 쪽이요.”

“그래도 본선은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대진 운만 있으면. 구룡만 피해도 서른두 개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어렵지 않지.”

당민호가 호언장담했다.

운만 조금 따라준다면 본선에 오르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질문했던 청민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힘들겠는데요?”

“왜?”

청민의 말에 당민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자 청민이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겠는데요. 남궁세가와 사천당가의 격돌이라니.”

“하필이면!”

당민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본선도 아니고 예선에서, 그것도 첫 시합에서 마주치게 되어서였다.

하지만 그의 노발대발에도 불구하고 조 추첨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 내 제자들이라서 그런가. 운빨 하나는 있다니까.”

“그러게요.”

반면에 벽우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혔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피해서였다.

서른두 개의 조 중 한 조에 겹친 아이들은 다행스럽게도 없었다.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지는 아침 바람을 맞으며 양일우가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상에서 눈을 뜰 때부터 함께 있던 사형제들이 지금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그의 주변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참가자들로 바글거렸다.

“어후.”

답답한 마음에 양일우는 대기실처럼 사용하는 천막에서 나왔다.

바깥공기도 쐴 겸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크긴 크단 말이지.”

마치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낸 것처럼 분지는 넓었다.

지름이 육 장이나 되는 정방형의 비무대가 무려 서른두 개나 있었음에도 그리 좁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계단처럼 깎여진 가장자리에는 벌써부터 구경하러 온 관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찾아낸 건지. 아니 만든 건가?”

자연미와 인공미가 어울려진 분지를 둘러보며 양일우가 고개를 저었다.

동원된 인력도 인력이지만 자금 역시 엄청나게 들었을 것 같아서였다.

“첫 번째 시합에 출전하는 분들은 준비하십시오!”

주변을 둘러보며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던 양일우의 귓가로 진행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에 공력을 가득 실어 크게 외쳤던 것이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주변의 기운이 들썩였다.

잠시 후면 비무대회가 시작한다는 걸 뜻했기에 다들 흥분했던 것이다.

“후우!”

그리고 그건 양일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형제들과 달리 그는 첫 경기에 출전해서였다.

17조 1번.

팔뚝에 묶여 있는 자신의 번호를 내려다보며 양일우가 발걸음을 옮겼다.

“준비되셨습니까?”

“예.”

“다시 한 번 규칙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독이나 독이 발라져 있는 무구는 사용이 불가하며 살인 역시 안 됩니다. 대결은 한 쪽이 패배를 시인할 때까지 계속되지만 심판께서 봤을 때 전투불능의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비무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때 심판의 지시를 무시하면 안 되며 불복 또한 안 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예.”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진행관의 설명에 양일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양일우는 성실하게 들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없지만 그래도 들어서 나쁠 것은 없어서였다.

“그럼 올라가시죠.”

진행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일우가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지면보다 3척 정도 높게 만들어진 비무대였는데 바닥에 떨어지면 실격패였다.

그렇기에 비무 중에 떨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늘 공간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지.’

공간이 좁지 않은 만큼 경신술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거리 계산을 까딱 잘못하면 어이없게 떨어질 수 있기에 대결을 하면서도 공간을 늘 신경 써야 했다.

저벅저벅.

그러는 사이 어느새 양일우는 비무대의 중앙에 서 있는 심판의 앞에 섰다.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고.

찌릿찌릿!

특히 눈빛이 장난 아니었다.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는 눈빛에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지만 정작 양일우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사부님.’

관중석과는 거리가 상당했지만 양일우는 단번에 벽우진을 찾을 수 있었다.

워낙에 고고한 기도를 뿌리는 벽우진이었기에 찾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벽우진과 눈이 마주치자 양일우는 빙그레 웃었다.

‘곤륜파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대결을 펼치겠습니다.’

고개를 돌린 양일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사형제들과 함께 있을 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목표는 우승이었다.

고작 본선진출에 만족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곤륜파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높인다.’

양일우는 우승으로서 벽우진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생각이었다.

물론 동생들도 같은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양보는 없어.’

양일우의 시선이 빠르게 상대방을 훑었다.

이제야 상대를 살펴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심판이 시작을 알렸다.

“시작!”

호쾌한 목소리와 함께 심판이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벌렸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상대방의 유엽도가 양일우의 어깨를 노리고서 벼락처럼 쇄도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지. 단순히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선수필승을 외치는 듯이 시작하자마자 돌진해오는 상대의 공격을 보면서 양일우는 어젯밤 벽우진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우승을 노린다면 단순히 이기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기는 것은 기본이고 다치지 않고 체력소모를 최소화해야 우승을 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운조차도 깨부술 실력이 있어야 우승할 수 있다고 하셨지.’

쩌어어엉!

양일우가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전초전이니 간보기니 그런 것 없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참격을 뿌리자 상대방의 유엽도가 산산조각 났다.

“큭!”

예상치 못한 거력에 유엽도가 박살나자 상대방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런 상황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당황한 것이었다.

스스슥!

심지어 자신의 진기를 가득 머금은 유엽도의 조각들이 몸을 향해 날아오자 청년은 깜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다.

반사적으로 회피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일격에 유엽도를 산산조각 낸 양일우가 어느새 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것이다.

‘이대로 무너질 것 같으냐!’

곰처럼 거대한 덩치를 가진 양일우가 순식간에 접근했지만 청년은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신체조건의 차이는 내공으로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어서였다.

지금의 일격도 순간의 방심으로 당한 것이었지 제대로 붙었다면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터였다.

부우웅!

매섭게 검을 찔러오는 양일우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흘려내며 청년이 장심을 내밀었다.

강맹한 일장으로 양일우를 단숨에 날려버리려는 것이었다.

투웅.

그런데 강맹한 기세와 달리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나 미약했다.

북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되레 그의 손이 튕겨졌던 것이다.

“쿨럭!”

심지어 청년의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지막지한 반탄력에 오히려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놀랄 새가 없었다.

덥석!

뒤로 튕겨져 날아가는 그의 목을 양일우가 우악스럽게 붙잡았기 때문이다.

마치 날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청년의 목을 단숨에 낚아챈 양일우는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렸다.

“크윽!”

순식간에 두 발이 뜨게 된 청년이 버둥거렸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목을 움켜 쥔 양일우를 손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두터운 손가락은 조금도 미동을 하지 않았다.

스윽.

발작하듯 온몸을 비트는 청년의 이마를 향해 양일우는 조용히 검을 밀었다.

미간의 바로 앞에 검극을 댔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심판의 낭랑한 외침이 비무대를 갈랐다.

“1번 승!”

“켁! 케헥!”

누가 봐도 승자가 결정된 상태였기에 심판은 망설이지 않았다.

양일우가 일부러 천천히 검을 움직였음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젠장! 젠자앙!”

심판의 판정이 나오자마자 양일우는 상대의 목을 잡고 있던 왼손을 풀었다.

그리고 정중히 인사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분한지 대답은커녕 땅바닥만 다친 손으로 내리찍었다.

“그럼.”

그 모습에 심판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양일우는 담담히 몸을 돌렸다.

심판에게도 인사하는 여유를 보이며 비무대를 내려왔던 것이다.

“속전속결이네.”

“누구 제자인데.”

“아, 애들한테 저걸 말해줬어야 했는데.”

깔끔하게 승리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무대를 내려가는 양일우의 모습에 당민호가 탄식을 흘렸다.

어째서 초반에 승부를 봤는지 그는 알아차렸던 것이다.

동시에 손주들에게 조언을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라도 찾아 봐. 거리가 제법 되지만 전음을 보낼 정도는 되잖아?”

“천막 안에 있는데 어떻게 찾아.”

“몇 조인지도 몰라?”

“어···.”

당민호가 벽우진의 시선을 피했다.

당연히 본선에 오를 거라 생각했기에 예선전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이 잘 관리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완전 놓았네. 손주들 챙긴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끄응! 예선전 정도는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뭐, 잘하겠지. 애들도 이제는 경험이 적지 않은데.”

< 제 75장. 군계일학(群鷄一鶴).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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