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236화 (236/325)

< 제 73장. 천하무림 비무대회. -03 >

“다행히 나이 제한이 열다섯까지라서 어찌어찌.”

“아.”

“준비는 잘 되어가나? 참가 인원이 엄청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벽우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제갈현에게로 향했다.

참가 인원이 많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숫자는 오직 제갈현만 알고 있어서였다.

“어제까지 참가 신청 등록을 한 이들이 사천 명 가까이 됩니다. 지금도 받고 있을 테니 오천 명은 무난히 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마어마하군.”

벽우진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많을 거라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삼 일만에 오천 명 이상이 등록할 줄은 몰랐기에 벽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반 신청인 태성전(太星戰)보다는 용봉전(龍鳳戰)의 비율이 조금 더 높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감당할 수 있나? 인력도 인력이지만 임금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참가 신청하는 인원이 내는 참가비로 충당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크게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많이 이들이 참가 신청을 했기에 모인 돈이 상당합니다.”

“다행이군.”

“인력이나 임금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자라면 저희가 충당하면 되고요.”

법무가 입을 열었다.

제갈현이 알아서 잘하겠지만 만약 부족하다고 하면 조금씩 갹출하면 될 일이었다.

“부족해지면 바로 말하겠습니다.”

“듣자하니 예선을 오르기 전에 기본 실력을 시험하는 게 있다면서?”

“인원이 많기에 한 번 정도는 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쭉정이들이 너무 많으면 비무대회의 질을 떨어뜨리니까요. 시간도 절약할 겸. 아무리 즐거운 축제라도 너무 길어지면 지치고 지루해지는 법이니까요.”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을 텐데.”

벽우진이 우려 섞인 눈빛을 보냈다.

자칫 잘못하면 말이 나올 수도 있는 부분이어서였다.

“최대한 논란이 나올 수 없는 시험으로 선정했습니다. 오로지 가진 바 실력으로만 판가름할 수 있게요.”

“뭐, 알아서 잘 하겠지. 그보다 세외 쪽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없어?”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독문이나 대막 쪽에서도 딱히 준동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요.”

“그럼 일단 비무대회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소리군.”

비밀리에 움직이는 세력을 전부 다 확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주시하고 있는 만큼 예전처럼 갑자기 기습을 당하는 확률은 적을 터였다.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바로 알아차릴 터였고.

“예. 아마도 꽤나 흥미진진한 비무대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은근히 칼을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흠흠!”

“커험!”

제갈현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헛기침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언가 찔리는 듯이 슬쩍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던 것이다.

제갈현과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칼을 갈아?”

“예. 용봉전은 어떻게 보면 최고의 후기지수를 가리는 대회이지 않습니까. 태성전이야 우승을 하더라도 장문인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지만, 후기지수들은 다르지요. 일단 우승을 하면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지 않습니까.”

“왜 벽이 나만 있어? 무제도 있고, 권제도 있는데.”

벽우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하필 자신을 거론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도 동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하. 마지막 관문은 다들 장문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그 말은 그 정도로 무림인들이 장문인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패선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중원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나 마찬가지니까요.”

제갈현이 살살 어르고 달랬다.

자고로 사람이라면 칭찬에 약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의 관계를 잘 조율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점창파가 골육상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의 출혈은 피해야 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벽 장문인께서 곤륜파를 재건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다는 것 정도랄까.’

괴팍한 성격을 가진 벽우진이지만 그럼에도 각 파의 수장들이 반발하지 않는 건 그가 딱히 욕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누군가를 찍어 누르거나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 혹은 정복욕 같은 게 벽우진에게는 일체 없었다.

건들지만 않으면 다른 곳, 다른 일에 무관심한 게 벽우진이었다.

실질적인 무력은 여기 있는 모두를 압도하면서 말이다.

‘그게 참 쉽지 않은데.’

남자로서의 야심, 무인으로서의 야망은 어떻게 보면 본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벽우진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어쩌면 그게 도인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라고 제갈현은 생각했다.

만약 벽우진 같은 무력이 다른 이에게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자리는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터였다.

‘절대권력을 지니고 있지만 지배하지는 않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이와 배분, 그리고 무력을 모조리 가지고 있는 게 벽우진이었다.

그런데 그걸 딱히 티 내지 않았다.

오늘과 같은 자리도 제갈현의 초대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가.

막말로 다른 이가 벽우진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면 초대했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하며 오히려 자신이 있는 장소에 모두를 불렀을 터였다.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정말 특이하긴 하네.’

제갈현은 새삼 벽우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호무림에 있어 홍복인지 깨달았다.

조금 까탈스럽기는 해도 힘만 센 막무가내보다는 훨씬 나았다.

적어도 벽우진은 대화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중원은 무슨. 난 곤륜산 하나도 지키기 버거운 사람이야.”

“곤륜산 또한 중원이지 않습니까.”

“퍽이나.”

벽우진이 의자에 늘어지며 코웃음을 쳤다.

말은 이렇게 해도 대부분의 중원인들이 청해성을 변방이라 생각한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곤륜산은 그런 청해성에서도 세외에 인접해 있었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소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험험! 저는 언제라도 곤륜산에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의족이 제 진짜 발 같거든요.”

제갈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혜량과 법무, 개왕이 입을 열었다.

적어도 자신들은 제갈현과 같은 생각이어서였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청해성을 변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개방이 가장 정신없을 것 같은데. 참가자들 신원확인을 하느라.”

“저희가 가장 잘 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인력 또한 가장 많고. 오히려 일거리가 있어서 좋아합니다. 적어도 배를 굶을 일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또 구경거리도 확실하니까요. 제일 재미난 구경거리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지 않습니까.”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 또한 쌈박질이지.”

볼거리야 확실했지만 그만큼 위험한 게 바로 비무였다.

생사결이 아닌 규칙이 있는 대결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심심찮게 사상자가 나오는 게 바로 비무대회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각파의 장로 분들이나 호법님들께서 수고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심판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우리한테는 공문이 안 왔는데?”

“곤륜파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제가 따로 공문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한창 바쁘다고 듣기도 했고요.”

“그래?”

벽우진이 살짝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인원 때문이라기보다는 실력으로 가른 듯한 느낌이 살짝 들어서였다.

“예. 왠지 공문을 보내면 욕이 잔뜩 적힌 답장이 날아올 것 같아서요.”

“에이, 설마. 내가 그렇게 막돼먹은 성격은 아냐. 조금 까칠할 뿐이지.”

“장로 두 분 모두 제자를 들이신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그 부분을 감안하고 결정했습니다.”

제갈현이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결정했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했다.

자기가 이렇게 노력한다는 걸 벽우진이 알아주었으면 싶어서였다.

배려하는 게 당연해지지 않으려면 상대방이 이런 걸 알고 있을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역시 제갈가주야.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 주다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우리는 예선전부터 관전하면 되나?”

“서른두 개의 조로 예선전이 치러지기에 모든 예선전을 신경 쓰기 힘들 겁니다. 아마 다들 자기 소속 제자들을, 혈족들을 신경 쓰기 바쁠 테고요.”

“하긴. 그럼 본선은 서른두 명이겠군.”

“그렇습니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앉아있던 수장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야말로 전통적인 강호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두 눈에서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최종 우승자는 두 명이고 말이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자 합니다.”

“무엇을?”

“서로가 원한다면 태성전의 우승자와 용봉자의 우승자가 대결할 수 있도록요.”

“호오.”

제갈현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쁘지 않은 기획 같아서였다.

“물론 한 명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결은 성사되지 않겠지만요.”

“괜찮은 생각인 것 같군.”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제갈현이 벽우진을 위시로 둥글게 앉아 있는 수장들과 눈을 마주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상만 해도 재미있는 광경이 그려졌기에 단 한 명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비무대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낙양 인근의 널찍한 평야에 꼭두새벽부터 인부들이 모여 들었다.

수백 명의 인부들이 무언가를 낑낑 거리며 땅 한 복판에 무언가를 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 당겨!”

“흐으읍!”

이윽고 마차에 실려 온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빛을 발하는 거대한 철 기둥이었는데 높이가 무려 칠 척 가까이 됐다.

“무인들 시키면 금방 할 일을 왜 우리들한테 시키는지.”

“그게 싸게 먹히니까. 무게도 우리들 같은 범인이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잖아.”

“역시 사람은 글을 배워야 해. 똑같은 임금을 받는데 우리는 죽어라 힘쓰고 저 치들은 앉아서 붓만 놀리잖아.”

“부러우면 지금이라도 글공부를 시작하던가.”

땀을 뻘뻘 흘리던 털북숭이 인부 하나가 툴툴 거렸다.

자신은 뼈가 녹도록 힘을 쓰는데 서류를 정리하는 이들은 시원한 그늘막 아래서 일을 하고 있자 너무나 부러웠다.

돈이라도 몇 푼 더 번다면 그래도 참아보겠는데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장정이 투덜거렸다.

“이제 와서 공부는 무슨.”

“시켜줘도 못 할 걸? 머리가 안 돼서.”

“맞아맞아!”

“무슨 소리! 어렸을 적부터 차근차근 배웠으면 나도 달라졌을 겨!”

주위에서 동조하듯 대답하자 털북숭이 장정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

“이 철 기둥 하나만 팔아도 며칠은 술독에 빠져 살 수 있을 텐데.”

“요거 묵철이지?”

“그럴 거요.”

“허유. 술독이 뭐야. 안주도 허벌나게 먹을 수 있을 것인데.”

키는 작지만 탄탄한 체구의 중년인이 입맛을 다셨다.

그냥 철보다 훨씬 비싼 묵철이 이만한 크기라면 값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묵철은 그에게 있어 그림의 떡이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있지만 가질 수는 없는.

“슬슬 시작하려나 봅니다.”

“이럴 땐 참 부지런하단 말이지.”

“그래도 비무대회가 낙양에서 열려서 저희들이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습니까.”

삼삼오오 모여서 다가오는 무리들을 쳐다보며 젊은 인부가 입을 열었다.

철 기둥을 세우자마자 기가 막히게 찾아와서였다.

< 제 73장. 천하무림 비무대회.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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