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3장. 천하무림 비무대회. -01 >
아직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에 하남성 낙양으로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열리는 비무대회에 수많은 무인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서 낙양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곤륜파도 있었다.
“어후. 사람들 봐라.”
“인산인해네요.”
“그 수준을 넘은 것 같은데.”
낙양에 들어오기 전부터 느꼈었지만 진짜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사람 사이에 껴서 죽을 것 같은 엄청난 숫자에 벽우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중원에 존재하는 무인이라는 무인은 죄다 모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제갈가주께서 장소 선정으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1년 동안 준비했는데도 이러네.”
벽우진이 입맛을 다셨다.
급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고 1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것이 바로 이번에 열리는 천하무림 비무대회였다.
그런데 그 준비가 무색하게도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애초에 낙양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잖습니까.”
“마치 와본 것처럼 말한다?”
“들은 건 많았으니까요.”
청민이 수많은 인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배혁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워낙에 사람들이 많았기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이렇게 몸에 손이 닿아 있어야 했다.
“근데 문제는 이게 시작이라는 거지.”
“저희가 좀 일찍 온 편인데도 이 정도라면 비무대회 당일 날에는 더 어마어마하겠죠.”
“내 말이.”
웬만해서는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는 벽우진이었지만 지금의 인파에는 기가 질렸다.
마음 같아서는 어검비행이라도 펼치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제자들을 챙길 수가 없기에 벽우진은 그저 한숨만 쉬었다.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건 무인들이지만 양민들 역시 구경은 할 수 있는데 말이지요.”
“낙양 장사꾼들은 좋아하겠지. 1년 치 수익을 어쩌면 이번 비무대회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저희도 이쪽에 좀 투자를 해놓을 걸 그랬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청범이 미리 움직였으니까.”
벽우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곤륜파에도 정보조직이 있었다.
게다가 제갈현에게 미리 언질 받은 것도 있었기에 서진후는 발 빠르게 움직였고, 그로 인해 성과도 낸 상태였다.
“아, 그러고 보니 청범이 장사꾼이었죠.”
“현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실력이 어디 간 건 아니지. 근데 일단 숙소부터 가자. 여기 있다가는 껴서 죽겠다. 얘들아! 잘 따라오너라!”
“예!”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는 인파에 벽우진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제자들이 크게 대답하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막내인 심소혜도 열다섯 살이 되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안전하게 손을 잡은 것이었다.
“혁문아!”
“난 사부님 손잡을 거야!”
“이게!”
심소혜가 일행 중 가장 막내인 배혁문을 불렀다.
청민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머리가 굵어진 것인지 배혁문이 그녀의 손길을 거절했다.
“사숙님이 챙기시니까 우리끼리 가자.”
“칫!”
“혁문이도 이제 열두 살이야. 사춘기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니까 너무 그러지 마.”
“그래도오.”
심대혜의 말에 심소혜가 입을 부풀렸다.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자신과 비슷한 키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너는 마치 말 잘 들었던 것처럼 말한다?”
“나는 작은 오빠처럼 사고는 안 쳤어.”
“무슨 소리. 너도 만만치 않았어.”
“아닌데.”
심대혜가 웃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막내의 사춘기 역시 만만치 않아서였다.
게다가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었다.
“우와! 백리세가다!”
“위지세가의 마차도 왔어!”
그때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난데없이 환호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그 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움직였다.
“엄청 화려하네.”
“왜? 부러워?”
“아니. 전혀. 난 지금이 더 좋아. 저렇게 휘황찬란하게 하면 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데.”
“우리도 돈은 많아.”
“있을 때 더 절약해야 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심소혜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다부진 얼굴로 말했다.
흥청망청 쓰다가 금세 파산하는 꼴을 그녀는 의외로 자주 봤었다.
“아이구, 우리 막내. 다 컸네, 다 컸어.”
“난 원래부터 컸거든? 봐봐! 이제 언니랑 별 차이 안 나!”
“아직은 그래도 좀 차이 나는데?”
“내년이면 따라 잡을 걸?”
심소혜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만큼 어쩌면 올해가 가기 전에 심대혜와 비슷해질 지도 몰랐다.
“근데 나보다는 혁문이를 더 경계해야하지 않을까? 진짜 무서운 속도로 크던데. 몸은 또 얼마나 단단한지. 특히 팔뚝이랑 어깨가.”
심소혜의 손을 잡고서 심대혜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사실인 것들이었기에 심소혜가 따질 게 없었다.
“내공은 내가 더 높아!”
“지금 그렇지. 근데 방심하고 있으면 금방 따라 잡힐 걸?”
“칫!”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심소혜가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더 이상 언니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저기 저 사람들, 곤륜파의 도인들 아냐? 눈이 벽안이던데.”
“곤륜파의 제자들이 혼혈이라고 그랬지?”
“응. 봐봐. 도복도 입고 있잖아.”
“에이. 그런데 저렇게 말도 한 마리 없이 거리를 거닐겠어?”
지나가는 벽우진 일행을 보며 몇몇 무인들이 속닥거렸다.
생김새는 중원인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눈동자 색깔만큼은 확연하게 달랐기에 하나둘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패선이 의외로 소탈 하다잖아. 성깔은 장난 아니지만.”
“흐으음.”
남자가 긴가민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근거들이 너무 명확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명문대파의 수장씩이나 되는 이가 저리 조촐하게 다닐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였다.
“아닌 거 같아?”
“사칭하는 이들이 한둘이야? 요새는 아예 색목인들을 데리고 다니는 놈들도 있다던데.”
“패선이 직접 만났으면 좋겠다. 알려진 성격대로라면 제대로 날려버릴 텐데.”
“구경하는 재미는 확실히 있겠지.”
“아, 나는 무림오화나 직접 봤으면 좋겠다. 특히 비화. 웬만해서는 아미산에서 나오질 않는다니까.”
한창 혈기왕성할 시기라서 그런지 결국에는 여자 얘기로 넘어가는 그들의 대화에 몰래 엿듣고 있던 심소혜가 실소를 흘렸다.
서예지가 그토록 남자는 그 놈이 그 놈이다라고 말하는 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사부님도 남자인데.’
심소혜의 시선이 벽우진에게로 향했다.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 그 뒷모습에 심소혜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풍파를 막아내는 걸 넘어 모조리 박살내버릴 것 같다고나 할까.
“허어.”
“참나.”
그런데 그때 앞장서서 걸어가던 벽우진과 청민에게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엇을 본 것인지 두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며 똑같이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하하하!”
“사숙님도 참.”
뒤이어 양일우와 양이추도 무언가를 본 듯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심소혜가 조르르 달려가서 양일우의 등에 매달렸다.
“왜요? 왜 그래요?”
“저기 봐봐.”
양일우의 손가락을 따라 심소혜의 시선 역시 움직였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건물에 매달린 현판에 닿았다.
“아앗!”
“사부님과 사숙께서 왜 장탄식을 흘리셨는지 알겠지?”
“전 귀여운데요. 청범객잔이라니.”
“청하라는 이름은 쓰기 힘들었을 테니 이해는 가지만, 좀 당혹스럽긴 하다.”
심소혜가 까르르 웃었다.
평범한 객잔과는 전혀 다른 이름이었기에 신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애매한 표정으로 벽우진과 청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사람들이 많네.”
“어서 옵셔!”
“청범으로 별채 하나가 잡혀 있을 것이다.”
“허업!”
벽우진이 들어오기 무섭게 바람같이 마중이 나오던 점소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바로 이 말이어서였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손님이 누구인지 점소이는 알고 있었다.
“모르나?”
“아아아, 압니다! 알고말고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벽우진을 향해 점소이가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접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1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했다.
워낙에 목소리가 컸기에 자연스레 시선이 집중되었던 것이다.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자자, 장문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그보다 작게 말해. 크게 안 말해도 잘 들려.”
“옙! 이리 오십시오!”
대답을 했음에도 여전히 큰 목소리로 말을 하는 점소이의 모습에 벽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척 보아하니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기에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서 벽우진은 점소이를 따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1층을 관통한 벽우진은 후원에 자리 잡은 아담한 별채를 보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별채는 하나뿐이냐?”
“예. 편하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따로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별채 안의 종을 울리시면 됩니다. 그럼 언제라도 저나 다른 점소이들이 달려갈 겁니다.”
“알겠다. 일단 간단하게 먹을 것을 부탁하마. 목욕할 물도.”
“예!”
“이거 받아라.”
띵!
깔끔하게 잘 정리된 별채의 모습에 벽우진이 흡족한 얼굴로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은덩이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점소이에게 날렸다.
“헉! 이렇게나 큰 금액을···!”
“머무는 동안 잘 부탁한다는 뇌물이다.”
“최선을 다하여 모시겠습니다! 제 이름은 소육입니다, 장문인! 언제라도 불러 주십시오!”
“일단은 부탁한 것부터.”
“옙!”
소육이 번개같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모두가 미소 지었다.
행동이 살짝 과장되기는 했지만 밉지는 않아서였다.
“올라가자.”
“예.”
소육이 준비하는 동안 짐을 풀 결 벽우진은 일행들을 이끌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별채의 지하에 마련된 자그마한 탕에 들어가며 심소혜가 노곤한 표정을 지었다.
뜨끈한 물에 몸을 지지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서였다.
“어흐, 좋다.”
“뭐야, 그 소리는. 아저씨처럼.”
“언니도 좋으면서.”
“그래도 집보다 좋지는 않아.”
“에이. 곤륜산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심소혜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기의 시설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배율석이 직접 만든 탕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크기도 완전히 달랐고 말이다.
“편하게 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지?”
“그럼그럼.”
“가격이 꽤 나갔을 것 같은데.”
“이 객잔?”
물에 몸을 깊숙이 담그며 심소혜가 물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은 연신 실내를 훑고 있었다.
“응. 규모가 꽤 크잖아. 더구나 낙양의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비싸긴 하겠지만 그래서 나중에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흐음. 그런 것도 알아?”
“나도 다 컸거든?”
촤르륵!
심소혜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자 파문과 함께 물방울이 튀었다.
“아직 한참 더 커야 할 거 같은데. 안 그래요, 사저?”
당돌하게 가슴을 쭉 내미는 심소혜의 모습에 심대혜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 막내는 그녀나 서예지에 비빌 수준이 아니었다.
“후후후.”
그 말에 동의하듯 서예지가 대답 대신 웃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대신 서예지는 몸을 일으켜서 탕 밖으로 나갔다.
“히잉!”
“소혜는 우유를 좀 더 마셔야겠는데?”
“언니 미워!”
많이 자라기는 했으나 아직 상당히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심소혜가 울상을 지었다.
반면에 심대혜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 제 73장. 천하무림 비무대회. -01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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