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5장. 호랑이도 있다. -05 >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묘하게 반 박자 빠른 듯한 공격에 양일우가 다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검면으로 남궁혁의 찌르기를 막기 위해서였다.

스르륵.

그러나 남궁혁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검로를 바꿨다.

마치 구렁이가 담을 넘듯이 너무나 부드럽게 양일우의 검을 타고 넘어 목을 노렸던 것이다.

카앙!

하지만 양일우도 만만치 않았다.

남궁혁의 검이 반쯤 넘어온다 싶을 때 그대로 검을 위로 휘둘러 튕겨냈던 것이다.

스스슥!

그러나 남궁혁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솟구쳤던 검을 그대로 다시 내리그어 공격을 이어갔던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다는 듯이 물 흐르는 것처럼 이어지는 연계에 양일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주도권이 넘어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기회는 반드시 온다.’

기세가 남궁혁에게 넘어가 있었지만 양일우는 기죽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한 상태였다.

게다가 대막을 같이 갔기에 남궁혁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남궁혁 역시 마찬가지고.

‘그러나 밀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까아아앙!

양일우가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장대한 그의 체구만큼이나 큼지막한 검이 순수한 힘으로 남궁혁의 검을 밀어냈다.

기교나 검술에 대한 성취는 남궁혁이 깊을지 모르나 육체적인 능력은 양일우가 우세했다.

그 점을 양일우는 영리하게 이용했다.

까앙! 깡!

빈틈을 노리고서 파고드는 남궁혁의 검을 양일우는 힘으로 밀어붙였던 것이다.

게다가 상처 입는 것을 피하지 않고서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기에 남궁혁의 검이 미세하지만 흔들렸다.

군자검룡이라는 별호처럼 그는 올곧고 정직한 공격만 펼쳤기에 순간적으로 밀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급한 기색은 떠오르지 않았다.

‘수세를 벗어났지만 대신 빠르게 지칠 터.’

강맹한 검격을 연거푸 펼쳤지만 남궁혁은 동요하지 않았다.

움직임이 큰 만큼, 힘을 많이 담은 만큼 체력 소모 역시 극심할 게 분명해서였다.

그리고 공력이라면 그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끄그그극!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 대결을 순순히 받아들여주지는 않았다.

굳이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워줄 필요는 없어서였다.

오히려 자기 방식대로 유도하면 모를까.

“칫!”

자신의 검격을 너무나 가볍게 흘려내며 충격을 완화하는 남궁혁이 모습에 양일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나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부웅! 부우웅!

양일우의 대검이 묵직한 파공성을 토해내며 허공을 갈랐다.

단순히 허공을 가르는데 그치지 않고 예리하면서도 강맹한 검풍을 토해냈던 것이다.

“흠!”

검풍만으로 몸을 밀어낼 정도의 풍압을 일으키는 양일우의 모습에 남궁혁의 얼굴이 미약하게 굳어졌다.

확실히 육체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이 열세라는 걸 알 수 있어서였다.

정면으로 힘 대결을 펼친다면 크게 밀리지는 않겠지만 불리했다.

그렇다고 공력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었기에 남궁혁은 결정을 내렸다.

‘철저하게 기술로 끝낸다.’

양일우는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완성된 무인은 아니었다.

힘은 좋지만 아직은 공수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투박했기에 방어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하수라면 힘과 기세에 속절없이 밀리겠지만 실력이 비슷하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절정고수는 단순히 검기성강을 이룬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기량 자체가 절정에 달해야 진정한 절정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강기만 다룬다면 초일류보다 조금 더 강한, 강기라는 패를 지닌 무인에 불과했다.

쌔애애액!

드넓은 하늘을 닮은 듯한 푸른빛 검강을 머금은 검이 고고하게 뻗어나갔다.

정적이지만 수많은 변화를 내포한 일검이 양일우를 향해 쇄도했던 것이다.

부웅!

그 모습에 양일우가 다시 한 번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한눈에 봐도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겼기에 일단은 튕겨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의 검이 그리는 궤적에 따라 남궁혁의 검로가 변화했다.

미끄러지듯이 옆으로 움직이며 양일우의 검격을 피해냈던 것이다.

스스슥!

거기에 남궁혁은 절정에 달한 보신경으로 삽시간에 간격을 좁혔다.

자기가 원하는 간격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콰콰콰쾅!

그때부터 폭격이 시작되었다.

잠시 밀리는 듯했던 남궁혁이, 군자와도 같이 우직하고 단순하게 공격했던 그가 쉴 새 없이 양일우를 몰아붙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검강이 난무하는 듯한 광경에 주위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다.

“크하합!”

하지만 양일우도 만만치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세를 피하지 않고 맞상대했던 것이다.

마치 지저분한 싸움이 익숙하다는 듯이 양일우는 피를 보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를 볼수록 더욱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둘 다 대단하다.”

“남궁 공자가 살짝 유리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장담은 못하겠는데.”

“양 공자가 한방이 있어. 까딱 잘못하다간 역으로 당할 수 있어.”

수세에 몰렸음에도 양일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모양새에 후기지수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비무라고 하기에는 투지가 너무 과한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정작 검을 맞대고 있는 둘은 너무나 진지했다.

콰앙! 콰쾅! 꽝!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듯이 둘 다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했다.

그로 인해 남궁혁의 화려했던 장포와 무복이 순식간에 지저분해졌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러한 것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을 펼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어후.”

“둘 다 엄청나네.”

박빙에 가까운 승부에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궁혁의 실력이야 당연하지만 거의 대등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 양일우는 정말 의외였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소문은 많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구룡 못지않은 신성이 등장했음을 말이다.

스극!

“큭!”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의 명승부였으나 결과는 냉정했다.

공수의 균형이 완벽한 남궁혁의 검벽을 뚫지 못하고 양쪽 어깨에 자상을 입으며 양일우가 주저앉았다.

공력도 공력이지만 체력적으로 소모가 극심했기에 더 이상 비무를 이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제가 졌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고생은요. 진짜 고생은 남궁 공자가 하셨지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양일우의 모습에 남궁혁이 미소를 지었다.

간혹 젊은 혈기로 인해 승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양일우는 그렇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다른 제자들 역시 아쉬워하기는 해도 적대적인 눈빛은 보내지 않았다.

그 성숙한 모습에 남궁혁은 역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역시 느끼고 배운 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겨뤄보고 싶기도 했고요.”

“다행이네요. 적어도 긴장감은 준 것 같아서.”

“많이 주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쫄리기도 했거든요.”

“하하하.”

방금 전까지 격렬한 전투를 벌이 사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두 사람의 대화는 훈훈했다.

피투성이가 된 양일우 역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 다시 한 번 겨루고 싶습니다.”

“저야말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양일우와 남궁혁이 서로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피가 끓은 후기지수들이 곳곳에서 비무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디 좀 봐?”

“응?”

“응이라니. 사저한테.”

“난 본산제자인데?”

“농담하지 말고 상처 좀 보여 봐.”

남궁혁이 물러나자 서예지가 다가왔다.

당소윤, 심대혜, 심소혜와 함께 걱정스러운 얼굴로 찾아왔던 것이다.

“괜찮아요?”

“응. 그냥 좀 긁힌 거야.”

“긁히긴.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심대혜의 말에 멋쩍게 웃는 양일우를 향해 당소윤이 혀를 찼다.

무복만 봐도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데 괜찮다고 하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일단 금창약부터 뿌리자.”

“어, 내가 씻고 뿌릴게.”

“지금 뿌리고 씻고 난 뒤에 또 뿌려. 어서.”

단호한 서예지의 말에 양일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째 금창약을 뿌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였다.

“알았어.”

“처음부터 들으면 얼마나 좋아?”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 하냐?”

“어서 바르기나 해.”

서예지가 눈을 흘기며 비현이 만든 특제 금창약을 건넸다.

그에 양일우가 머쓱하게 상처부위에 금창약을 뿌렸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네.”

“그러게요.”

“아이들도 불이 붙었고.”

당소윤의 시선이 양이추를 시작으로 심대현, 심소천, 도일수를 차례대로 쳐다봤다.

놀랍게도 다들 한 가닥 하는 이들에게 도전했기에 당소윤은 눈을 빛냈다.

“흔치 않은 기회잖아요.”

“그나저나, 좋았어?”

“예?”

“귀공자들의 관심 말이야.”

당소윤이 은근한 어조로 심대혜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음흉한 미소와 함께 어깨로 심대혜를 툭툭 건드렸다.

“에···.”

“얼굴이 터질 것 같은데?”

“흐읍!”

심대혜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당소윤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졌다.

부끄러워하는 심대혜의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물어서였다.

“어때? 마음에 드는 공자님은 있었어?”

“나도 궁금한데.”

거기에 서예지도 합세했다.

본인은 교제를 할 마음이 없었지만 구경하거나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렇기에 서예지도 눈을 빛내며 심대혜를 압박했다.

“제가 봤어요. 언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요!”

“호오. 그래? 누군데? 이름 알아? 아니,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켜 봐. 얼굴을 보면 내가 대충 아니까.”

그때 심소혜가 기름을 끼얹었다.

아무래도 형제다 보니 단번에 언니의 변화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소혜야!”

“헤헤헤헤!”

심대혜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여동생의 말이 허언처럼 들리지 않아서였다.

같은 핏줄인 심소혜라면 자신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도 남을 테니까.

“나도 궁금하다.”

“안 돼!”

서예지까지 가세하는 모습에 심대혜가 거칠게 도리질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것도 벽우진과 당민호, 제왕검까지 있는 자리에서 밝혀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기에 심대혜는 여동생을 껴안았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되네. 헤헤!”

“왜 그래, 소혜야. 그러지 마. 응?”

심대혜가 황급히 여동생을 어르고 달랬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였고 위협적인 적은 두 명이나 있었다.

그렇기에 심대혜는 다급했다.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나본데?”

“그러게요.”

하나 그럴수록 당소윤과 서예지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하하. 제 아들 녀석이 이겼네요.”

“역시 남궁세가의 적자야. 저번에도 보기는 했지만 정말 잘 키웠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네요. 지금도 저 정도인데 십 년이 지나면.”

얼굴 가득 흐뭇한 기색을 내비치던 남궁진이 말끝을 흐렸다.

지금이야 아들이 이겼지만 나중에는 몰랐다.

그 정도로 양일우가 보여준 성장세는 놀라웠기에 남궁진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지금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미래였다.

“그러니까 더 노력하겠지. 남궁가주가 생각한 것을 남궁혁이 모를 리가 있겠나.”

“똥줄 좀 타겠지. 그나저나 그 사부에 그 제자네. 아주 배짱이 두둑해. 승부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룡에게 달려드네.”

< 제 65장. 호랑이도 있다. -05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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