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90화 (190/325)

< 제 59장. 드디어 재회. -04 >

후우우웅!

버섯 모양으로 하늘 높이 치솟는 검은 구름도 구름이지만 후폭풍 또한 무시무시했다.

철갑을 두른 철마조차도 후폭풍에 밀려날 정도였으니 혈사자군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놀란 이는 다름 아닌 중원무림 쪽이었다.

특히 후방에서 병력을 지휘하더 제갈현은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굉천뢰라니!”

박학다식한 이답게 제갈현은 철사자가 마지막에 사용한 물건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당민호는 물론이고 법무와 남궁진 역시 경악했다.

중원에서도 보기 힘든 굉천뢰를 이 먼 대막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라서였다.

특히 당민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크하하하!”

반면에 철사자는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제아무리 대단한 패선이라도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과 굉천뢰 두 개라면 멀쩡히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역시 대주님!”

“우아아아!”

천번지복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굉장한 폭발이었다.

작은 동산 정도는 한 번에 날려버릴 정도의 폭발이었기에 철기대가 무기를 들고서 포효했다.

괴물 같던 벽우진이 결국에는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강해봤자 결국 인간일 뿐이지. 피륙으로 이루어진. 후후후!”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완연했지만 철사자는 기고만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사에 마지막까지 남는 인물은 강한 자가 아니라 살아남는 자였다.

그것을 증명한 이 중 한 명이 바로 한 나라의 유방이었고.

패왕에게 연전연패하던 유방이 마지막 대결에서 이겼고,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철사자는 자신 역시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기는 게 중요하지. 패자는 말 그대로 사라질 뿐이니까.”

서서히 가라앉는 먼지구름을 쳐다보며 철사자가 히죽 웃었다.

아쉽게도 벽우진의 목을 베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죽인 것은 확실했다.

굉천뢰 두 개가 터졌지만 벽우진의 경지를 생각하면 적어도 팔다리 하나 정도는 남아 있을 테니 그거라도 회수해가면 될 터였다.

“맞아. 패자는 그냥 사라질 뿐이지. 월사자, 독사자, 염사자, 그리고 흑사자처럼.”

철사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난데없이 들려오는 벽우진의 목소리에 몸이 저절로 굳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서서히 철사자에게로 모여들던 철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걱.

“어?”

뒤이어 철사자의 귀로 익숙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육신이 절단 나는 소리에 철사자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무릎 부분에 새빨간 혈선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었다.

철퍼덕!

“끄으윽!”

철사자가 허물어졌다.

혈선이 생기자마자 몸의 균형이 삐꺽거리더니 결국 땅바닥으로 엎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전투의 여파로 수없이 뒤집힌 땅거죽에 상처부위가 닿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잠식해왔다.

꺼끌꺼끌한 모래알이 절단된 부위에 닿자 머리가 새하얘졌던 것이다.

저벅저벅.

그러는 사이 먼지구름이 가리고 있던 거대한 구덩이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은 너이고.”

“어, 어떻게?”

“잔머리는 잘 굴렸는데, 상대가 나빴어. 이왕 챙길 거 한 백 개는 가져오지 그랬어. 그러면 혹시 몰랐을 텐데.”

“대주님을 지켜라!”

“멀쩡해 보여도 지쳤을 게 분명하다! 허장성세야!”

그을린 자국 없이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벽우진을 향해 철기대가 황급히 달려들었다.

더 이상 철사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벽우진의 수급도 챙기고 말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데 어디서 아랫것들이.”

다만 문제는 그들의 예상이 엄청난 착각이라는 점이었다.

철기대는 벽우진에게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그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벽우진은 손수 증명했다.

무상검을 휘둘러 달려드는 철기대의 인마를 단숨에 양분했던 것이다.

“끄윽!”

“미, 미친···!”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벽우진의 검격에 달려들던 철기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물어졌다.

아직도 이만한 기력이 남아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으으···!”

그건 철사자도 같은 생각인지 가뜩이나 창백했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고통보다도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이 계속해서 떠올라서였다.

“개인적으로 아주 쪼끔 고마운 게 있으니 고통 없이 보내주마. 그 정도 아량은 가지고 있으니.”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앞으로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철사자가 넙죽 엎드렸다.

자존심도 버린 채 벽우진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다.

그 정도로 그는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았다.

두 다리가 잘리기는 했으나 아직 절단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치료는 가능했다.

그러나 죽으면 그 무엇도 할 수 없었기에 철사자는 간절한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

“너도 알고 있잖아? 안 될 거라는 걸.”

“워,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놈을···!”

“그래. 차라리 그렇게 나왔어야지.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해.”

목에 가는 혈선이 서서히 생기더니 그의 몸과 머리가 서서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벽우진의 뒤쪽에서 무지막지한 기운이 솟구쳤다.

호법들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혈사자군단과 철기대의 전력이 상당히 남아 있었고, 고수들 역시 아직은 많이 생존해 있었으나 벽우진의 압도적인 신위에 기가 꺾여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전세는 완연하게 중원무림 쪽으로 기울었다.

뻐어어엉! 뻐엉!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림무제와 제왕검이 있었다.

적수가 없다는 듯이 사방팔방을 휩쓸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으아아아!”

“제기랄!”

결국 도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세가 기운 걸 확인하자 너도 나도 자신의 목숨을 챙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상황을 만든 벽우진은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멀리 사마륭과 사마세가가 서 있던 곳을 주시했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무상검을 납검하며 벽우진이 중얼거렸다.

한데 신기하게도 그때 사마세가가 모여 있던 곳에 소란이 일었다.

“시작됐군.”

움직임이 없던 사마세가의 무인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벽우진이 눈을 빛내며 땅을 박찼다.

콰앙! 꽈과과광!

지독한 악취와는 어울리지 않는 순백색의 용이 사방을 헤집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백룡을 막아서지 못했다.

아름다운 외견과 달리 흉포한 기운을 머금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그래서 사마세가의 무인들은 맞서 싸우기 보다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방주님이시군요.”

“오랜만일세.”

개방을 대표하는 절기 중 하나인 강룡십팔장으로 인사 아닌 인사를 한 개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은밀히 접근했는지 개왕과 함께 온 이십여 명의 개방도들의 머리와 거적때기에는 모래와 먼지가 가득했다.

“저를 잡으러 오셨습니까?”

“왜 그랬나?”

먼지를 툭툭 털며 개왕이 물었다.

그런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참기 힘들었나?”

“방주님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제가 느낀 치욕과 좌절감을요.”

“좋게 풀 수도 있었네.”

개왕이 검은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사마세가 씩이나 되는 명문세가가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 중원무림의 상황이 한 명도 아쉬운 상황이기도 했고.

“그랬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숙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멀리 가기도 했고.”

사마륭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벽우진이 오고 있을 것이기에 도망칠 준비를 했던 것이다.

혈사자와 철사자가 죽은 이상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자리를 서둘러 떠야 했다.

그는 말을 타고 있었지만 상대가 벽우진이라면 안심할 수 없었다.

두두두두!

복잡한 표정의 개왕을 일별한 사마륭이 말을 돌렸다.

처음 이후 더 이상 공격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대로 말을 돌려 내뺐던 것이다.

왜 공격하지 않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사마륭은 이내 빠져나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사왕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쌔애액!

그런데 그때 두 줄기 강기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하늘을 닮은 푸른빛의 검강이 갑자기 솟구치며 그와 부하들을 노렸던 것이다.

“흡!”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사마륭을 호위하던 천성대(天星隊)의 반응은 기민했다.

두 줄기 검강이 쇄도하기 무섭게 사마륭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큭!”

“우읍!”

그러나 호기롭게 달려든 것과 달리 천성대주와 부대주는 꼴사납게 낙마했다.

검강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튕겨졌던 것이다.

그 모습에 사마륭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딜 가려고?”

“우리와 할 말이 있지 않나?”

“당신들은···.”

위장막이 걷히고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그들을 본 사마륭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서였다.

“내 얼굴 알지?”

“···어느 틈에?”

“설마 네놈을 보고도 우리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모래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청민이 살벌한 안광을 뿌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악귀처럼 무시무시한 표정의 서진후가 함께 서 있었다.

개왕이 공격하지 않은 건, 추격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두 사람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는 몰이꾼 역할이었던 것이다.

“이쪽으로 몬 것이군.”

“맞아. 괜히 엉뚱한 곳으로 가면 안 되니까.”

으득.

사마륭이 이를 갈았다.

어쩐지 개왕이 너무 순순히 보내준다 싶었다.

아무리 옛정이 있어도 그냥 보내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말이다.

‘뚫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마륭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마륭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이 위기이면서도 기회라는 생각이 말이다.

‘둘을 사로잡는다면?’

사마륭의 눈동자에 묘한 기색이 서렸다.

사제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벽우진이기에 두 사람을 사로잡는다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패선이라 불리는 벽우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나쁘지 않은데?’

살기등등한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 봤자 두 명뿐이었다.

반면에 이쪽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무사들만 백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사마륭은 충분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개왕이 합세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아직까지 뒤쫓아 오는 기미는 없었다.

스슥!

그것을 확인한 사마륭은 두 사람 모르게 수신호를 보냈다.

청민과 서진후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수하들만 알아볼 수 있는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이미 시간을 꽤 지체했어. 완벽하게 도망칠 수 없다면, 확실한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는 게 효과적이지.’

파파파팟!

사마륭의 수신호를 보기 무섭게 천성대가 좌우로 신속하게 펼쳐졌다.

두 사람이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둘은 그 광경을 보고도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도망치지 않겠다면 오히려 이쪽이 고맙지.”

“그러니까요. 일일이 잡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으니.”

서진후가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삽시간에 포위당했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오히려 기꺼운 기색이 서렸다.

귀찮게 하나하나 잡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사라져서였다.

웅웅웅!

번쩍 들어 올려진 검에서 시퍼런 청광이 번뜩였다.

그런데 검에서 솟구친 검강이 끝도 없이 올라갔다.

일 장, 이 장, 삼 장을 넘어가는 모습에 사마륭의 동공이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오늘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 제 59장. 드디어 재회. -04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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