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82화 (182/325)

< 제 57장. 초전박살. -02 >

벼락처럼 쏟아져 내리는 철검들의 모습에 피하기는 늦었다고 생각한 독전단원들이 다급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철제 방패이기에 진기를 주입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판단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그들은 곧 깨달았다.

“크아악!”

“끅!”

서른두 자루의 철검들은 독전단원들의 판단을 비웃듯이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방패든 말이든 닿는 모든 것들을 종잇장 가르듯이 모조리 뚫어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인마(人馬)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놈!”

선두에서 달리던 독전단의 정예들이 칼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허망이 죽어나가는 모습에 독사자가 포효했다.

대막의 왕좌를 노리며 힘들게 키워온 수하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나가자 격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독사자를 보는 벽우진의 두 눈은 지극히 냉정했다.

심지어 여전히 뒷짐을 풀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는 수십 장의 거리만 남겨놓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뒈져라!”

그 모습에 더욱더 흥분한 독사자가 예비용으로 들고 다니는 마상용 창을 들어 던졌다.

근접전투가 주특기인 그에게 지금의 거리는 상당히 먼 편이었기에 일단 화풀이라도 하기 위해 창을 던진 것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절대 허투루 던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 일격으로 죽이진 못하더라도 치명상 정도는 입힐 생각으로 진기를 가득 실어 던졌다.

쒜애애액!

그런 그의 살기를 머금은 거대한 창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벽우진에게 쇄도했다.

일직선을 그리며 쏜살같이 날아왔던 것이다.

“퉷!”

한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마상용 창을 벽우진이 침으로 튕겨냈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궤적만 비튼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독사자는 물론이고 염사자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수많은 전투와 싸움을 치러왔지만 이렇게 침으로 공격을 튕겨내는 이는 없었다.

“역시 사형!”

“손조차 쓰기 아깝다는 것이지!”

반면에 뒤따라서 달리는 중이던 청민과 서진후는 눈을 빛냈다.

나름 기선제압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벽우진은 그런 의도로 침을 뱉은 게 아니었다.

그저 거치적거리기에 치워낸 것뿐이었다.

“말코도사 따위가···!”

“시끄럽다.”

어느새 지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 독사자가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검녹색의 독장(毒掌)이 벽우진에게 뻗어나갔다.

독사자가 평생 동안 축적한 독의 정수가 독강(毒罡)으로 펼쳐진 것이었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크기를 키운 독강이 대기마저 녹여버리며 벽우진에게 쇄도했다.

사람만한 크기로 커진 독강이 짓뭉갤 기세로 뻗어왔던 것이다.

“흥.”

하지만 그 모습에도 벽우진은 콧방귀를 끼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더없이 위협적인 일격이겠지만 벽우진에게는 아니었다.

꽈앙!

그 사실을 증명하듯 벽우진은 이동하던 상태에서 발만 들어서 찼다.

정강이를 때리듯 장난처럼 발끝으로 독사자의 독강을 찍었던 것이다.

쩌저저적!

“뭐, 뭐야?!”

벽우진의 발끝이 닿은 부분에서 시작된 작은 균열은 이내 삽시간에 독강 전체로 번졌다.

그러더니 이내 순식간에 박살이 나서 터져 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독사자가 두 눈을 부릅떴으나 벽우진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월사자라는 놈은 그래도 준비는 철저히 했는데 말이지.”

“무슨 말을···!”

생뚱맞은 말을 하는 벽우진을 노려보던 독사자가 순간 화들짝 놀랐다.

등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느껴져서였다.

그래서 그는 반사적으로 말 위에서 펄쩍 뛰어 올랐다.

퍼퍼퍼퍽!

이윽고 그가 타고 있던 애마로 네댓 자루의 철검이 박혔다.

아까 전 벽우진이 날렸던 철검이 재차 날아와 애마를 꿰뚫었던 것이다.

“준비성은 없어도 감각은 있네.”

“비검술이 아니었단 말인가!”

한두 개도 아니고 서른두 자루의 검이었다.

지금만 하더라도 대충 본 숫자가 여섯 개 이상이었고.

그 검을 아무런 낌새도 없이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에 독사자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자신도 이기어검을 펼칠 수 있는 경지이기는 하지만 벽우진처럼 여러 개의 검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물며 벽우진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최소 목어검!’

독사자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중원무림에서 패선이라 불리고 월사자를 혼자서 상처 없이 사로잡았다고 하기에 강자일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수준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렇기에 독사자는 착지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협공해야 해!’

욕심을 부리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건 살짝 뒤쪽에서 따르던 염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호호호!”

독사자가 착지한 것과 동시에 말에 타고 있던 염사자가 솟구쳤다.

그러면서 그녀는 피풍의를 벗어던졌다.

과도한 움직임으로 벽우진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던 것이다.

촤르륵!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중요부위만 가까스로 가리고 있던 가죽옷조차 벗어버렸다.

속옷인지 옷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옷을 벗어버리고 나신이 되었던 것이다.

“으헙!”

“어이쿠!”

갑작스러운 탈의에 소림사의 십팔나한들은 물론이고 공동파의 도사들이 경악성을 토해냈다.

설마 하니 전투 중에 저렇게 옷을 벗어던질 줄은 몰라서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꺄하하하!”

염사자가 옷을 벗어던지기 무섭게 음양환희대도 피풍의와 함께 옷을 모조리 벗어버렸던 것이다.

동시에 전원이 기이한 진형을 이룬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으으으!”

“어흑!”

보는 이에게, 정확하게는 남자에게 기묘한 열기를 일으키게 만드는 음양환희대의 춤사위에 수많은 무인들이 침음을 흘렸다.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성욕을 자극하는 음양환희대의 춤사위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네놈도 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염사자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벽우진을 쳐다봤다.

남자라면 자신과 음양환희대가 펼치는 환희열락무(歡喜悅樂舞)에 흔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불알 두 쪽 달린 남자라면 말이다.

샤라라락!

나풀나풀 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육감적인 여인의 나체가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리고 음양환희대가 뿌리는 염기(艶氣)는 삽시간에 중원무림인들을 덮쳤다.

푹!

“어?”

아미파의 비구니들이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이 남자들인 이상 염사자는 당연히 중원무림인들이 맥을 못 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더럽다.”

염사자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소리도 없이 양쪽 허벅지를 꿰뚫고 나온 철검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뒤이어 느껴지는 깊은 고통에 염사자가 비명을 질렀다.

“치잇!”

그때 염사자의 뒤로 독사자가 나타났다.

염사자가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순간 양팔을 활짝 펼치며 벽우진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쌍수에서는 수십 개의 녹색빛이 솟구쳤다.

절독을 잔뜩 머금은 지강(指罡)이 폭사되었던 것이다.

‘하나만 맞아라!’

독사자가 이를 악물고서 쉴 새 없이 지강을 쏘아댔다.

그것도 단순히 공력을 담은 지강이 아닌 그의 독혈이 담긴 공격이었다.

웬만한 무인도 한 방울만 닿으면 한줌 독수로 화하기에 독사자는 내심 기대하는 얼굴로 날아가는 지강을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독사자는 등 뒤를 살피는 것도 있지 않았다.

“흐으···!”

뒤를 도외시했다가 양다리가 봉쇄된 채 엎어져 있는 염사자의 사례가 있기에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염사자도 저리 되었는데 자신이라고 해서 다를 거라는 보장은 없어서였다.

터터터텅!

그 사이 독혈을 머금은 지강이 벽우진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사자가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벽우진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호신강기만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호신강기를 녹이기는커녕 충돌과 동시에 산산이 흩어졌던 것이다.

“부단주!”

“예!”

그것을 확인한 독사자가 독전단의 부단주를 불렀다.

염사자가 저리 된 이상 결국 자신과 독전단의 힘으로 벽우진을 잡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어허. 어딜 가시나?”

“그르륵!”

하지만 그의 부름에 호쾌하게 대답했던 부단주는 얼굴에 수백 개의 기포를 일으키더니 이내 한줌의 독수가 되어 땅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당민호가 뒷목을 잡음과 동시에 중독시켰던 것이다.

독사자의 심복답게 독공도 상당한 수준으로 익힌 부단주였지만 그래도 독황이라 불렸던 당민호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당가의 늙은이!”

“세월이 많이 흐르기는 했어. 날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아서야.”

“그 놈은 내 거야.”

당민호의 곁으로 벽우진이 귀신 같이 나타났다.

단 한 걸음으로 독사자의 코앞까지 접근한 것이다.

“흐읍!”

그 모습에 독사자가 대경하며 두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하독과 동시에 독장으로 벽우진을 공격했던 것이다.

푹! 푸푹!

그러나 그의 쌍장은 벽우진의 몸 근처에 오기도 전에 제지당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두 자루 검이 그의 양팔을 꿰뚫었던 것이다.

“끄으윽!”

두 자루 철검에 꿰뚫린 독사자가 어정쩡한 자세로 주저앉았다.

머리를 새하얗게 만드는 고통에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놓은 것이었다.

그 기회를 벽우진은 놓치지 않았다.

지풍을 날려 순식간에 점혈했던 것이다.

파바바밧!

그런데 그 순간 염사자가 몸을 내뺐다.

양쪽 허벅지에 박혔던 검을 뽑고서 빠르게 지혈한 염사자는 독사자가 제압당하는 것을 보자마자 득달같이 몸을 돌려 도망쳤던 것이다.

둘이서도 상대가 안 되었는데 혼자인 지금 벽우진에게 달려드는 것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몸을 날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염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흥.”

발가벗은 채로 순식간에 음양환희대 사이로 파고드는 염사자의 모습에도 벽우진은 오히려 코웃음쳤다.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자신의 눈에 띈 이상 염사자가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스르르륵.

그 사실을 증명하듯 서른 개의 철검이 떠올랐다.

벽우진의 의지를 받드는 검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쳐 염사자에게 날아갔던 것이다.

“히, 히에에엑!”

순식간에 허공을 빽빽이 채우는 서른 자루의 검에 염사자가 기겁하며 멈춰 섰다.

그런 그녀의 주위로 서른 개의 검이 빙글빙글 돌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곧바로 꿰뚫어버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얌전히 잡혀.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이고 싶으면. 뭐, 죽어도 상관은 없고. 너 말고 입을 열 사람은 아직 네 명이나 더 남아 있으니까.”

털썩.

싸늘한 벽우진의 한마디에 염사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압도적인 무위를 보자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저 자는··· 대사형이라고 해도 힘들어.’

대막 최고의 전사들이라 불리는 육사자들 중에서도 괴물로 불리는 이가 혈사자였다.

적어도 싸움에 있어서는 전신(戰神)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한 이가 혈사자였지만 염사자는 그런 그조차도 벽우진에게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혈사자는 이런 막막함은 들지 않았다.

“끄아아악!”

게다가 오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풍요로운 땅에서 평화에 찌들어 살기에 약할 거라 생각했던 중원무림인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막의 전사들보다 더한 투지를 보이며 싸우는 모습에 염사자가 주저앉은 채로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벽우진을 올려다봤다.

“제가 어떻게 하면 살려주실 건가요?”

“답은 너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 쓸모 많아요. 시키는 것이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요. 중원의 여인들이 할 수 없는 것들도요.”

< 제 57장. 초전박살.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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