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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패선-181화 (181/325)

< 제 57장. 초전박살. -01 >

염사자가 눈을 반짝거렸다.

용모파기를 봤을 때도 느꼈었지만 매끈하게 생긴 게 딱 그녀의 취향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잘생긴 남자도 물론 좋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개성 넘치는 외모도 좋아했다.

개인이 가진 고유의 분위기가 있는 남자를 유독 선호했기에 염사자는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빛냈다.

“네가 남자를 싫어했던 적이 있었나? 더구나 패선이라 불릴 정도면 공력 또한 상당할 텐데.”

“진짜 마음에 드는데.”

염사자가 입술을 핥았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미식가처럼 벽우진을 쳐다보며 눈을 번뜩였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벽우진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후계자 자리를 양보할 수는 없지.’

남은 다섯 명의 제자들 중에 실력으로도, 세력적으로도 가장 떨어지기에 손을 잡았지만 그렇다고 독사자만 밀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독사자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런 만큼 사소한 명분도 지금은 중요했다.

‘어쩌면 패선이 내게 빠질 수도 있고 말이지.’

염사자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대막에서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남자들이 원하는 여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미모가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때문에 염사자는 자신의 매력이라면 패선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족하다 싶으면 미혼술(迷魂術)을 은근슬쩍 펼치면 되는 일이고.’

남자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자신이었다.

또한 남자의 욕망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해박했기에 그녀는 입술을 핥았다.

제아무리 명경지수와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도사라도 자신을 보게 된다면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대막의 수많은 고수들이 괜히 그녀의 먹이가 된 게 아니었다.

할짝!

그리고 이번에는 패선도 그리 될 터였다.

더불어 패선이 평생 동안 쌓아왔다는 어마어마한 내공도.

‘듣자 하니 공력이 엄청나다던데. 제대로 잡아먹으면 혈사자까지는 힘들어도 철사자와는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사왕성주의 첫 번째 제자인 혈사자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대막의 천재들만 모은 육사자 중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괜히 그녀가 독사자와 힘을 합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정점의 자리는 무공만 강하다고 앉을 수 있지 않았다.

‘일단 잡아먹으려면 저 녀석이 내게 달려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지.’

염사자가 옆에 서 있는 독사자를 힐끔거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패선을 노리고 있을 게 분명해서였다.

“방심하지 마라. 그러다가 월사자처럼 허망하게 뒈지는 수가 있으니.”

“어머. 절 어떻게 보고. 어떻게 월사자랑 저를 비교해요?”

“중원의 무인들을 경시하지 말라는 거다. 보아하니 북해빙궁과 오독문의 일로 독이 바짝 올라와 있는 거 같은데.”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짓눌러 줘야죠. 자신들이 동네북이라는 사실을.”

염사자가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독사자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데리고 온 오백 명의 수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처처척!

그의 수신호에 독전단(毒戰團)이 순식간에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언제라도 싸울 수 있도록 마상에서 칼과 방패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자, 우리도 준비하자.”

“예!”

그 모습에 염사자 역시 손을 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뒤로 이백여 명에 달하는 여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하나같이 피풍의를 모조리 벗어던지면서 말이다.

꿀꺽!

그 광경에 독전단의 몇몇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터질 것처럼 굴곡진 몸을 두 장의 가죽이 딱 필요한 곳만 가리고 있어서였다.

“앞을 쳐다봐라!”

본능적으로 염사자의 음양환희대(陰陽歡喜隊)에 시선을 빼앗긴 부하들의 모습에 독전단의 부단주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 역시 음양환희대를 은근슬쩍 힐끔거리고 있었다.

무거운 적막감이 주변에 짙게 흐르고 있었다.

전투를 앞두고서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달려오는 독전단과 음양환희대를 쳐다보며 전의를 넘어 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선봉의 벽우진은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그는 뒷짐을 진 채로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우진아.”

그 모습에 학익진처럼 오른쪽 날개 위치에 서 있던 당민호가 벽우진을 불렀다.

어느새 상당한 거리까지 적들이 접근해 있어서였다.

그리고 반대편의 남궁진 역시 검을 고쳐 잡으며 벽우진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말할 것은 딱 하나뿐이다.”

“경청하겠습니다.”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로 입을 여는 벽우진의 말에 뒤에 서 있던 호법들과 제자들이 눈을 빛냈다.

벽우진과 달리 그들은 형형한 안광을 뿌리며 진즉부터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죽은 속가제자들의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물론 가장 큰 살기를 흩뿌리는 이들은 청민과 서진후, 그리고 진구였다.

속가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게 바로 그 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셋은 구도하는 사람들답지 않게 살기를 풀풀 날렸다.

“죽지 마라. 그래야 죽은 아이들의 혼을 위로해줄 수 있지 않겠느냐.”

“예!”

짧은 한 마디를 남긴 벽우진이 두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두 눈에는 서릿발 같이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죽어가던 속가제자들을 떠올리며 벽우진 역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전투는 시작일 뿐이었다.

“제갈가주.”

“예, 장문인.”

“지휘를 맡기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천당가와 남궁세가, 소림사의 전력이 쌍익을 담당하는 것과 달리 제갈세가, 공동파, 화산파의 무인들은 중군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선봉과 쌍익에 틈이 생기면 언제라도 지원을 할 수 있게 대기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벽우진이 땅을 박찼다.

“공격!”

제갈현에게 지휘를 맡긴 벽우진이 말도 없이 앞으로 뛰쳐나가자 제갈현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양쪽 날개는 물론이고 곤륜파의 인원들 역시 전방을 향해 진군했다.

“십기대(十技隊) 준비!”

벽우진을 위시로 쌍익이 진군하는 것을 확인한 제갈현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독사자의 독전단이 백병전에 특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에 맞춘 전략을 준비한 것이다.

더구나 중원의 무인들은 마상전을 겪어본 적이 드물기에 제갈현은 더더욱 철저하게 계획했다.

그 시작이 바로 십기대였다.

처처처척!

제갈현의 외침에 이백 명에 달하는 십기대 중 백 명이 일어나며 활시위를 당겼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들은 지금껏 몸을 숙이고 있었다.

“1열 발사!”

백 명이 쏜 화살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2열 발사!”

화살을 쏜 1열이 주저앉으며 화살을 메기기 사이 둘째 줄의 십기대원들이 일어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쐈다.

내공을 머금은 화살이 곡사를 그리며 독전단에게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화살이 향하는 곳은 독전단의 선두가 아닌 후미 부분이었다.

퍼퍼퍼퍽!

달려오는 속도까지 계산해서 날린 화살비에 후방에서 따르던 독전단원들이 우스스 떨어졌다.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

물론 금방 방패를 들어 화살비를 막아내기는 했으나 말까지 지켜내지는 못했다.

푸히히힝!

느닷없이 쏟아지는 화살비에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말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즉사한 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꼬치신세를 면치 못한 채 땅바닥을 구르며 신음했다.

덩달아 같이 쓰러진 독전단원들 역시 사지 중 한 곳이 부러진 채로 신음을 흘렸다.

“계속 쏴라!”

그 모습을 일일이 확인하며 제갈현이 지시를 내렸다.

전체적인 숫자는 엇비슷하나 그들이 싸워야 할 상대는 아직도 많았다.

다른 세 명의 사자들을 생각하면 최대한 피해 없이 이번 전투를 끝내야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세 무리 역시 우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마치 이곳을 꼭 지나가야 한다는 것처럼.’

자신들의 위치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사왕성의 무리들은 충분히 우회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중원무림이 목표라면 꼭 이곳을 지나갈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제갈현은 그 점이 의문이었다.

‘몇 명을 사로잡으면 알 수 있겠지.’

처음과 달리 점차 안정적으로 화살비에 대처하는 독전단을 쳐다보며 제갈현이 눈을 빛냈다.

의문이 있다면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다행스럽게도 충분히 많아 보였다.

운 좋게 죽지 않은 부상자들이 다수 있어서였다.

휘리리릭!

한편 벽우진은 뒷짐을 진 채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거의 땅에 발을 딛지 않았다.

거의 날 듯이 나아갔는데 그런 그의 뒤로 청민과 서진후, 그리고 진구가 바짝 따라 붙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셋 다 거의 상반신만한 목궤를 등에 메고 있었는데 누구 하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진구야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청민과 서진후도 이제는 완숙한 절정고수라고 할 수 있었기에 이 정도 속도는 더 이상 버겁지 않았다.

스스슥!

그리고 그 뒤로 곤륜산을 지키기 위해 남은 허륭과 비현을 제외한 나머지 호법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흩뿌리며 따라 달리는 중이었다.

앞에 있는 세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법들 역시 속가제자들과 든 정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호법들은 살벌한 안광을 발하며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그런 호법들의 뒤로는 벽우진의 제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열어.”

선두에서 달려 나가던 벽우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청민과 서진후, 진구가 등 뒤로 손을 넘겨 목궤를 열었다.

철컹철컹.

활짝 열린 목궤에서 금속으로 된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벽우진은 지시를 내렸음에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대신 뒷짐을 진 채로 전신에 고이 잠들어 있던 공력을 일으켰다.

우우우웅!

단순히 공력을 움직인 것뿐인데도 벽우진 주위의 대기가 흔들렸다.

막대한 진기에 대기가 진동한 것이다.

그러나 놀랄 일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슈슈슈슉!

청민, 서진후, 진구가 메고 있던 목궤에서 32개의 철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기 길이와 무게가 다른 철검이었지만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곤륜파의 검이라는 점이었다.

“뭐야, 저건?”

“검 같은데?”

“검 끝에 은사라도 매달아 둔 건가?”

갑자기 솟구치는 검들의 모습에 말을 타고 달려오던 독전단원들이 미간을 좁혔다.

화살비에 이어 검들이 솟구치자 무슨 일인가 했던 것이다.

하지만 놀라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방패를 들어 상반신을 가렸다.

혹시라도 허공으로 솟구친 검이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너무 비효율적인 거 같은데.”

“중원무림 놈들이 언제 효율 같은 거 따졌어? 오직 명분만 따지지.”

“그래도 저건 너무 멍청한 거 같은데.”

“내 말이. 화살보다 무겁고 얼마 날아가지도···.”

비웃던 독전단원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휘둥그레졌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른두 개의 철검이 그들에게 쏘아졌기 때문이다.

쌔애애액!

전광석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지는 철검들의 모습에 독전단원들이 황급히 고삐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들이 반응하는 것보다, 말들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날아오는 검이 훨씬 빨랐다.

퍼퍼퍼펑!

< 제 57장. 초전박살. -01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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