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39화 (139/325)

< 제 42장. 사천행. -03 >

“즉 이런 음식들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다. 물론 지금 당장은 낭비처럼 보이겠지. 괜히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것처럼 보일 테고. 하지만 이건 절대 낭비가 아니야.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음식들을, 대접을 받을 테니까. 다만 겸손함은 잃지 말아야겠지. 너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나와, 곤륜의 명예와 직결되니까.”

“아!”

“그러니까 예행연습 한다고 생각해. 식사예절에 대해서 예지가 자세히 알려주고.”

“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이런 음식들에 익숙한 이가 서예지였다.

또한 어려서부터 식사예절에 대해서 깐깐하게 교육을 받았기에 교관으로서도 아주 적당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저도요!”

“잘 부탁드립니다.”

벽우진의 뜻을 알아서인지 아이들이 좀 전과는 달리 의욕적으로 소리쳤다.

특히 마지막 말이 아이들의 가슴에 깊게 막혔다.

자신들의 모든 언행이 벽우진과 곤륜의 명예에 직결된다는 말이.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자연스럽게 배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배를 채우는 것이니까.”

“예!”

우렁차게 대답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벽우진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서서히 곤륜의 기둥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사부님. 이것 좀 드세요.”

“고맙구나.”

“헤헤헤! 많이 드세요.”

진구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심소혜가 한 접시 가득 음식들을 담았다.

원탁에 놓인 갖가지 음식들을 조금씩 소담스럽게 담아 벽우진에게 건넸던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나 예뻐 벽우진은 절로 아빠 미소가 나왔다.

“소혜도 많이 먹으렴. 모자라면 얘기하고.”

“네! 아, 호법님도 드세요.”

가장 먼저 벽우진부터 챙긴 후 심소혜는 옆에 앉아 있는 진구에게도 음식을 담아 건넸다.

벽우진 못지않게 푸짐하고 예쁜 한 접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벽우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괄괄한 진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게 너무나 예뻐서였다.

‘친화력이 참 좋단 말이지.’

다른 제자들이 어려워하는 진구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심소혜의 모습에 벽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만히 보면 형제들의 성격이 전부 다 달라서였다.

“고맙구나.”

“많이 드세요, 호법님!”

“소혜도 먹어야지.”

“저도 먹을 거예요.”

“후후후.”

늘 굳어 있던 진구의 얼굴에 훈풍이 돌았다.

다른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엄한 진구였지만 심소혜만은 예외였다.

오죽 했으면 그가 목마까지 태워줬을까.

그 정도로 심소혜는 어느새 그의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이 또한 어떠하리.’

아직 4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진구는 왠지 모르게 그 시간이 오면 너무나 힘들 것 같았다.

심소혜와 떨어져야 한다는 게 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겠지만 그게 4년 후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 나를 보고 천천히 따라해.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보고.”

“예, 사저.”

“넵!”

한편 같은 원탁에 앉아있던 서예지는 진지했다.

벽우진이 어떤 마음으로 이 음식들을 시키고 자신에게 가르치라고 했는지 모르지 않아서였다.

또한 동시에 그녀에게 말한 것이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주눅 들거나 기죽지 말라고 말이다.

“맛은 나쁘지 않네.”

“술 좀 시켜도 되오?”

“안 됩니다.”

그런데 정작 벽우진은 열심히 식사예절을 배우는 아이들과 달리 너무나 편하게 음식을 집어먹고 있었다.

식사예절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한데 재미있는 건 그 모습조차도 벽우진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딱 한 병씩 어떻소?”

“안 됩니다.”

“허어.”

단칼에 거절하는 벽우진의 모습에 진구가 입맛을 다셨다.

간만에 새로운 음식을 먹는데 벽우진이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벽우진은 단호했다.

“사천당가에 도착하면 드시죠. 그때는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공짜라서 그런 것 아니오?”

“요거 맛있네.”

벽우진이 생선을 튀긴 후 두반장으로 매콤하게 맛을 낸 생선요리를 한 점 집었다.

누가 봐도 말을 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제가 더 떠 드릴까요?”

“괜찮아. 사부님은 팔이 길거든.”

“우와아.”

벽우진의 말에 필요 이상으로 놀라며 심소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팔다리가 긴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길 줄은 몰라서였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두둥실.

팔이 닿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스르륵 떠오르며 벽우진의 앞 접시로 날아가 부드럽게 안착하는 모습에 심소혜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박수를 쳤다.

“···쓸데없이 공력을 소모하는 것 같습니다만.”

“전 괜찮습니다. 공력이 남아돌거든요.”

“끄응!”

“잡것들 시선도 돌리고요.”

벽우진이 싱긋 웃었다.

가벼운 허공섭물 한 번에 시끌벅적했던 1층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적어도 절정은 되어야 가까스로 펼칠 수 있는 허공섭물을 너무나 가볍게 펼치자 다들 입을 쏙 다물었던 것이다.

더불어 어쭙잖게 고수 행세를 하던 왈패들이 슬금슬금 객잔 밖으로 도망갔다.

“자, 먹자.”

사건사고를 원천봉쇄한 벽우진을 향해 빙긋 웃어보인 서예지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교육에 들어갔다.

그러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벽우진 일행에게로 집중됐다.

어느 곳의 고수들인지 다들 궁금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다가와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사천성의 성도에 도착한 일행들이 해연히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에도 가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청해성의 성도인 서녕과는 아예 비교불가였다.

그 정도로 확연히 다른 성도의 풍경에 아이들의 입은 저절로 벌려져 있었다.

“허어.”

그리고 놀란 것은 진구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로 화려한 거리와 건축물들을 본 적이 없는지 진구 역시 평소와 달리 두 눈을 정신없이 껌뻑이는 중이었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분위기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렇고.”

“곤륜산보다 좀 더 따뜻한 거 같아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

“호호호.”

서예지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도 기후를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서예지는 몰랐다.

벽우진이 진심으로 말했다는 사실을.

“우와, 당과다!”

“어디?”

“저기!”

“진짜네. 근데 여기 당과가 더 큰 거 같지 않아?”

“냄새도 달라.”

저잣거리를 거닐던 아이들이 코를 킁킁 거렸다.

청해성 저잣거리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길거리 음식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냄새가 다른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크기 역시 남다른 모습에 특히 심소천과 심소혜가 눈을 빛냈다.

“간식들도 매운 거 아냐?”

“설마.”

“탕도 대체적으로 매콤했잖아. 어쩌면 당과도 매운맛이 첨가되어 있을 수도 있어.”

“일리 있는 말인데.”

양이추와 심대현이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천성의 성도로 오면서 들렀던 객잔이나 객점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매콤했기에 가능성은 충분했다.

“뭘 걱정해? 맛보면 되지.”

“어, 먹어도 될까요?”

“안 될 건 뭐야?”

맛이 궁금한지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의 곁으로 진구가 선뜻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돈으로 당과를 비롯해서 꼬치류 등 여러 간식들을 모조리 샀다.

“너무 많지 않을까요?”

“한창 먹을 때니까 괜찮아. 그리고 또 언제 사천성 성도에 오겠어?”

“그렇긴 하네요.”

조심스럽게 만류하던 서예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음에 또 이곳에 오리라는 보장이 없어서였다.

속가제자들인 그녀라면 모를까 다른 아이들은 본산제자였기에 서예지는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남기지만 말고.”

아이들의 말에 진구가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심소혜를 제외하면 아직은 어색했기에 자기도 모르게 그리 말한 것이다.

“호법님도 하나 드세요!”

“난 괜찮아. 너무 달아.”

“살짝 매콤해서 괜찮아요.”

“먼저 먹었구나?”

“헤헤헤!”

당과를 권하던 심소혜가 살짝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하나를 먹고 말아서였다.

“근데 매콤하다고?”

“예. 제가 직접 먹여드릴게요.”

“크흠! 흠!”

손녀처럼 애교 넘치는 심소혜의 모습에 진구가 살짝 민망한 기색을 띠었다.

별 것 아닌 건데 이상하게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다.

“나는 안 주니?”

“사부님은 제가 드릴게요.”

묘하게 잘 어울리는 심소혜와 진구의 모습에 벽우진이 장난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런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우진의 앞으로 먹음직스러운 당과 하나가 번개 같이 쇄도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예지가 당과를 대령했던 것이다.

“응?”

“드세요.”

“어···.”

“설마 소혜가 아니라서 실망하신 건 아니죠?”

서예지가 당과를 흔들었다.

얼른 먹으라는 무언의 독촉이었다.

“농담으로 한 건데.”

“그래도 맛은 봐보세요. 사부님도 사천성은 처음이시라면서요.”

“초행길이긴 하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드셔보시겠어요? 혼자 오시면 아예 거들떠도 안 보실 거잖아요.”

자신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서예지의 말에 벽우진은 더 이상 반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당과를 받아먹었다.

“음?”

“괜찮죠? 어른용 당과도 있더라고요. 단 거를 좋아하는 어른들도 있어서 그런가 봐요.”

“맛있는데?”

벽우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단순히 단맛에 매콤한 맛만 추가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작디작은 당과에 우주가 담겨 있었다.

오묘하지만 맛있었던 것이다.

“의외죠?”

“응. 이건 우리 나이 대도 먹을 수 있겠다. 물컹물컹해서 이빨이 없어도 먹을 수 있잖아.”

서예지가 말없이 웃었다.

겉모습이 이십대인 벽우진이 말하니 괴리감이 적지 않았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가 돌아가면 한 번 만들어볼게요.”

“대혜 네가?”

“예.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당과는 의외로 만들기 쉽거든요.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예전에는 만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의외로 잘 먹는 벽우진의 모습에 심대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과는 아이들 간식이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이 못 먹는 건 아니었다.

의외로 당이 떨어진다는 말과 함께 단 걸 찾는 경우도 맞았기에 심대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반응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정말 만들 줄 알아?”

“네. 의외로 쉬워요. 이렇게 만들어지나 싶을 정도로요.”

“그럼 나한테도 가르쳐줄 수 있어?”

서예지가 눈을 빛냈다.

요리 실력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금지옥엽이라는 말처럼 워낙에 곱게 자라서였다.

주방에 들어간 것도 곤륜파의 제자가 되어서야 들어갔기에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물론이죠.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 걸요.”

“고마워.”

“애들이 좋아하겠네요. 안 그래도 군것질 거리만 찾고 있었는데.”

아귀처럼 시전에서 파는 온갖 음식들을 입에 쓸어 담고 있는 모습에 서예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군것질은 좋지 않았지만 평소에는 먹기 힘든 게 저잣거리의 음식들이었다.

그래서 서예지는 각자의 용돈 내에서 사 먹는 것은 말리지 않았다.

“흐음.”

의외로 진구 역시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먹고 있기도 했고.

물론 그의 곁에는 손녀처럼 심소혜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것도, 이것도 먹어봐요!”

“맵지 않을까?”

“저 매운 거 잘 먹어요! 다 컸거든요. 헤헤헤!”

“그건 아니지.”

진구가 어울리지 않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심소혜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요상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훈훈한 한 장면이었다.

전혀 닮지 않은 조손지간 같은 모습이랄까.

“이제 그만 들어가자. 성도에 오늘 하루만 머무는 게 아니니까.”

“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에 벽우진이 피식 웃으며 박수를 두어 번 쳤다.

시끄러운 시전이니만큼 박수로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 당겼던 것이다.

이윽고 일행은 시전을 가로 질러 당가타로 들어갔다.

< 제 42장. 사천행.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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