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35화 (135/325)

< 제 41장. 곤륜파는 성장 중. -03 >

벽우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청민 역시 웃었다.

“저희 눈치 정말 많이 보는데요?”

“그럴 리가. 난 느끼지 못했다.”

“원래 당사자는 느끼지 못해요. 아예 신경을 안 쓰니까요.”

“본론만.”

벽우진이 끝내 탈진하고 쓰러진 아이를 허공섭물로 들어 그늘에 옮겼다.

대화를 하면서도 그는 아이들을 전부 다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탈진한 아이가 그늘에 옮겨지기 무섭게 미리 준비하고 있던 표사와 쟁자수들이 발 빠르게 물을 먹였다.

몸의 여기저기를 만져 보며 상태도 확인했고.

“이렇게 보니까 진짜 재건된 것 같아요. 물론 아직은 부족한 곳도 많지만, 그래도 옛날 느낌이 나요.”

“너랑 나도 참 많이 뛰었지.”

“사형은 어떻게든 체력단련을 빼먹으려고 잔머리를 굴리셨죠.”

“제일 지겨운 수련이 체력단련이니까. 근데 나중에 돼서야 알았지. 제일 기본이 체력이라는 것을. 하체가 아냐. 가장 기본은 체력이지. 싸움도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싸우는 거야. 단단히 버티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고. 근데 그때는 몰랐지.”

“아마 지금 뛰고 있는 아이들도 잘 모를 겁니다. 확 와 닿는 게 아니니까요.”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듯 청민이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었기에 더더욱 그리웠다.

“그렇지는 않을 걸. 우리 때야 분위기가 비무나 대련을 중요시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니까. 더구나 난 실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이고.”

“초반부터 너무 강하게 나가시려는 거 아닙니까?”

“강하게 나가야지. 여기서 만족할 거야?”

“아니죠.”

청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욕심이 났다.

구대문파의 한 곳이 아닌 그 이상을 바랐던 것이다.

더구나 시기 또한 너무나 좋았다.

“북해빙궁과 오독문을 물리쳤지만,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야. 정작 중요한 곳은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어.”

“마교가 남아 있지요.”

청민에게서 살벌한 기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천년마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살기가 끓어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무공을 일절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기에 청민은 빠르게 살기를 가라앉혔다.

“애초에 난 북해빙궁이랑 오독문은 생각도 하지 않았어.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건 그 두 곳이 아니니까. 북해빙궁도 이제는 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렇죠.”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아. 어쩌면 이미 중원 깊숙이 들어왔을 수도 있어. 시기적으로 너무 좋잖아? 중원의 힘이 4할 이상 사라진 상태니까.”

“마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죠. 다만 사형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청민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 정도로 북해빙궁주와 벽우진의 대결은 아직도 중원 전역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또한 천년마교가 자리 잡은 천산까지도 흘러들어갔을 터였다.

“에이. 설마. 천하의 마교가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대신 좀 더 과감하게 정보 수집은 하고 있겠지. 중원의 피해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승산 역시 점쳐 볼 수 있을 테니.”

“좋게 흘러가기만을 바라기에는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게 사실이죠.”

“대신 장점도 있지. 제대로 두들겨 맞았으니 두 번째는 좀 더 빠르게 대응하지 않겠어? 마교가 걱정하는 부분도 그것일 테고. 아무래도 경계심이 극도로 올라 있는 상태일 테니. 독이 바짝 오른 쥐는 고양이도 쉽게 상대하지 못하잖아. 뭐, 미친 광신도들이니 만큼 이런 거 저런 거 재지 않고 쳐들어올 가능성이 더 높지만.”

“다른 문파들도 예상하고 있겠죠?”

청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북해빙궁과 오독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생각하면 영 미덥지가 않았던 것이다.

“걱정도 팔자다. 중원에 똑똑한 놈들이 한둘이냐?”

“그 똑똑한 놈들이 북해빙궁과 오독문의 손아귀에 놀아났습니다. 그리고 힘이 없는 명석함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사형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천당가.”

“예?”

청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이 사천당가를 거론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왜 하필 이 시기일까. 그리고 꼭 민호의 생일연을 성대하게 열 필요가 있을까? 이미 남궁세가의 절대자인 제왕검은 한쪽 팔을 잃은 상태인데. 다른 오대세가야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어···.”

청민의 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만가지 추측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던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모두가 다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니까.”

“예.”

“가자. 애들한테 소청기공(小淸氣功) 가르쳐야지. 나 혼자서는 무리야.”

본산제자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뻗은 속가제자들을 가리키며 벽우진이 말했다.

아무리 그가 엄청난 무경을 이룩한 무인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신은 아니었다.

199명에게 소청기공의 구결을 말해줄 수는 있지만 동시에 운기행공을 도와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청민의 도움이 필수였다.

“알겠습니다.”

“다들 모여! 지금부터 본 파의 기본공이라 할 수 있는 소청기공의 구결을 말해줄 테니. 한 번에 못 외워도 이상한 게 아니니까 계속 들으면서 외워. 알겠지?”

“예!”

지쳐 쓰러져 있던 속가제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내공심법을 알려준다는 말에 다들 번개같이 몸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순식간에 벽우진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기본공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지금 알려주는 소청기공이야말로 본 파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소청기공을 완성해야 소천신공을 시작할 수 있고, 태청신공으로도 넘어갈 수 있으니까. 태청신공에 대해서 혹시 들어본 사람?”

“저요!”

“저도 들어봤어요!”

“곤륜파의 대표적인 절학으로 알고 있습니다!”

열의가 대단한 아이들의 모습에 벽우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지쳐서 쓰러졌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또한 얼마나 아이들이 기대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외우고 또 외우면 된다. 운기행공은 나와 청민 장로가 도와줄 테니까.”

“네!”

“우렁차서 좋네. 그럼 청민아.”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벽우진이 씩 웃으며 청민을 불렀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청민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곤륜파의 무공 중에서 가장 짧은 소청기공의 구결을 천천히 읊기 시작했다.

“좋아.”

아이들이 쉽게 외울 수 있도록 느리면서도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소청기공의 구결을 읊는 청민의 모습에 벽우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벽우진은 한쪽에 서 있는 제자들을 불렀다.

속가제자들이 소청기공의 구결을 다 외웠다고 하면 정말로 맞게 암기했는지 확인 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해줄 조교가 바로 그의 제자들이었다.

“당분간은 정신없을 거야. 개인수련 시간도 확 줄어들 테고.”

“괜찮습니다.”

“다 사문을 위한 것인데요.”

“모자란 것은 잠잘 시간을 줄여서 하면 됩니다!”

벽우진이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 제자들인지 하나같이 마음에 쏙 드는 대답만 하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인데요.”

“맞아요, 사부님! 다 저희 사제들이잖아요.”

서예지에 이어 심소혜가 씩씩하게 소리쳤다.

특히 심소혜는 배혁문에 이어 동생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정말 기쁜 모양이었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오빠, 언니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심소혜는 사제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살짝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말이죠.”

“그 부분은 제가 맡겠습니다.”

“도 사제.”

양일우의 중얼거림에 도일수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는 게 그래도 모양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또한 누구보다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응.”

아직까지도 도일수에게 하대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인지 양일우가 입에 잘 붙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양일우와 달리 심소혜는 해맑게 웃으며 도일수에게 안겼다.

“고마워요, 도 사제.”

“편하게 말하세요, 사저.”

“제가 사저니까 저 하고 싶은 대로 할래요!”

“후후후. 그러세요.”

귀엽게 고집을 부리는 심소혜의 모습에 도일수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항렬 상으로는 사저이지만 하는 짓은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마치 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도일수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헤헤헤.”

도일수의 품이 좋은지 심소혜가 헤실거렸다.

어리광 피우지 말라며 잘 안 안아주는 심소천과 달리 도일수는 늘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그게 심소혜는 너무나 좋았다.

‘부럽단 말이지.’

한편 무공교두로서 벽우진에게 호출 받은 진구가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스승과는 달리 제자들은 하나같이 심성이 올곧고 바른 게 참 보기 좋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우애 좋게 지내고 벽우진한테 잘하는 모습을 보니 그도 제자를 들이고 싶어졌던 것이다.

“흐음.”

하지만 다른 호법들과는 달리 그는 이번 속가제자 공개모집에서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썩 마음에 드는 아이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비현은 무려 두 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내가 너무 큰 걸 바라고 있나.’

벽우진과 제자들을 보면 가슴이 참 따뜻해졌다.

그런데 또 막상 무공수련하는 모습을 보면 독종도 그런 독종이 없었다.

심지어 예쁘장한,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았을 것처럼 보이는 서예지도 무공을 수련할 때는 독종이 따로 없었다.

검법도 야무지게 잘 펼쳤고 말이다.

‘단순히 운이라고 보기에는 힘든데 말이지. 정말 안목이 남다른 건가.’

진구의 시선이 벽우진에게로 향했다.

그는 벽우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솔직히 시작은 별로 좋지 못했다.

서로의 생각이 달랐기에 다툼으로 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결과는 나의 완패였지.’

사실 곤륜산의 종주임을 벽우진이 밝혔을 때 순순히 따르는 게 맞았다.

비록 곤륜파에 적을 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뿌리가 곤륜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선대와 곤륜파의 관계는 깊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곤륜파도 곤륜산에서 수행하던 도인들이 뜻을 모아 개파한 도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예 인연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구는 그걸 부정했었고, 결국 힘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내려왔다.

‘처음에는 모든 게 불만이었지만, 지금은 글쎄.’

힘에 의해 제압당해서 내려온 것이었기에 진구는 처음에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대의 약속을 왜 자신이 지켜야 하나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속세에 물든 것일 지도.”

진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머물던 동혈로 돌아가고 싶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곤륜파의 아이들과 어울려서 그런지 지금은 함께 있는 게 더 즐거웠다.

“호법님!”

그때 마치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심소혜가 다가왔다.

험악한 인상 때문에 아직도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심소혜는 방긋방긋 웃으며 그의 넓적다리에 안겼다.

“소혜구나.”

“목마 태워주세요!”

“지금?”

“안 될까요?”

뜬금없는 요구였지만 진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있어 공깃돌만큼이나 가벼운 게 심소혜였다.

또한 그의 생각을 바꾼 일등공신 역시 그녀였다.

그런 만큼 진구는 단숨에 심소혜를 들어 목마를 태웠다.

“꺄아!”

“높지?”

“네!”

“운룡대팔식을 제대로 익히면 더 높게 날 수 있을 게다.”

속가제자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기쁨을 토해내는 심소혜의 모습에 진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심소혜는 고개를 저었다.

“전 진 호법님이랑 이렇게 함께 하는 게 좋아요.”

두근.

< 제 41장. 곤륜파는 성장 중.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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