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32화 (132/325)

< 제 40장. 내가 결정한다. -03 >

눈에 확 티는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인이 얼굴 가득 불만스러운 기색을 띤 채로 말했다.

한창 위명을 떨치는 곤륜파가 준비한 시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건성으로 준비한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평가기준도 너무나 애매했다.

객관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오로지 주관적인 결정에 의해 합격여부가 결정되었기에 중년인은 바로 그 점을 물고 늘어졌다.

“한 마디로 공정성이 없다?”

“그렇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아들을 곤륜파의 속가제자로 만들려는 겁니까? 이렇게 불공정한 시험을 일삼는 곳인데.”

“그, 그건···.”

중년인이 우물쭈물 했다.

마땅히 할 대답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벽우진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반대로 묻지요. 제가 왜 당신의 아들을 속가제자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야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직 장문인이나 호법님들이 모르시는 것일뿐···.”

“신기하군요. 저도 제 안목이 완벽하다고 믿지 못하는데 그렇게 자신을 하다니. 그럼 묻고 싶습니다. 저는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

중년인이 두 눈이 뒤룩뒤룩 굴러갔다.

하지만 분명 머리를 굴리고 있을 텐데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은 말을 아끼는 게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주변에 있던 다른 항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제 기준이 맞춰 합격자를 정한 것입니다. 본 파에는 본 파만의 내규라는 게 있습니다. 또한 곤륜파의 무공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누구보다 제일 큰 성취를 이룬 게 저입니다. 그렇기에 본 파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지원자들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너무 섣불리 판단을 내리시는 건 아닐는지요. 아직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입니다. 좀 더 지켜보고 결정하시는 것도···.”

“착각하시는데, 결정은 제가 하는 겁니다. 곤륜파의 장문인인 제가. 여러분들이 아니라.”

“으으음!”

벽우진의 싸늘한 눈빛이 좌중을 훑었다.

그러자 하나같이 다들 고개를 숙였다.

감히 벽우진과 눈빛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스윽.

벽우진의 시선이 지금껏 앞장서서 대화를 주도했던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직접 와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지만 이들에 대해서 보고는 매일 같이 받고 있었기에 누구의 주도 하에 이 무리가 만들어졌는지 벽우진은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말없이 경고하는 것이었다.

괜히 사람들을 부추기지 말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오늘 이후부터는 저희도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스스슥!

벽우진에 이어 청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리 말한 청민의 뒤로 수십 개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바로 비호표국의 표사들이 시립하듯 세 사람의 뒤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표국주인 유한열과 대표두인 정휴, 마종석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정 명문대파의 속가제자가 되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십시오. 어제부로 저희는 속가제자 모집이 끝났으니.”

“자, 장문인!”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벽우진의 삼엄한 기세에 잠시 굳어 있던 이들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선동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벽우진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마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듯한 기세에 표사들도 일제히 움직였다.

다들 평범한 양민들이기에 벽우진이 위험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손에 일파의 장문인이 붙들리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았기에 먼저 나선 것이었다.

“시험은 끝났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장문인!”

“어르신!”

등 뒤에서 절절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벽우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욕심에 눈 먼 자들의 고성일 뿐이었다.

자식을 이용해 곤륜파라는 배경을 이용하고자 하는.

그렇기에 벽우진은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어슴푸레한 새벽인데도 장하삼은 일어나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아이들이 코를 골며 자는 것과 달리 그는 세수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게 도복.”

그런 장하삼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곱게 개어져 있는 곤륜파의 도복이 있었다.

옅은 푸른빛이 도는 도복을 장하삼은 멍하니 쳐다봤다.

아직도 자신이 곤륜파의 속가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진짜 되었어. 내가···.”

사실 반 이상은 포기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가 반대 입장이었어도 나이 많은 자신을 뽑을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로 나왔다.

첫 날에 당당히 시험에 합격했던 것이다.

“으윽!”

여전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에 장하삼은 하루에 한 번씩 이렇게 스스로의 볼을 꼬집었다.

“오늘도 꼬집어요?”

“어? 깼어?”

“아뇨. 슬슬 일어날 때라서요. 집에서도 늘 이때쯤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했거든요.”

“부지런하네.”

“집안 내력이에요. 사실은 할아버지 때문이지만요.”

송찬승이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그런데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그 모습이 밉지 않았다.

“부지런해서 나쁠 것은 없어.”

“근데 아저씨는 지겹지도 않으세요?”

“전혀. 꿈이 이루어진 거니까.”

장하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합격을 했다.

자살을 하려고 벼랑 끝에 서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붙잡아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겨울까.

“꿈이라. 저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꿈은 천하제일인이거든요. 곤륜파는 그 시작이고요. 지금까지는 나름 첫 매듭을 잘 끼운 셈이죠.”

“속가제자로?”

“무기명제자라는 것도 있잖아요. 서 사저가 그렇고요. 근데 사저들 진짜 예쁘지 않아요? 혼혈이신 분도 미모가 어마어마하던데. 서 사저야 원래 미모로 청해성을 울렸던 분이고.”

“나이도 어린 게.”

“으악!”

송찬승이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예고도 없이 날아온 꿀밤에 제대로 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손은 작은데 얼마나 옹골찬지 너무나 아팠다.

“어린 게 벌써부터 까져가지고.”

“어려도 남자에요! 저도 남자란 말이죠!”

“조용히 해. 애들 깬다.”

“근데 항렬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다 같은 날에, 같은 기수이니 역시 나이로 정하겠죠?”

볼록하게 올라온 혹을 살살 비비며 송찬승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이로 정하면 아무래도 그가 불리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반면에 장하삼에게는 이득이고.

“그게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나나 너나 위가 한 가득인데. 본산제자 분들은 우리보다 다 윗 항렬이야.”

“저는 어리니까 괜찮아요.”

“너보다 어린 분도 한 분 계시던데? 대벽검 장로님 제자가 열 살이래.”

“헉!”

송찬승이 경악성을 토해냈다.

당연히 자신보다 어린 본산제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어서였다.

“시기도 너보다 빠르고. 게다가 그 분은 청민 장로님의 하나뿐인 제자야. 일개 속가제자인 우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으으으!”

송찬승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장하삼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나이가 어려도 그보다 사형인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동냥으로 들은 거지만 이렇게 꼬이는 경우가 명문대파에서는 의외로 많다고 들었다.

‘중요한 건 나도 일대제자라는 거지.’

속가제자라는 네 글자가 앞에 붙기는 했지만 그도 엄연히 곤륜파의 일대제자였다.

다른 구대문파였으면 삼대제자, 재수가 없다면 사대제자였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현재 곤륜파는 다시 일어서는 중이었다.

즉 10년 정도만 제대로 수련하면 문파 내의 요직에 앉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나중에 실력을 인정받아 본산제자가 되어도 좋고.’

장하삼은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야망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게 전혀 허황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저씨.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웃어요?”

“내가 웃었어?”

“예. 되게 음흉한 얼굴이었어요. 지금이라도 다른 방을 잡아야 하나 할 정도로요.”

“야망을 좀 키우고 있었지.”

“오호. 야망 좋죠. 저희 아버지께서도 늘 말씀하세요. 남자는 야망이 있어야 한다고. 꿈이 있어야 성장한다고요.”

송찬승이 또래에 비하면 크지만 어른에 비하면 작은 가슴을 쭉 내밀며 하는 말에 장하삼이 옅게 웃었다.

의젓해 보이려고 해도 아직은 애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맞는 말씀하셨네.”

“그래서 저도 꿈을 가지게 되었죠. 아버지는 문(文)에서 일가를 이루기를 바라셨지만, 사람이라는 게 적성이 다 다르잖아요? 저에게는 글이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대신에 태어나기를 강골로 태어나서 무(武)에 뜻을 두게 되었죠.”

“확실히 크긴 커. 옆으로 커서 그렇지.”

“···명치는 때리는 거 아니랬어요.”

송찬승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그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부지런하게 생활을 하면서도 키를 키우기 위해 송찬승은 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키는 좀처럼 크지를 않고 있었다.

“이제 열두 살인데. 아직 키 클 날이 한창 남았지. 문제는 나지.”

“아저씨도 체력은 상당하시던데요. 저희 아버지는 마당 두어 바퀴 도시면 못 뛰세요.”

“가장과 총각은 다를 수밖에 없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다른데.”

장하삼이 피식 웃었다.

또래라고 해서 짊어지고 있는 의무도 비슷한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오늘부터 시작이네요. 아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애들이 수두룩할 거예요.”

“너도 마찬가지고.”

“아저씨는 정말 잘 주무시더라고요. 제일 먼저 코 곯았어요.”

“잠이 보약이야. 너도 한 서른쯤 되면 느낄 거다.”

“으으. 아버지랑 똑같은 소리를.”

송찬승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부친과 너무나 비슷하게 말을 해서였다.

그러는 사이 같은 방을 쓰는 나머지 두 명의 아이들도 잠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의 대화에 하나둘 정신을 차렸던 것이다.

“자자, 준비하자. 속가제자가 되어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자리인데 늦으면 안 되지.”

“예!”

이 방뿐만 아니라 전체로 따져도 가장 연장자가 장하삼이었다.

그래서인지 누구 하나 그의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두 살도 아니고 거의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니 따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자들과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벽우진은 느긋하게 자신의 집무실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큰 행사였던 속가제자 모집이 나름 무사히 지나갔기에 간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어후, 좋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탄사에 벽우진이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렸다.

배도 부르겠다, 시원한 바람도 불겠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똑똑똑.

“응?”

“접니다, 사형.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두 눈을 감은 채로 차향을 음미하던 벽우진이 고개만 살짝 돌렸다.

문 쪽을 향해 머리만 슬쩍 꺾었던 것이다.

“쉬고 계셨군요.”

“이제는 쉴 때도 됐잖아? 이레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장문인이 되시고 가장 큰 행사를 치르시긴 했죠. 하지만 다른 구대문파에 비하면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습니다.”

“지리적인 문제도 있잖아. 우리는 변방이라고 해도 무방할 곳에 위치해 있는데. 사실 중원보다는 세외에 더 가깝잖아.”

벽우진이 눕듯이 의자에 앉은 채로 손가락을 휘저었다.

위치상으로 따지면 곤륜파는 절대 중원에 가깝다고 보기 힘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진후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맞습니다. 그런 것들을 감안하면, 또한 이제 처음으로 모집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작은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지원자가 상당히 많았으니까요. 물론 예전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요.”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다르잖아. 명문대파의 성세를 떨칠 때와 지금이 같나. 시작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만족해야지. 그래, 무슨 일로 이 이른 시간부터 찾아왔어?”

“보고할 게 있어서요.”

“해 봐.”

< 제 40장. 내가 결정한다.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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