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31화 (131/325)

< 제 40장. 내가 결정한다. -02 >

“아아!”

그 모습에 부모들이 하나같이 탄식을 내뱉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럼 자식이 당당하게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한 끝 차이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몇몇 부모들은 아예 악을 썼다.

닦달이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더 버틸까 싶어서였다.

털썩! 철퍼덕!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당민호의 예상대로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한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하나같이 힘을 남겨둔 채로 주저앉았다.

“근성이 없어, 근성이. 의지가 저렇게 나약해서야.”

“아직은 어린아이들이니까요.”

“어려도 악바리들은 있어. 합격한 애들을 봐.”

혀를 차는 조부의 모습에 당소윤도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편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대부분이 기대했던 것 이하였다.

“장문인!”

“제,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이번에는 잘할 거예요! 우리 아이는 달라요!”

달라지지 않은 결과에도 부모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곤륜파의 속가제자라는 배경이 너무나 아까워서였다.

그리고 한 번 기회를 준만큼 또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두 번은 없습니다.”

“자, 장문인!”

“기회는 충분히 주었습니다. 단지 지원자들이 합격하지 못했을 뿐.”

보호자들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정작 벽우진의 옷을 잡은 이는 없었다.

벽우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존재감이 보호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일절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가십시오!”

“심사는 끝났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나세요!”

벽우진의 손짓에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발 빠르게 보호자들과 지원자들을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순순히 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자 보호자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우리도 이동하자꾸나.”

“예.”

빠르게 정리되어 가는 장내의 풍경에 당민호도 발걸음을 옮겼다.

구경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볼 일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이윽고 당민호와 당소윤 역시 대연무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또르륵.

무거운 분위기 때문일까.

유독 차를 따르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우진이에게 얘기는 대충 들었다. 곤륜에 남기로 했다고?”

당민호의 시선이 앞에 앉아 있는 당필교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당필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담담한 말투인데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예.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진이가 협박한 것은 아니고? 나한테는 편하게 말해도 된다. 우리는 한 가족이지 않더냐.”

“절대 그런 것 없습니다. 제 스스로 오랜 시간 고민하고서 내린 결정입니다.”

“혹시 내가 아니,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느냐?”

당민호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그의 기억에는 실수한 게 없지만 당사자는 또 다를 수가 있어서였다.

“전혀 없습니다, 태상가주님.”

“사석이니까 편하게 말해도 된다. 이곳에는 우리 밖에 없지 않느냐.”

“으음!”

당필교가 말을 아꼈다.

이 자리에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당소윤도 함께 있어서였다.

“괜찮다. 우리가 일이 년 함께 한 것도 아니고. 그 힘들었던 봉문도 함께 견뎌내질 않았더냐.”

“정말 없습니다. 제가 곤륜에 남기로 한 것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지 본가에 서운하거나 섭섭한 게 있어서가 아닙니다. 죽기 전에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고요.”

“음.”

당민호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엇이 당필교의 마음을 붙잡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가의 기술유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님. 장문인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논의가 다 되었습니다.”

“혹시 연구 때문이냐?”

“그것도 영향을 끼치기는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만들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다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맞는 친구도 생겼고요.”

“그건 축하할 일이다만, 그래도 아쉽구나. 내가 괜히 널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저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필교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처음에 자신을 곤륜파에 파견을 보냈을 때는 기분이 조금 안 좋았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공사가 한두 달 해서 끝나는 게 아니어서였다.

“만약 우진이가 이상한 일을 시키면 바로 나에게 말하거라.”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장문인께서 정말 잘 해주시거든요. 지원도 팍팍 해주시고요.”

“그건 우리도 해줄 수 있다.”

“하하하.”

당필교가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말하는 당민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이곳이 좋았다.

이제는 정도 많이 들었고.

“아무래도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구나.”

“언젠가는 돌아갈 겁니다. 조금 긴 외출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놈이 참 여우라니까. 하는 짓은 왈패나 다름없는데 잔머리는 진짜 잘 돌아가.”

“성격은 좋습니다. 단,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만 좋으시지요.”

“끄응!”

당민호가 앓는 소리를 냈다.

부정할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로부터였다.

정확하게는 욕심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

비천단은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다.

이번 오독문과의 전쟁에서도 그 가치를 톡톡히 드러냈었고.

때문에 당민호로서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다. 대신 너무 무리하지는 말거라. 너 역시 본가의 혈족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예.”

방계이지만 지닌바 재능을 인정받아 당가타가 아닌 본가에서 자랄 수 있었던 당필교였다.

하지만 직계와 방계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은근한 차이는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에 신물이 나서 곤륜파에 머무는 것일 지도 몰랐다.

“불만사항이 있으면, 생각나면 언제라도 연락하고.”

“그리 하겠습니다.”

“아쉽구나. 네 성취가 가문에 정말 큰 도움이 될 터인데.”

“저보다 더 뛰어난 기술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저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겸손은.”

당민호가 피식 웃었다.

누가 봐도 빈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였다.

“생각지도 못한 성취를 얻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갈 길도 멀고요.”

“그래. 알겠다. 이 얘기는 이쯤 하자꾸나. 그런데 필교야, 오늘 우진이 곁에 있던 여아는 누구이더냐? 처음 보는 아이던데.”

“빈객처럼 머무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자세하게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장문인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밖에는요.”

“흐음.”

당민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어서였다.

근데 그래서 그는 더 궁금했다.

무공은 평범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게 다인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외모도 보통이 아니었고.’

당민호는 특히나 여인의 외모에 집중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수려한 얼굴은 손녀보다 훨씬 나았다.

당소윤도 미녀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외모였지만 여인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조금 부족했다.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세요?”

“흠흠! 아니다.”

“그 여자랑 저 생각하신 거죠? 제가 밀린다고 생각해서 그런 눈으로 절 보신 거죠?”

“아니다, 그런 거. 어쩌다 보니 시선이 너에게 간 거지.”

당소윤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당민호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당민호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못해드릴 것 같습니다. 같이 지내기는 하지만 또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라서요. 저는 대개 공사장에 가 있어서.”

“알겠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보다 내 생일에는 올 수 있겠느냐?”

당민호가 은근슬쩍 물었다.

화제도 돌릴 겸 자신의 생일을 거론했던 것이다.

“당연히 가야하는 게 맞지만, 일단은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도중에 멈추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당민호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사천당가의 가주였던 때가 있었기에 당필교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해는 가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욱이 당필교는 다른 이도 아니고 당가의 피가 흐르는 혈족이지 않던가.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좀 있으니까요.”

“올해 안에는 힘들겠지?”

“예. 적어도 내년 이맘때쯤은 되어야 완공이 될 것 같습니다. 장문인께서 의외로 꼼꼼히 확인하고 계셔서.”

“쓸데없는 곳에 관심이 많다니까. 에잉.”

말은 이렇게 했지만 당민호도 알고 있었다.

꼼꼼하게 확인을 해도 모자라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지금 공사하는 것은 단순히 1, 2년을 유지하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만큼 몇 번이고 확인을 해도 부족했다.

“북해빙궁이 습격해 왔을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때 참전하셨다고 들었어요.”

당소윤이 시기적절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당민호도 관심을 보였다.

안 그래도 그 역시 묻고 싶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너서 듣는 것보다는 역시 당사자에게 듣는 게 훨씬 더 정확했고.

“저는 크게 활약을 한 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해 봐. 궁금하니까.”

“예.”

당필교의 입에서 그때의 상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조손이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이레 동안 이어졌던 심사가 어제부로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곤륜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특히 산문에 모인 이들은 아직도 똘똘 뭉쳐 곤륜파에, 정확하게는 벽우진에게 항의하는 중이었다.

“참 염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래. 놓치기 싫으니까 더더욱 매달리는 거지.”

이른 아침부터 벽우진과 함께 산문으로 걸어가며 청민이 고개를 저었다.

반면에 보필하듯 뒤따르던 서진후는 엄한 얼굴이었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얼굴이 한껏 굳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미 기회는 충분히 주었는데 말이지요.”

“달리 말하면 그만큼 본 파가 매력적이라는 얘기이기도 해. 다른 구파일방은 끽해야 삼대제자, 사대제자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비록 속가이기는 하지만 일대제자잖아. 청범도 속가제자로 시작해서 지금은 장로직에 있고. 그러니 더더욱 포기할 수가 없는 거지.”

의외로 벽우진은 모여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부모 마음이라는 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구사항들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재고해 주십시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이런 결정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산문에 가까워질수록 항의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무공이 뛰어난 벽우진이야 진즉부터 듣고 있었지만 말이다.

“장문인이시다!”

“장문인께서 오셨다!”

벽우진의 등장에 다시 한 번 소란이 일었다.

드디어 벽우진이 반응했다는 듯이 다들 반색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벽우진의 표정은 냉담했다.

“제가 분명 경고를 했을 텐데요. 이러면 안 된다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결과가 번복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대로는 너무 억울합니다! 우리 아이가 뭐가 부족해서 탈락한 것입니까?”

“한번만 보고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지켜보시면 분명 우리 애의 재능을 알아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벽우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말들이 쏟아졌다.

다들 하나같이 절실한 얼굴로 벽우진만을 바라봤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벽우진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그냥 받아달라는 말 아닙니까?”

“······.”

“억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침 일찍부터 모여서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부리는 게 아이가 떼를 쓰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말이다.

“달리기 하나만으로 합격여부를 가리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달리기 하나만으로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가리다니요.”

< 제 40장. 내가 결정한다.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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