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30화 (130/325)

< 제 40장. 내가 결정한다. -01 >

장하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합격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사실을 벽우진이 직접 말해준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그럼 내가 장난치려고 여기까지 왔을까.”

“저, 저는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장하삼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두 사람 사이로 덩치 큰 꼬맹이 하나가 끼어들었다.

방금 전까지 장하삼과 대화를 나누던 송찬승이었다.

“너?”

“예! 저는 어느 쪽인가요?”

장하삼하고 대화할 때는 천양지차의 모습으로 송찬승이 물었다.

얼굴 가득 긴장한 기색으로 말이다.

“흐음.”

꿀꺽!

장하삼에게 말해줄 때와는 달리 뜸을 들이는 벽우진의 모습에 송찬승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저씨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매우 절실한 상태였다.

가문의 명성을 이용한다면 재건 중인 공동파나 사천성의 청성파의 제자가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송찬승은 곤륜파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벽우진의 제자가.

그래서 벽우진처럼 전 중원을 떨쳐 울리는 고수가 되고 싶었다.

“호, 혹시 탈락인가요?”

송찬승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아무래도 안 좋은 결과일 가능성이 컸다.

때문에 송찬승의 두 눈에 물기가 어렸다.

“가까스로 합격.”

“우, 우와! 아니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합격했다고 끝이 아니야. 앞으로가 중요하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송찬승이 연신 허리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 지쳐서 쓰러져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박력 넘치는 모습에 벽우진은 물론이고 설아린도 미소를 지었다.

“허어.”

한편 장하삼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합격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계속 손으로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많이 놀란 모양이야?”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어떤 문파가 서른다섯 살이나 먹은 사람을 제자로 뽑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후원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요.”

“뭐, 그런 곳도 있다고는 들었다. 무공장사를 하는 곳이 의외로 많다고.”

“그런데 곤륜파는 아니잖습니까.”

장하삼이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쁘기도 하지만 사실 당혹스러운 감정이 더 컸다.

정작 그토록 바라던 속가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말이다.

“그렇지. 본 파는 그런 것들과는 격이 다르지. 암.”

“그래서 좀 얼떨떨합니다.”

“충분히 기뻐하도록 해. 넌 당당히 내 기준을 통과해서 합격한 것이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합격한 이유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까요?”

장하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 말에 옆에 있던 송찬승이 귀를 쫑긋거렸다.

사실 궁금한 것은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독기가 마음에 들었어.”

“···독기요?”

“응. 사실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 대부분은 한계가 눈에 보이면 포기하거나 주저앉기 마련인데, 너희 둘 다 그 한계를 피하지 않더라고.”

“근골이나 무재가 보신 게 아니네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장하삼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남몰래 했었는데 그가 예상한 단어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두 개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애초에 본산제자를 뽑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아!”

“그렇다고 해서 너희 둘의 재능이 낮다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벽우진이 묘한 얼굴로 장하삼과 송찬승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가 보기에 둘 다 평균 이상의 재능은 충분히 가지고 있어서였다.

“아니 왜 우리 아이가 탈락인 거죠!”

“대체 무슨 기준으로 선별하는 겁니까?!”

한데 그때 멀리서 흥분한 기색이 다분한 고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아이가 탈락했다는 결과에 수긍하지 않고 표사들에게 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작되었네요.”

“뭐, 예상했던 바지.”

설아린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속가제자 공고를 알릴 때부터 그녀는 이런 상황을 내심 짐작했었다.

어떤 기준을 정하더라도 저렇게 따지고 보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명확한 기준을 말해줘요! 왜 우리 아이가 떨어진 건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장문인께서 정한 기준에 부합되지 않았다고요.”

“당신 말고 다른 사람 데려와요! 곤륜파의 장로님이나 호법님이요!”

비호표국의 표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국주나 대표두와 달리 그는 곤륜파의 속가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막말로 유한열이나 대표두들도 장로나 호법들을 데려오지 못할 터였다.

비호표국에서나 높은 신분이지 곤륜파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건···.”

“뭐해요? 얼른 데려오지 않고! 내 톡톡히 따질 거예요.”

“따져 보시죠.”

“에?”

자기 아들을 품에 꼭 껴안은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중년여인이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음성에 퍼뜩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벽우진이어서였다.

“따져 보시라고요.”

“자, 장문인!”

“무엇이 불만입니까?”

벽우진이 중년여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상대가 일반 양민인 만큼 조금의 기도도 끌어올리지 않고서 조용히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것도 그렇지만 벽우진에게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존재감에 중년여인은 기가 팍 죽은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그러니까···.”

“편하게 말하세요. 아주머니의 불만을 듣고자 온 것이니까요.”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번 심사의 결과를 납득할 수가 없어요. 분명 제 아들이 저 꼬마애보다 더 오래 뛰었는데 왜 저 애는 합격한 것이고 제 아들은 탈락한 건가요?”

“저도 궁금해요.”

“저희도요.”

중년여인의 곁으로 탈락한 아이들의 부모가 모여 들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합격자를 뽑은 것인지 그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불합격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뛰기는 했지만 그뿐입니다. 딱 뛸 수 있는 만큼만 뛰더군요. 그건 제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를 부수는 아이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아주머니의 아들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중년여인이 조금도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재가 없어서도 아니고 이처럼 불분명한 이유로 탈락을 시킨다고 하니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듯 다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시만요. 그럼 혹시 다시 시험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

다들 똑같이 혼란스러운지 여기저기에서 웅성웅성 거릴 때 장년인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공고문에 재시험 불가라는 말은 없었기에 그 맹점을 정확히 짚었던 것이다.

그러자 실망감이 가득했던 보호자들의 얼굴에 한줄기 기대감이 서렸다.

“불가합니다.”

“어, 어째서입니까?”

“다시 한다고 해서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이건 불공평합니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서 시험을 치렀지만 내일 시험을 보는 지원자들은 다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맹점을 짚었던 장년인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부당한 처사인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벽우진은 단호했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시험은 말 그대로 달리기일 뿐이니까요. 버티느냐 버티지 못하느냐는 결국 지원자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고.”

“그래도 알고 시험을 치르는 것하고 모르고 시험을 치르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벽우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는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듯한 얼굴로 장년인을 쳐다봤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맞아요!”

“이건 불공평해요! 일찍 와서 좋은 점이 하나도 없잖아요!”

장년인의 말에 선동된 듯 여기저기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벽우진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근데 그 전에 하나를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스윽.

손을 들어 따지는 보호자들을 조용히 시킨 벽우진이 시선을 돌렸다.

보호자들이 아닌 시험에 참가했던 지원자들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던 것이다.

벽우진은 아이들과 눈을 일일이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다시 시험을 보고 싶은 사람?”

“어···.”

“난 싫은데.”

“또 뛰어야 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솔직한 아이들의 속내에 보호자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

아이들의 생각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재시험이라는 말에 승부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전 할 수 있어요!”

“저도요!”

“그럼 뛰어 봐. 단, 내공은 사용금지. 조금이라도 내공을 끌어 올린 이는 탈락이다. 내 눈을 피해서 사용할 자신이 있으면 그래도 되고.”

벽우진이 통 크게 선심을 쓴다는 듯이 말했다.

시험을 한 번 더 본다고 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또한 결과 역시 예상이 되었고.

“아자!”

“단,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

벽우진의 시선이 보호자들에게로 향했다.

지금의 말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보호자들에게도 하는 소리였다.

더 이상 투정을 부리지 말라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재시험이었지만 그 상황에 당황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한 번 해봤다고 익숙하게 진행하는 모습에 벽우진은 다시 몸을 돌려 단상으로 향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단상에서 지원자들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리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벽우진의 무심한 시선이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지원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기대하는 기색이 조금도 서려 있지 않았다.

합격기준을 안다고 모두가 합격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흐아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벽우진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마치 이미 결과가 나왔다는 듯이 말이다.

“좀 더 뛰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뛰어라, 만득아!”

여기저기에서 보호자들의 간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재시험은 좀 전의 시험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뛰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이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역시 독특하시네요.”

“독특한 게 아니라 이상한 거지. 요즘 세상에 누가 달리기로 제자를 뽑아?”

“근데 체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잖아요.”

순수하게 구경꾼의 입장에서 지원자들의 재시험을 지켜보던 당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구시대적이어도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시험이어서였다.

“그래도 너무 유행에 뒤떨어졌어.”

“사실 무재를 너무 안 보는 건 이해가 안 가기는 해요. 아무리 속가제자라지만 그래도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한둘 정도는 있을 텐데요.”

“예를 들어 저 녀석?”

“네. 천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재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운기토납법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당소윤의 시선이 두 볼을 부풀리고 있는 한 소년에게로 향했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아이였는데 그녀가 보기에 기본기가 제법 탄탄해 보였다.

다만 내공을 제한한 게 불만인지 연신 침을 뱉으며 대연무장을 돌고 있었다.

“그럼 뭐해? 싸가지가 없어 보이는데.”

“장문인께서는 특히 인성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지 성격은 생각 못하고 말이지.”

“호호호.”

적나라하게 친우를 까는 모습에 당소윤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조부의 말마따나 벽우진의 성격 역시 좋다고는 볼 수 없어서였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의지박약인 녀석들은 절대 한계치까지 가질 못하니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조손지간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우르르 포기했다.

가뜩이나 얼마 쉬지도 못하고 뛰었기에 더 빨리 무너졌던 것이다.

물론 부모님의 성화에 다시 일어나서 뛰는 아이들도 몇 명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얼마 못가 스스로 포기했다.

< 제 40장. 내가 결정한다. -01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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