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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패선-104화 (104/325)

< 제 32장. 곤륜혈투(崑崙血鬪). -04 >

“이놈들이!”

그 모습에 설백이 대경실색 했다.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노리는 바가 너무나 명백해서였다.

그러나 싸우려는 게 아니라 지나치는 게 목적이었기에 아무리 호법들의 실력이 뛰어나도 오백여 명 가까이 되는 이들을 모두 다 잡는 건 불가능했다.

“젠장!”

“버텨라!”

특히나 사존들은 호법들과 비등한 무력을 가진 존재들이었기에 설백은 더욱더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자들도 중요했지만 청민과 서진후는 그보다 더 중요한 존재들이었다.

특히 벽우진이 두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 잘 알았기에 설백은 전력을 다해 경신술을 펼쳤다.

만약 두 사람이 죽게 된다면, 아니 사로잡히게 된다면 상황이 아주 극단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파아앗!

한데 그런 설백보다 먼저 두 사람에게 달려가는 이가 있었다.

바로 진구였다.

그는 마치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살벌한 얼굴을 하고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네놈들만은!”

“흐아아압!”

하지만 진즉에 준비를 하고 있던 사존들보다는 늦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최악의 결과도 상정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사존들이 조금 더 두 사람과 가까웠던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진구는 이를 악물고서 더욱 속도를 올렸다.

콰아앙!

그러나 먼저 도착한 것은 결국 사존이었다.

진구와 호법들이 악착같이 달린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사존 역시 절실했기에 간격이 끝내 좁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끄으윽!”

게다가 위험한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빙령전대와 북풍전대는 스스로가 고기 방패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동료가 아이들에게 다가갈 시간을 벌어주었다.

때문에 호법들로서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청민아!”

천라혈존과 백수장존에게서 뻗어나간 새하얀 강기가 청민과 서진후에게 뻗어나가는 것을 보며 진구가 소리쳤다.

늘 티격태격 대기는 했지만 누가 뭐래도 곤륜파 내에서 진구와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진구는 다급하게 권격을 날렸다.

일단은 두 사람과 사존을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칫!”

등 뒤에서 날아오는 맹렬한 권격에 파천도존이 혀를 찼다.

아직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했는데 진구가 도착해서였다.

게다가 진구에 이어 세 명의 호법들이 속속들이 도착했기에 파천도존은 황급히 몸을 돌리며 길을 막았다.

우선은 청민과 서진후를 사로 잡을 시간을 벌 작정이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오!”

그때 멀리서 청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사존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고서 소리쳤던 것이다.

물론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청민과 서진후가 짧은 시간에 강해졌다고 하나 그렇다고 사존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였다.

“제기랄!”

그래도 일격 정도는 어찌어찌 버텨낼 정도는 되었기에 둘 다 입가에서 피를 흘릴지언정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사존의 공세를 받아치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던 것이다.

그 영악한 행동에 천라혈존과 백수장존이 분기탱천했다.

다 잡았다고 생각한 둘을 어이없게 놓쳐서였다.

퍼퍼퍼펑!

거기다 제자들 역시 합격진을 펼치는 것으로 시간을 번 결과 무사히 호법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부상은 입었을지언정 사로잡힌 이는 없었던 것이다.

“하아.”

그 모습에 파천도존이 절망어린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 제자들이라도 사로잡았어야 협상을 할 수 있는데 계획이 완전히 실패했기에 파천도존은 막막한 얼굴로 도를 늘어뜨렸다.

“발악은 끝났군.”

“······.”

정리된 상황에 벽우진의 시선이 다시 북해빙궁주에게로 향했다.

가뜩이나 창백했던 안색이 더욱 새하얗게 변한 그녀에게로 말이다.

“그러길래 왜 여기로 왔어. 그냥 강북 무림하고 담판을 짓지. 그랬다면 최소한 이 모양 이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너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지. 너희들이 간을 보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난 그저 이곳에 있었을 뿐이니까. 쳐들어온 건 너희들이지.”

흠칫!

벽우진의 시선이 북해빙궁주를 넘어 파천도존과 백귀존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백귀존이 유독 크게 움찔거렸다.

여기에서 오직 그만이 벽우진과 초면이 아니어서였다.

“···물러나겠다면 보내줄 수 있나?”

“이제 와서?”

벽우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밤에 대대적으로 암습을 한 주제에 너무나 당당하게 물러나겠다고 말을 하니 기가 막혔던 것이다.

하지만 북해빙궁주는 당당했다.

“적장에 대한 예우도 있는 법이니까.”

“흥. 적장은 무슨. 정면대결도 아니고 비겁하게 쳐들어온 주제에 예우? 가당키나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 혼자로 안 되겠나?”

여전히 오른손으로 복부를 부여잡은 채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멍 난 단전에서 평생 동안 쌓아온 공력이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그녀는 북해빙궁의 주인이었다.

싸움을 멈춘 것이지 아직 싸우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반대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네놈들은 우리가 살려달라고 빈다면 살려주었을까?”

“······.”

“개소리는 저승에 가서 해라. 여기서 하지 말고.”

꽈아아앙!

벽우진의 말이 끝난 순간 호법들이 움직였다.

곤륜파 제자들의 안전이 확보되자 미친 들소처럼 저돌적으로 사존과 북해빙궁도를 도륙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경내에 단말마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궁주님!”

북해빙궁주의 곁으로 파천도존이 피칠갑을 한 채로 다가왔다.

다른 사존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북해빙궁주에게 달려왔던 것이다.

-제가 시간을 버는 동안···!

“늦었다.”

쯔억.

선혈이 낭자한 상태로 그녀에게 다가왔던 파천도존의 목이 서서히 갈라졌다.

벽우진의 수검이 그의 목을 단숨에 가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듯 파천도존의 입술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뿐.

“구, 궁주님.”

“이대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나와 사존은 비록 이곳에서 죽지만 북해빙궁은 영원하니까.”

“그렇다면 나도 말해주지. 오는 족족 죽게 될 것이라고. 사실 난 바로 와주었으면 해. 내가 굳이 찾아갈 필요 없이 말이지.”

으득.

북해빙궁주의 눈동자에 악독한 빛이 서렸다.

동시에 그녀의 기운이 요동쳤다.

혼자 죽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가 폭사공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콰콰콰쾅!

그런데 그보다 먼저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북해빙궁주와 마찬가지로 남은 삼존 역시 폭사공을 펼친 것이었다.

“같이 가자!”

“미안하지만 난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동귀어진 하겠다는 듯이 달려드는 북해빙궁주를 향해 벽우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접근하기 전에 아예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북해빙궁주의 몸이 폭발했다.

그녀 역시 벽우진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고 한 발 먼저 폭사공을 펼친 것이다.

터터터텅!

피로 흥건한 수백 개의 육편들이 벽우진의 호신강기를 때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벽우진의 몸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은 없었다.

“사부님!”

괜히 북해빙궁주가 아니라는 듯이 그녀가 펼친 폭사공의 위력은 삼존이 펼친 것과는 격이 달랐다.

구덩이의 크기만 봐도 폭발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지축이 울리는 어마어마한 폭발에 서예지가 날 듯이 벽우진에게 달려왔다.

“난 괜찮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보고도 모르겠어?”

평소와 달리 걱정이 가득한 서예지의 눈빛에 벽우진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약간 그슬리고 뜯겨진 것을 제외하면 거의 멀쩡하다시피 한 의복의 모습에 서예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강북 무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북해빙궁의 주인이 벽우진의 상대였다.

그렇기에 서예지는 대결 내내 가슴을 졸이며 지켜봤었다.

“사형.”

“걱정은 이 녀석들에게 해줘야 할 것 같은데?”

“허허···.”

벽우진에게 다가온 청민과 서진후가 멋쩍게 웃었다.

진짜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둘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사존들에게 사로잡히는 상황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존에게 붙잡혔다면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터였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가뜩이나 창백했던 청민의 안색이 더욱더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벽우진이 자신을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곤륜파의 미래가 자연스레 예상되었던 것이다.

‘절대 그런 꼴은 볼 수 없지.’

청민의 눈동자에 결연한 빛이 찰나지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사실 그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벽우진에게, 곤륜파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사로잡히게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자고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괜찮으세요, 사숙님?”

“좀 많이 다치긴 했다만, 살아남았으니 된 게지.”

“할아비보다 사형이 먼저인 게냐?”

인자하게 웃는 청민의 모습을 보며 재차 안도하는 손녀의 모습에 서진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함께 지내면서 친해졌다고 하나 그래도 자신은 혈육인데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서였다.

“항렬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할아버지의 손녀이기도 하지만 곤륜의 제자인 걸요?”

“에잉.”

“대신 붕대는 제가 직접 감아드릴게요, 할아버지.”

“허허허허!”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이 서진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손녀에게서 정성스런 간호를 받을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내상이 더 번지기 전에 얼른 들어가, 이 녀석들아. 괜히 상처 더 도지게 하지 말고. 부상당한 호법들이랑 같이.”

“장문인.”

벽우진이 피투성인 채로 파안대소하는 서진후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볼 때 다른 호법들과는 달리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설백이 다가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저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의나 살기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전의가 상당합니다.”

“일단 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설백이 느낀 걸 벽우진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미 진즉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벽우진은 먼 곳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요?”

“손님이 하나 더 있다는 뜻이지?”

“······!”

언제 마음을 놓았냐는 듯이 청민과 서진후의 표정이 일변했다.

다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기에 다시 바짝 긴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벽우진은 그런 두 사람의 등짝을 후려쳤다.

“부상자들은 이만 들어가지? 내가 방금 전에 한 말 잊었어?”

“그래도 저희가 한 손이라도 거들어야···.”

“다친 주제에 말이 많다. 내가 멀쩡한데 너희들이 힘을 보탠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아? 조용히 들어가서 비 호법에게 치료나 받아. 어르신들 모시고서.”

“예.”

강경한 벽우진의 지시에 청민도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괜찮은 척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내상이 심각했기에 청민은 고개를 한 차례 꾸벅이고서 서진후와 몸을 돌렸다.

파바바밧!

그리고 그때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곳에서 새카만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상당수의 인원이 집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장문인!”

“다행히 적은 아닌 것 같군요.”

선두에서 다급히 그를 부르며 달려오는 인영을 육안으로 학인한 벽우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낯익은 얼굴에 긴장을 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설백은 벽우진의 말에도 굳은 안면을 풀지 않았다.

아직은 확실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외팔이에 발목이 없는 무인이라. 몸 상태가 다들 정상이 아닌데?”

< 제 32장. 곤륜혈투(崑崙血鬪). -04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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