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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패선-103화 (103/325)

< 제 32장. 곤륜혈투(崑崙血鬪). -03 >

한순간에 이어진 연계공격에 벽우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거대한 장강에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에 한쪽에 서서 주시하고 있던 사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아무리 패선이라 불리는 벽우진이라도 이번 공격은 견디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으음!”

그리고 그건 멀리서 두 세력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하오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주시하던 설향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침음을 흘렸던 것이다.

“아니겠죠?”

“일단은, 보이지 않는구나.”

“그렇게 가실 분이 아니신데.”

“나도 아니길 빈다만···.”

설향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도 아니길 바라고 있지만 북해빙궁주의 무력이 너무나 막강했다.

초인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북해빙궁주가 보여준 무위는 엄청났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으로 대지를 얼려버리고 나무들을 먼지로 만드는 모습에 설향은 몸이 떨려왔다.

저런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도망친 게 아니라 숨을 고르기 위함이었나.’

설향의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저런 무위를 지닌 북해빙궁주가 도망쳤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어서였다.

오히려 전세의 불리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났다는 쪽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준비는 진즉에 해놓은 상태이니.”

“그래도 서두르는 게···.”

양선의 말이 끊겼다.

산에서 불어온 바람에 수증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해서였다.

그리고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안 끝난 것 같구나.”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는 인영을 보며 설향이 눈을 빛냈다.

어마어마한 폭발의 중심에 있었다고 보기에는 인영의 의복이 너무나 멀쩡해서였다.

“역시 죽지 않았어.”

“이 정도에 죽을 거였으면 진즉에 죽었지.”

“왜 피하지 않았지?”

“피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니, 피할 가치가 없었다고나 할까.”

뒷짐을 진 자세로 벽우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디 하나 그을린 자국 없이 아까 전과 똑같은 상태의 옷에 북해빙궁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피할 가치가 없었다고?”

“어. 피하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 그래도 난 일파의 장문인인데.”

“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답에 북해빙궁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벽우진은 진심이었다.

그는 보는 순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북해빙궁주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말이다.

타앗!

그것을 벽우진은 지금부터 알려줄 생각이었다.

북해빙궁이, 아니 정확하게는 북해빙궁주가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본파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란다, 아가야.”

“그 무슨 망발···!”

북해빙궁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분명 느릿하게 날아오던 벽우진의 신형이 일순 사라져서였다.

육안으로는 물론이고 기감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상태에 북해빙궁주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렇게 두 눈 부릅뜨고 벽우진을 놓칠 줄은 몰라서였다

우우웅!

그때 머리 위에서 묵직한 소성이 들렸다.

신형은 놓쳤지만 공격의 전조만은 확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너무 순진한데.”

“컥!”

고개를 들었던 북해빙궁주의 상반신이 거칠게 흔들렸다.

당연히 위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벽우진이 그녀의 등 뒤에 있어서였다.

그래서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일격을 허용한 북해빙궁주가 신음을 흘리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다급하게 벽우진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반회전시켰던 것이다.

쑤아아앙!

하지만 그런 그녀를 반겨주는 건 벽우진의 주먹이었다.

지금껏 육양수를 펼쳤던 것과 달리 벽우진은 순수하게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정권임에도 북해빙궁주의 머릿속에서는 연신 경종이 울렸다.

권기 하나 서리지 않은 주먹질인데 이상하게 불길했던 것이다.

‘일단은 거리를 벌려야 해.’

북해빙궁주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굳이 벽우진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게다가 지금 유리한 쪽은 그녀였다.

지켜야 할 게 많은 벽우진과 달리 그녀에게는 많은 수하들이 있었다.

쿠르르릉!

이윽고 북해빙궁주의 앞에 두터운 얼음벽이 생성됐다.

빙백신공으로 허공에 빙벽을 만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녀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꽈아아앙!

잠시 후 벽우진의 주먹이 빙벽을 때렸다.

가로막는 건 그냥 때려 부수겠다는 듯이 무식하게 빙벽을 박살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해빙궁주 역시 원하는 만큼의 거리를 벌린 뒤였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끝장내주마.”

북해빙궁주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유가 생기니 당했던 모욕이 떠올라서였다.

감히 북해의 지배자인 자신을 앞에 두고서 피할 가치가 없다는 등의 망발을 지껄인 벽우진의 주둥이를 그녀는 가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벽우진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었다.

‘경험은 내가 더 많아.’

풍기는 기도는 분명 벽우진이 비슷하거나 반 수 정도 위였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더구나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벽우진과 달리 그녀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다.

우우우웅!

달라진 눈빛만큼이나 많은 것이 변했다.

북해빙궁주의 전신에 새하얀 호신강기가 마치 갑옷처럼 덧씌워졌을 뿐만 아니라 허공에 수십, 수백 개의 얼음창들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걸 북해빙궁주는 생성 즉시 벽우진을 향해 날렸다.

호신강기조차도 종잇장처럼 꿰뚫어버리는 얼음창 수백 개를 벽우진을 향해 일제히 쏘아보냈던 것이다.

콰우우우!

허공을 가득 채우는 수백 개의 얼음창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지켜보던 북해빙궁도들이 침을 삼켰다.

저 얼음창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들이 가장 잘 알아서였다.

더불어 벽우진의 오만함도 여기서 끝맺을 거라 자신했다.

“호오.”

한편 빙벽을 부순 벽우진은 허공을 빼곡히 채운 얼음창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보통이 아닐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해올 줄은 몰라서였다.

게다가 북해빙궁주의 노림수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호신강기를 마치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모습에 벽우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어라.”

“그 무슨 섭섭한 말을. 나는 최소한 오십 년은 더 살다가 죽을 거다.”

무감정한 북해빙궁주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벽우진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의 손에서 솟구친 푸른빛 강기는 모양이 조금 특이했다.

일반적인 수강과는 달리 마치 검처럼 올곧게 솟구쳐 있었던 것이다.

그걸 벽우진은 얼음창을 향해 휘둘렀다.

퍼퍼퍼펑!

단순하기 그지없는 횡베기에 무서운 기세로 벽우진에게 쏟아지던 얼음창들이 터져 나갔다.

검강이 뿌려진 것도 아니고 참격도 아닌 단순한 횡베기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지던 얼음창들이 일제히 터졌던 것이다.

그 모습에 북해빙궁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흥!”

하지만 놀람은 잠시뿐이었다.

이내 해보자는 표정으로 북해빙궁주는 빙백신공의 진기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정말 오랜만에 전심전력을 다해 빙백신공을 운용했던 것이다.

츠츠츠츠!

그 기세에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이 얼어붙었다.

마치 북해를 이곳으로 소환한 듯이 북풍한설이 불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에 수백 개의 얼음창들이 다시 허공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아이로고.”

모든 이가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질린 표정을 지을 때 벽우진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는 북해빙궁주가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벽우진은 친히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째서 자신이 곤륜의 주인인지를 말이다.

‘하늘의 실수로 내가 존재함을 알려주마.’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 순간 그의 신형이 다시 움직였다.

극성에 이른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을 선보이며 허공을 유려하게 뛰어다녔던 것이다.

물론 이동하면서 수검(手劍)을 휘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콰콰콰쾅!

벽우진에게 닿기도 전에 수검에서 뿌려진 검격에 얼음창들이 박살났다.

그리고 또 다시 수백 개의 얼음창이 생성되었다.

두 사람은 마치 내공의 화수분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공격하고 끊임없이 박살냈다.

그러다가 이내 마주쳤다.

“차합!”

벽우진이 다가온 순간 북해빙궁주의 양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원거리 공격도 강력하지만 그녀는 근접전에도 강했다.

지금과 같은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근접박투로 상대를 아작 냈던 게 바로 그녀였다.

쌔애애액!

극한의 냉기를 머금은 북해빙궁주의 양손이 벽우진의 머리와 단전을 노렸다.

오로지 죽이겠다는 의지로 지독한 살초를 뿌린 것이었다.

터엉! 텅!

그러나 두 곳 중 한 곳도 제대로 적중된 곳은 없었다.

벽우진의 수검이 북해빙궁주의 양손을 튕겨냈던 것이다.

게다가 벽우진의 대응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오른손으로 만든 수검으로는 북해빙궁주의 빙백신장을 튕겨내고 왼손으로는 일권을 꽂아 넣었다.

쿠아아앙!

진기를 가득 머금은, 내강(內罡)의 묘리가 담긴 일권이 정확히 북해빙궁주의 복부를 타격했다.

그뿐만 아니라 벽우진의 양다리가 연거푸 크게 반회전을 그리며 북해빙궁주의 전신을 두들겼다.

“크흑!”

호신강기를 일으킨 상태인데도 저릿저릿하게 파고드는 충격에 북해빙궁주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영악하게도 벽우진은 단순히 힘만으로 때리는 게 아니라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으로 공격했기에 내부가 크게 진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해빙궁주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맞불을 놓았던 것이다.

콰앙! 콰쾅! 꽝!

벽우진의 수검과 북해빙궁주의 장강이 허공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짓뭉갰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맹렬히 몰아붙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주위는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했다.

무지막지한 경력이 휘몰아치는 탓에 땅거죽이 쉴 새 없이 뒤집어졌던 것이다.

“죽어!”

일순 허공에 거대한 장인이 떠올랐다.

극성의 빙백신공으로 펼친 빙백신장이었다.

집채만 한 크기의 장인 두 대가 벽우진을 압착하듯이 양쪽에서 쇄도했다.

“흡!”

흘러나오는 냉기만으로도 온몸을 꽁꽁 얼려버릴 것 같은 장인에 벽우진이 양손을 뻗었다.

똑같이 장강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벽우진은 말했던 대로 정면승부를 걸었다.

꽈아앙!

이윽고 빙백신장과 상청인(上淸印)이 격돌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무승부였다.

굉음과 함께 네 개의 장인이 허공에서 소멸했던 것이다.

타핫!

그런데 그 순간 북해빙궁주가 달려들었다.

마치 벽우진을 껴안으려는 듯이 두 팔을 벌리고서 전광석화처럼 접근했다.

창졸간의 무방비 상태를 노리고서 쇄도한 것이다.

‘단숨에 얼려버린다!’

북해빙궁주의 의도는 명백했다.

비교적 평범한 육체를 지닌 벽우진과 접근해 그대로 꽁꽁 얼려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닿기 직전 한 줄기 섬광이 그녀를 꿰뚫었다.

퍼석.

뒤이어 미약한 소성이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 터져 나왔던 굉음과 비교하면 너무나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큭!”

달려들던 북해빙궁주가 복부를 움켜잡으며 주저앉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벽우진을 올려다봤다.

지금의 일격은 북해빙궁주가 생각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공격이어서였다.

“애초부터 결과는 나와 있었다.”

“공격해라!”

흔들리는 북해빙궁주의 시선을 마주하며 벽우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파천도존의 고성이 경내를 갈랐다.

북해빙궁주의 단전이 박살난 순간 그가 공격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파파팟!

그러자 뒤로 물러나 있던 북해빙궁의 빙령전대와 북풍전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렸다.

자신들의 목숨은 도외시한 듯이 곤륜파의 제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존들 역시 몸을 날렸는데 방향이 북해빙궁도들과는 달랐다.

네 명이 전부 청민과 서진후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던 것이다.

< 제 32장. 곤륜혈투(崑崙血鬪).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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