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102화 (102/325)

< 제 32장. 곤륜혈투(崑崙血鬪). -02 >

스윽.

파천도존의 시선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벽우진과 곤륜파의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저 아이들이었기에 그는 그 부분을 철저하게 공략할 생각이었다.

‘오늘 밤 곤륜파는 사라진다.’

비록 강북 무림과의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그렇다고 파천도존은 그냥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곤륜파 정도는 본보기로 확실하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신들과 대적하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가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파천도존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이윽고 그의 손짓에 북해빙궁의 모든 병력들이 일제히 뛰쳐나갔다.

“어디를 감히!”

“흥!”

하나하나가 일당백의 무력을 갖춘 강력한 무인들이었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호법들은 결코 긴장한 법이 없었다.

숫자는 많지만 그렇다고 상대하지 못할 전력은 아니었다.

콰아앙!

거기다 지금 곤륜파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숫자는 적지만 그래도 전선의 한 축은 충분히 맡을 수 있는 사천당가의 기술자들도 있었다.

퍼퍼퍼펑!

사천당가가 자랑하는 각종 암기들이 비산하며 북해빙궁 무인들을 쓸어버렸다.

그러자 파천도존을 위시로 사존들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다들 몸을 날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향하는 곳은 호법들이나 벽우진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괜히 쥐새끼가 아니라니까.”

“적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 역시 전략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제자들을 향해 달려드는 사존들의 모습에 벽우진의 눈빛에 노기가 서렸다.

어째서 아이들을 노리는 것인지 그는 모를 수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그건 다른 호법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악하게 아이들을 노리는 모습에 다들 분노했던 것이다.

쑤아아앙!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벽우진이 가로 막고 있는 한 아이들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칫!”

“큽!”

벽우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지막지한 경력에 사존들이 일제히 주춤거렸다.

보고도 믿겨지지 않은 위력에 좀처럼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무력을···!’

단순한 손짓만으로 자신들을 밀어내는 모습에 파천도존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강할 것이라고 예상을 못한 건 아니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 혼자도 아니고 비슷한 무위를 지닌 넷을 동시에 밀어내는 광경에 파천도존은 물론이고 다른 사존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하제일인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소림무제도, 화산검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툭. 투욱.

벽우진의 일격에 속절없이 밀려난 사존의 앞으로 네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달려들던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죄다 쓸어버리고 호법들 중 네 명이 벽우진과 사존의 사이에 내려섰던 것이다.

“이놈들은 우리가 맡겠소이다.”

“장문인께서 손을 쓰기에는 격에 맞지 않습니다.”

벽우진의 앞에 내려선 이는 진구와 설백, 그리고 허륭과 파풍이었다.

호법들 중에서 가장 강한 네 명이 서둘러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대놓고 아이들을 노려서인지 하나같이 눈동자에 노기가 짙게 서려 있었다.

“그래주신다면야.”

콰앙! 콰콰콰쾅!

느긋한 이곳과 달리 다른 곳은 피 튀기는 격전이 한창이었다.

네 명의 호법이야 막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기에 가로 막는 북해빙궁 무인들을 쓸어버리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북해빙궁 역시 악착같이 달려들고 있었기에 다들 자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 중 제일 어렵게 싸움을 이어나가는 이는 청민과 서진후였다.

아무래도 가장 무력이 떨어지다 보니 전선의 한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은 악착같이 버티면서 싸웠다.

저벅저벅.

그 모습을 잠시 살펴본 벽우진이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가마 안에 있는 북해빙궁주를 향해 느릿하게 걸어갔던 것이다.

끼이익.

그리고 그 순간 화려한 사인교(四人轎)의 문이 열리며 북해의 새하얀 눈을 연상케 하는 피부를 가진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보면 소녀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중년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이상하게도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외모의 여인이 가마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더니 대뜸 손을 들어 올렸다.

스스슥!

말도 없는 단순한 수신호였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놀라웠다.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저돌적으로 달려들던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흠.”

그 모습에 모두가 놀랄 때 여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전투가 시작된 지 일 각(약 15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백여 명이 훌쩍 넘는 사상자가 나와서였다.

그것도 자신의 수하들만 죽어나간 모습에 여인이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구, 궁주님.”

“넷 다 물러나라.”

“존명.”

여인의 지시에 파천도존을 위시로 사존이 군말 없이 물러났다.

아무리 사존이라도 북해빙궁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으음.”

모든 수하들을 뒤로 물린 여인의 시선이 이제야 벽우진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벽우진을 마주본 여인의 동공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이제야 나왔군.”

벽우진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향했다.

북해빙궁주가 벽우진을 살펴보는 것처럼 벽우진 역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안 그래도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마치 다 이긴 것처럼 말하는구나.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는데.”

“끝나지 않았지. 내가 끝을 내지 않았으니까.”

벽우진의 말에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던 사존들에게서 살기가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오만해도 그렇게 오만할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정작 벽우진은 그런 사존들의 살기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자신만만한데.”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는 말이 있지.”

사존들이 움찔거렸다.

북해빙궁주의 말이 심상치가 않아서였다.

동시에 넷 다 모두 눈동자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들의 주군은 소림무제와 제왕검의 협공도 견뎌냈던 절대고수였다.

한데 그런 북해빙궁주가 벽우진을 더없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존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그럴 리 없다. 궁주님은 천하제일이시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동시에 전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파천도존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눈빛으로 벽우진의 뒤쪽을 힐끔거렸다.

만약이기는 하지만 최악의 결과가 나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차선책도 생각해두어야 하고.’

파천도존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아닌 두 명을 차례대로 쳐다봤던 것이다.

“굳이 대 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해주지.”

벽우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절정에 달한 이형환위가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북해빙궁주도 만만치 않았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벽우진의 움직임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쩌어어엉!

정확히 목을 노리고서 쇄도하는 벽우진의 손날을 북해빙궁주는 정면으로 막아냈다.

그녀 역시 손날을 이용해서 공격을 튕겨냈던 것이다.

그런데 분명 피륙으로 이루어진 손이 부딪쳤는데 소리는 마치 쇳덩어리끼리 충돌한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츠츠츠츠!

그뿐만 아니라 북해빙궁주를 중심으로 대지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진기를 끌어 올리자 그녀의 육신에서 무시무시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한순간에 북해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그 압도적인 냉기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설백조차도 얼굴을 찌푸릴 정도였다.

‘확실히 거슬려.’

대지는 물론이고 공기마저 얼려버리는 지독한 냉기에 벽우진이 미간을 좁혔다.

파산존과 무음살존과는 확실히 격이 다른 무위를 보여주고 있어서였다.

특히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벽우진도 경시할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지 중 하나가 얼어붙어 박살날 수도 있었기에 벽우진 역시 상청무상신공(上淸無上神功)의 진기를 끌어 올렸다.

우우웅!

이윽고 벽우진의 낡은 도복에 푸른빛의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상청무상신공의 기운이 북해빙궁주의 냉기를 차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흥.”

하지만 그 모습에도 북해빙궁주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가 가진 냉기는 단순히 공력을 일으킨다고 해서 차단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의 무기는 절대 냉기만이 아니었다.

쩌저저적!

북해빙궁주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얼음 결정들이 생성되었다.

손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허공 중의 수분들이 얼어붙어 날카로운 형태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것을 북해빙궁주는 벽우진을 향해 날렸다.

“흠!”

마치 암기처럼 날아오는 얼음 결정에 벽우진이 눈을 빛냈다.

단순히 냉기로 얼린 게 아님을 그는 단박에 파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벽우진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면으로 달려들어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치이이익!

상청무상신공의 진기로 펼쳐진 육양수(六陽手)가 벌떼처럼 날아들던 날카로운 얼음 결정들을 한순간에 녹여버렸다.

극양지력을 담고 있었기에 제아무리 빙백신공으로 만들어진 얼음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쑤아아앙!

얼음 결정이 증발하며 수증기가 되기 무섭게 허공에 새하얗고 거대한 장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해빙궁주가 이번에는 장강을 일으켰던 것이다.

꽈아앙!

일시에 주변을 가득 채우는 수증기를 밀어내며 덮치듯이 쇄도해오는 빙백신장이었지만 벽우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벽우진 정도쯤 되면 굳이 육안에 연연하지 않아서였다.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육양수가 펼쳐진 오른손을 정면으로 내질렀다.

이번 역시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쩌저저적!

그로 인해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찢겨졌다.

두 사람의 충돌에 땅바닥이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꽈앙! 꽝!

빙백신장과 육양수가 부딪칠수록 굉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수증기 역시 계속해서 증가했다.

극양지력과 극음지력이 충돌하니 수증기가 끊임없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수증기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살수를 뿌렸다.

‘으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난타전에 북해빙궁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빙백신공을 전력으로 펼쳤음에도 이렇게나 영향을 받지 않는 무인은 처음이어서였다.

천하제일인에 제일 근접해 있다는 소림무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그녀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온 거지?’

빙화파산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나름 저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삼제오왕칠성에 비견되는 고수가 십존이긴 했지만 빙화파산존은 그 중에서 하위에 속해 있는 고수였다.

그런 만큼 한때 구파일방에 꼽혔던 곤륜파에 빙화파산존을 쓰러뜨릴 수 있는 고수가 있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한데 그 생각은 무음살존의 소식이 끊어진 후 바뀌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북해 최고의 신공이라는 빙백신공으로 펼치는 빙백신장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고, 아니 튕겨내는 벽우진의 모습에 감정변화가 거의 없는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상하게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생각을 털어냈다.

지금은 승부에 집중할 때였다.

‘늘 그랬듯이 쓰러뜨리면 된다.’

소림무제와 제왕검의 협공도 받아냈던 자신이었다.

그런 만큼 패선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후우우웅!

달라진 마음가짐을 보여주듯 북해빙궁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더욱 지독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거대한 장강이 두 개로 늘어나며 벽우진을 짓뭉갤 듯이 떨어져 내렸다.

하나로는 육양수를 밀어내고 다른 하나로 벽우진의 머리를 노렸던 것이다.

쿠아아앙!

< 제 32장. 곤륜혈투(崑崙血鬪).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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