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80화 (80/325)

< 제 25장. 곤륜파의 사람들. -01 >

“저 역시 믿기지가 않습니다. 빙화파산존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무음살존은 암습이 특기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자세한 내용은 없느냐?”

“예.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따로 알아보는 중이기는 하겠으나 다른 곳도 아니고 청해성의 일인 만큼 정확하게 알아내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 사료됩니다.”

“정보 조직을 확대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 언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

여인의 뇌리에 하나의 문파가 떠올랐다.

개방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있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그곳의 주인이었다.

때문에 여인은 입맛을 다셨다.

“지금은 그리 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남궁세가가 먼저입니다. 이제 안휘성만 남은 상태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더 생겼습니다만.”

“청해성의 일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으냐?”

여인은 우선 파천도존의 생각을 물었다.

무조건 그의 의견에 따를 마음은 없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궁금했다.

“할 수만 있다면 원래 계획했던 대로 깔끔하게 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음살존의 죽음으로 확실히 변수가 될 만한 존재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건 혹시나 이번에도 과소평가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고 있습니다.”

“둘로도 부족할 것 같다?”

“예. 이미 두 명이 당하기도 했고, 둘만으로 확실하게 처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흠.”

여인이 다시 한 번 차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찬찬히 이번에 청해성으로 보낸 전력을 떠올렸다.

폐기처분 목적으로 보낸 탈백강시들을 말이다.

“곤륜패선은 분명 고수다. 약한 자에게 당할 둘이 절대 아니니. 그러나 곤륜파로 가고 있는 둘 역시 고수이니라.”

“만약에, 정말 만약이지만 둘마저 당한다면 피해가 막심합니다, 궁주님.”

“이번에도 막아낸다면, 그때는 우리도 전력을 다해야겠지. 소림사와 같은 급으로 생각하고 말이야.”

결과적으로 숭산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북해빙궁이 입은 피해 역시 적지 않았다.

탈백강시는 갈아 넣다시피 폭사시켜서 사용했고 빙혼강시 역시 반 이상이 파괴당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는 구존 중 절반이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는 점이었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요양해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기에 현재 북해빙궁의 전력은 썩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저도 궁주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다른 이들은 과하다고 할지 모르나, 자꾸 변수를 일으키는 점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궁세가가 먼저야. 변방은 나중에 신경 써도 돼. 비록 둘을 잃더라도 말이지.”

“알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그녀의 말에 파천도존 역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 후였다.

그러니 이제는 결과를 기다려야만 했다.

“오독문 쪽에서 따로 온 연락은 없나?”

“소림사와의 합류로 인해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은 별 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패잔병들에 신경 쓸 정도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지.”

“그렇습니다.”

그녀가 덤덤히 말했다.

소림무제가 살아있다고 하나 상당한 기간을 요양해야 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전력도 반 이상이 날아간 상태였고.

그러니 오독문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터였다.

“몰이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좋아.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마무리 짓자고.”

“예.”

파천도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홀로 남은 여인은 조용히 벽에 걸린 중원전도를 응시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은 호북성이 아닌 안휘성의 합비로 향해 있었다.

양일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대련과 비무는 많이 해봤지만 실전은 처음이었기에 잔뜩 긴장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 손으로 지켜야 해. 사문을, 우리의 집을, 우리의 터전을!’

양일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평범한 무인도 아니고 강시를 상대해야 했지만, 그것도 악명이 자자한 탈백강시를 막아야 했지만 양일우는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그는 어떻게든 자리를 지킬 생각이었다.

‘내가 지켜야 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긴장으로 인해 손은 떨렸지만 두 눈동자만큼은 굳건했다.

적어도 각오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긴장할 것 없다. 준비한 대로만 하면 돼.”

“예, 장로님.”

“너희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지도 않고. 그저 너희들이 맡은 것만 해주면 된단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민의 말에 아이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적어도 각자 1인분 이상은 하겠다는 의지가 굳게 서려 있었다.

“저희들이 꼭 막아낼 거예요.”

“우리 집이니까요.”

“절대 넘어가지 못하게 할게요!”

심대현에 이어 심소천과 심소혜가 다부진 얼굴로 검을 쥐고서 대답하는 모습에 청민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누구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고 말이다.

‘시작은 북해빙궁이 먼저 했으나 끝은 우리가 낼 것이야.’

청민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북해빙궁이 중원을 노렸을 때부터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다만 시기의 문제였을 뿐.

그렇기에 청민은 북해빙궁이 공격해 온다고 해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는구려.”

“어후, 더럽다. 아주 그냥 새까맣게 몰려오네.”

“소림사에서 펼쳐진 광경이 저거랑 똑같지 않겠소?”

호전적인 성격의 진구마저도 고개를 내저었다.

숲을 까맣게 물들일 정도로 탈백강시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그렇겠지요.”

“독도 바짝 올라 있고. 아마도 장문인이 구존을 팔존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굳이 무음살존이 아니더라도 독은 바짝 올라 있었을 겁니다. 빙화파산존 하나냐, 무음살존까지 둘이냐는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라.”

벽우진이 뒷짐을 진 채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나든 둘이든 그가 보기에는 딱히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물량공세로 시작할 모양입니다.”

“그게 제일 깔끔하니까요. 이미 훌륭한 전술임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고요.”

설백조차도 이렇게 많은 강시를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호법들은 시큼하면서도 불쾌한 시취를 참기 힘든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저게 폭발을 한단 말이지요?”

“예. 벽력탄처럼 몸을 터트려서 공격하기도 한답니다. 폭발력도 상당하고요. 벽력탄만큼은 아니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습니다.”

설백의 시선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그나 다른 호법들, 그리고 청민은 괜찮겠지만 아이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력이야 충분하다지만 아직 그 진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이는 서예지 정도였기에 난전이 벌어지면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들은 제가 지킬 것입니다, 대호법님.”

“그렇다면 안심이로군.”

“물론 사형께서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테고요.”

“잘 알지. 자기 사람은 확실하게 챙기시는 분이 아닌가. 다만 선 밖에 있는 이들에게 한 없이 가차 없어서 그렇지.”

대답할 말이 궁색해진 청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아이들도 그와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점이었다.

“필교야.”

“예, 장문인.”

일렬로 쭉 서 있는 호법들과 달리 한쪽에 숨어 있듯이 서 있던 당필교가 벽우진의 부름에 곧장 대답했다.

그런데 당가 사람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른 기술자들 역시 당필교의 지휘 아래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손님들이 힘들게 올라오시는데 반갑게 맞이해 줘야하지 않겠어?”

“그게 인지상정이지요.”

“시작해.”

“예!”

벽우진의 지시에 당필교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지친 기색 없이 곤륜산을 오르던 탈백강시들의 앞으로 수십 개의 두꺼운 통나무들이 비탈길을 타고 빠른 속도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북해빙궁의 본대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벽우진이 제자들과 사천당가의 기술자들과 함께 밤새 준비한 일격이었다.

쿠르르릉!

최소 수십 년을 묵은 두터운 통나무들이 일제히 굉음을 일으키며 굴러 내려와 탈백강시들을 밀어버렸다.

단순하지만 굉장한 위력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투불능이 된 탈백강시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튕겨져 나가거나 깔리긴 했어도 금세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제법 단단한데.”

피범벅이 되고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였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오르막길을 뛰어 오르는 탈백강시들의 모습에 벽우진이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그는 먼 곳을 바라봤다.

파도처럼 달려드는 탈백강시들의 뒤쪽에 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 있어서였다.

그 중 넷은 제법 강한 축에 들어가는 무인들이었다.

“호오.”

스윽.

벽우진과 가장 강한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런데 세 사람의 눈빛은 많이 달랐다.

흥미로워하는 벽우진과 달리 둘의 눈빛에는 놀람과 옅은 긴장감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벽우진의 시선은 이내 둘의 뒤쪽으로 향했다.

찌릿찌릿.

한눈에 알아본 두 사람과 달리 그들의 뒤에 서 있는 둘은 처음 보는 이들이었는데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둘에게서 흘러나오는 눈빛은 상당히 도전적이었다.

벽우진을 죽이겠다는 듯이 살기를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살기 가득한 눈빛에는 탐욕과 야망도 한가득 담겨 있었다.

“내 목이 탐나는 모양이로고.”

자신의 모가지를 따내겠다는 의지가 완연한 시선에 벽우진이 피식 웃었다.

저런 도전정신이야말로 벽우진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목을 내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차륜전이나 펼치려는 녀석들에게는 더욱더 줄 수 없지.”

적들을 쭉 둘러본 벽우진이 뒷짐을 지고 있던 오른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팔을 늘어뜨린 후 검결지를 짚었다.

검지와 중지만 활짝 펼쳐서 붙였던 것이다.

한데 그 모습에 머리카락이고 얼굴이고 온통 새하얀 빛깔인 중년인이 일갈했다.

“죽여라!”

별 거 아닌 행동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자 후방에 있던 술법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그 외침에 탈백강시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수적 압박과 위압감을 주려는 듯 천천히 비탈길을 올랐던 탈백강시들이 일제히 뜀박질을 시작했던 것이다.

스윽.

하지만 탈백강시들의 전력질주보다 벽우진의 행동이 더 빨랐다.

가슴께 정도로 든 팔을 그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볍게 그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벌어진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쩌어억!

오른손 검결지에서 피어난 푸른빛이 허공에 한 줄기 선을 긋자 전력으로 곤륜산을 오르던 탈백강시들이 일제히 고꾸라졌다.

탈백강시들이 썩은 짚단처럼 썰려나갔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잘려나간 부위에서 피가 솟구쳤다.

“미, 미친!”

“으음!”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사파인들이 경호성을 터트렸다.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괴성을 질러댄 것이다.

“뭐해? 안 오고.”

< 제 25장. 곤륜파의 사람들. -01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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