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장. 꺼져, 이 새끼들아. -03 >
우당탕탕!
짧은 한 마디와 함께 빙혼강시 한 구가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진구의 주먹질 한 방에 속가제자들을 절망에 빠뜨렸던 빙혼강시가 허무하리만치 무기력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던 것이다.
그 광경에 속가제자들은 물론이고 북해빙궁의 무인들 역시 순간 입을 쩌억 벌렸다.
지금까지 막강한 위력을 선보였던 빙혼강시가 이렇게 무력하게 날아갈 줄은 몰라서였다.
“그래 봤자 강시죠.”
우드드득!
냅다 주먹부터 때려 박은 진구와 달리 벽우진은 달려오던 빙혼강시의 다리를 걸어 그대로 자빠뜨렸다.
그리고는 손을 쓸 가치도 없다는 듯이 발바닥으로 빙혼강시의 발목을 지르밟았다.
터어엉!
물론 빙혼강시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벽우진이 발목을 밟기 위해 다리를 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반대발로 발차기를 날렸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약물로 인해 강철보다 더 단단하게 여문 빙혼강시의 발등으로도 벽우진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강력한 공격이기는 했으나 누운 자세에서 펼친 발차기였기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고, 육체의 강도는 벽우진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기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육신의 힘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빙혼강시와 달리 벽우진은 내외공이 조화를 이룬 상태였기에 피해를 더더욱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저, 저런!”
한편 별 거 아닌 발길질 한 번에 빙혼강시의 발목이 아작 나자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강기가 아니면 생채기가 전부일 정도로 단단하기 짝이 없는 빙혼강시의 육신을 벽우진이 너무나 쉽게 파괴해서였다.
하지만 벽우진은 정작 그런 반응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콰드득!
그러나 아직 놀라긴 일렀다.
재차 달려드는 빙혼강시를 진구는 양손으로 두 팔을 잡고 그대로 뜯어냈기 때문이다.
지금껏 빙혼강시가 무인들을 살육했던 방법이랑 똑같이 말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무인들이 비명을 내질렀던 것과 달리 빙혼강시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어, 어!”
그 광경에 공동파의 속가제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빙혼강시가 동료들을 도륙하던 그 마물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신에서 안개처럼 흘러나오는 냉기와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백발은 지금껏 보아온 빙혼강시가 분명했다.
“이런 것들에게 당했다니. 공동파도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외다.”
“여기에는 두 구 밖에 없지 않습니까. 공동산에서는 백 구 정도 있었다고 하니 지금보다는 위력이 좀 더 강했겠지요. 그리고 저나 진 호법에게나 손쉬운 상대지 일반 무인들에게는 살귀와 다름없었을 겁니다.”
“흐음.”
진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소문과 달리 너무나 약해빠진 것 같아서였다.
손맛은 있지만 긴박감이 없다고나 할까.
무인이라기보다는 힘만 세고 단단한 인형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흐흐흐.”
이어지는 벽우진의 말에 진구가 히죽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북해빙궁뿐만 아니라 공동파의 속가제자들에게도 섬뜩하게 다가왔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 진구에게서 흘러나와서였다.
“참고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난 이를 드러낸 새끼들을 얌전히 돌려보낸 적이 없거든.”
“다 때려잡지 않았소.”
“때려잡았다기보다는 인생의 참맛? 쓴맛을 가르쳐 주었죠. 인생은 실전이니까요.”
“자, 잠깐만!”
아까 전의 자신만만하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조장이 다급하게 손을 들며 소리쳤다.
설마 하니 빙혼강시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제압당할 줄은 몰랐기에 깜짝 놀란 것이었다.
물론 아직은 거동이 가능한 상태이지만 두 사람의 여유 있는 태도로 보건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빙혼강시는 한낱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조장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 여전히 반말을 지껄이네?”
쩌어억!
나머지 발목도 으그러뜨린 벽우진이 피식 웃으며 빙혼강시의 머리를 터트렸다.
강시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대부분 머리가 핵심이라는 걸 알기에 망설이지 않고 짓밟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예상이 맞았는지 빙혼강시는 꿈틀거리지도 못한 채 사지를 널브러뜨렸다.
“잠시만, 잠시만 멈추시지요.”
“이제 좀 대화를 할 마음이 생기는군.”
꿀꺽!
단숨에 주도권을 휘어잡는 벽우진의 모습에 우측에 자리 잡고 있던 백상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말도 안 되는 무위도 무위지만 분위기 자체가 범상치가 않아서였다.
동시에 그의 뇌리에 한 명이 떠올랐다.
지금의 곤륜파를 만든 인물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던 것이다.
‘혹시?’
‘맞는 것 같습니다.’
종혁진도 똑같은 추측을 했는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눈을 크게 뜨며 벽우진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곤륜파의 장문인이십니까?”
“내가 굳이 대답해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는데.”
“으음!”
시작부터 삐딱하게 대답하는 벽우진의 모습에 조장이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누가 갑인지는 명백했다.
아무리 그들이 북해빙궁의 강인한 전사들이라고 하나 열 명으로 상대할 수 있는 빙혼강시의 숫자는 한 구뿐이었다.
그나마도 절정에 오른 그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지 다른 조원들은 한 구도 상대할 수 없었기에 조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묻는 건 내가 해야지. 네놈이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맞소이다. 어디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버르장머리 없이.”
“저에게 하는 소리 같습니다만?”
“커험! 그럴 리가 있겠소?”
진구가 헛기침을 하며 먼 산을 바라봤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벽우진은 알았다.
방금 전 말에 자신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돌아와서, 왜 우리를 노렸지?”
“···공동파의 잔존 세력을 쫓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말 돌리지 마. 너희 꿍꿍이속이 있어서 여기에 온 거 아냐.”
“아닙니다.”
조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표정을 황급히 가다듬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된 것은 그뿐이었다.
부하들은 하나같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뒤에 있는 놈들은 아니라는데?”
“헉!”
“뭐, 묻지 않아도 예상이 가기는 하지만. 상부에서 한 번 찔러보라고 시켰겠지? 감숙성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옆에 적이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으니까. 차라리 멸문해서 제자 한 명만 달랑 남아 있는 상태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어라? 다시 재건 중이라고 하네? 그럼 당연히 확인해보고 싶어지지 않겠어? 전력은 어떤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지 등등이.”
조장이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동시에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왔다.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내는 통찰력에 식겁한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쓸어버리라고 지시했겠지. 변수가 될지 모르는 것은 아예 싹을 밟아버리는 게 가장 확실하니까.”
부르르!
이어지는 벽우진의 말에 조장의 몸이 떨렸다.
직속상관이 지시했던 말과 너무나 판박이여서였다.
“근데 그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오?”
“뭐, 그렇긴 하죠. 저라도 그렇게 지시를 내렸을 테니까.”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짓는 게 어떻겠소이까.”
팡팡!
진구가 양 주먹을 가슴 앞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런데 그 작은 소리에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움찔거렸다.
저 주먹질 한 방에 그 단단한 빙혼강시가 속절없이 날아간 걸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살려둬야 합니다. 내 경고를 전달해야 하니까.”
“그럼 그 한 명은 내가 택해도 되겠구려.”
진구가 땅을 박찼다.
한 명이라면 나머지 아홉 명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즐거운 기색의 진구와 달리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식겁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날렸다.
한데 진구에게 달려드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암만 봐도 은거생활보다는 속세가 더 어울리는데 말이지.”
“이놈들!”
도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호전적인 성향의 진구를 보며 벽우진이 혀를 찼다.
아무리 봐도 도사 체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윽.
북해빙궁에게서 시선을 뗀 벽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끝에는 백상수를 비롯한 공동파의 속가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도움에 감사···.”
“도와준 거 아니다. 잡것들을 쫓아낸 것뿐이지. 착각하지 마라.”
“···예에.”
북해빙궁 무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백상수도 단박에 현재 처지를 파악했다.
아니, 모르면 그게 이상할 터였다.
명분뿐만 아니라 힘까지도 직접 보여주었으니까.
그렇기에 누구 하나 벽우진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뭐해? 안 가고.”
“예?”
“아까 내가 했던 말 잊었어?”
벽우진이 대놓고 인상을 썼다.
그 모습에 백상수가 다급히 앞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하지만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날카로운 기세가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던 것이다.
“자, 장문인. 잠시만, 잠시만 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싫어.”
“부상자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상을 치료할 때까지 만이라도 잠시 머물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을 가서 의원 찾아. 우리는 몰락한 문파라서 의원이 없어.”
단호하게 거절하는 벽우진의 모습에 백상수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곤륜파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추적조와 빙혼강시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안전이 확보된 것은 아니었다.
감숙성과는 거리가 제법 있지만 북해빙궁의 추적조가 여기까지 따라 온 만큼 후발대가 없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상수는 간절한 눈빛으로 벽우진을 바라봤다.
털썩!
“제발,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 싫어. 무릎 꿇어도 소용없고. 이제 와서 그러는 게 더 역겹다는 거 알고 있지?”
“무슨 말을 그리 하오? 그냥 다리만 움직일 수 있게 쥐어 패서 내려 보내면 되는 것을.”
벌써 다 처리했는지 진구가 양손으로 도복을 털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러자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속가제자들이 식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렇게 좋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감지덕지해야 해. 곤륜파에 저지른 것을 생각하면.”
“···이 은혜는 언젠가 갚겠습니다.”
“사, 사형!”
“가자.”
번복의 여지가 전혀 없는 벽우진의 말에 몸을 일으킨 백상수가 정중히 포권을 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큰 도움을 이미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벽우진과 진구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와 사제들은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일단 마을에 서둘러 가자. 다들 상처가 깊으니.”
“아니, 어떻게든···!”
종혁진이 재차 입을 열었지만 백상수는 단호히 그의 팔을 이끌었다.
만약 여기서 더 매달렸다가는 두 팔을 쓰지 못한 채로 곤륜산을 내려가야 할 수도 있어서였다.
그리고 곤륜파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억지를 부리는 쪽은 자신들이었으니까.
“쯧쯧! 진짜 염치없는 것들이 아니오. 곤륜파를 내버려둘 때는 언제고.”
“죽음이 코앞에 닥치면 무슨 짓이든 하는 게 인간 아닙니까. 근데 한 명은 확실하게 살려 보낸 겁니까?”
“두 다리와 입만 놀리면 되는 거 아니오?”
“······.”
진구의 대답에 벽우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딱 저 정도의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일단 움직일 수는 있으니 알아서 잘 갈 것이외다. 가다가 죽으면 제 운명이 거기까지인 거고.”
“진 호법이 도공을 익혀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공을 익혔다면 아마 희대의 대마두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크흠!”
진구가 몸을 돌렸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 제 16장. 꺼져, 이 새끼들아.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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