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29화 (29/325)

< 제 10장. 초단기육성계획. -03 >

‘지금이로군.’

벽우진이 눈을 빛냈다.

비술을 준비하면서 비현이 신신당부했던 순간이 바로 지금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 벽우진은 득달같이 달려 나가 청민의 명문혈에 양손을 포갰다.

‘흡!’

두 손을 포개서 명문혈에 댄 순간 벽우진이 내심 놀라며 침음을 흘렸다.

초반과는 달리 지금 터져 나오는 기운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했던 무시가 무안해질 정도로 폭발적인 기운이었기에 벽우진이 황급히 정신을 집중하며 청민을 도왔다.

가까스로 태청진기를 운용하는 청민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스르르륵.

벽우진은 상청무상신공을 주로 익혔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청신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청민에게 완전한 태청신공을 가르쳐준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벽우진은 능숙하게 태청신공의 구결대로 청민과 함께 영단의 약력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제 마음대로 날뛰려고 하는 영단의 약력을 조금씩 집어삼키며 소화시켰던 것이다.

우득. 우드드득.

그리고 그럴수록 청민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체내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동시에 청민의 얼굴 역시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몸속에서 뼈가 뒤틀리니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어서였다.

-신음소리 내지 마! 정신 바짝 차리고 견뎌!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소리와 함께 몸을 격렬히 떠는 청민에게 벽우진이 전음으로 호통을 쳤다.

웬만한 목소리로는 고통에 힘겨워하는 청민이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그게 통한 모양인지 간질이라도 걸린 것처럼 몸을 떨던 청민이 가까스로 몸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참아! 견뎌! 고작 영단에 약력에 쓰러질 거야!

“흐으으읍!”

벽우진의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어금니를 악물고서 청민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동시에 눈매가 파르르 떨었다.

곤륜파와 미래를 생각하며 희미해지는 정신 줄을 바짝 잡은 것이었다.

콰드드득!

그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청민이 크게 꿈틀거렸다.

척추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에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이루는 경지가 아니었기에 청민으로서는 더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참는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고통 속에서도 청민은 이를 악물었다.

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벽우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게다가 이건 오직 그만을 위한 비술이 아니었다.

벽우진을 위해, 사문을 위한 것이었기에 청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는 심정으로 고통을 견뎌냈다.

스르륵.

그런데 그때 청민의 새하얀 백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멀쩡히 붙어 있던 백발이 저절로 두피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동시에 눈썹은 물론이고 백염이었던 수염 역시 얼굴에서 떨어져 나왔다.

스으으윽.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청민의 두피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빛 머리카락이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노구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굽고 왜소했던 체격이 마치 젊었을 때처럼 장대해지기 시작했다.

‘호오.’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하게 변하는 광경에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던 비현이 눈을 빛냈다.

그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현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모조리 양피지에 기록하며 현상을 관찰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환골(換骨)은 이뤘지만 탈태(奪胎)까지는 가지 못했군.’

확연하게 달라진 체격과 모발, 눈썹과 다르게 피부는 벗겨지지 않았다.

완벽한 탈태환골을 이루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반쪽의 성공이라고 하더라도 대단한 일이었다.

어찌됐든 인위적으로, 그것도 절세의 영약 없이 이루어낸 결과였기에 비현은 투자 대비 효율로 따지면 나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이제 안정기에 들어간 모양이군요.”

“약력 주제에 반항이 제법 심하더라고요.”

“허허허.”

청민의 명문혈에서 손을 떼고서 말하는 벽우진의 모습에 비현이 실소를 흘렸다.

어째 말하는 투가 가소롭다는 듯해서였다.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으면 얼마나 좋아.”

“그건 저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장문인.”

“알고 있습니다. 그냥 투정 좀 부린 겁니다. 하하. 그리고 제가 어찌 거기까지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인데요. 비현 호법이 안 계셨다면 실행하지도 못했을 테고요.”

“제가 없었어도 어떻게든 해내셨을 거 같은데요?”

비현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본 벽우진은 안 되면 어떻게든 되게 만들 위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자신이 없었다면 천고의 영약을 찾아내서라도 청민을 환골탈태 시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어떻게든 해내야죠.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뭐라도 해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끔 장문인이 무섭습니다. 허허. 저희 호법들만 해도···.”

비현이 말끝을 흐렸다.

차마 강압적으로 끌고 내려왔다는 말을 하기 힘들어서였다.

가까운 예로 진구가 있었고 말이다.

반항하다가 개 패듯이 잡아서 데려온 일화는 호법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흠흠!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다 상부상조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혼자보다는 둘이 나은 게 증명되었으니까요.”

“그렇지요. 저만 해도 이런 경험을 어떻게 해볼 수 있었겠습니까? 나름 재미도 있고요. 다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데 그건 장문인께서 계시니 조금 덜합니다.”

“전 신이 아닌데요.”

“제가 보기에는 신선이나 마찬가지신데요. 곤륜의 신선이요. 그냥 신선은 좀 안 어울리시고. 흐음.”

비현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벽우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별호라도 지어주시려는 겁니까?”

“만천독황도 때려 잡으셨는데 하나쯤은 있어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곤륜의 장문인이신데요.”

“때려 잡다니요.”

벽우진이 그답지 않게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름 도사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을 때려잡았다고 하자 왠지 모르게 과격하고 난폭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비현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흐음. 패선(覇仙) 어떻습니까? 갑자기 딱 떠오르는데요.”

“제가 그렇게 패도적인가요.”

“허허허.”

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웃음만으로도 뜻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저도 딱 맞는 별호 같은데요?”

“몸은 어때?”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좋습니다. 이립이었을 때보다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확실히 육신이 젊어지기는 했어. 반로환동까지는 아니지만. 비현 호법. 하나 더 먹여볼까요?”

벽우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청민이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견뎠지만 다음번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 정도로 뼈가 깎이고 뒤틀리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바로는 힘들고 지금 체내에 남아 있는 약력을 전부 소화한 다음에 시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몸 상태에 맞춰 영단도 다른 비율로 배합해야 하고요.”

“잘하면 이번에는 환골에서 멈추지 않고 탈태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가능하다고 봅니다.”

청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사람이 마치 자신을 실험체 보듯이 쳐다보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거절할 명분도, 발언권도 없었다.

말해도 벽우진이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너무 겁먹지 마. 지금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다음 차례가 남아 있기도 하고.”

“후우!”

“근데 너무 좋아한다? 난 오직 너만을 생각하며 목숨까지 걸었는데.”

“아니, 아닙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던 청민이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비현이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다 함께 모여서 조식을 하는데 당민호가 청민을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그런데 그건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당소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만에 체격 자체가 달라진 청민의 모습에 두 조손은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놀람에는 차이가 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허허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루 만에 몸 자체가 바뀌어?”

당민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청민의 몸 곳곳을 살폈다.

독술은 자연적으로 의술과도 연관이 되기에 당민호는 웬만한 의원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청민과 벽우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냥 좀 좋은 일이 있었어.”

“그러니까 그 좋은 일이 뭐냐고.”

어색하게 웃기만 하는 청민을 일별하며 당민호가 벽우진을 쏘아봤다.

하지만 내부기밀을 외인에게 고주알미주알 말해줄 필요는 없었기에 벽우진은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친구사이라도 내부기밀을 말해줄 수는 없지.”

“어디서 영약이라도 구한 거냐? 하지만 좋은 영약이라면 환골탈태나 반로환동을 했을 텐데···.”

당민호의 귀신같은 눈썰미에 청민이 깜짝 놀랐다.

말하는 투가 반만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아서였다.

“진짜 영약을 구하신 거예요?”

“중원에도 이름 높은 영험한 산이 곤륜산이니 영약이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 다만 그 영약이 어느 정도냐가 문제지만. 그렇다고 현재 곤륜파 사정 상 돈 주고 영약을 살 정도는 아니고.”

“왜 그렇게 남의 문파에 관심이 많아? 너 집에는 언제 갈 거야? 나이도 있는데 빨리 복귀해야지.”

“우리 사이에 정말 이럴 거냐?”

당민호가 애걸복걸하듯 물었다.

아무리 봐도 신기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영약을 구했다고 하면 납득이라도 할 텐데 그의 예민한 감은 그게 전부인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분명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에 당민호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어허. 나이 먹고 무슨 추태야. 손녀도 옆에 있는데. 게다가 이 자리에는 내 제자인 예지도 있다고.”

“그럼 제가 여쭈어보면 말해주실 거예요?”

당소윤이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벽우진은 철벽이었다.

“안 돼.”

“그게 그렇게 비밀스러운 건가요?”

“응.”

당소윤이 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는 말마다 저렇게 얄미울 수가 없어서였다.

그런데 그건 당민호도 마찬가지였다.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어렵진 않은데, 그 다음의 반응이 뻔히 보이니까. 귀찮은 일은 미리 피해가야지.”

“귀찮게 하지 않으마. 그러니 궁금증만 풀어줘.”

“말 바꿀 걸 뻔히 아는데.”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다. 나 예전의 소가주가 아니다. 사천당가의 태상가주야. 그것도 여전히 오대세가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당민호가 위엄서린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벽우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앞에 놓인 소채를 젓가락으로 짚었다.

“요리가 많이 늘었는데?”

“그 동안 열심히 연습했어요.”

“굳이 네가 할 필요는 없는데.”

“아직은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호법님도 한 분만 남아 계시고요.”

당민호가 눈을 빛냈다.

생각해보니 현재 곤륜파에는 이 자리에 있는 인원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벽우진이 직접 호법으로 모셔왔다는 이들 중 한 명이 말이다.

그리고 그가 짐작하기로는 남아있는 호법도 청민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연관이 있을 것만 같았다.

“눈알 굴러다니는 거 다 보인다.”

“그러니까 네가 진즉에 말해주면 좋잖아?”

“누구 좋으라고? 비전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니까 비전인 거야.”

“치사하기는.”

“홀라당 벗겨먹으려는 놈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졌다.

어떻게 보면 어제보다 더 격렬한 신경전이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반면 서예지는 당민호와 당소윤이 궁금해 할수록 더욱더 기대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녀가 알기로 다음 차례는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 제 10장. 초단기육성계획.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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