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序. >
천장단애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험하기 끝이 없는 절벽에서 갑자기 백광이 솟구쳤다.
정말 뜬금없이 기암괴석으로 가득 찬 절벽의 중간 즈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무언가가 튀어 나왔다.
“으아아! 드디어 탈출이다!”
휘이이잉!
백광을 가르며 뛰쳐나온 인영이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그의 발밑은 말 그대로 허공이었다.
절벽 중간에서 갑자기 튀어나왔기에 발아래에는 바람만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여기는 여전히 변한 게 없네. 아래는 살벌하기 짝이 없고.”
허공에 떠 있던 인영이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음에도 인영은 딱히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의 풍광을 구경하듯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미쳤지. 어쩌자고 여기까지 기어 내려와서는. 쯧!”
낡은 도복에 머리는 산발이고 수염까지 막 기른 인영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러더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발을 굴렀다.
투웅.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난과도 같은 행동에 그의 신형이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았던 것이다.
분명 그의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구경은 이쯤하고 돌아가야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남자가 두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마치 하늘을 노니는 한 마리의 용처럼 그의 신형이 너무나 유유히 허공으로 솟구치며 절벽을 넘었다.
툭.
마치 신선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곤륜산을 가로지르던 남자가 바닥에 내려섰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절벽에서 나타났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물론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카락으로 인해 얼굴이 반 이상 가려졌지만 드러나 있는 부분만으로도 남자의 현재 심정을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뭐야? 왜 이렇게 되어 있어?”
끼이익. 끼이익.
남자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 있는 사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어찌하여···.”
시간이 제법 흘렀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자신이 보낸 시간이 결코 적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단 한 번도 사문이 이런 꼴이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사문이 바로 구파일방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문파이자 중원 무림의 정통도문인 곤륜파였기 때문이다.
< 序. > 끝
ⓒ 윤신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