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쐐애액─!
인디아를 제외한 여섯의 마인이 질풍처럼 쇄도해왔다.
‘예전에 만났던 놈들보다 더 강한가.’
이진한은 날카롭게 그들을 훑었다.
각각 내뿜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전에 북쪽 숲이나 베르하임 왕국에서 싸웠던 녀석들보다 더 서열이 높은 것인지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을 보였다.
단시간에 끝낸다. 각오를 다진 이진한은 왼손으로 거칠게 창대를 휘어잡으며 오른손으로 무라마사를 꺼내 쥐었다.
쉬아악!
창과 도가 시원하게 허공을 베어 갈랐다.
선두에 있던 퀘벡과 노벰버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들 각자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각 지역의 음지에서 활동하며 절대자로 군림하던 이들.
설사 고위 마족을 쓰러뜨린 용사라 할지라도 자신들 전부가 합공한다면 능히 상대해낼 수 있으리라.
“흡!”
그렇기에 그 누구도 피하지 않은 채 정면에서 꽝 부딪쳤고.
“…!”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흘려넘기며 파고든 창과 검에 두 눈을 부릅떴다.
선두에 서 있던 퀘벡의 충격은 더 컸다.
그는 마족과 계약을 맺음으로 불괴의 신체를 얻었다.
비슷한 계열로는 제일 말단 사도인 줄루가 있었지만, 그 강도의 차이는 대략 수십 배.
설사 상위 사도라 할지라도 그리 손쉽게 자신의 몸을 벨 순 없으리라 믿고 있었다.
서걱─!
하지만 이진한의 도는 마치 두부를 자르듯 너무나도 손쉽게 뼈와 살을 베어 갈랐고, 뒤쪽에 있던 노벰버 역시 창째로 꿰뚫으며 그 몸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쉬익. 쿵! 퍽!
그 뒤로는 물 흐르는 듯한 연계가 이어졌다.
앞선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 황급히 경계심을 올려 몸을 내빼려 했지만, 오히려 그 탓에 구멍이 생겨 이진한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을 넓혀주었다.
쉬아아아악!
“익…!”
뇌전이 서린 푸른 창끝이 일점을 꿰뚫었다.
제일 후미에 있던 열 번째 사도 줄리엣은 신음을 토해내며 두 팔을 교차해 그것을 막아내려 했지만, 마찬가지로 날카롭게 휘둘러진 무라마사에 팔을 베인 후 쏘아진 창끝에 목을 꿰뚫렸다.
“….”
10초.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시각 동안 여섯의 마인을 전부 무력화시킨 이진한은 가볍게 용아청성창을 휘둘러 목이 꿰뚫린 킬로를 털어냈다.
“질기네. 급소만 노렸는데도 죽지 않다니.”
흘깃 바닥을 내려다보자 무력화된 채 신음을 흘리며 굴러다니는 마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체감상 이전에 싸웠던 마인들보다 두 배는 더 강한 것 같았지만, 자신 역시 그때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강해진 적에는 더욱 압도적인 힘으로. 시퍼런 뇌전을 흩뿌리며 홀로 지상에 우뚝 서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야차와도 같았다.
“이리아는 어디 있지?”
“….”
이진한의 물음에 홀로 재단 앞에 서 있던 인디아가 느긋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 위를 가리켰다.
“그녀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새로운 존재?”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힌 존재들이지. 용사이자 《지혜》의 계승자인 네놈과도 관련이 없지 않다.”
꽈아악.
의미 모를 소리를 지껄여왔기에 이진한은 용아청성창과 무라마사를 다잡았다.
일단 재단 위쪽에 있는 저 고치 같은 것 안에 이리아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순순히 비켜줄 모양새는 아니었으니 단숨에 녀석을 도륙하고 그녀를 구해내면 되는 것일 터.
탁!
일순간 전력을 끌어올린 그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용아청성창과 무라마사를 동시에 휘둘렀다.
‘…웃어?’
녀석의 목을 베고 사지를 도륙하기 직전, 이진한은 인디아의 입가에 서린 옅은 웃음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머릿속에 서린 본능이 경종을 울리며 등 뒤로 싸한 위기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창과 검은 이미 휘둘러진 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때 대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의지를 가다듬었다.
쉬아악!
Lv.1204 「투르마크 인디아」
[아홉 번째 사도]
[부정을 전파하는 자]
파악을 끝낸 대현자의 눈이 녀석의 정보를 표시해주었다.
‘…아홉 번째 사도?’
처음으로 맞이한 한 자릿수 대의 사도.
그렇다면 다른 녀석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촤아악!
돌연 자신의 몸에서 솟구치는 새빨간 피에 이진한은 두 눈을 부릅뜨며 입을 열었다.
“…컥!”
용아청성창과 무라마사가 바닥을 구른다. 그는 황급히 손을 들어 시뻘건 피가 솟구치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덜렁거리는 목을 부여잡았다.
“본능적으로 공격을 멈춘 건가. 용사가 아니라 마치 한 마리의 야수를 보는 듯하군.”
지이잉─.
인디아가 손을 들자 그 끝에 시뻘건 마기가 뭉쳤다.
이전 메피스토를 상대했을 때와 같은 현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직감한 이진한은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나, 쏘아진 붉은 선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큭.”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토해진 신음에 이진한은 얼굴을 구겼다.
용사 클래스의 스킬인 「불굴」이 발동되며 순식간에 중상이 회복되어 갔지만, 조금 전 자신의 몸에 닥친 공격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뭐지? 마법? 아니, 스킬인가?’
몸과 옷에 걸린 수많은 가호를 한 번에 깨부수고 이런 중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즉, 주위에 쓰러져 있는 마인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 재단 앞에 서 있는 저 녀석 한 명이 더 강하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이건 암수 따위가 아니라….”
짧은 복기를 통해 무언가를 깨달은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의심에 확증을 더해주듯 시야 한 편으로 대현자의 알림이 떠올랐다.
[해석을 완료했습니다.]
[「액티브 카운터」]
[자신에게 행해진 모든 종류의 공격을 흡수해 반전한다.]
액티브 카운터.
모든 종류의 공격을 반전하다니. 제일 골치 아픈 설정이었다.
파아앗!
가볍게 불을 내뿜어 공격하자, 그것이 그대로 되돌아왔다. 손을 휘저어 불꽃을 털어낸 이진한은 얼굴을 구기며 인디아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네.”
“수성(守城)에 최적화된 능력이지. 그녀를 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나를 넘어설 수 있겠나? 당대의 용사여.”
인디아는 여전히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며 도발해왔다.
‘해법은….’
이진한은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월드’를 플레이할 당시 온갖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와 싸워봤다. 그중 인디아와 같이 카운터 능력을 지닌 이들도 있었기에 공략법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석적으로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카운터 스킬이 버틸 수 없는 한계 이상의 충격을 주거나, 직접 공격이 아닌 간접 공격을 통해 반격당할 리스크를 지우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스킬 자체를 아예 무효화시켜버리거나.
지금 당장 뒤쪽 두 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제일 첫 번째 방법으로 가야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쪽 역시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일반 플레이어였다면 말이지.”
챙─!
용아청성창과 무라마사를 인벤토리에 넣은 이진한은 시원한 기세로 일반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액티브 카운터의 능력은 흡수, 그리고 반전.
그렇다는 것은 일단 들어간 다음 토해져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웅웅웅─!
그렇다면 적에게는 타격을, 이쪽에는 타격이 입지 않는 공격으로 가하면 이론상 문제가 없다는 것일 터.
상대는 마인이었으니, 속성으로 따지자면 간단한 문제였다.
파아아앗!
용사 클래스의 이른 신성력이 절정에 이르러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그저 높은 레벨 롱소드에 불과했던 무기에 신성이 서려 성검(聖劍)에 가까운 부류로 격이 상승했다.
“성스러운 힘이여, 내게 가호를 내리소서.”
가벼운 버프의 주문과 함께 힘껏 땅을 박차자, 그 찬란한 빛에 일순간 압도되어 있던 인디아가 흠칫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역시, 이런 적과는 싸워본 적이 없구나.”
그 모습에 기세를 얻은 이진한이 짙은 미소와 함께 어둠을 베어 갈랐다.
생각지도 못한 맹점이었는지 이번엔 인디아 쪽에서 두 눈을 부릅 뜬 채 두 팔을 교차했다.
아무리 강한 마인이라 할지라도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상 추기경이나 팔라딘 급의 강자와 격돌할 이는 적겠지.
더군다나 저런 상위 서열의 사도는 특성상 혼자 다니지 않을 테니, 이런 상황을 겪어봤을 리가 없었다.
쉬아아악!
성검이 인디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하게 베어 갈랐다.
동시에 「액티브 카운터」가 발동하며 참격의 여파는 이진한의 몸에도 똑같이 닥쳤다.
살이 갈라지고 피가 터지며 큰 상처가 생겼지만, 뒤따라오는 농밀한 신성력의 힘으로 순식간에 회복되며 원 상태를 되찾았다.
“끄아아아악!”
다만, 인디아 쪽은 달랐다.
참격은 흘려냈지만, 그 궤적을 따라 타고 흐르는 신성력이 큰 상처를 남겼다. 부정한 것을 태우는 것은 신성이라고 말하듯 시퍼런 불길과 함께 피부와 살점이 타들어 가며 점차 그 존재 자체를 좀먹기 시작했다.
지이잉─!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손가락을 들어 붉은 레이저를 줄기줄기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런 눈 먼 공격에 맞을 정도로 이진한은 무르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툭.
이내 살점이 모두 타버려 뼈대만 남은 녀석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가볍게 그 위로 침을 뱉은 이진한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재단 위에 있던 고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구해줄게.”
살짝 귀찮게 되었지만, 이것으로 상황은 끝이다.
이제 이리아의 도움을 받아 템페스트로 실피드를 강림시켜 계약하는 것으로, 천 년 전 잊힌 비사를 전해 들을 차례가 왔다.
“그냥 찢으면 되는 건가?”
새하얀 고치의 앞까지 다가간 그는 까끌까끌한 그 표면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검을 들었다.
대현자의 눈도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평범한 고치는 아니라는 소리일 터. 그러니 일단 들이박고 볼 생각이었다.
웅웅웅─.
혹시나 하는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검 위로 다시 한번 농밀한 신성력을 실었다. 이렇게 한다면 여차하는 상황에서도 곧바로 이리아를 구해내 치료할 수 있으리라.
“흡!”
그렇게 검이 그어내려질 찰나.
콱!
이진한은 자신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뜨거운 무언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뭣!”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그 몸이 휙 들려 하늘로 튕겨 날아갔다. 밑으로 내려다보니, 조금 전까지 인디아의 시체가 쓰러져 있던 장소에 커다란 마물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쉬아악─!
아홉 개의 머리.
잿빛 비늘을 가진 커다란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새빨간 눈으로 그를 노려봐왔다.
“…히드라!”
이진한은 그 모습에서 퍼뜩 떠오른 이름을 입에 담으며 일그러진 얼굴로 목을 부여잡았다.
카악!
아홉 개의 머리 중 끄트머리에 있던 녀석이 입을 벌리며 검은 물을 쏘아 보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는 몸을 뒤틀며 궤도를 바꿨지만, 아쉽게도 전부 피해내지 못했다.
촤아악!
황급히 펼쳐진 실드 위로 검은 액체가 닿는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산화되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은 이진한의 로브에 떨어져 내렸다.
“윽?!”
그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최상급 로브조차 산성에 견디질 못했다.
고약한 냄새를 내며 타들어 가더니, 이내 이진한의 몸까지 침범해 살을 썩혀갔다.
서걱.
왼팔을 직접 베어내는 것으로 부식을 막은 이진한이 땅에 내려섰다.
그러자 아홉 쌍의 붉은 눈이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내려다 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