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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146화 (146/210)

◈ 146.

와이번들은 곧 떠나갔다.

이리아는 정령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일선의 책임자로서 왕실에 보고를 올림과 동시에 상황의 종료를 선언했다.

도시는 드디어 가득 찼던 긴장을 내려놓았다.

대부분 70여 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고생했기 때문에 저마다 휴식에 들어갔고, 이진한 일행 역시 마찬가지로 숙소로 돌아와 느긋한 시간을 즐겼다.

【1387:21:58】

한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이번 퀘스트의 보상으로 시간의 유예가 1천 시간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봤자 목에 목줄이 걸린 시한부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더 나아진 상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삐이이─.

정작 다른 이들은 힘껏 날갯짓하며 방을 날아다니는 까망베르에게 모두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 큰 와이번의 새끼라고요?”

“그런 것 치고는 색도 다르고 진짜 조그마하네요.”

“이리아의 말로는 유아기에는 종 구분 없이 모두 검은색이라나 봐. 이제 성장하면서 점차 색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거지.”

이진한의 설명에 엘레오노라와 일레이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빙빙 돌아다니는 까망베르를 바라보았다.

워낙 귀엽게 생긴 지라 순식간에 그녀들의 마음을 빼앗은 듯싶었다. 다만, 미르엘은 홀로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넌 왜 그래?”

“…저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르엘이 살짝 질색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엘레오노라가 깜빡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네요. 자기가 타는 말 이외에는 그리 친하게 지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고.”

“어릴 적에 조금 좋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맞서 싸워서 죽이는 거라면 모를까.”

“어떻게 이 귀여운 생물한테 그렇게 험한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미르엘의 눈이 섬뜩한 빛을 자아내자 일레이나는 호들갑을 떨며 옷걸이 끄트머리에 내려앉은 까망베르를 향해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직전까지 잠자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던 까망베르가 덥석 그 손을 물었다.

“….”

일레이나는 잠시간 두 눈을 껌뻑거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물린 것을 곧바로 깨닫지 못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했다가, 손에서 솟아오르는 핏줄기에 입을 크게 벌렸다.

“꺄아악!”

황급히 빼낸 손 위에 앙증맞은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새끼 와이번의 이빨이 얼마나 날카롭겠는가.

작은 가시에 찔린 정도였지만, 예상치 못한 공격에 그녀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 안 되죠. 이런 작은 아이들하고는 교감이 중요하단 말이에요. 잘 보세요.”

엘레오노라는 그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는 일레이나보다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면서도 곧바로 손을 뻗어 만지려 하지 않았고, 두 눈을 마주치며 몇 번이나 깜빡거렸다.

날카로웠던 까망베르의 기세가 살짝 누그러졌을 찰나, 주먹 쥔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자신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존재가 만지려 한다면 당연히 기겁하게 되어 있죠. 먼저 확인을 시켜줘야 해요. 내가 무해한 사람이라는 것을.”

삐이.

까망베르는 엘레오노라의 손으로 다가갔다.

천천히 냄새를 맡고 짧은 혀를 내밀어 핥으며 동글동글한 눈망울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제야 엘레오노라는 만족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고.

덥썩.

무참히 깨물리고 말았다.

“꺄악!”

일레이나와 마찬가지로 손등 위에 붉은 점 두 개가 찍히며 핏방울을 흩날리고 저 멀리 후퇴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이진한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둘 다 똑같네, 뭐.”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엘레오노라는 핏방울이 몽글몽글 맺히는 손등을 쓰다듬으며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은 옛적부터 동물과 친화력이 좋았다.

그렇기에 별 다른 노력 없이 손쉽게 기들이는 법을 터득했고, 까망베르 역시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은 쉽사리 자신의 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고고한 모습으로 그녀들을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이리 와.”

삐이!

물론 이진한의 부름에는 즉시 몸을 일으켜 땅을 타고 날리듯 그 몸으로 나아갔을 뿐이었다.

원숭이처럼 재주좋게 다리를 타고 올라와 옷 속으로 푹 들어가더니 목뒤로 나와 마치 그곳이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후드 뒤에 몸을 안정적으로 몸을 담았다.

“…잘 따르네요.”

“괜히 와이번의 반려로 인정받은 게 아니죠.”

샐쭉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엘레오노라와 일레이나가 투덜거렸다.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이진한은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나저나 크기가 문제군요. 작을 때는 괜찮은데, 금방 클 테니까 말이에요.”

슬쩍 옆으로 다가와 시선을 보낸 미르엘이 말했다.

“괜찮아. 성체가 되면 따로 돌아다니게 하면 되고, 전까지는 크기 조절 마법을 걸어주면 돼. 똑똑한 녀석이니까 알아서 제어할 수 있게 가르쳐주면 되겠지.”

“성체까지 자라기는 얼마나 걸리나요?”

“대충 10년?”

“아직 충분하군요.”

“그렇지?”

삐이.

까망베르가 고개를 들어 옆으로 다가온 미르엘과 시선을 맞췄다.

그녀는 흠칫하면서도 기세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면서도 발의 방향이 틀어져 있는 것이 유사시엔 곧바로 후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듯했다.

삐이─!

“어엇!”

까망베르는 돌연 후드를 박차고 뛰어 올랐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진한이 놀라 목을 부여잡을 찰나, 녀석은 그대로 자신의 옆에 있던 미르엘의 얼굴로 달려들었다.

“꺄아악!”

그러곤 온몸으로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이마를 핥았으니. 그 충격으로 미르엘은 축 늘어지며 혼절했을 따름이었다.

삐이!

단숨에 마스터 경지를 목전에 둔 기사를 쓰러뜨린 까망베르는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

하루 뒤.

마음 놓고 푹 쉰 이진한 일행은 보상을 받기 위해 기사단에서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개최한 연회에 참여했다.

“위쪽에서도 정말 지대한 감사를 드린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리아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재차 감사를 표했다.

왕국이 절멸할 뻔했던 위기였다.

당연히 보통의 보상으로는 부족했기에 상부에서도 그 건에 관련해 고심 중이라고 했다.

실상은 어떻게든 최소한으로 주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차라고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나온다면 이리아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라도 부족한 분을 충당할 생각이었다.

“…원래는 전하와 기사단장께서도 참석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왕국 전역이 소란스러운지라.”

“이해해. 나도 그런 건 귀찮으니까.”

이진한은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표했다.

굳이 이곳까지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것일 터. 일이 터지자 왕성에 틀어박혀 군대를 끌어 모은 것을 보니 대충 그 성향이 그려졌다.

“…죄송합니다.”

이리아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구국의 영웅 정도면 본래 왕족이나 아무리 못해도 고위 귀족이 나와 맞이해야 했다.

물론 정령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렝케 가문의 당주인 그녀 역시 나름대로 고위 귀족이지만, 그들과는 지닌 무게가 달랐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일행 분들은 함께 계시지 않는 건가요.”

“응. 연회 즐기라고 보냈어.”

이진한의 말에 이리아는 장내를 둘러보았다.

이번 일이 무사히 해결됐음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다. 급히 준비된 것이지만,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부족하지 않게 자리를 마련했다.

엘레오노라, 미르엘, 일리에나 역시 각자 위치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한껏 연회를 즐기는 와중이었다.

“내가 부탁했거든. 너와 잠깐 이야기 하고 싶다고.”

“…아, 그랬었죠.”

이리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유력 가문의 귀족이었지만, 그녀는 이런 연회 자리를 즐기지 않아 드레스를 입은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자신의 물망초 빛깔보다 살짝 연한 하늘색으로, 본래 입던 것보다 조금 더 어깨가 드러난 과감한 복장이었다.

그의 일행과 비교하자면 솔직히 그리 자신이 없었고, 이렇게 꾸민 것도 오랜만이라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물망초 빛깔의 머리카락 끝을 살짝 꼬며 고개를 들자, 이진한은 따라오라는 듯 시선을 보냈다.

“…테라스입니까.”

“이쪽이 적당해보이니까.”

별채로 가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 그의 발걸음은 연회장 밖에 있는 테라스로 이어졌다.

연회가 한창인지라 인적은 없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엔 안성맞춤인 상태. 혹시 모르기에 이진한은 차단 마법까지 주위에 두르곤 그 난간에 몸을 기댔다.

“한잔 어때.”

“아, 가져오겠습….”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인벤토리에서 잔 두 개를 꺼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 움직임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이리아는 살짝 신기하단 눈으로 이진한이 내민 잔을 받아들었다.

밤의 어둠과는 달리 야광 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칵테일이었다.

이진한이 먼저 마시자 그녀 역시 천천히 입을 대고는 잔을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은 밤의 풍경과 맞물린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매력을 자아냈기 때문일까.

‘…후우.’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해올까. 물론 어렴풋이 예상은 되었다. 처음부터 그 검은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도 선명한 것이었으니.

옅은 기대와 조금의 불안, 그리고 진한 망설임까지. 이리아는 그것들을 모두 품은 채 이진한을 올려다 보았다.

“나는….”

이진한은 이리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물망초 색 머리카락이 연회장의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며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이진한이 그녀와 《창조》를 겹쳐 보이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창조》, 진하율의 외모는 게임 속 아바타와 머리카락, 그리고 눈 색만 바꾼 현실의 것과 똑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진하율 본인과 겹쳐 보이며 가슴 한구석을 욱신거리게 했다.

할 말은 이미 골라놨다.

하지만 혀끝에서 맴도는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다. 망설임이 서린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 그렇기에 생각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나는 《지혜》의 검은 현자다.”

“…예?”

이리아는 멍하니 되물었다.

한눈에 빠져들었음을 알리는 달콤한 속삭임도, 오늘 밤 너를 취하고 싶다는 욕망 어린 숨결도, 가문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가자는 유혹의 손짓도.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지혜? 현자?

생뚱 맞은 발언에 일순간 머리가 경직되어 돌아가지 않는다. 지혜는 뭐고 현자는 무엇인지. 검은? 머리카락이 검어서 검은 현자라는 것일까.

삐이.

그때, 후드에 숨어 있던 까망베르가 불쏙 고개를 내밀었다.

이리아는 그 호박색 눈동자와 시선이 맞는 순간 그 말의 뜻을 깨닫고는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내가 《지혜》의 현자다. 《창조》의 후손이여.”

“….”

이리아의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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