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143화 (143/210)

◈ 143.

구우우웅─.

출항을 알리는 긴 뱃고동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신호라도 되는 듯 그것을 기점으로 수십, 아니 수백 마리는 될 법한 와이번들이 창공을 배회하며 어지러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 알 수 없는 현상에 도시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저 정도 숫자의 와이번이 일시에 들이닥쳐 습격한다면 이곳에 상주하는 병력만으로는 막아내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도시 곳곳으로 비명이 터져 나오며 혼란으로 물들어갔다.

“대체….”

“이건 저도 처음 보는 현상이에요. 이 정도 숫자의 와이번이라니. 그리고 저 거대한 존재는.”

“드래곤이라 해도 믿을 법하군요. …아니, 마경에서 싸웠던 그 마룡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세 여인 역시 심각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지를 벗어난 상황이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형국이다. 이진한은 그 가운데 조용히 고개를 들었고, 어째서인지 지상을 내려다보던 저 존재와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을 받았다.

「메인 퀘스트」 ─ ∑창공의 군주

◈ 태초의 와이번 「쿠르슈엘라」는 자신이 낳은 알을 모종의 세력에게 도둑맞았다. 72시간 안에 태초의 와이번의 알인 백명란(白明卵)을 되찾아 가져오시오.

보상: ‘500시간의 유예’, ‘아리사의 인장’

실패: ‘인질의 사망’, ‘가모라 왕국의 멸망’

“…살벌하네.”

오랜만에 떠오른 퀘스트 창에 이진한은 혀를 내둘렀다.

눈에 걸리는 건 많다. 와이번 치고는 많이 고풍스러운 쿠르슈엘라라는 태초의 와이번은 저 커다란 녀석을 가리키는 것일 터.

자신의 알이 도둑 맞아 이 사달을 내고 있는 것이리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보상 쪽도 제법 후했다.

500시간만으로 혹하는데 그와 더불어 아리사의 인장이라는 것까지 준다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창공의 군주 정도 되는 존재가 주는 것이니 모자란 것은 아니리라.

문제는 실패했을 시 닥쳐올 패널티 쪽이었다.

‘왕국의 멸망이라니.’

그러면 인질을 잡을 이유가 있나?

족히 수백만은 죽어갈 텐데….

쉬아아악!

그와 동시에 귓가를 스치는 몇 줄기 파공성에 이진한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각기 색이 다른 세 줄기의 궤적이 하늘로부터 이곳으로 맹렬하게 쇄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앗!”

그 끝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일레이나뿐. 그녀는 황급히 「사계」를 전개했으나, 날카로운 무언가가 채찍처럼 닥쳐와 허리를 휘감았다.

턱.

일레이나만이 아니었다.

이진한 옆에 있던 엘레오노라와 미르엘 역시 각기 다른 곳에서 쇄도한 와이번이 꼬리를 휘둘러 그 몸을 낚아챘다.

와이번의 레벨은 거의 1천 남짓. 아직 그 절반에 불과한 그녀들로선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인질.

그 단어가 주는 뜻을 깨달았을 때, 이진한은 불쾌해진 얼굴로 손을 뻗었다.

“이 새끼들이.”

콰르르릉─!

인벤토리에서 뽑혀 나온 용아청성창의 끝이 커다란 뇌성과 함께 시퍼런 전격을 줄기줄기 뿜어내었다.

와이번들은 울음을 토해내며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전격을 피해내려 몸을 비틀었지만, 결국 그 후미에 있던 파란 와이번이 직격당하고 말았다.

-끼에에엑!

구슬픈 울음과 함께 그 커다란 몸이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다른 두 와이번은 화들짝 놀라더니 방향을 선회해 동료를 챙기려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이진한은 용아청성창의 끝을 들어 다시 한 번 시퍼런 뇌전을 줄기줄기 뿜어내었다.

탁.

결국 와이번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꼬리에 잡아 놓은 인질들을 해방하는 것으로 그의 시선을 돌리곤 떨어져 내리고 있는 와이번을 부축해 빠른 속도로 이곳을 이탈했다.

“괜찮아?”

가볍게 손을 휘둘러 자유의 몸이 되어 지상으로 추락하던 이들에게 부유 마법을 걸어준 이진한이 물었다.

“…어우.”

“죽는 줄 알았어요.”

“토할 것 같아.”

미르엘과 엘레오노라는 산발이 된 모습으로 가뿐히 내려앉았지만, 일레이나는 곧바로 바닥에 엎어져 창백한 안색으로 헛구역질을 했다.

운이 나쁘게도 만운천뢰에 직격당한 와이번에게 붙잡혀 있던 것이 그녀다. 급격한 상승과 하강을 함께 경험했으니 감각이 일시적으로 망가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거 뭐예요?”

일레이나는 이진한이 포션을 따서 그 입에 넣어주자 겨우 정신을 차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너흴 인질로 잡으려 했던 것 같다.”

“인질요?”

“저기 저 무식하게 큰놈 있잖아. 자기 알을 도둑질 맞아서 되찾으러 온 거라네.”

“…와이번 말도 알아들으세요?”

“조금은.”

퀘스트 창에 쓰여 있었지만, 이진한은 가볍게 대꾸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그녀들은 신기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이진한을 바라봐왔다.

“일단 사람들은 다 대피시켜!”

“건물 안에서 나오지 마요!”

적막이 깨진 도시는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기사와 병사들은 곳곳을 뛰어다니며 행인들을 근처 건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조금 전처럼 와이번이 사람을 채가면 그들로서는 막을 방법이 도저히 없기 때문이었다.

구우우웅─.

다시 한번 기다란 울음 소리가 들려왔을 때, 이진한은 고개를 들어 쿠르슈엘라를 바라보았다.

Lv.3195 「창공의 군주 쿠르슈엘라」

“더럽게 높네.”

지금껏 만났던 드래곤 가운데서도 고룡 급인 아이슬란을 제외한다면 녀석보다 레벨이 높은 이가 없었다.

드래곤보다 강한 와이번이라니. ‘월드’에서도 이런 녀석은 없었기에 그조차 살짝 놀랐다.

‘이길 수 있으려나?’

드래곤도 아니고, 고대 마수나 악마도 아니고 그냥 레벨이 높고 몸이 커다란 와이번이었다.

불 좀 내뿜고 바람을 일으켜 돌풍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 아니겠는가.

쉬이이익─!

돌연 귓가로 들려오는 파공성에 이진한은 다시 용아청성창을 들었다.

다른 와이번이야 잡아 죽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두 번 다시 자신의 일행을 건드리는 녀석이 있다면 조각조각 썰어버리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온 것은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

기사단 본부 쪽.

레드 와이번의 꼬리로 누군가 붙잡혀 납치돼가는 와중이었다. 그리고 이진한의 눈은 그 끄트머리에 튀어나와 있던 물망초 빛깔의 머리카락을 볼 수 있었다.

“…너희들도 안쪽에 들어가 있어.”

“네? 그러면 베르너 님은….”

쿵.

그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땅을 박찼다.

앞으로 나아가는 몸은 순식간에 가속했고, 단숨에 거리를 뛰어넘어 그 언저리까지 도달했다.

“흡!”

콰득.

딛고 선 땅 위로 큰 균열이 생겼다.

그 반동으로 단숨에 미사일처럼 하늘로 솟구친 그는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그 특성을 활성화했다.

“[이카루스의 날개]”

한쌍의 검은 날개가 깃털을 흩날리며 활짝 펼쳐졌다.

일시지만 허공을 부유할 수 있게 해주는 특성.

이진한은 그것에 의지한 채 순식간에 와이번에게로 닥쳐갔다.

“….”

굳이 나선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내친김에 인벤토리에서 장궁을 꺼내며 대현자 클래스의 스킬인 「무신」을 발동했다.

[클래스 변환]

「대현자」 → 「신궁(神弓)」

쉬아아악!

활시위를 놓자 수십 갈래의 쪽빛 궤적이 수놓아지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허공을 날카롭게 꿰뚫었다.

하지만 레드 와이번은 자신이 방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뽐내듯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궤적을 모두 피해냈고, 한층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쯧.”

이진한은 혀를 차며 허공을 강하게 밟았다.

공간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터져 나와 미칠 듯한 추진력을 얻었다. 동시에 이카루스의 날개가 힘껏 펄럭이며 방향을 잡았고, 재차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어?”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는 인영에 이진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리아 부단장?”

“베르너 님?”

정령 기사단 부단장.

이리아 랭케가 바람의 상급 정령, 실피온의 위에 몸을 실은 채 물망초 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도달했다.

‘그러면 저 꼬리에 매달린 건….’

“니아야!”

이리아는 이진한의 의문을 해소해주려는 듯한 큰 외침과 함께 힘껏 검을 뻗었다.

그 의지에 호응하듯 거센 돌풍이 검 끝에 모여들었고, 바람의 탄환을 만들어내며 날카롭게 허공을 꿰뚫었다.

휘이익!

하지만 레드 와이번은 그녀의 간절한 심정을 농락하려는 듯 유려하게 날개를 휘두르며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이미 그 꼬리에 휘감겨 있는 이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보니 이미 기절한 지 오래인 듯했다.

“큭…!”

자신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입술을 씹으며 침음성을 토해냈다.

파지지직─!

그와 동시에 줄기줄기 뿜어진 전격이 레드 와이번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진한은 날개를 휘둘러 실피온에 내려앉은 뒤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에게 말했다.

“좀 더 가까이 가면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람의 상급 정령은 계약자의 의지에 따라 맹렬한 속도로 나아갔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이어졌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랐다.

“실피온?”

-끼잉.

실피온이 움직이는 것을 멈췄다.

이리아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더 나아갈 것을 부탁했지만, 녀석은 우려가 섞인 눈동자로 계약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주인을 위해 멈춘 건가.’

창공의 군주라 불리는 태초의 와이번에 도달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3천 레벨이 넘는 괴물인 만큼 자신의 계약자를 지키기 위해 멈춘 것일 터.

이진한은 알겠다는 듯 그 위에서 뛰어내려 이카루스의 날개를 펄럭였지만, 그 역시 이내 멈춰서고 말았다.

구우우웅─.

가까이에서 본 태초의 와이번은 거의 드래곤이라 할 수 있는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것이 갓 내린 눈을 뒤덮고 있는 모양새.

크루시아나 나탈리는 당연하거니와 마경에서 싸웠던 벨라시온보다 더 커다란 형태였다.

-…….

순백의 비늘 가운데 선명한 황금색 눈동자가 번뜩인다. 그 시선과 마주한 이진한은 녀석이 무어라 말하려 하는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알을 찾아오라고?”

이진한이 그리 내뱉자 「쿠르슈엘라」는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전달했다는 듯 그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더 높은 창공으로 솟구쳤다.

주위를 맴돌며 도시에 공포를 자아내던 와이번들 역시 뒤를 따랐고, 이내 수더분했던 창공은 적막에 잠겼다.

“대체, 대체 어째서….”

뒤따라온 이리아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납치당한 건 동생인가?”

“네. 제게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주러 왔다가 삽시간에….”

그녀는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흩날리는 바람에 따라 어깨가 가냘프게 떨리며 소리 죽인 울음소리가 퍼져나간다. 잠시 옆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이진한은 짧게 한숨을 토해내곤 자신의 로브를 이리아의 어깨에 둘러주며 말했다.

“일단 내려가자. 어떻게든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창공의 군주 「쿠르슈엘라」.

이리아의 동생을 돌려받기 위해선 태초의 와이번의 알인 백명란(白明卵)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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