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탄광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내부를 비추는 빛이 희미해져 갔다.
용병들은 각자 발광석을 비롯해 불연소 광원을 꺼내 들었고, 이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며 걸음을 옮겼다.
“…이건.”
그러던 중 제일 선두에서 나아가던 파르함은 저 끄트머리에 보인 희미한 실루엣에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약속된 정지 신호에 원정대는 자리에서 멈춰 섰고, 파르함의 시선을 받은 용병 두 명이 몸을 낮추며 조심스럽게 그것으로 다가갔다.
“시신입니다.”
“죽은 지 몇 시간 안 된 것이군요.”
“음.”
실루엣은 인간의 시신이었다.
복장과 표식을 보아하니 자신들 이전에 이 광산을 지키던 용병으로 보인다. 파르함은 그 상처를 살피더니 침중한 낯빛으로 말했다.
“일격에 당했군. 이곳이 습격받은 것은 틀림없어 보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차피 안쪽 자원은 단시간에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밖의 정찰대와 합류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흠.”
파르함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도 높은 미스릴 광맥은 충분한 시간과 주의를 기울여 캐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단시간 내에 무엇을 할 수 있지 않았기에 그는 과감히 후퇴 판단을 내렸다.
“증거를 확보했으니 물러난다. 곧바로 지원 요청할 것이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외부에 있는 정찰대와 합류한 이후 뒤이어 온 정찰대와 합류해 내부로 침투한 적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더욱이 광산은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다른 구역의 상황 역시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음.”
물러나는 원정대의 끝에서 이진한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안쪽을 바라보았다.
이 앞으로 더 나아가면 탄광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큰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적어도 수십이 넘는 인원이 있었고, 느껴지는 기운은 감히 이쪽 원정대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미스릴 광맥을 차지하기 위해 저 정도의 전력을 움직였다고?’
차라리 광산 외부 땅을 점령해 빼앗으면 모를까 저 정도 인원이 광산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더 안쪽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미스릴을 비롯해 여러 광맥이 뿜어내는 기운이 대현자의 눈을 일그러뜨려 아쉬울 따름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의 노림수가 미스릴 광맥뿐이 아닌 것은 확실할 따름이었다.
***
“요넬!”
“아, 부길드장님.”
광산을 빠져나온 파르함은 곧바로 정찰대와 합류했다.
“교전이 있었나?”
“일단의 무리와 싸워 격퇴했습니다. 정규 병사는 아닌 것이 저쪽이 고용한 용병들로 보이더군요.”
“음.”
요넬을 비롯한 정찰대는 이미 한 차례 교전을 거친 듯 진득한 피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부상자는?”
“없습니다. 전부 쭉정이 수준이었습니다.”
“곧바로 지원을 요청한다. 전보는 아직 연결되어 있겠지?”
“예. 곧바로 저쪽에 연락하겠습니다.”
요넬은 품속에서 통신용 마도구를 꺼내 길드로 연락했다.
근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진한은 이 구역 주위로 슬슬 다가오기 시작한 인기척들에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싸웠다는 건 정찰대인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군.’
그래도 저 안쪽에 있던 이들과 비교하자면 그리 강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크게 당황만 하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이들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으로, 그는 옆에 있던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을 향해 슬쩍 말했다.
“습격 온다. 둘이 활약해봐.”
“알겠어요.”
“맡겨 주십시오.”
피이잉─!
시작은 광산 중턱에서 쏘아진 한 대의 화살이었다.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 그것은 뒤늦게 알아차린 용병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섬뜩한 소리를 자아냈다.
“습격! 습격이다!”
“제길, 구조물 뒤에 숨어!”
저마다 갑옷은 입고 있다만, 저 거리에서도 목을 정확하게 꿰뚫을 수 있는 실력의 궁사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바닥에 쓰러진 용병은 잠깐 경련하더니 이내 피거품을 내뿜으며 즉사한다. 그 모습을 보고도 곧바로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촤아악-!
그 사이 광산의 벽 위로 밧줄이 걸리고 위쪽에 자리한 적들이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요넬! 엄호해라!”
“예!”
파르함은 이대로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자신 선두에 서서 몸을 날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는 이가 있었다.
번쩍!
냉기가 서린 검이 빛살처럼 휘둘러진다. 백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기다란 궤적을 그려냄과 동시에 막 땅 위에 내려선 적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끄아악!”
“컥!”
미르엘의 검엔 자비가 없었다.
서릿발 같은 차가운 표정으로 일 검을 내지를 때마다 프로스트의 위로 시뻘건 피가 튀어 오르며 새하얀 검신을 적셨다.
쐐애애액!
절벽 위에서부터 그녀의 머리를 노린 화살이 쏘아진다.
미르엘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것을 베어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허공에 쳐진 실드가 화살을 가볍게 막아내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걸로 다.”
휘릭.
프로스트를 휘둘러 그 위에 묻은 피를 닦아낸 미르엘은 재차 위에서부터 밧줄을 타고 떨어져 내린 적들을 바라보았다.
그때에는 파르함 역시 정신을 차리고 원정대를 향해 외쳤다.
“우리도 가세한다! 마법사들은 방어 위주로, 나머지는 화살에 주의하며 적들을 쓰러뜨린다!”
곧바로 해결책을 파악한 파르함이 원정대를 움직였다. 마법사들은 방어에 집중했고, 절벽에서부터 내려온 적들은 전위의 용병들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포위해 그 자리에서 격살했다.
“요넬, 정찰대 인원과 함께 위로 올라가라.”
“예.”
대충 상황이 정리되었다 싶었을 때 파르함은 요넬을 통해 위쪽을 정리할 것을 말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후방을 경계하고 있던 용병이 경직된 얼굴로 그들에게 알려왔다.
“입구 쪽으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옵니다. 적어도 칠십여 명 이상!”
“또? 요넬, 길드에서의 지원은?”
“적어도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제기랄, 이거 재수 옴팡지게 걸렸군.”
이 주변은 완전히 장악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여 등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아니요. 저들은 니헤임 왕국의 정규 기사단이로군. 적이 아니오.”
그때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멀리 바라보던 스미스가 저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외쳤다.
“기사단?”
“기사단이면 같은 편 아닌가.”
용병들은 화색을 띄웠다. 길드에 광산 방어 임무를 준 것은 니헤임 왕국. 그렇다면 기사단 역시 같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곧 이쪽을 습격했던 적들의 정리를 마친 파르함은 입구에 도착한 기사단을 향해 다가갔다.
“현재 광산 방어 임무의 책임자인 파르함입니다. 니헤임 왕국의 기사단 맡으십니까.”
“본인은 아르미스 기사단의 단장인 미하임이라 하네. 상황이 어떻게 되는가.”
“…아르미스 기사단.”
파르함이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아르미스 기사단은 왕실 기사단과 함께 니헤임 왕국의 최정예 기사단이라 불리는 곳. 그 주둔지는 수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거늘 어째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저희도 지원 요청을 받고 직전에 도착했습니다. 이때까지 두 번의 교전을 겪었고, 정체 모를 적들이 이쪽 탄광 내부로 들어간 것을 파악했습니다.”
“탄광 내부라.”
미하임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쪽으로 지원 요청은 했나?”
“예.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요청했습니다.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릴 것 같다는군요.”
“그럼 여유는 충분하겠군.”
“…예?”
서걱.
미하임의 검이 가볍게 휘둘러졌다.
그와 동시에 파르함의 목 위로 실선이 그어진다. 바로 옆에 있던 요넬은 두 눈을 크게 뜨며 헛바람을 토해냈다.
“부, 부길드장님!”
“전부 제압해라. 반항하는 자는 죽여도 상관없다.”
미하임이 몸을 돌리며 그리 말하자 기사단원들이 몸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란 용병들은 각자 병장기를 들며 저항하려 했으나, 선두로 뛰쳐나온 기사 한 명이 씩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우우웅─!
농밀한 오러 블레이드가 찬란한 빛을 흩뿌리며 피어올랐다. 너무나도 명확한 마스터의 증거에 용병들은 입을 크게 벌리며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했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죽이진 않으마.”
“…아르미스 기사단이 어째서 우릴 적대하는 것입니까!”
상관을 잃은 요넬이 핏발 선 눈으로 그리 외치자, 기사는 갑옷에 붙은 기사단의 문양을 쓱 떼며 말했다.
“우리는 다모라 왕국에 사마린 기사단이다. 자네들을 적대할 이유는 충분하겠지.”
“…사마린!”
그 말에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니헤임 왕국의 아르미스와 비견되는 다모라 왕국 최강의 기사단.
그들이 어째서 아르미스 기사단을 사칭하여 이곳에 온 것인가.
“자자,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모두 병장기를 버려라. 너희들은 단순히 고용된 용병이라는 걸 아니까 순순히 따른다면 일이 모두 끝난 후에 풀어주겠다.”
“….”
용병들은 서로 눈치를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 그들은 고용되었을 뿐인 관계. 굳이 한 왕국의 중요 기사단과 적대해 피를 볼 이유가 없었다.
“…항복하겠소. 그러니 부디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오.”
요넬은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검을 놓았다. 그러자 기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것에 대답했다.
“내 명예를 걸고 보증하지.”
“다들.”
요넬이 뒤를 바라보자 용병들은 한숨을 내쉬며 병장기를 버린다. 그 앞에 있던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은 슬쩍 이진한을 바라봐왔다.
‘어떻게 할까요?’
‘음.’
이진한은 턱을 쓰다듬었다.
드러난 적의는 없지만, 그 눈동자에 서린 은은한 살기를 보아하니 어찌 되었든 나중엔 전부 죽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상황보다 저 안쪽에 있는 것이 더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검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들도 모두 병장기를 내려놓았다.
‘일단 대충 따르는 척해보자.’
여차하면 다 쓸어버리고 가면 될 일.
소드 마스터가, 마도사가 몇 명이나 있다고 해도 그의 상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철컥.
철컥.
용병들은 팔과 몸을 포박당하고 마법사들은 마력의 구속구까지 찼다. 단순히 인질을 잡는 것으로 꽤 공을 들인다 싶었지만, 시선이 마주치자 씩 웃어오는 기사들의 얼굴을 보아하니 무언가 의도가 다분한 행동인 듯했다.
“탄광 안쪽으로 들어간다. 행여나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엔 죽여라.”
심지어 탄광 안쪽까지 함께 데리고 가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까지 내린다. 용병들은 그렇게 사마린 기사단의 손에 붙잡힌 채 직전에 빠져나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이전보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니 안쪽으로부터 이질적일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왔는가.”
“밖은 문제없이 처리했습니다. 저쪽에서 움직이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는군요.”
“쯧쯧, 멍청한 녀석들. 눈앞에 보물을 두고 그리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니까 빼앗기는 것이다.”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비웃음을 토해낸다. 이진한이 보기에 대략 800레벨이 넘어 보이는 고위 마도사로 파악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노인은 구속된 용병들을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필요할까 싶어서 데려왔습니다.”
“잘했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이었거든.”
“…이 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서 무언가 불온한 분위기를 느낀 요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하임은 그 물음에 침묵했지만,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용병들은 뭣도 모른 채 그저 광산 방어 임무라며 투입됐겠군. 사실상 가장 피해자라 할 수 있어. 그러니 내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지.”
노인은 그 가느다랗고 앙상한 손가락을 뻗으며 벽 한쪽을 가리켰다.
“[디텍트]”
웅웅─.
푸른 마나가 마치 수면 위의 물결처럼 퍼져나가며 바위로 뒤덮인 벽에 닿았다.
그러자 원래의 풍경이 무너져 내리며 고풍스러운 형태의 커다란 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스릴 광맥? 그딴 것을 위해 우리가 여기까지 온 줄로 아느냐. 그건 단순히 외부의 이목을 숨기기 위해 퍼트린 거짓 소문일 뿐이다.”
노인은 크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뒤쪽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이진한은 새로이 나타난 문의 정체를 깨닫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저건.”
“이 너머에 있는 건 드래곤 레어다. 그것도 주인이 없이 막대한 보물과 재화가 잠들어 있는 천국이지.”
노인의 말에 이진한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