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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120화 (120/210)

◈ 120.

“보여주마. 압도적인 힘이라는 것을.”

맥스웰의 말에 이진한은 헛웃음을 흘렸다.

마계에 종속된 족속들은 다 같은 교육이라도 받는 것인가.

지금껏 만났던 이들 중 한 놈이라도 이리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이가 없었다.

‘메피스토 그 녀석처럼 현신이라도 하려나.’

이진한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여차할 경우를 대비해 강림을 준비했다.

후유증이 컸지만, 지금 당장 그것에 대비할 수단은 이쪽 역시 강림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맥스웰이 풍기는 기세는 메피스토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었다.

쿠우우웅─!

마기의 폭풍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시뻘건 혈류가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며 고래의 입안을 가득 채웠고, 머지않아 범람하기 시작하며 떨어져 내리던 진홍의 보옥과 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수라.

그 격전 가운데 이진한은 맥스웰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메피스토처럼 본신이 현현하거나 그 덩치를 거대하게 부풀릴 줄로 알았지만, 시뻘겋게 물든 그의 몸은 점차 부피를 줄여나갔다.

-죽이지는 않으마. 용사의 존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니. 허나….

맥스웰의 존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것을 인식한 직후, 이진한은 코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악마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마 위로 돋아난 한 쌍의 뿔.

짙은 마기가 서린 시뻘건 피부.

그리고 기다랗게 찢어진 샛노란 눈동자까지.

“더럽게 징그럽네.”

콰아아아앙-!

솔직한 감상을 내뱉은 대가로, 이진한은 다시 성벽에 처박혔다.

또 한 구역이 무너져 내린 그곳은 아비규환이 된 상태.

잔여 마기의 게이지가 적지 않게 소모된 것을 확인한 그는 짧은 기합과 함께 몸을 일으키며 악마화를 해제했다.

-이제 좀 본격적으로 해볼 마음이 든 것이냐.

맥스웰은 씩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어서 덤벼보라는 듯한 도발.

이진한은 뻐근한 목을 한 번 풀어주고는 인벤토리에 마검을 수납했다.

‘자, 그럼.’

도원경에서의 수련은 대현자 클래스를 활용한 전투 방식을 새로이 정립하게 해주었다. 맥스웰이 쉬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도원경 안에 있었던 ‘자신들’보다는 임팩트가 약했다.

이쪽에서 취할 수 있는 수단은 그야말로 무궁무진. 그래도 상대가 마족이니, 용사 클래스를 발동하려던 순간 뇌리를 스치는 좋은 생각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신」.”

대현자 클래스 전용 스킬 「무신(武神)」

도원경을 나올 때 대현자인 자신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던 스킬이 발동되었다.

[대현자 하위 클래스가 모두 비활성화됩니다.]

[무투 클래스 중 하나를 선택해주십시오.]

[선택한 클래스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대현자 전용 스킬 「무신」은 다른 클래스를 봉인하는 대신 무투 계열 클래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일시적으로 초월지경에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효과를 지녔다.

얼핏 생각한다면 치명적인 디메리트를 지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이 하나의 강대한 적을 상대할 땐 이야기가 달랐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클래스 변환]

「그랜드 소드 마스터」

스릉.

신도(神刀) 무라마사가 손에 쥐어졌다.

‘성기사이즈킹’ 아니, ‘베르너’라는 캐릭터로는 처음 맛보는 감각.

무엇이든 벨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전신에 차올랐다.

-…흠.

맥스웰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두 눈을 가늘게 뜬다. 샛노란 눈동자가 가로로 찢어지며 짙은 경계심을 나타내었다.

“오랜만이라 힘 조절이 미숙할 수도 있으니까 잘 버텨봐.”

이전에도 말했듯 이진한은 현자 이외에도 여러 캐릭터를 육성해 다른 클래스의 초월지경을 체험해본 적이 있었다.

검사 클래스의 초월지경인 그랜드 소드 마스터 역시 마찬가지.

보편적인 클래스인 만큼 대마도사와 더불어 가장 즐겨 사용했었다.

척.

신도(神刀)의 날이 지상과 수직으로 세워졌다.

몸의 무게중심이 극단적일 정도로 앞을 향해 쏠림과 동시에 무라마사의 시퍼런 궤적이 번뜩이며 날 서린 빛을 토해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 초월 스킬

「백야극광(白夜極光)」

쪽빛 섬광이 전장 위로 뒤덮인 시뻘건 마기를 무참히 베어 갈랐다. 형태만 어설프게 흉내 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

맥스웰은 기함을 토해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자고로 용사란, 무릇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법.

멸망의 빛을 띤 마기가 그 주먹 끝에서 용솟음친다. 그것은 북쪽 숲에서 보았던 메피스토의 것보다 더 순도가 높았으며,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맹한 기세를 띠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서로 다른 거대한 기운이 만나 부딪친 결과는 당연히 처참할 따름이었다.

그 가운데 선 이진한과 맥스웰은 끄떡없는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었지만, 주변에 있던 마물들은 모조리 휘말려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소멸했다.

성벽 쪽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의 여파로 잔뜩 균열이 간 부분들은 더러 무너져 내렸고, 심약한 자들 역시 더는 버티지 못한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혼란을 자아냈다.

“…이건.”

이건 이제 자신들이 아는 전쟁이 아니다.

떨리는 손으로 성벽의 난간을 붙잡고 있던 누군가가 중얼거렸지만,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거친 폭음에 누구의 귀에도 닿지 못한 채 흩어져 버렸다.

“흡!”

그랜드 소드 마스터로 클래스를 변환한 이진한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며 맥스웰을 압박했다.

대마도사보다 검사 클래스가 먼저 초월지경에 다다랐으면 좋았을 것을.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그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부풀며 전장 위로 깊은 상처를 새겨나갔다.

-으하하하하!

맥스웰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메피스토처럼 현신한 것은 아니지만, 마기를 극한으로 활성화한 「아수라」 상태는 싸울수록 강해지는 특성이 있었다.

마기로 시뻘겋게 휘감긴 두 팔이 쉴새 없이 휘둘러지며 마찬가지로 전장에 진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바.

점차 끓어오르는 열에 맥스웰은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었다.

-이것도 받아보아라!

가슴이 크게 부풀며 그의 앞으로 마기가 응집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맥스웰은 힘껏 허리를 뒤틀며 주먹에 탄력을 실었다.

-마탄(魔彈)!

“주먹으로 총까지 쏘는 거냐.”

응집된 마기가 주먹에 얻어맞아 초음속의 속도로 쏘아진다. 이진한은 이죽거리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천천히 무라마사를 들어 올렸다.

검사 클래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심과 벨 수 있다는 이미지였다. 소란스러운 전장 위로 순식간에 소리가 지워졌고, 고요한 무색의 세계에서 귀기 어린 집중력이 한 점의 극의를 끌어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 초월 스킬

「명경지수(明鏡止水)」

벤다는 개념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그 효과는 극명했다.

쏴아아아아-!

성벽과 함께 그를 집어삼킬 듯 덮쳐오던 홍해가 반으로 갈라지며 주위를 덮친다. 성벽으로 가는 여파는 이진한이 막아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맥스웰에게도 전장의 마물은 보호 대상이 아닌 듯 핏빛 물결에 휩쓸려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연발은 어떨까.

맥스웰은 씩 웃으며 자신의 앞으로 수십 개는 될 법한 마탄을 떠올렸다. 마치 전부 막을 수 있으면 막아바로는 듯한 그 도발에 이진한은 피식 웃으며 무라마사를 쥐었다.

“해봐.”

대마도사의 초월 마법은 이보다 더 매서웠으며, 신궁의 화살은 더 숨쉴 틈이 없었다.

고작해야 마탄 정도는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상대할 수 있다. 이진한이 그러한 자신감을 표출하자, 맥스웰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 등 뒤로 당긴 두 주먹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투다다다다─!

마탄의 세례가 성벽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자존심 싸움.

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이진한은 감각을 날카롭게 벼르며 무라마사를 휘둘렀다.

츠즈즈즈!

하늘로 쏘아져 떨어져 내리는 마탄들은 그 궤도가 완전히 꺾이기도 전에 격추당했다.

이진한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지 않았고, 맥스웰의 예상보다 한 발자국 더 먼저 그것들을 모조리 베어버린 뒤 한참이나 늦은 후폭풍이 터지는 가운데 전장 위를 매섭게 내달렸다.

쉬이이익-!

시퍼런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베어 가른다. 그것은 「아수라」 상태일 때의 맥스웰이라 할지라도 맨몸으로 받아내기에 부담스러운 위력. 그렇기에 숨겨둔 여력을 끌어냈다.

촤아악-!

그의 등 뒤로부터 두 쌍의 팔이 새로이 솟구친다. 제일 먼저 교차한 두 팔이 무라마사의 날을 막아냈다.

맥스웰은 씩 웃으며 이제 어쩔 것이냐는 모습으로 남은 네 팔을 움직였을 찰나, 이진한은 무라마사를 놓고는 등 뒤에서부터 용아청성창을 꺼내 들었다.

“클래스 변환, 그랜드 스피어 마스터.”

[클래스 변환]

「그랜드 소드 마스터」→「그랜드 스피어 마스터」

만운천뢰의 뇌광을 휘감은 시퍼런 창끝이 수십 번의 연격을 토해낸다. 그 갑작스러운 기습에 맥스웰은 찰나 틈을 드러냈다.

몸 곳곳에 깊은 구멍이 남으며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지만, 이내 두 팔로 가슴을 꿰뚫으려는 용아청성창의 창대를 부여잡으며 그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검, 창. 그다음은 무엇이지?

맥스웰은 그가 또 등 뒤에서 꺼내 들 무기를 경계했다. 하지만 이진한은 씩 웃으며 이번엔 빈손으로 맥스웰의 품을 파고들었다.

“클래스 변환, 투신(鬪神)”

[클래스 변환]

「그랜드 소드 마스터」 → 「투신(鬪神)」

꽈드득.

신체로 막중한 피라미터가 깃들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그랜드 스피어 마스터 역시 같은 무투계 클래스이긴 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투는 격투가 클래스라 할 수 있다.

투신은 격투가 클래스의 초월지경.

단순히 육체의 피라미터 수치로만 보아도 다른 클래스보다 3할은 더 높은 능력치를 자랑했다.

“이빨 꽉 깨물어라.”

쿵.

힘껏 휘둘러진 주먹 끝이 그 가슴팍을 파고든다. 맥스웰은 느닷없이 닥쳐온 그 충격에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을 토해낸바.

이진한의 주먹질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디딘 발끝이 힘껏 진각을 밟으며 그 힘을 극대화한다. 동시에 탄력을 받은 기세가 쉴 새 없이 연격을 쏟아내며 그 몸 위에 직접 타격을 꽂아 넣었다.

-놈!

지금껏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던 맥스웰은 패력의 악마로서 체면이 상한 것인지 얼굴을 한껏 구기며 흉신악상의 표정으로 남은 두 팔을 뻗어 이진한과 손을 맞잡았다.

꽈드득.

육체로 정점과 극한에 다다른 둘의 힘겨룸.

한치의 밀림 없이 나아가던 중 맥스웰은 다른 두 쌍의 팔로 붙잡고 있던 무라마사와 용아청성창을 내던지곤 그의 빈 옆구리를 공격해왔다.

“비겁하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조소를 보낸 이진한은 오히려 맥스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곤 힘껏 머리를 당기며 그 얼굴 자신의 이마를 박아넣었다.

쿵-!

-…컥!

설마 그가 박치기해오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지 맥스웰은 무력하게 당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빨 꽉 깨물라 했지.”

뭉개진 안면과 주저앉은 코로 피가 철철 뿜어졌고, 부러진 이빨은 신음과 함께 토해져 나와 이진한의 얼굴에 튀었다.

“더럽게 말이야, 쯧.”

힘겨루기에 해방된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무라마사와 용아청성창을 주워들며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자존심 싸움은 자신이 이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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