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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113화 (113/210)

◈ 113.

퍽, 퍼버버벅-!

단단한 바닥으로 수십 개의 화살이 쉴 새 없이 박혀 들었다. 심지어 촉 위에 농밀한 오러 결정을 머금고 있어 스치기라도 한다면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읏, 차!”

이진한은 기합을 토해내며 땅을 박찼다.

아무리 그라고 할지라도 쏟아지는 화살들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무리인 일.

심지어 자신을 노리는 이가 활잡이 클래스의 최상 격인 신궁(神弓)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온몸이 꿰뚫려 고슴도치가 될 것이 자명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쫄래쫄래 도망만 다닐 거지!”

새로운 화살을 시위에 걸던 신궁이 기가 막힌단 표정으로 말했다.

“누군 도망만 다니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이진한은 억울했다.

도원경에 들어온 직후, 그들은 이쪽의 한계를 돌파시켜주겠다고 운운하며 강제적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총 삼 단계로 이루어진 수련.

그 시작은 각 클래스의 자신과 해당 클래스의 스킬만으로 대련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부 자신보다 한 발자국 앞선 경지에 들어 있었다. 우위는커녕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것조차 힘들었으니 대부분 이런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도 피할 수 있는지 볼까.”

“……!”

불길한 검붉은 빛을 내뿜는 한 대의 화살이 시위에 걸린다.

이진한은 그것이 신궁 클래스의 초월 스킬인 「불가시의 운명」임을 깨닫고는 감각을 곤두세웠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불가시의 운명」 필중(必中)의 속성을 띈 스킬.

즉,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이진한은 신궁과 마찬가지로 시위에 청색 화살을 걸었다. 순도 100%의 미스릴로 만든, 현재 그가 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스킬을 발현하기 위함이었다.

“차징.”

웅웅─.

미스릴이 막대한 마나를 머금는다. 촉 끝에 휘몰아치는 기류의 속성은 「쾌속」.

상대보다 격이 떨어지는 스킬이니 위력을 극대화시켜 그대로 뚫어버릴 생각이었다.

파아앗!

대현자의 눈이 극한으로 개안했다.

이진한이 신궁보다 나은 점이 딱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대현자의 눈이었다. 대현자 역시 클래스로 나뉜 탓에 신궁은 그 눈을 지니지 못한바. 물론 신궁이란 이름답게 먼 거리를 꿰뚫어 보는 눈을 지녔으나, 대현자의 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보인다.’

「불가시의 운명」의 궤적을 읽어낸 이진한은 활을 살짝 비틀며 시위를 놓았다.

농밀한 오러의 잔향이 나선을 그리며 위력을 몇 배나 더 증폭한다. 이 정도로 힘을 실었다면 아무리 신궁이 쏘아낸 화살이라 할지라도 온전한 위력으로 자신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할 터.

“…꾸엑.”

그 직후 이진한은 가슴을 때리는 묵직한 충격에 벌러덩 나자빠졌다.

‘또 졌다.’

백만분의 일 정도 되는 확률로 같이 화살을 쏘아보낸 신궁 역시 자신처럼 벌러덩 나자빠졌을 수 있었지만, 이진한은 피식 웃으며 담담히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한 번만 진 것이 아니었다. 도원경에 들어오게 된 지 벌써 사흘째.

외부와 시간의 흐름이 다르고, 시간의 유예마저 정지된 상황인지라 쉬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이어진 모든 대련에서 패배했다.

단 한 번도 승기를 점하지 못했으며, 단 한 번도 우세를 보인 적이 없었다.

“쯧쯧쯧, 한심한지고.”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자기 자신한테.”

“그 좋은 눈을 가지고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뭐, 필요해? 가질래? 빼줄까?”

괜히 기분이 상한 이진한이 이죽거리자, 신궁은 한숨을 내쉬며 그 머리 위에 다리를 쭈그리고 앉았다.

“앞서 있었던 대련들에서 무엇을 깨달았느냐.”

“너희들 성격이 더럽게 고약하다는 거.”

“우리는 너다. 스스로 얼굴에 침 뱉는 꼴임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봐. 내가 이렇게 싸가지 없을 리가 없는데.”

신궁은 그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토해내곤 손가락을 뻗어 이진한의 이마를 툭툭 쳤다.

“이때까지의 대련은 이기라는 것이 아니다. 네 부족함을 깨달으라는 것이지.”

“부족함?”

“너도 느꼈겠지만, 우리는 너보다 딱 한 발자국 진일보했다. 하지만 그 간격은 어마어마하게 크지. 어쭙잖게 생각하다가는 평생 따라오지 못할 만큼.”

“그러니 약점을 채워 넣어라?”

“요지를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완성이라는 이름이 실체를 이루어서 네 앞에 있다. 그 본인인 네가 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그러니까 그 조건을 알려달라고.”

이진한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레벨, 경험치, 숙련도.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 필요한 건 사소한 계기뿐이다. 마경에서 대마도사의 경지를 이뤘을 때를 보아라.

블랙 드래곤 벨라시온과의 격전 중 느닷없이 대현자가 해금되면서 초월지경을 이루지 않았는가.

용사 클래스는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각성의 요건을 이루었다. 그러니 그 두 개를 생각하자면 초월지경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무언가의 계기였다.

“날강도이기 짝이 없군. 식사를 차려줬더니 떠먹여 달라는 것이냐.”

“그래, 못하겠으니까 떠먹여달라고. 응애!”

이진한은 자신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주변에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저어될 게 무엇이 있겠는가.

신궁은 거의 경멸에 가까운 수준으로 그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협지 같은 걸 생각해보아라.”

“…….”

그 말에 이진한의 몸이 움찔했다.

자신과 같은 기억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러한 것까지 알고 있는가. 하지만 신궁은 그 시선에도 별다른 내색 없이 빈손을 들어 올렸다.

“활이 있고 화살이 있다. 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왼손이 텅 빈 허공을 움켜잡는다. 마치 정말로 그곳에 활이 있는 것처럼 자세를 취했고, 보이지 않는 화살이 그 위에 걸렸다.

묘한 현기(玄機)가 서려 있는 말.

하지만 이진한은 샐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 선문답으로 있어 보이는 척은 하지 맙시다. 피차 다 아는 사이에.”

“…그런 머리로도 잘도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구나. 일레이나가 보면 한심스럽게 바라보겠어.”

“나름대로 잘 해나가고 있거든? 성과도 괜찮게 나오고 있고.”

이진한은 단번에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고인물 짬밥이 몇 년인데 초심자들도 가르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신궁은 보이지 않는 화살을 허공에 휘적거리며 그를 보았다.

“그래. 어차피 서로 간에 큰 차이가 나니 이끌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겠구나. 하지만 정작 네놈이 자기 잘난 맛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곳에 온 건 모두 허사가 될 따름이다. 네 강함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니.”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고?”

이진한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클래스 전부가 초월지경에 다다르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게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렇다고 스킬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 못했더라면 다른 쟁쟁한 랭커들 사이에서 우뚝 설 수 없었을 터.

“시시콜콜 떠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그들의 옆으로 다른 이가 걸어 나온다. 어깨에 검을 이고 있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이진한이었다.

“사실 나는 대마도사 다음으로 각성하는 초월지경은 단연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아닐까 싶었다. 마법과 함께 주력으로 사용하는 클래스이니 말이야.”

“…나도 그런데.”

“그렇지? 뭐, 서로 같은 사람이니 생각이 같은 것도 당연한가. 그래도 네 눈은 이미 그 경지를 맛보았다. 맞서 싸우기까지 했으니.”

“시기로 따지자면 검호와 싸울 때 각성했어야 했겠네.”

마법이 봉인당 한 상황에서 순수한 무력으로만 그를 상대해야 했다.

마경에서 벨라시온과 맞서 싸운 것과 비슷한 위기.

만일 무언가의 개연성이 존재한다면 자신은 그곳에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했어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무언가 결격 사유가 있다는 것일 터.

이진한은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뭐, 시시콜콜한 것은 싸우면서 알게 되겠지.”

검 끝이 자신을 향한다. 수없이 반복한 대련 와중 검사 클래스의 자신과 싸워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내심 검은 마법과 함께 주력으로 사용했으니, 형편없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 슬슬 시작해볼까.”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씩 웃으며 검 끝을 까딱였다. 도발에 응한 이진한이 인벤토리로부터 천천히 신도 무라마사를 꺼냈을 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력을 다하도록.”

“…전력이라면, 악마화를 하라고?”

“여기선 모든 스킬에 대한 리스크가 없다. 약마화의 힘도 끝 없이 사용할 수 있지. 단, 강림 쪽은 예외다. 그건 아무리 도원경이라 해도 부담이 쌓이거든.”

“그렇다면야.”

콰아앙─!

짙은 마기가 사방을 짓누른다. 그 몸은 순식간에 검은 일색으로 뒤덮였고,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형태를 이루었다.

“흠.”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이진한은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그 기세가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검을 들어 올리며 눈짓했다.

“준비는 되었나.”

“얼마든지.”

쉬익─.

이진한에게 대답이 나옴과 동시에 질풍이 둘 사이를 갈랐다.

신궁과 싸울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악마화의 보정으로 수 배는 활성화된 대현자의 눈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며 몸을 움직였다.

검 끝이 잘게 흔들린 직후 수십 번의 참격에 쏟아져내린다.

이진한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마검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평소와 같이 마기를 아낄 필요도 없으니.’

일 검에 전력을 담았다. 진각을 내디딘 바닥이 무너지며 땅이 꺼졌을 정도로 강대한 힘이었다.

“운이 좋았지. 이 세계에 와서 제일 처음으로 싸운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검호라는 풋내기인 것이 말이야.”

이진한이 어렵지 않게 자신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자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이 격째를 휘두른다. 같은 자세와 같은 힘의 배분으로,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대칭되는 모습이었다.

“애송아, 검이라는 건 말이다.”

하지만 검 끝에 피어난 의지는 깊은 바다와 같이 고요하기 짝이 없던바.

찰나 후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검 위로 찬란한 빛이 서렸다.

“이렇게 휘두르는 것이다.”

쉬아아아아아악─!

세상이 베어 갈라졌다.

기다란 참격은 농밀한 마기의 응집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그의 몸을 찢어발겼다.

이진한은 전신을 강타하는 맹렬한 충격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그런 의지가 무색하게도 얼마 버티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고, 몇십 바퀴나 바닥을 구른 끝에 여력이 다해 널브러졌다.

“…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했던 말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운이 좋았지. 이 세계에 와서 제일 처음으로 싸운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검호라는 풋내기인 것이 말이야.

“진짜로 풋내기였네.”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고 있던 짙은 구름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 검호 따위는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경지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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