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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106화 (106/210)

◈ 106.

장비 세팅과 방향성.

가장 기초적인 두 개의 작업이 끝났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스펙업이지.”

“스펙업이요?”

“뭔가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나요?”

엘레오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일레이나는 두 눈을 빛내며 이진한을 바라보았다.

고대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다. 특별한 수련법 한두 개 정도 지니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제 와서? 라는 느낌이 더 들 정도이지 않은가.

“있지. 확실하고 엄청난 효율을 지닌 방법이.”

짧게 고개를 끄덕인 이진한은 막 계정을 생성한 따끈따끈한 뉴비를 보는 듯한 고인물의 눈으로 인벤토리를 활짝 열었다.

그러자 「삼라만상」으로 구축된 초원의 바닥으로 수많은 무언가가 수북이 쌓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영약?”

“처음 보는 것들도 있네요. 천 년 전의 것인가요?”

일레이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자 엘레오노라는 신기하단 눈빛으로 그중 하나를 주워 매만졌다.

오스칼 제국의 황녀였던 그녀는 마법사의 길을 걸으며 각종 영약을 거쳐왔다. 황실 비고에 보관된 것도 수없이 많았으며, 엘레오노라의 환심을 얻고자 진상된 것들 역시 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진한이 꺼내든 영약은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신기한 마음이 컸다.

“각자 한 줄씩 잡고 다 먹어.”

“이걸 다요?”

일레이나는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늘어선 영약의 줄을 가리켰다.

각자의 것을 나눈 듯 세 줄로 놓여 있는 영약이 최소 서른 개씩은 있다. 저걸 전부 다 먹었다간 배가 터져버리고 말 터.

하지만 그녀가 반문한 것은 고작 그러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영약으로 얻을 수 있는 성취나 힘은 한계가 있는 건 아시죠? 확실하고 엄청난 효율이라고 하셨잖아요. 이건 완전히 그와 반대인데요?”

영약도 약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상 내성을 지닌다. 처음에는 괜찮으나 많이 섭취하면 섭취할수록 그 효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 테고, 나중에 가선 그저 배를 불리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 되는 남자라면 이것을 모르지 않을 터.

미르엘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진다는 것은 흘리는 땀에 비례한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익히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기사 쪽은 마법사와 달리 이쪽은 힘의 한계를 늘리는 방식이 명확하게 규정돼있다. 영약 몇 개 섭취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다 맞는 말이야. 좋은 의문들이야. 막연하게 내 지시에 따르기보단 의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지.”

이진한은 자신을 바라보는 의문스러운 시선들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마구잡이로 영약을 섭취한다면 그 말이 맞겠지. 하지만 이건 우리가 만들어낸 최고의 효율을 끌어내는 배합법이다.”

“우리? 고대 영웅분들이요?”

“그래. 수백, 수천 번에 달하는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냈지.”

이진한은 과거를 떠올리며 바닥에 깔아놓은 영약들을 바라보았다.

영약이라고 모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속성이 있고, 적용되는 시간도 달랐으며, 내성이 생기는 저항까지의 유예에도 차이가 있었다.

일레이나의 말대로 무작정 영약을 먹는다면 점차 내성이 쌓이기 시작할 테고 흡수하는 힘이 격하된다. 하지만 이것은 고인물들이 찾고 찾아낸 끝에 서로 단점을 상쇄하며 최대한의 효율로 손실 없이 그 기운을 흡수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니 믿고 먹어. 전부다.”

“…안할 생각은 아니었지만요.”

일레이나는 툭 하고 자리를 잡아 하나둘씩 영약을 먹기 시작했다. 단지 궁금해서 의문을 제기한 것뿐이지 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엘레오노라와 미르엘 역시 그 뒤를 따라 영약을 섭취해나갔고, 열 개쯤 먹었을 때 두 눈을 크게 떴다.

“…!”

머리카락이 쭈뼛 하늘 위로 솟았다.

보통 한 영약을 섭취했을 때 최초로 얻는 기운은 70%를 기준으로 삼는다. 나머지 30%는 손실이 일어나거나 몸 곳곳으로 흩어진바. 이것은 나중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처리 방법을 달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진한이 배치한 순서대로 그것들을 먹자 일말의 손실 없이 거의 온전하다 할 수 있을 정도의 흡수율을 보였다.

영약의 질 역시 예사 것이 아닌지 몸이 절로 떨려올 정도의 순정한 기운이 가슴을 휘몰아치며 심장을 방망이질했다.

“….”

짧은 시간 서로 눈을 마주친 일레이나와 엘레오노라는 판단을 끝냈고, 이내 미친 듯이 그것들을 먹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좀 기괴하게 생긴 것들이 많네요.”

“저 둘은 마나 위주로 때려 박는 건데, 너는 몸까지 신경 써야 하잖아.”

“으음.”

미르엘은 살짝 미묘한 얼굴로 아이의 형태를 한 인형설삼을 꽉 깨물어 씹었다.

텁텁한 흙 맛과 함께 씁쓸함이 입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녀 역시 먹고 먹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

일레이나와 엘레오노라는 영약 섭취를 끝냈기에 명상에 들어갔다. 각자 스스로 내부의 기운을 관조하고 마나를 다독여 흡수한 기운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미르엘 역시 몇 개만 더 먹으면 끝이 보일 찰나, 꾸역꾸역 먹던 와중 살짝 방심하고 말았다.

끅.

작지만, 선명한 소리가 고요한 초원 가운데 울려 퍼진다. 그와 동시에 미르엘의 하얀 피부가 새빨갛게 뒤덮였다.

“이, 이건…!”

“…괜찮아. 둘은 명상 중이라 듣지 못했을 거야. 나도 못 들은 걸로 해줄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이진한은 그렇게 말하며 위로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슬쩍 시선을 피했다.

‘베르너 님한테 들려서 창피한 거라고요.’

미르엘은 거의 울 듯 울상을 지으며 남은 영약을 마구잡이로 쑤셔 넣었다.

***

일레이나와 엘레오노라는 한 시간의 명상 끝에 섭취한 영약의 기운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진한은 이전보다 한층 더 선명해진 그녀들의 안광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취 쪽을 보자면 엘레오노라가 더 클 것이다. 마도사에 이른 일레이나는 이미 최대 폭이 높으니 실제로 늘어난 총량은 미미한 정도. 하지만 그녀의 경지에서 그러한 성취를 얻으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했을 터이니 둘 다 얻은 것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몸이 훨씬 가벼워졌어요.”

“평범하게 노력했으면 몇 년은 더 고생했을 시간이 단축되었네요.”

둘 다 이런 적은 처음인지 살짝 들뜬 기분 인 듯했다.

이진한은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며 재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이네. 이제 한번 끝냈으니 아홉 번만 더 하면 돼.”

“…예?”

일레이나와 엘레오노라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아홉 번의 섭취 끝에 첫 번째 단계인 스펙업이 마무리되었다.

일레이나와 엘레오노라는 아무래도 한계가 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오늘 저녁 안먹어도 될 것 같아요. 아니, 내일 아침까지도요.”

“나도.”

투정 어린 목소리였지만, 밝은 표정을 보니 썩 나쁜 기분만은 아닌 듯했다.

일단 표면적인 성취만 보자면 일레이나는 같은 마도사보다 1.3배 정도, 엘레오노라는 1.8배에서 최대 2배 정도까지의 향상을 이뤄냈다.

마법사의 마나 총량은 쉬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니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수치였다.

“음.”

미르엘도 자신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신체 수준은 확연하게 올라갔다. 단련을 흘리는 땀으로 얻는 힘만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정말로 놀랄 정도의 업그레이드였다.

‘고대 영웅분들은 모두 이런 식의 과정을 겪으신 걸까.’

그녀는 자신 역시 그 과정을 밟고 있기에 살짝 설레는 시선으로 이진한을 바라보았다.

“자, 그러면 미르엘부터 시작할까?”

“네?”

“배부르게 먹었으면 힘써야지.”

이진한은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영약을 과잉 섭취하게 한 것은 이제부터 혹독하게 굴리기 위해서였다. 죽기 직전까지 몰린다면 세맥 곳곳에 흩어져 있는 남은 기운까지 온전히 흡수할 수 있으리라.

“일단 분광십이검부터 전수해줄게.”

이진한은 손수 검을 뽑아 들며 분광십이검의 초식을 전수했다.

검을 휘두르는 방법, 시선, 자세, 그리고 때에 따라 어떻게 마나를 운용해야 하는지까지. 그 하나하나의 요소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 분광십이검이라는 쾌속의 검법이었다.

“…숙달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군요.”

“그걸 단축하기 위해서 영약을 먹인 거니까 걱정하지 마. 분광십이검을 한 호흡에 전부 펼칠 수 있다면 넌 마스터 경지에 올라설 수 있을 거다.”

“마스터.”

이진한의 말에 미르엘은 사뭇 흥분된다는 표정으로 검을 다잡았다.

소드 마스터.

검의 길을 걷는 자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경지였다. 물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조차 완성으로 가는 길목이 아니던가.

“초식이랑 운용법은 숙달했지?”

“예. 나머지는 디테일적인 부분입니다.”

“그런 건 대련을 통해 적응하면 빨라. 지금부터 쉴새 없이 몰아칠 거다. 물론 그 가운데선 분광십이검만 써야겠지.”

이진한은 그리 말하며 제 양쪽 손목에 팔찌를 찼다. 철컥하는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졌을 때, 미르엘은 그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건 뭔가요?”

“보다시피 수련용 팔찌다. 네 수준에 맞추면서 이쪽도 수련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나도 수련이 좀 필요해서.”

이진한 역시 벽에 다다라 있었다.

현재 그가 이룬 초월지경은 대마도사와 용사뿐. 각각 마법사와 성직자 클래스의 초월지경으로, 그 두 개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녀석들은 날려버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존재했다.

‘주력이 마법이긴 하지만, 검 쪽은 그보다 더 많이 사용한다. 애초에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것도 기를 꺾어놓고 검으로 찍어 누르려는 거니까.’

일반적으로 무투 계통의 클래스는 하나가 초월지경에 오르면 다른 클래스의 수준도 마스터 중위 까지는 대폭 상승했다.

하지만 이진한은 대현자 클래스의 하위로, 그것들을 모두 극한까지 찍은 상태.

즉, 검사든 뭐든 하나만 초월지경에 도달한다면 다른 무투 클래스 역시 무언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진짜로 고룡하고 한판 붙어봐도 될 것 같은데.’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아레나의 의뢰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충분한 물자와 충분한 지원만 있다면 단신으로 싸워도 고룡에게 밀리지 않을….

아니, 이것은 섣불리 속단하지 않기로 했다.

아레나의 의뢰는 현재 단계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

그리고 아직 초월지경에 오르지 못한 상황에서 김칫국부터 마실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수련용 팔찌를 착용함으로써 본래 힘의 98.5%를 제한했고, 1.5% 정도만을 발휘함으로써 미르엘의 수준에 맞췄다.

즉, 서로 사이에는 그 정도 격차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압-!”

“흡!”

미르엘은 이제 막 익히기 시작한 분광십이검을 맹렬하게 떨치며 나아갔고, 이진한은 검호로부터 습득한 검성류 오의를 분석 해체해서 만든 독자적인 검술로 그것에 맞섰다.

기세는 더없이 날카로웠지만, 품새나 모양은 어설프기 그지없다. 이것을 진지한 대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도였지만, 서로를 향하는 기세는 더없이 진지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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