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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82화 (82/210)

◈ 082.

망령은 대상의 혼을 옭아매어 생전의 강함을 일부 끌어낼 수 있다. 서먼 스켈레톤은 그보다 하위 마법으로 아쉽지만 모두 하향 평준화된 힘을 지닌다. 초토화된 겨울 숲에 일어난 스켈레톤은 고작 백여 기.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끊임없이 밀려드는 망령 군단에 짓밟힐 것이 분명했지만, 이진한은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았다.

쿵.

「블랙 다이아몬드」에 서린 마기는 엄밀히 말하자면 마족의 마기(魔氣)와는 다른 성질을 지녔다.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가. 어찌 되었든 같은 마기로 불리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든 일맥상통한다는 소리. 그 역시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망설임 따윈 지니지 않은 채 거침없이 블랙 드래곤의 마기를 뽑아내었다.

“「인챈트」”

마기 뿐이 아니었다. 화살 촉을 만들기 위해 남겨 놓은 여분의 미스릴을 꺼내 전부 스켈레톤에게 처박았다.

‘월드’에 있어서 스켈레톤은 무궁무진한 진화 가능성을 지닌 소환수.

어떤 미친놈은 스켈레톤의 머리뼈만으로 거대한 스컬 드래곤을 만든 놈도 있었다. 그러니 그 외피에 마기와 미스릴로 강화하는 것은 그 미친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고작’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 터.

파아아앗─.

눌어붙은 옷가지와 썩은 살점은 그들의 몸을 뒤덮은 마화(魔火)에 의해 타들어 간다. 녹아내린 미스릴은 뼈 위에 근육을 형성하고 마기가 스며들어 몇 배나 거대한 몸이 되도록 부풀렸다.

[Lv.700 「흑요석의 기사」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당연히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쿵.

저마다 사뭇 달라진 오러를 내뿜는 기사들이 흉포한 기세로 망령 군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양 떼 사이에 늑대를 풀어놓은 것만 같은 활극. 그들은 망령이 손에 걸리는 족족히 사지를 찢어발기며 끝없이 밀려들던 검은 파도에 제동을 가했다.

“장관이네요.”

“그렇지? 처음 시도해보는 건데 생각보다 잘 나왔네.”

잠시 상황을 살피러 온 것인지 엘레오노라가 감탄을 내뱉으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블랙 다이아몬드」에 축적된 힘의 삼분지 일이 소모되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대단위 마법을 내리 꽂은 것보다 더 파괴력이 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엘레오노라는 그것을 한데 모아 묶으며 완드를 들었고 의욕이 서린 눈동자로 그 옆에 섰다.

“저도 지지 않을 거예요. 그간의 수행 성과를 보여드리죠.”

“기대할게.”

그녀는 일레이나와 같이 혹독한 수련을 거쳤다. 물론 미르엘처럼 바닥을 구르며 몸으로 익힌 것이 아니라 정신력을 단련시켰다.

마법사의 기본은 흔들리지 않는 평정. 그렇기에 정신에 주는 압박을 강하게 하는 종류의 훈련을 가했고, 단시간에 제법 돋보이는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아마 비슷한 레벨의 마법사들은 쉽게 찍어 누를 수 있겠지.

디테일한 컨트롤이나 마나의 제어는 경지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깨닫는 것.

지금은 그보다 총량과 끈기를 늘리는 것이 좋았다.

“그럼 가볼게요.”

“그래도 조심은 하고. 여차하면 그냥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걱정 붙들어 매셔요.”

엘레오노라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사뭇 든든해진 모습. 옅게 웃음을 토해낸 이진한은 「흑요석의 기사」들이 망령들을 찢어발기는 광경을 계속 구경했다.

그러던 찰나.

콰직.

신나게 망령들을 학살하던 기사 중 하나의 머리가 무참히 깨어져 나간다. 하늘에서부터 뚝 떨어져 내린 언월도가 그것을 부수고 몸째로 박혀 든 것이었다.

뒤이어 장대한 신체를 지닌 거한이 바닥으로 쿵 하고 내려섰다. 얼어붙은 동토가 움푹 파이며 균열이 날 정도였으니 그 기세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 수 있었다.

스읍-.

거한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근육으로 두터운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절정에 달한 그것이 이내 성벽을 향해 내뱉어졌다.

『오 너 라 ─ !』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외침. 천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이진한은 절로 나오는 헛웃음을 억누르지 못하며 고개를 떨궜다.

“진짜 정상적인 놈이 없네.”

툭.

가벼운 몸놀림으로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그는 아직 망령 군단이 닿지 못한 대지 위에 내려섰다.

Lv.1004 「투르마크 줄루」

【스물여섯 번째 사도】

‘스물여섯 번째 사도?’

처음 보는 명칭에 이진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사도, 일단 평범한 뉘앙스는 아니었다. 교주인 아이돈조차 그러한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교단에서도 제법 한가락 하는 녀석일 터.

어찌 되었든 그리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네놈이 그 명성이 자자하던 드래곤 슬레이어인가. 설마 《영원》의 마녀들과 붙어먹고 있을 줄은.”

투르마크는 이진한보다 최소 1m는 더 커 보이는 장신이었다. 전신은 마치 전국시대 무장처럼 연식이 느껴지는 시뻘건 갑옷을 둘렀고, 그 손에는 제 키만 한 언월도가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하늘을 향해 날 서 있었다.

“예의상 묻는 건데 어디 교단이지?”

“나는 아스타로트 님을 섬긴다.”

“…이거 또 상당히 유명한 이름이 나왔네.”

미들턴에서 만났던 마르바스는 서열은 높지만,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이름에 속했다. 하지만 아스타로트는 하위 서열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매체에 이름을 남긴바. 이진한 역시 대충은 그 특징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무식할 정도의 무투파였지. 이런 놈을 종자로 들인 것만 보아도 알만하군.’

붕붕붕붕-.

언월도가 허공으로 세차게 돌려지며 귀청을 찢을 듯한 파공성을 내뿜는다. 그와 동시에 투르마크는 이진한을 내려다보며 짙은 미소와 함께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투사(鬪士)는 목숨을 건 혈투를 즐기지.”

네놈은 투사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이진한은 기가찬다는 듯 웃으며 손을 뻗었고, 곧 인벤토리에서 소환된 용아청성창이 그 손에 쥐어졌다.

“투사라고?”

파지직.

시퍼런 뇌전이 그 위에서 용솟음친다. 창끝에 서린 뇌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투르마크의 한쪽 눈가가 꿈틀거렸지만, 이진한은 그것보다 먼저 허리를 비틀며 팔을 뻗었다.

쉬아아아아악, 캉!

용아청성창의 끝이 시원하게 허공을 꿰뚫는다. 하지만 그것은 투르마크의 몸에 닿기 직전, 내질러진 언월도의 날에 막혀 멈춰 세워졌다.

“뒤쪽으로 한 명 몰래 넘어갔지? 녀석은 투사가 아닌가 보군.”

“…음.”

이진한의 말에 투르마크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로서는 찔러보는 말이었으나, 상대의 반응을 보아 다른 한 명의 초월자가 이곳을 회피해 내부로 들어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입만 번드르르한 놈이었군.”

“…투사를 모욕하는가.”

“투사 운운을 계속하고 싶으면 저 안쪽으로 들어간 놈 머리를 잡고 끄집어내던가. 그러면 진정한 투사라고 인정해주마.”

“네놈.”

투르마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기개는 분명 일군을 이끄는 수장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애써 당황을 숨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군. 저 안쪽에 들어간 놈이 너보다 상급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함부로 말하기를 꺼리지 않을 터. 이진한의 말에 투르마크는 더 이상의 휘둘림은 사양이라는 듯 언월도에 힘을 가하며 대치하고 있던 창끝을 밀어내었다.

“고작 마녀 몇 명이 이 군세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어차피 시기의 차이다. 이 싸움은 앞으로 있을 승리에 대한 피로연에 불과한 것이니.”

쿵.

투르마크의 굵은 다리가 거칠게 바닥을 내려찍었다. 제 막중한 무게를 실은 진각. 언월도의 날을 타고 그 힘이 떨어져 내리자 용아청성창의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힘껏 발버둥 쳐보아라. 나는 네놈의 피와 살점으로 얼룩진 유열을 한껏 만끽하겠다.”

험상궂은 얼굴 위로 사뭇 살벌한 기색이 서린다. 하지만 몇 번이고 들어왔던 그런 틀에 박힌 대사로는 그에게 위협을 줄 수 없을 따름이었다.

“대사에 창의성이라곤 쥐뿔만큼도 없네.”

쿵.

이진한이 힘껏 발을 구른다. 투르마크는 그것을 자신의 압박에 밀리지 않기 위해 기세를 북돋는 것이리라 판단했지만, 자신의 머리 위에 서리기 시작한 막대한 마나의 응집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마르바스 녀석들이 말해주지 않았나 보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지?”

“…이런!”

“내 주력은 무술이 아니라 마법인걸.”

콰아아아앙─!

선명한 자색 빛을 띤 뇌전이 지상을 향해 내리쳤다.

대마도사 클래스 초월 마법 「영원의 번개」

“끄으아아아아악!”

트루마크는 괴성을 지르면서도 제 언월도를 피뢰침으로 사용해 그것을 흘려보내려 했지만, 초월 마법이 괜히 초월 마법이겠는가. 어쭙잖은 시도로는 더 큰 화를 입을 뿐이었다.

“멍청한 투사라 다행이야.”

이진한은 히죽 웃으며 상대를 도발했다.

첫수는 기분 좋게 들어갔지만, 고작 이것으로 끝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최소 카라반처럼 악마화를 하거나, 저 스물여섯 번째 사도라는 것에서부터 기인한 특이점을 보일 터.

“끄으윽.”

하지만 트루마크는 비틀거리면서도 언월도를 세워 그것을 부여잡은 채 제 자리에서 버텨내었다. 영원의 번개는 그 전신을 휘감은 채 제 존재감을 여실 없이 드러내고 있는바. 생각보다 견딜만 해보이는 모습에 이진한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용아청성창을 놓은 채 검을 뽑아 들었다.

“괜히 초월지경이 아니라는 건가. 몸뚱아리 하나는 무식하게 튼튼하네. 그렇다면….”

파아앗-!

찬란한 신성력이 검 위에 휘몰아치며 기다란 빛줄기를 그려내었다. 영원의 번개로 약해진 상태에서 신성력에 직격당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터.

이것도 맨몸으로 버텨낼 수 있는지 보자는 이진한의 표정에 투르마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쿵.

직후 시커먼 마기가 그의 발밑에서 솟구치며 커다란 전신을 감싼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이진한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검을 들었고, 이내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마기가 갈라지며 날카로운 섬격이 닥쳐왔다.

쐐애애애액-!

코앞까지 다가온 일 점에 그는 용아청성창과 검을 교차해 그 앞을 막아 세웠다. 그야말로 본능적이라 할 수 있는 움직임. 하지만 그 위에 서린 힘은 심상치 않았고, 이진한은 그대로 쭉 밀려나 성벽에 충돌했고, 이내 등 뒤로 막대한 충격에 숨을 들이켰다.

“…이, 아파 뒤지겠네, 진짜!”

그는 신음을 토해내며 언월도와 함께 제 머리를 이쪽으로 들이 밀어온 트루마크의 턱을 거칠게 발로 찼다. 하지만 녀석은 이전과 다른 날쌘 움직임으로 그것을 가볍게 피해내더니 뒤로 훌쩍 물러나 바닥에 내려섰다.

-푸르륵.

거친 콧김이 뿜어져 나온다. 카라반의 악마화는 양반이었던 듯 트루마크의 몸은 마치 황소의 그것처럼 변했다.

전신은 시꺼먼 색으로 뒤덮였고, 두 다리는 이진한의 몸보다 두꺼운 근육이 팽배해 있다. 머리는 한 쌍의 구부러진 뿔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이 마치 황소의 것을 뚝 떼어 가져온 듯했다.

“미노타우로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반인반수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 성벽과 함께 산산이 짓이겨주마!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포효와 함께 투레질을 내뱉던 트루마크가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마치 포탄이 쏘아진 듯한 기세. 이진한이 기겁하며 땅을 박차자 녀석은 그대로 성벽과 충돌했고, 제 말대로 그 두꺼운 성벽을 와르르 무너뜨리며 커다란 균열을 내었다.

“이런.”

이진한은 황급히 흑요석의 기사들에 명령을 내렸다. 성벽에 균열이 나자 대기하고 있던 망령 군단 역시 이곳을 향해 몸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사들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몸을 들이밀며 시체의 산을 쌓아오는 녀석들에 파묻히게 된다면 답이 없는바.

그렇기에 이 주위를 감싸는 반원을 그리며 무너진 성벽을 사수하고자 했다.

-으하하하하!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에서 트루마크가 거칠게 포효한다.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로 짐승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였다.

「서브 퀘스트」 ─ ∑미궁의 지배자

동시에 서브 퀘스트가 떠올랐다. 그렇다는 것은 적어도 유적지에서 싸웠던 베히모스 만큼의 강자란 소리일 터.

“테세우스라도 되라는 건가.”

이진한은 용아청성창을 부여잡으며 두 눈을 날카롭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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