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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69화 (69/210)

◈ 069.

“이야, 이것 참. A랭크 용병께서 제 의뢰를 받아주신다니 참으로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릭스 제니엄은 두터운 살집을 푸들거리며 눈앞에 자리한 남자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는 원래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제 이름을 딴 상단을 운영하는 상인이었다. 수완이 좋았던 것인지 시기가 잘 맞았던 것인지 사업은 순풍에 돛 단 배처럼 매끄럽게 흘러갔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엔 끝이 없는 법.

손대는 일마다 모두 대박 나기 시작하자 그릭스는 자신이 상업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다달이 벌어들이는 푼돈 따위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더 큰 사업, 더 많은 돈, 그것에 혈안이 된 그릭스는 이때까지보다 더 크게 사업을 벌였고, 이제까지의 성공이 우스울 정도로 대차게 말아먹었다.

이 추운 날 북쪽 숲이 자리한 노스 벨헤드렘에 온 것도 막대한 빚을 탕감하기 위한 한탕을 위해서였다.

“하우젠나임 님께서 합류해주신다면 든든하기 그지없지요. 다른 두 A랭크 분들과 더불어 충분히 마녀를 상대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릭스는 남은 재산을 짜내 북쪽 숲에 있는 희귀 자원을 캐내기 위한 원정대를 꾸렸다.

마녀를 상대하기 위한 3명의 A랭크 용병과 숲을 돌아다니는 마수를 상대하기 위한 수십의 인원까지.

그는 눈앞의 용병을 향해 손을 비비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건 절대 실패해선 안 돼.’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지게 된 막대한 빚은 턱밑까지 옥죄어왔다. 만일 이 여정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자신은 그간 일궈왔던 것을 비롯해 장기조차 빼앗겨 버릴 터.

절대로 그런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A랭크 둘에 마수 처리를 위한 하위 용병들 수십인가.”

“예. 이미 만반의 준비는 끝마쳤습니다.”

그릭스는 상대에게 호감과 확신을 주기 위해 최대한 긍정적으로 웃어 보였다.

원래는 세 명의 A랭크 용병과 함께 이곳으로 왔지만, 모종의 마찰 때문에 떠나가고 말았다. 급한 대로 하위 랭크 용병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 찰나 걸려든 대어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행이 있다. 모두 셋이지. 한 명은 검사고, 두 명은 마법사다.”

“당연히 그 세 분도 함께 계약해야지요. 참으로 든든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하하.”

그릭스가 하우젠나임의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크게 흔들 때, 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A랭크 모집이 끝났네. 그러면 원래 일정대로 곧 출발하겠군.”

이진한은 살이 뒤룩뒤룩 찐 상단주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제 일행을 바라보았다.

“용병 중 유명한 애들 있어?”

“음, 저는 다 모르는 이름이네요.”

엘레오노라가 고개를 젓기에 일레이나를 향하자 그녀 역시 마찬가지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A랭크의 숫자도 적은 게 아니라서요. A+나 S랭크 이상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유명세를 떨치기 힘들죠.”

이진한은 그 말에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고기 등급도 아니고 A니, A+니 하는 것이 우스웠지만, 원래부터 이런 세상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릭스 상단에 A랭크라는 이름으로 고용된 용병은 마도사 둘에 소드 마스터, 정확히는 스피어 마스터 한 명이었다.

셋 다 모두 초입 수준으로 개개인의 능력치를 따진다면 일레이나 정도 선에서 월등히 찍어누를 수 있는 차이였다.

“진짜로 유명하거나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오지에 올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지.”

이진한이 일레이나의 말에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일 찰나, 함께 그릭스 상단의 관리인이 그들을 찾아왔다.

“준비는 끝났나. 출발은 예정대로 삼십 분 뒤에 할 것이니 서둘러주게.”

“알겠습니다.”

이진한은 C랭크 용병으로 이 원정에 참여했다. SS랭크 용병패를 내밀면 이때까지와 마찬가지로 비싼 보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 경우 마녀와의 전면전에 최전방으로 나서야 했다.

지금은 상대의 전력을 모르는 이상 조금 살폈기에 자중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몇 번의 퀘스트로 돈도 많이 벌었고, 저 배불뚝이 상단주가 자신의 원래 몸값을 지불할 정도로 돈이 많아 보이지 않아 그런 결정을 내렸다.

“다들 장비는 잘 착용했지. 자칫 방심하면 얼어붙을 테니까 조심하고.”

“네.”

“문제없어요.”

“저도 확인했습니다.”

이진한은 후드에 털이 달린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며 제 일행을 돌아보았다.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에겐 그가 직접 겨울용 로브를 만들어주었다. 그것을 본 일레이나는 자신 역시 만들어달라고 칭얼거렸지만, 애초에 그녀는 체온 조절까지 자동으로 되는 고급 로브를 가지고 있었기에 일축되었을 따름이었다.

“임시로 인챈트 한 거지만, 하루 정도는 효과가 갈 거야. 원정대 일정은 3일이니까 그때마다 걸어줄게.”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베르너 님.”

피부를 에는 듯한 칼바람에 다른 이들은 몸을 떨었지만, 이진한 일행은 마치 봄바람을 맞은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출발하겠소이다! 다들 마차에 탑승해주시오!”

곧 그릭스 상단주의 명이 떨어졌는지 용병들은 삼삼오오 마차에 탑승했다. 이진한을 비롯한 그녀들 역시 배정받은 좌석에 다른 이들과 함께 탑승했고, 마차는 곧 얼어붙은 땅을 구르며 도시 밖으로 향했다.

‘북쪽 숲까지는 약 두 시간.’

이진한은 저 넓게 펼쳐진 눈밭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새하얀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의 깨끗함.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엘레오노라도 다른 이들의 눈치를 의식해서인지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크게 뜬 눈으로 그 경치를 즐기는 듯했다.

각자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이라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각자 일행과 잔잔한 대화만 나눴을 따름이었다.

눈 내리는 벌판을 밖을 구경하고 있던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마차는 곧 북쪽 숲에 이르러 멈춰 섰고, 용병들은 하나둘씩 마차에서 내린 뒤 몸을 풀기 시작했다.

“오.”

뒤따라 내리던 엘레오노라의 손을 잡아준 이진한은 곧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을 흘렸다.

이 앞부터 지평선까지 높게 치솟은 침엽수림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어떻게 저리 울창한 숲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 나무 자체의 냉기 저항이 아니라면 무언가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것일 터.

“대단하군. 이게 북쪽 숲.”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가.”

다른 용병들 역시 이곳으론 초행길인지 저마다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 서둘러 움직입시다!”

두꺼운 로브를 동여매고 나온 그릭스 상단주가 그들을 재촉했다.

그가 저 앞에 펼쳐진 경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급박한 것인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자 용병들도 아쉬움을 달래며 뒤를 따랐다.

“그러면 진입하겠습니다.”

“목적지까지는 대략 한 시간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길잡이는 노스 벨헤드렘의 토박이인 레인저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북쪽 숲을 드나든 경험이 있는지 능숙한 모습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은 지형인데.’

그가 보유한 마스터 어쌔신 클래스는 사냥꾼과 레인저 클래스의 상위 호환이었다. 하지만 숲에 들어온 직후부터 그 기감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 것을 보니 무언가 특별한 요소가 있는 듯했다.

척.

앞서 나가던 레인저들이 일시에 멈춰 섰다. 그중 일부는 뒤따라오던 본대로 되돌아왔고 그릭스 상단주를 향해 말했다.

“이 앞으로 화이트 울프 때가 머물고 있습니다. 아마 이쪽의 경로를 계산해서 일시에 습격해 오려는 것 같은데 어쩌시겠습니까.”

“그 규모는?”

“많아봤자 60마리 정도일 겁니다.”

“돌파한다. 이 정도 숫자의 용병이라면 화이트 울프 수십 마리 정도는 손쉽게 해치우겠지.”

“알겠습니다.”

A랭크를 제외하고도 30여 명에 달하는 용병이 있었다.

화이트 울프가 까다로운 마수라곤 하나 용병들의 전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겨낼 것이 분명했다.

아우우우우-!

그렇게 얼마를 나아갔을까 높은 울음소리와 동시에 수십 마리의 화이트 울프가 몸을 날려왔다.

그 이름대로 눈처럼 새하얀 털을 지닌 늑대들로, 다른 지역에 있는 블랙 울프나 그레이 울프보다 몸집이 배는 더 큰 것이 특징이었다.

“고기는 제법 맛있을 것 같네.”

마차를 지키는 임무를 배정받은 이진한은 이쪽으로 닥쳐오는 화이트 울프에게 화살을 쏘아 보내며 입맛을 다셨다.

“제 동료가 이곳에 와서 먹어봤다고 했었는데 질기다고 하더라고요. 잡내도 좀 심하고.”

“그런가, 아쉽네.”

그 옆에 선 일레이나 역시 느긋한 태도로 바람의 칼날을 휘두르며 마수의 접근을 막아냈다.

마녀가 나타나지 않은 이상 그 둘이 본격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었다.

다만,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에게 실전 경험을 겪게 해주어 경험치를 올리기엔 알맞은 기회였기에 그녀들은 저 앞쪽에서 화려하게 날뛰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특히 미르엘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사시사철 겨울이 끊이지 않는 곳인지라 대부분의 몬스터가 빙결 저항이 높다. 그렇기에 그녀가 지닌 빙결의 권능이 잘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을 비웃듯 용병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보였다.

“빙결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물리력으로 활용하나. 제법 머리 썼네.”

“저런 형태의 힘은 있는 그대로 쓰는 것보다 한 차례 가공을 거친 것이 더 효율이 높으니까요.”

힘껏 대검을 휘둘러 화이트 울프의 머리를 단숨에 쳐내고, 옆에서 닥쳐오던 녀석에게는 발밑에서 날카로운 얼음 가시를 솟구쳐 몸을 꿰뚫어버린다. 신체의 힘과 권능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전투. 방식 자체는 제법 센스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진한의 눈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후.”

홀로 열 마리의 화이트 울프를 베어낸 미르엘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간 수행의 성과를 보이기 위하여 최대한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검을 휘둘렀다. 새하얬던 눈밭은 어느새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었지만, 그녀는 호흡이 조금 흐트러졌을 뿐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센 놈들이 와도 괜찮을 텐데.”

미르엘은 슬쩍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이진한을 살폈다.

예상한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었을까. 화이트 울프가 아니라 설인(雪人) 정도의 마수가 왔다면 조금 더 제 실력을 드러낼 수 있었을 터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전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수십 마리의 화이트 울프는 한 마리도 남기지 않은 채 척살 당했고, 상단 쪽은 일꾼 한 명이 팔을 다치는 가벼운 상처를 빼곤 피해가 없었다.

그렇게 본대가 정비를 끝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직전.

저벅.

눈을 뭉쳐 대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미르엘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너, 이름은?”

“…….”

미르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곤 제 앞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이 자는.’

하우젠나임.

원정대의 세 명뿐인 A랭크 용병으로 스피어 마스터라 하였다. 그런 그가 왜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일까.

미르엘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그 질문에 답했다.

“엘, 엘입니다.”

“엘인가. 어때, 내 파티에 들어오는 것은.”

“…예?”

“네 파티의 조합을 보았다. 엘, 네가 전위이고 어중간한 마법사가 두 명, 그리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궁사가 한 명 껴 있었지.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네게 가중되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지.”

미르엘은 멍한 얼굴로 하우젠나임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남자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네 실력은 내 파티에 들어오기 부족하다. 하지만 조금 전의 전투에서 보인 센스를 보니 성장의 가능성이 제법 보이더군. 나라면 널 완성에 이르기까지 키워줄 수 있다.”

하우젠나임은 제품에서 A랭크 용병패를 슬쩍 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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