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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61화 (61/210)

◈ 061.

【바포메트의 계약자 - 악마화(惡魔化)】

〔잔여 마기 ─「♠」─ ●●◐○○〕

-모든 스테이터스가 1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 마법 저항력 증가.

-신성 계열 저항력 대폭 감소.

-어떤 식으로든 피격을 당한 대상은 치유력 감소 및 저주를 입습니다.

“…….”

이진한은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월드에 존재하는 모든 클래스를 만렙까지 육성한 경험이 있다. 네크로맨서나 흑마검사 같은 어두침침한 클래스로도 활동했고, 악마화 역시 몇 번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바포메트와의 계약에서 기인한 악마화는 이전의 것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이 아니게 된 듯한 그런 이질적인 감각. 정신이 울렁거리며 귓가로 유혹하는 듯한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자신 정도의 저항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금세 자제력을 잃고 타락했을 터.

스르륵─.

악마의 것으로 침식당해 있던 눈이 다시 원래의 것으로 되돌아온다. 악마화가 풀린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의지에 움직이던 몸의 주도권을 다시 되찾은 것이었다.

꽈아악.

이진한은 힘이 가득한 제 손아귀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도박수에 가까운 행위였다. 가장 손쉽게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과감히 결정을 내린 것이었고, 그것이 보기 좋게 들어맞았을 따름이었다.

만일 그 상대가 바포메트 본인이나 드래곤 같은 부류처럼 아득한 차이가 나는 강함을 지닌 존재라면 사용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데미안은 그럴 만큼 강하지 않았다. 분명 지금의 자신보다 뛰어난 것은 맞지만, 그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의 수준. 그렇기에 악마화한 뒤에서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보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이 구역을 뒤덮은 결계의 파괴를 중점에 두었다.

슈우욱.

데미안의 공격에 파손되었던 결계가 다시금 수복돼가며 부서진 틈을 메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진한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발을 굴렀을 따름이었다.

파각.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안티 매직 쉘의 결계가 산산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이면 모를까 뒤흔들린 골조를 완전히 박살 내는 것쯤은 그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디텍팅].”

대현자의 눈이 결계의 기원을 따라 사방으로 움직이며 곳곳에 숨어 있는 마도사들을 찾아냈다.

그 숫자가 모두 열둘. 사실 고작 이 인원 가지고 초월지경에 오른 대마도사의 마법을 봉인했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필시 막대한 자원과 아티팩트를 사용했겠지만, 정면으로 맞부딪쳤다면 일 분도 버티지 못하고 전부 폭사했을 터.

‘미리 준비해놓는 이점이 이렇게 크지.’

슬슬 대인전 대책도 생각해놓아야겠다는 것을 끝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껐다. 이제 마도사들은 경거망동하지 못할 터.

더 까불어 온다면 한 명씩 추살하면 그만이었다.

“정말, 계책 하나는 감탄이 나오는군.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는가.”

“아니, 네가 그렇게 강할 줄 몰랐거든. 중간에 수정했다.”

단순히 초월 마법만 봉인되었다면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대현자 이전 현자의 클래스만으로도 다른 초월지경의 랭커들과 자웅을 겨뤄 탑클래스에 이를 정도의 실력자였으니.

〔잔여 마기 ─「♠」─ ●●◐○○〕

‘악마화를 유지할 수 있는 잔여 마기는 절반 정도. 기사 몇 명 죽인 걸로 이 정도면 잘 쳐준 거긴 한데.’

상한선 역시 짧다. 처음 기사들을 쳐죽인 것으로 게이지 세 칸이 가득 찼지만, 데미안과 몇 번 투닥거린 것으로 벌써 반 칸이 소모되었다.

척.

이진한은 용아청성창을 꺼내 손에 쥐었다.

“…….”

그러다 문득 정말 뜬금없게도 자신이 이 세계로 와서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의 클리셰대로라면 헛구역질하거나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터.

하지만 이진한의 정신은 그리 나약하지 않았다.

애초에 월드 출시 이후부터는 현생을 살았던 것보다 월드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다. 그렇기에 고작 그런 것 따위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

왼손엔 용아청성창 오른손엔 마검 그라나다.

그 두 개를 움켜쥔 이진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데미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도류도 아닌 좌창우검이라. 신기한 조합이로군. 헌데, 기껏 결계를 깨놓고 마법은 사용하지 않을 셈인가?”

“왜, 겁나나?”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그렇네. 무력으로는 그리 돋보이는 수준이 아니었으니 자네의 진가는 마법에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드래곤 슬레이어의 업적을 달성하기 어려웠을 테니.”

같잖은 도발에 이진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대답하지 않자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공기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초월 마법을 남발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적재적소란 말이 있지 않은가.

같은 초월지경인 데미안에게 초월 마법을 쏟아붓는다면 이전과 같이 서로 공멸하고 말 터. 소모전으로 간다면 지원이 없는 자신 쪽이 불리했다.

관건은 확실한 한 방을 때려 넣을 기회.

그리고 거리를 벌리는 것.

파앗-!

그러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거리를 좁히는 수밖에 없었다. 거친 파공성과 함께 그 둘의 신형이 동시에 사라졌고, 정확히 그 중앙에서 충돌했다.

쉬이익-!

선공은 이진한이었다. 왼손에 쥐어진 용아청성창이 회전하며 날카롭게 허공을 꿰뚫는다.

데미안은 카타나를 사선으로 그어 올리며 제 가슴을 노린 창끝의 궤도를 어렵지 않게 빗겨내었지만, 그 직후 시커먼 마기를 흘리는 마검이 목을 물어 뜯어왔다.

“과연, 그런 식인가.”

데미안은 사납게 웃으며 검을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몸을 뒤로 눕혔다. 두 다리는 땅에 단단히 고정된 터라 흔들림은 없었고, 마검의 칼날을 피해낸 뒤 오히려 역공에 나섰다.

파가가각!

카타나가 빗나간 용아청성창을 휘감으며 그 자루에 흠집을 낸다. 직후엔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쥐고 있던 팔을 잘라버릴 듯 기다랗게 검로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진한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찰나 두꺼운 실드가 팔 위로 생겨나더니 그 공격을 대신 맞았다. 물론 카타나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는 순식간에 실드를 찢어발기고 갑주의 팔 부분을 박살 냈지만, 이진한은 그 잠깐의 틈 사이에 팔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을 빼앗긴 탓일까.

아주 잠깐 데미안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동시에 시퍼런 궤적이 이진한의 목을 베어 갈랐고, 잘려나간 머리가 하늘 위로 붕 떠올랐다.

“이제 그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데미안은 씩 웃으며 제 사각을 찔러오는 살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카타나의 칼날이 번쩍이자 솟구치던 용아청성창의 날이 막혔고,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둘은 훌쩍 몸을 날려 얼마간 거리를 벌렸다.

그림자 분신과 순신을 이용한 연계였으나, 너무 자주 사용한 탓인지 읽히고 말았다.

이진한이 땅에 침을 뱉어내며 검과 창의 자루를 다잡을 찰나, 데미안은 카타나를 어깨에 걸치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하군. 마법만 풀렸을 뿐인데 공격의 틀 자체가 바뀌다니. 일전의 실력은 채 오 할조차 발휘하지 못했던 것인가.”

“결계 안에 있을 때가 좋았지?”

이진한은 제자리에서 톡톡 튀어 오르며 물었다.

클래스 하나가 풀린 것인데 싸울 맛이 난다. 이럴 때면 단일 클래스 캐릭터를 할 때는 어떻게 초월지경까지 키웠는지 알 수 없었다.

“흠.”

데미안은 카타나를 가볍게 돌리며 들어 올렸다.

전투 스타일이 바뀌긴 했지만, 서로 간의 격차는 여전히 자신이 우위다. 한 번 쓰러뜨렸으니 두 번도 어렵지 않을 터.

마법이라는 변수는 신경 쓰이는 것이었으나, 딱 그 정도의 거슬림이었다.

‘스승님의 명대로 제압해서 데려가지 못할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지만.’

짧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든 데미안은 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입을 열었다.

“뭐, 좋다. 이쪽도 제법 재미있게 되었으니 나도 진심을 보여주지.”

데미안은 카타나의 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단지 그것뿐인 변화.

하지만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던 그 기세가 마치 대해(大海)의 물결처럼 잠잠해지며 깊은 무게가 실렸다.

“…….”

상대의 기세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것을 본 이진한 역시 슬쩍 몸을 낮추며 만반의 주의를 기울였다.

방어구는 이미 전부 물리 방어에 특화된 대(對) 검사클래스 전용으로 바꾼 지 오래. 정면으로 타격을 입는다고 하여도 한 번은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쿵.

누구랄 것 없이 발을 내디뎠다. 바닥이 움푹 파이며 대지가 갈라졌고, 거친 소닉붐이 일어나 사방을 휩쓸었다.

이전과 달리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격돌이었다.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광음과 뒤집어지기 시작하는 지형에 그 싸움이 얼마나 격렬한지만 대략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먼저 본격적인 공세를 취한 것은 데미안의 쪽이었다.

검성류 오의 아라크네(Arachne)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공간을 분할 했다.

보이지 않는 선이 그 주위를 뒤덮었고, 고유 영역인 권역을 이루며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아라크네는 검술이 아닌 공간의 인지.

모든 검성류 오의의 초석이 되는 기술이었다.

“……!”

이진한은 그 안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자신이 무언가의 선(線)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신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 감각은 벨데르에서 벨라시온이 쏘아 보낸 브레스에 직격당하기 직전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츠즈즈즈─.

카타나의 궤적이 유려하게 허공에 휘둘러진다.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을 뿐인데 십자(十) 형태의 검결이 닥쳐왔다.

‘정면은 안 돼.’

무슨 수작인지는 몰라도 큰 기술에 정면으로 싸움을 걸 생각은 없다. 전체적인 화력은 자신이 강할지 모르나,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순간 출력을 따라가긴 힘들었다.

일방적인 폭격이 아니라면 그것은 지양해야 하는바.

그렇기에 용아청성창과 그라나다를 겹쳐 그것을 흘려내려 했다.

스아아악─!

하지만 충돌 직전 카타나의 도신이 희뿌옇게 변하며 이진한의 방어를 통과해 직접 그 몸에 부닥쳤다.

그는 헛바람을 토해내면서도 황급히 몸에 실드를 전개했지만, 몸이 붕 떠오르는 충격과 함께 저 뒤로 쭉 밀려나고 말았다.

“진짜 개 씹…….”

이진한은 이를 꽉 깨물며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가슴을 내려다보니 십자 형태로 깊은 상처가 새겨져 있다. 장비를 검사클래스 전용으로 세팅하지 않았더라면 몸째로 베어졌을 터.

그만큼 상처가 깊었다.

‘관통검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의표를 찌르기 좋은 기술이나 익히고 사용하는 것이 번거로워 어지간해선 다들 기피 하는 부류였다.

데미안과 비슷한 수준의 랭커들은 그것을 제외하고도 강력한 스킬이 많을 텐데, 설마 관통검을 사용해오다니. 악취미도 그런 악취미가 없었다.

“좋은 갑주를 입고 있군. 어지간해서는 방금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장비탓은 하지 않겠지? 헐렁한 유카타를 입고 온 것은 네 선택이니.”

이진한이 제 상처를 어루만지며 이죽거렸다.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마기(魔氣)가 새하얀 연기를 흘리며 회복시키고 있다. 악마화 상태라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력이 아니라 그를 뚫어낼 화력이었다.

〔잔여 마기 ─「♠」─ ●◐○○○〕

방금의 일격을 당한 것으로 상당한 마기가 줄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얼마 남지 않았을 터.

가능한 악마화가 풀리기 전에 승부를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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