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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대현자가 되었다-50화 (50/210)

◈ 050.

이진한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던전에 파묻혀 있는 용아청성창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찾을 수 있겠어요?”

무너진 산맥 위, 부유 마법으로 두둥실 떠오른 가운데 일레이나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곧게 뻗은 푸른색 자루에 고급스러운 황금빛 무늬가 새겨진 창은 무술에 문외한인 자신이 보아도 감탄이 나올 수준의 것이었다.

더욱이 가장 사용 빈도가 높아 주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그라 할지라도 산맥 자체를 뒤집어내고 파묻혀버린 창을 되찾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아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이진한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잔해를 바라보았다.

대현자의 눈이 그 너머를 투시했고, 이내 까마득하게 깊숙한 곳에서 파묻혀 있는 용아청성청의 본체를 발견해냈다.

‘회수.’

그는 상태창을 조작해 그 끄트머리에 있는 설정을 활성화했다.

일반적인 무기라면 그런 기능은 없었지만, 용아청성창 같이 최상위 무기들은 개인에 귀속했을 때의 한정으로 보호 기능을 추가할 수 있었다.

하루에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것으로 사용 즉시 인벤토리로 회수된다. 발동하기 위해선 대략적으로 그 위치를 파악해야 했지만, 대현자의 눈이 있는 이진한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음.”

쉭-.

인벤토리에 돌아온 용아청성창이 다시금 그의 손으로 소환된다. 일레이나는 그 비현실적인 현상에 한숨을 내쉬었고,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은 역시, 라는 표정으로 두 눈을 빛냈다.

“자, 그럼.”

창을 멋들어지게 한 바퀴 돌린 이진한은 옅게 숨을 내뱉었다.

용아청성창을 손에 쥐자 뻐근했던 근육들이 다시 최상의 상태로 되돌아가며 밑바닥까지 가라앉아있던 전의가 다시 불타오르는 듯했다.

목표는 저 밑에서 페르포치아 왕국의 수도인 그르노블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바포메트의 본체였다.

쿵-쿵-.

왕국의 군대가 결사의 각오로 그 앞을 가로막으며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전력으로는 잠깐 멈춰 서게 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따름이었다.

파아앗-!

시퍼런 불꽃이 산맥으로부터 이어진 숲을 태우며 끔찍한 광경을 자아낸다. 왕국의 마법사들이 그것을 막아내는 광경을 본 엘레오노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망칠 때 저것 때문에 고생했죠. 무슨 불꽃인지는 몰라도 일반적인 실드로는 막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니.”

“일레이나라면 가능했을 텐데?”

이진한은 고개를 돌려 일레이나를 바라보았다.

마도사 클래스인 그녀의 배리어라면 어렵지 않게 바포메트의 브레스를 막아낼 수 있을 터. 하지만 일레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만티코어가 문제였죠. 그놈들 때문에 마나를 다 써버려서 막아낼 엄두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당신이 깨어날 때까지 버텼으니까 이쪽의 승리가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

바포메트의 브레스가 절정에 이르자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실드는 순식간에 뚫렸다.

마도사 정도로 보이는 이가 애써 배리어를 다시 펼쳤지만, 그것 역시 가장자리부터 좀 먹히며 일그러질 뿐 그리 오래 버티긴 힘들어보였다.

“흡-!”

이진한은 힘껏 용아청성창을 내던졌다.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허공을 꿰뚫은 그것은 저 멀리 날아가 정확히 바포메트의 머리 위에서 멈춰 섰다.

“「만운천뢰(萬雲天雷)」”

던전 안에서 바라칸에게 내리꽂혔던 벼락은 장난이었다는 듯 시퍼런 뇌광이 폭발적으로 바포메트의 머리를 강타했다.

구우웅-.

지금껏 멈추지 않았던 녀석의 거체가 비틀거리며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이진한 일행과 반대편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레펠은 희망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베르하치의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 그래도 이건.”

물론 베르하치 역시 저만한 규모의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 바포메트 그 본신에 엄청난 항마력이 있지 않았는가. 그것을 일격으로 꿰뚫고 한 발자국이나마 뒤로 물러날 정도로 충격을 주었다는 것은 쉬이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 기세를 힘입어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이 가호를 떨쳤고, 빛 무리가 일어나 바포메트의 전신을 속박하는 결계가 되었다.

탁.

“여기 있었군.”

“…베르너님!”

이진한이 그들 앞에 내려서자 레펠은 반색하며 다가왔다. 함께 있던 베르하치도 엉거주춤하는 태도로 뒤따라오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춰서고 말았다.

“…….”

옅은 한숨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드래곤 슬레이어니, 몬스터 군단을 물리친 구세주니 모두 믿기 힘든 사실. 한 명의 인간이 그 모든 업적을 어떻게 이루는가.

하지만 그 전제가 바뀐다면.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좀 더 위대한 종족이라면 충분한 개연성을 얻게 되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과 심연을 품은 듯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눈동자, 수려한 이목구비를 지닌 외모는 감히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는 겉의 로브를 비롯해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었고, 그 전신에 서린 기세는 고고한 현자와 같은 기품이 깃들어 있었다.

즉, 결론은 하나였다.

‘유희 중인 드래곤인가.’

베르하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분은?”

“아, 베르하치 왕실 마도사 님이십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해오는 베르하치의 모습에 이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레이나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경지로 왕실을 대표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마도사였다.

하지만 그가 나선다고 할지라도 바포메트를 막기엔 역부족일 터.

“수도는 현재 피난 중입니다. 적어도 한 시간은 더 녀석의 발목을 붙잡아야 하는데…….”

레펠은 말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카라반이 폭주하기 시작했을 당시 공략대는 이진한의 기지에 의해 겨우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나온 직후 피 웅덩이에 쓰러져 실신한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했다. 지금은 회복한 듯 비교적 멀쩡한 모습을 보였지만, 바포메트와의 싸움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쓰러뜨릴 수 있다.”

“…정말입니까.”

레펠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마치 자신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듯한 시원한 발언이다.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뜨릴 수 있다.

다른 이라면 헛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 수 있을지 궁리하라고 일축했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보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믿을 수 있었다.

“그러면…….”

“그러면 계약서는 다시 써야지.”

“…예?”

레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공략 방법이나 작전을 말할 줄 알았던 그 입에서 계약서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다니?

“그, 그것은 바포메트를 쓰러뜨린 이후에…….”

“아쉽지만, 이쪽은 그런 걸 믿을 정도로 녹록지 않아서.”

이진한은 서늘한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합의는 없다. 자신의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떠나겠다는 기세였다.

그렇기에 레펠이 대체 얼마를 내걸어야 하나 고민할 찰나, 그간 침묵하고 있던 베르하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천만 골드. 왕실 마도사의 이름으로 보증하겠소. 저 악마를 쓰러뜨려 준다면 왕실에서 최소 천만 골드를 보상으로 드릴 것이오.”

“너무 짜군. 미들턴에서 몬스터 군단과 마르바스 교단의 암약을 막아내고 받은 것이 천오백만 골드다. 수도가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 테니 적어도 두 배는 받아야겠는데.”

“…삼, 삼천만?”

레펠은 짐짓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

이번 공략대 구성으로 투자한 것만 해도 이천만 골드가 넘는 재화가 소모되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왕실의 재정이 크게 흔들리진 않겠지만, 나름대로 큰 지출인 것은 분명한 일. 그런 가운데 삼천만 골드가 추가로 나간다면 분명 작지 않은 파장이 있을 것이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소. 길드에서 내건 보상은 분명 천만 골드일 텐데 어째서 천오백만 골드인 것이오?”

“영주에게 500만…….”

“영주가 하사한 것은 분명 감사의 개념이라고 들었거늘.”

뻥튀기를 들킨 이진한은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당당하게 나가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말했다.

“싫으면 말던가. 이쪽은 나름대로 호의를 베풀어서 무리하면서까지 도와주려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따진다면 어쩔 수 없지.”

“하하, 따지려는 것이 아니었소.”

베르하치는 옅게 미소를 짓고는 옆에 있던 레펠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천만 골드, 책임질 수 있겠는가. 천만 골드는 왕실 마탑의 이름으로 내놓겠네.”

“…그 정도라면 상황이 상황이니 폐하께서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던 레펠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것을 확인한 베르하치는 이내 이진한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삼천만 골드, 준비됐습니다.”

“…….”

오히려 당황한 것은 이진한이었다.

처음과는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닌가. 처음엔 강하게 나가면서 2천만 골드까지 그 폭을 줄이려 했는데 이리 순순히 받아들일 줄 몰랐기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저희는 바포메트의 발을 묶는 대에 사력을 다하겠습니다. 쓰러뜨리지 못해도 피난할 시간을 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그러지.”

이진한은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분명 천만 골드 이득이었지만, 왜인지 상대 화법에 말린 감이 없잖아 있었다.

‘설령 5천만, 아니 1억 골드를 요구하더라도 이쪽의 손해가 아니지.’

베르하치는 떨떠름해하는 베르너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왕실 재정이 거덜 나겠지만, 드래곤의 힘을 빌려 고대 악마를 무찌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득이었다.

수도에 피해가 없다면 복구 사업을 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고대 악마를 쓰러뜨린 것으로 왕국의 위상은 더욱 올라갈 터.

파각-.

그때, 허공으로 무언가 부서지는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급히 수도에서 전부 데려온 사제들이 만들어낸 결계가 바포메트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균열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면 먼저 움직이지.”

이진한은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르려 할 찰나, 그 뒤에 있던 베르하치가 황급히 불러세웠다.

“하나만, 하나만 이야기해주실 수 있소?”

“무엇이지?”

“…노르디움 전하께서 마검을 집으심으로 저 악마가 소환되었다고 들었소. 만에 하나 당신이 저 악마를 격퇴한다면 전하께서는 무사히 생환하실 가능성이 있습니까.”

“…….”

이진한은 고개를 들어 바포메트를 바라보았다.

이전에 마주했던 마왕, 마르바스와 같이 레벨조차 표기되지 않는 압도적인 격의 존재.

그런 것을 소환했다면 제물이 된 왕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소멸했을 것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겠군.”

어린 왕자의 결말은 변하지 않았다.

베르하침 역시 그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테지만, 이진한은 상자의 뚜껑을 열지 않았다.

…배려라면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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