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1.
만티코어 두 마리와의 전투는 공략대에서 처음으로 부상자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다행이라면 죽은 이는 없었고, 그마저도 사제들의 축복으로 회복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잠시 휴식하겠습니다. 각자 정비하도록 하지요.”
레펠은 공략대에 휴식을 내렸다.
피해를 막기 위해 제일 동분서주했던 그 역시 제법 지친 상태. 당장 이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들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제너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레오노라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만티코어와의 전투 직후 이진한의 모습을 찾았다. 그 예사롭지 않은 활 솜씨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었기에 도움을 구할 생각이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보게.”
“네?”
“레이먼, 그 친구는 어디 갔는가?”
“그게…….”
엘레오노라는 머뭇거리며 말을 아꼈다.
어떻게 둘러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미르엘이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대신 말을 받았다.
“레이먼 님이라면 만티코어와의 교전 직전에 뒤쪽에서 뭔가 느껴진다면서 살피러 가셨습니다.”
“뒤쪽?”
“예. 아마 다른 몬스터의 기척이었겠죠.”
“흠.”
제너드는 미간을 좁히며 어둠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자신과 같은 블랙 워커였으니 어지간해선 위험에 빠지지 않겠지만, 이런 부류의 던전에서 홀로 활동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지양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것을 모르지 않을 터니 제법 급박한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클 터.
왜인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인원이 비는군요. 레이먼 윌리엄스 마법사께선 어디 가셨습니까?”
각 파티를 돌며 공략 대원의 상태를 점검하던 기사 역시 그의 공백을 눈치챈 듯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제너드는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이 답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며 기사를 바라보았다.
“만티코어가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에 뒤쪽에도 몬스터의 기척이 있었소. 그래서 그쪽을 부탁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군.”
“그렇다는 것은.”
“어쭙잖은 몬스터에 당할 남자는 아니니 필시 어디 숨어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허락해준다면 몇몇을 이끌고 수색하고 싶소만.”
“…부단장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내는 건 힘들 겁니다.”
“알겠소. 금방 오지.”
기사가 떠나고 제너드는 그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걱정은 하지 마시오. 그는 그리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니.”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
엘레오노라는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곧 제너드가 모험가 서넛과 함께 지나온 길의 수색을 나갔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미르엘은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블랙 워커라면 그런 이미지가 있으니.”
둘은 이진한이 당했을 거라곤 추호도 생각지 않았지만, 굳이 제너드의 배려를 거절하진 않았다.
***
두 마리의 만티코어를 쓰러뜨린 후 그 주위를 수색하던 공략대는 던전 안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적당한 지형을 고른 뒤 그곳을 중심으로 야영지를 구축했고 온갖 마법과 보초를 세운 뒤 휴식에 들어갔다.
“다 모였군요.”
레펠은 각 파티의 리더를 불러 모았다.
그린 스콜피온 용병단의 조장, 모험가 길드의 리더인 제너드, 교단의 사제, 그리고 적색 마탑의 마법사와 일레이나까지.
그는 제 앞에 자리 잡은 다섯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상의하고 싶습니다. 1차 조사대의 기록은 첫 번째 만티코어와의 교전까지입니다. 그 뒤에 나타난 두 마리는 기록에 없던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큰 피해 없이 쓰러뜨렸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으니.”
“확실히.”
제일 처음 말을 받은 것은 그린 스콜피온의 조장, 가나온이었다.
짙은 갈색 피부를 지닌 그는 미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상처가 인상적인 사내로, 제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좌중을 바라보았다.
“계약을 수정할 필요는 있겠지. 회의에서 우리가 상대할 것은 만티코어가 아니라 베히모스 한 개체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아까는 그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어서 싸운 것이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군.”
“맞는 이야기군. 우리 쪽에서도 계약과 이야기가 다르다며 불만이 나오고 있었소.”
가나온의 말에 제너드가 의견을 보탰다.
그뿐만이 아니라 적색 마탑의 마법사나 신성 교단의 사제 역시 마찬가지인 표정. 오직 일레이나만이 말을 아낀 채 조용히 시선을 보냈다.
“…물론, 그 부분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생각이었습니다. 왕실 측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상정하고 제게 위임권을 넘겨주었죠. 최소 5할의 추가 보상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음.”
가나온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계약금이 적지 않은 가운데 5할을 보장받는다면 굉장히 흡족한 성과였다. 더욱이 최소라는 것은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추가 적으로 보상이 더 붙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 의견에 동조했던 제너드나 다른 이들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서, 공략 방안은요?”
일레이나는 이제 회의 안건에 집중하자는 뜻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레펠은 그것을 달리 받아들인 것인지 살짝 주저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우선 레이먼 님의 실종에는 심심한 유감을 표하겠습니다. 휴식 이후 다시 수색할 예정이니…….”
“그건 괜찮아요. 그런 것에 당할 시시껄렁한 남자는 아니니까요.”
일레이나는 괜한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단호하게 일축했다.
진실을 알 리 없는 파티 리더들은 정작 연인을 잃은 그녀의 단호한 반응에 당혹스러웠으나, 장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뭐라 말을 덧붙이지 못했다.
“그러면 일단 예정대로 던전의 탐사는 계속 진행하고 싶습니다. 안쪽에 만티코어가 몇 마리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곳까지는 나아가봐야겠죠.”
“다수가 있다면 한두 마리씩 꿰어내면 그만이다. 베히모스라는 마수는 모르겠으나, 만티코어의 전력은 대충 파악했으니. 한 마리면 여유, 두 마리면 조금 빡빡하긴 해도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큰 피해 없이 쓰러뜨릴 수 있겠지.”
“나도 같은 생각이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요.”
레펠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나온과 제너드를 제외한 다른 셋을 바라보았다.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십니까?”
“우리도 같소.”
“마찬가지입니다.”
적색 마탑의 마법사와 교단의 사제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일레이나 역시 그와 같다며 눈짓하자 레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단 방침은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피곤하실 터니 회의는 이쯤 하도록 하지요.”
그가 회의의 끝을 선언하자 파티 리더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일레이나 역시 지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자신들이 배정받은 막사에 도착했다.
“미르엘은요?”
안쪽으로 들어가니 엘레오노라 혼자 침낭을 깔고 취침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레이나가 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보초예요. 운 좋게 초번 초를 뽑았더라고요.”
“그건 다행이네요. 아,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일레이나는 보초를 서로 간 미르엘에게 마음속으로 수고하라는 인사를 보내며 제 침낭에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베르너님은 어디 계실까요?”
마법사들의 공백을 대신해 잘 움직이지 않는 마나를 쥐어짜 마법을 사용한 탓인지 금세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옆자리에서 조용히 물어오는 목소리에 일레이나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어디든 있겠죠. 제 딴에는 잠자코 있는 것 같았지만,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들뜬 기색인 거 못 봤어요? 마법 제한도 저희나 해당하는 소리지 그 사람은 쓰려고 작정하면 쓸 수 있을걸요?”
“하긴 그렇네요. …그래도 조금 쓸쓸하네.”
엘레오노라는 작게 씁쓸한 웃음을 토해내며 막사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함께하게 된 지 고작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빈자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스스로도 이런 자신의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황실에 쫓기면서 누구도 믿을 수 없었어요.”
“…….”
“심지어 평생 저를 지켜주겠다며 맹약을 맺은 수하들 사이에서도 배신이 끊임없었으니. 나중에 그 인원이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어도 서로의 눈빛엔 불신이 가득했죠.”
엘레오노라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기사들이 자신의 충의를 증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은 말머리를 돌려 쫓아오는 적들의 앞을 옥쇄의 각오로 막아서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기사들은 한 명의 예외 없이 그렇게 제 목숨을 바쳤다.
“이제 남은 건 미르엘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베르너가 나타났다.
고대 영웅 중 한 명인 검은 현자. 그 만남은 정말로 극적인 순간이었고, 찰나의 순간 미래가 바뀌었다.
“…….”
잠자코 엘레오노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레이나는 그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고대 영웅의 계승자다. 그런 강함을 지니고 있으니 적들을 쓸어버렸을 테고, 그녀들을 이곳까지 데려온 것일 터.
‘마르딘 영지까지 간다고 했었지.’
일레이나는 잠시 그 여정의 끝을 상상해 보았다.
황녀의 의뢰는 자신들을 리베라 제국 마르딘 영지까지 안전히 호위해달라는 것. 만일 그곳에 도착한다면 그 둘의 의뢰는 끝이 나게 되었다.
그 남자의 성격상 어디 한 군데 정착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고대 영웅의 계승자이니 뭔지는 몰라도 해야 할 사명 같은 게 있지 않겠는가.
약속대로 맹약을 풀어준다면 자신 역시 자유의 몸이 될 것이었다.
즉, 마르딘 영지에 묶이게 되는 엘레오노라나 미르엘과 달리 선택권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따라다니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당장 겪은 것만 나열해 봐도 그 이름이 심상치 않다. 마르바스 교단의 리치킹, 마왕, 검은 현자 유적지에 봉인된 고대 마수 베히모스, 그리고 정체모를 이 던전까지.
까딱하다간 제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만큼 진기한 경험도 많이 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동시에 그에게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면 마도사에 오른 후 정체되어 있던 경지도 성장할 수 있을 터.
‘뭐, 그 사람이 날 받아줬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러니 일레이나는 맹약이 끝나기 전까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생각이었다.
“…….”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엘레오노라는 어느새 잠들었는지 새근새근한 숨소리만이 막사 안에 울려 퍼졌다.
희대의 악녀.
권력에 눈이 먼 어리석은 핏줄.
세간에서 엘레오노라 폰 오스칼이라는 이름은 온갖 모욕과 혐오스러운 표현으로 점칠 되어 있다.
그녀 역시 그것을 모르진 않을 터.
잠시간 그 비운의 황녀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일레이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처지에 누굴 동정해.’
이어 짧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몸을 돌리며 두 눈을 감은 채 익숙지 않은 잠자리에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