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내 살다 살다 SS랭크 용병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헤르멜은 모험가 길드 베르델 지부의 마스터였다.
40대 중반의 나이로 베테랑 모험가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였으며, 대머리와 구릿빛 피부 그리고 근육으로 뒤덮인 몸을 보아 마후마임과 비슷한 부류의 인간으로 보였다.
“이 친구가 그 빌어먹을 드래곤을 사냥한다고?”
“그렇습니다.”
“…이것 참, 조건도 파격적이군. 당분간 벨데르의 희귀 원석 시세가 요동치겠어.”
헤르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계약의 공증을 위해 길드 마스터의 자격으로 호출된 바. 양측에서 요구한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해 그들에게 내밀었다.
이진한이 요구한 조건은 헤르멜의 말처럼 벨데르에서만 나오는 희귀한 원석들이었다.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가격인 값어치를 지닌 보물들이었다. 그로서는 설마 하는 마음에 내지른 것이었지만, 마후마임은 시원할 정도로 흔쾌히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게 다 얼마냐.’
계약금으로 받는 10%만 따진다고 해도 막대한 금액. 이렇게 된다면 설사 드래곤 레이드에 실패한다고 해도 남는 장사였다.
그렇기에 이진한은 희희낙락한 기분을 표 내지 않으려 애쓰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름을 입력하세요.]
-베르너
삑.
[잘못된 이름입니다.]
“……?”
당혹스럽게도 계약서의 작성은 첫 줄부터 막히고 말았다.
그는 이전에도 용병 일로 의뢰 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런 이름을 쳐도 문제가 되지 않은바. 지금은 베르너란 이름을 칭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입력한 것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잘못된 이름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설마 진짜 이름으로 입력해야 하나 싶어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손가락을 놀렸다.
-이진한
삑.
[잘못된 이름입니다.]
하지만 상태창은 여전히 부정의 메시지를 보였다.
‘…아.’
잠시 주저하던 이진한은 여섯 글자로 된 단어를 입력했다.
-성기사이즈킹
[확인되었습니다. SS랭크 모험가 ‘성기사이즈킹’님. 계약서에 서명을 완료하시겠습니까?]
‘…이런 미친.’
상태창의 문구에 절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사실 이진한은 이 캐릭터를 성기사 클래스인 팔라딘으로 키우려고 했다.
그렇기에 닉네임 역시 그 관련으로 생각 없이 지은 것이었으나, 전직을 앞둔 하루 전날 현자 클래스가 새로이 출시되어 노선을 바꾼 것이었다.
그렇게 설정한 이름이 ‘성기사이즈킹’. 주변 랭커들의 정신 나간 닉네임 사이에 있을 때는 별 이질감이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뚝 떼어 놓고 보니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러지?”
“잠깐, 잠깐만 시간을 부탁하지.”
그들은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이진한 쪽은 얼굴이 수치로 붉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경비대장실을 나왔다.
그러곤 곧바로 인벤토리를 뒤졌고, 이내 아이템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닉네임 변경권]
그는 망설임 없이 닉네임을 바꿨다.
곧 상태창 위로 흉물스러운 이름이 사라지고 베르너라는 글씨가 새겨지자, 짧게 한숨을 내쉰 이진한은 자리로 돌아와 계약서의 작성을 마쳤다.
“부디 새로운 드래곤 슬레이어가 탄생할 수 있기를.”
헤르멜이 악수를 청해왔다.
이진한이 흉터가 가득한 그 울퉁불퉁한 손을 잡은 채 위아래로 몇 번 흔들자, 호데르만은 이내 한시름 놓았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계약금은 정석대로 10% 부근에서 책정하겠습니다. 대금은 계약서대로 원석을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부탁하지.”
“그러면 내일까지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헤르멜은 자리를 떠났다.
마찬가지로 계약서를 인벤토리에 넣고 일어나려던 이진한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는데.”
“무엇이지?”
“드래곤을 물리치면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을까? 사정상 은밀히 움직여야 하는 터라.”
이진한은 슬쩍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약서의 작성을 기다리는 동안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은 숙소를 잡기 위해 자리를 떠난바. 그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호데르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흠.”
애초에 등장부터 머리끝까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무언가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또한 막연하게 짐작했다. 하지만 제 상관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더 이상의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어디든 상관없다. 서대륙 쪽이라면.”
이곳 벨데르에서 마경을 가로질러 서대륙으로 간다면 짧게 잡아도 한달은 더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다면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다른 도시로 건너갈 수 있는바.
문제는 텔레포트 게이트의 이용을 위해선 확실한 신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엘레오노라와 미르엘은 현재 오스칼 제국에 수배된 신세였으니 당연히 공공연하게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벨데르 같은 특수한 도시에서 그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장의 입김이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다.
“…마침 도시 복구에 필요한 자재들이 있었습니다. 드래곤의 습격을 격퇴하면 그다음 날에 다른 도시로 사러 갈 예정이었으니 저희 쪽에 섞여 동행하시면 될 것 같군요.”
“그 건은 부탁하지.”
이진한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조건 역시 계약서에 집어넣을 수 있었으나, 그렇다면 자신들이 안달하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대량의 희귀 원석이라는 조건을 앞세웠으니 이 정도 요구는 사소한 축에 속한 것일 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어렵지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일 다시 오겠다.”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이진한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비대를 떠난 그는 곧바로 맵에 마킹된 여관으로 향했다.
시설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과 비교해 그나마 멀쩡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아, 오셨나요?”
“일찍 왔네. 내 쪽도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먼저 도착했을 줄 알았는데.”
이진한은 모험가 길드로 계약을 하러 갈 때 그들에게 숙소를 잡음과 동시에 정보 길드에 이때까지 역사의 조사를 부탁했다.
엘레오노라 역시 자신이 도주한 직후 제국 내부의 상황이 궁금했기에 정보 길드로 방문하려던 차. 그렇기에 겸사겸사 일을 함께 맡긴 것이었다.
“부탁하신 건은 여기 있습니다.”
옆에 있던 미르엘이 나와 서류를 내밀었다.
척 보기에도 두께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간단히 축약을 부탁했음에도 이 정도 분량이자 이진한은 혀를 내둘렀다.
“원정부터 그 이후의 일들이 기록된 것이에요. 다만, 천 년 전의 이야기인 만큼 그 행적에 관해서는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감안해달라고 하더군요.”
“하긴. 천 년 전의 일이니 그럴 만도 하지.”
그가 이때까지의 기록을 찾아보려 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메인 퀘스트가 진행하는 방향은 역사와 서사의 스토리를 따라가기 마련. 그러니 설정의 공백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라도 파악해둔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너희 쪽 정보는?”
“그리 자세하진 않아요. 드래곤이 습격할 예정이라고 전부 다른 도시로 도망친 모양이에요. 이곳 토박이인 사람 몇 명만 남아서 겨우 구색을 맞추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엘레오노라는 몇 장의 서류를 팔랑거렸다. 그것을 건네받아 살펴본 이진한은 당연한 사실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전부 모르는 이름이네.”
오스칼 제국 내부의 상황 역시 만만치 않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철저한 대립 구도를 이루고 있는 1황자와 2황자.
그리고 그들을 뒤따르는 귀족들과 자식들의 싸움에 침묵하고 있는 황제까지.
전형적인 분열의 징조가 아닌가.
“그들 모두 꼭두각시예요. 자신이 이용당하는 것도 모른 채 황제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죠.”
“꼭두각시라고?”
그러고 보니 근원의 마탑에서 제국 황실이 뿌리부터 썩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엔 가볍게 넘겼으나, 표정을 보니 제법 심각한 듯했다.
제국의 분열은 앞으로의 전개에서도 중요한 요소. 그렇기에 이진한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재상인 데그라미움. 그는 마족과 결탁해 황실의 뒤편에서 암약하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반역자 신세로 쫓기게 된 것도 그 비밀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니….”
“마족이랑 손을 잡았다고?”
“네. 겉으로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있어요. 황위 계승이나 권력 구도에서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행정 업무만 처리하고 있었죠. 저도 그래서 깜빡 속아 넘어갔고요.”
2부의 메인 스토리는 세 가지였다.
1. 구시대의 몰락
2. 신시대의 영웅들
3. 창궐하는 마계
구시대란 자신을 비롯해 고대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일 터.
신시대의 영웅들은 말 그대로의 의미일 터고, 창궐하는 마계는 마족과 결탁한 그 수뇌부가 일으키는 소란일 것이었다.
‘구성은 제법 재미있을 것 같은데.’
1부의 메인 에피소드는 고대의 정보를 수집하고, 적들과 싸우며 마침내 최종 보스인 고대 신에게 도달하는 과정이었다.
2부는 1부와는 달리 내부에서 암약하는 적들과 싸우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최종은 대륙을 침공한 마계와의 전쟁일 터.
“커뮤니티가 또 난리 나겠네.”
“네?”
“아니, 아니야.”
눈치가 빠른 자라면 자신과 같이 이 단계에서 2부의 대략적인 흐름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한시라도 빨리 메인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것. 그 선두를 선점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참, 드래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셨어요?”
“수락했다. 그 대가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게 해주겠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저울추가 상당히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엘레오노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아는 것이리라.
“…괜찮겠습니까? 상대는 그, 드래곤인데.”
옆에서 잠자코 있던 미르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뭐, 어떻게든 해야지.”
이진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자신이 잡은 드래곤만 해도 수십 마리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들을 지을까 살짝 궁금해졌지만, 그녀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참기로 했다.
***
다음날, 이진한은 점심이 지나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으, 이쪽 감도도 업데이트했나. 찌뿌둥해 죽겠네.”
평소 숙면 기능을 사용하면 깨어났을 때 정말로 잠을 잔 것처럼 개운하기 짝이 없는 감각이었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잠을 설친 사람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숙소가 구려서 그런가.”
시간을 보니 슬슬 경비대 본부로 계약 대금을 받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렇기에 방에서 나와 로비로 내려가자 미르엘과 마주쳤다.
“아, 일어나셨나요.”
그녀는 이미 한바탕 수련을 끝낸 듯 가벼운 차림으로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낮부터 열심이네.”
“부족한 실력이니까요. 베르너님은 외출하시나요?”
“잠깐 경비대 본부로. 엘레오노라는?”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때까지 계속 쫓기는 상황이어서 쉬시질 못하셨거든요. 아마 몇 시간은 더 주무실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이진한은 이야기하는 도중 미르엘이 주춤거리는 표정으로 조금씩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 그러지?”
“그게…….”
설마 자신에게 악취라도 나는가 싶어 옷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그다지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러자 미르엘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해왔다.
“베, 베르너님 문제가 아닙니다. 방금 수련을 끝낸 직후라 땀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어서…….”
“괜찮은데.”
딱히 그런 불쾌한 체취는 풍겨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르엘은 조금 부끄러운 듯 제 옷의 끝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저는 씻으러 가겠습니다.”
“그래. 엘레오노라가 깨어나면 잠깐 나갔다 온다고 말해줘. 아, 점심이라도 사다줄까?”
전날 먹어보니 여관의 음식은 형편이 없었다.
그렇기에 묻자, 미르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그래. 늦지 않게 오마.”
가볍게 손을 흔들며 여관을 나오자 화창한 날씨가 그를 반겼다.
마경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란 하늘이었고, 마치 봄이라도 온 것처럼 산뜻한 기운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원석이라. 뭘 만들까.”
이틀 뒤로 다가온 드래곤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 분주한 도시 가운데, 이진한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경비대 본부로 향해도 괜찮았지만, 찰나의 여유도 즐길 겸 적당히 허기를 달랜 후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는 식사를 위해 도시 안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비교적 멀쩡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고, 천천히 그 위를 걸으며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물색했다.
“여기로 할까.”
십 분 정도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은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겨오는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어서옵쇼!”
문을 열고 들어가니 힘찬 인사가 이진한을 맞이했다.
이쪽이 첫 손님인 듯 가게 안은 횅하기 그지없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자 주인장이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혼자요? 식사는 어떻게 드릴까?”
“이 집에서 제일 잘하는 걸로 3인분 부탁하지.”
“시원시원해서 좋네. 조금만 기다리쇼.”
곧 고기를 굽는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가게 안에 가득 퍼지자, 이진한은 살짝 들뜬 마음으로 요리를 기다렸다.
“오.”
머지않아 요리가 나왔고, 탁자 위에 올려진 그것들에 그는 나지막하게 감탄을 내뱉었다.
조심스레 고기를 잘라서 입에 넣자 절로 녹아버리며 그 강렬한 감칠맛이 혀끝에 닿았다.
‘미각 데이터도 업데이트했네. 이건 진짜 음식을 먹는 거랑 별 차이가 없는 걸.’
그가 한껏 즐기며 접시를 비우고 있자, 주인장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맛있어 보여서 다행이군. 처음 보는 얼굴인데 벨데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나보오?”
“사업 쪽의 일로 잠시 출장 온 차다. 원래는 조금 관광하려는 마음도 있었는데, 시기가 나빴군.”
이진한이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대꾸하자, 주인장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그래, 그 빌어먹을 드래곤 때문에 말이 아니지. 그래도 이번엔 대단한 모험가에 의뢰했다고 하더군. 듣자 하니 경비대장보다 더 강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설사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막아낼 수 있겠지. 이쪽도 왕년에 제법 날리던 몸이라서, 여차하면 한 손 보탤 생각이오.”
종래엔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흉흉한 기세까지 피워 올리는 그 사실적인 모습에 이진한은 살짝 놀랐다.
마치 진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엘레오노라와 미르엘 같은 경우엔 메인 에피소드에 관계된 NPC들이라 신경 써서 모델링 했을 터니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고작 식당의 주인장 정도 되는 이까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들 줄은 몰랐다.
“잘 먹었다. 솜씨가 좋군.”
“맛있게 먹어줘서 이쪽도 좋을 따름이오. 다음에 오면 더 맛있게 해주지.”
이진한은 주인장과 인사를 끝으로 가게를 나왔다.
날씨도 좋고, 맛있는 식사로 배도 부른, 남부러울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인상을 쓰며 발걸음을 멈춰 섰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뒤쪽의 지붕 위를 돌아보았다.
“밥 먹고 난 뒤에 바로 격하게 움직이긴 싫은데.”
「그림자 순신」
어쌔신 클래스의 이동 스킬을 발동한 이진한의 몸이 마치 허상처럼 흩어져 버렸다.
이윽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조금 전까지 건물의 옥상에서 모습을 숨긴 채 그를 내려다보던 인영의 뒤쪽이었다.
“……!”
괴한은 눈앞에서 이진한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제 뒤쪽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진한의 손은 이미 괴한의 목을 붙잡았고, 그대로 지붕 위에 내리찍었다.
쿵-.
작은 소음과 함께 지붕 위로 균열이 생긴다. 괴한은 포기하지 않은 듯 몸을 돌리며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진한은 지붕 위로 한 번 더 괴한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컥-!”
단말마 같은 신음이 그 입에서 토해져 나왔다.
단번에 죽지 않은 것을 보니 제법 수준이 있는 실력자라는 소리일 터.
물론, 그에게는 식후 좋은 운동 상대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