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 메트로폴은 그간 너무나도 변하고 있었다. 새로운 빌딩이 생겨나고 더 많은 차가 돌아다닌다.
20년 전에는 마차가 가끔 차도를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지금은 마차 따위는 우스갯소리로 취급할 뿐이었다.
세인트 생셔 거리는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지로 변해버렸다.
-오와. 여기 많이 변했네
“너도 여기 온 적 있어?”
-옛날에.
파기나레코르의 얘기를 들을수록 아리송하다. 슬슬 목적지에 도착하자 목표로 한 빌딩 옆에 무명교회 본부의 빌딩이 보였다.
광명교는 세를 잃고 있었다. 요즘은 무명교가 대세였다.
뭐, 아직도 수도 인근에서는 광명교가 많긴 하지만 무명교보단 아니었다. 어차피 그는 종교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이 건물이 예전에는 크라이슬러 빌딩이라고 불렸다고 했다. 그 소유주는 역시 아버지의 것이고.
근데 딱히 아버지는 무명 교단에 귀의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별로 관심도 없는 듯하고. 여기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큰 관심은 없다.
프레드는 무명교회를 지나쳐서 옆 건물에 차를 댔다. 무려 102층짜리 빌딩이다. 월드 엠브리오 빌딩.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프레드는 자신의 명함으로 출입 자격을 보인 다음,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안내원이 인사를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내원은 프레드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최상층을 눌렀다.
비서가 프레드를 보고 바로 회장실에 연락을 넣었다.
조금의 시간 뒤에, 최상층에서 전화 중인 유마 헥센을 만날 수 있었다.
“응. 그렇게 처리하도록 해. 그럼 잘 부탁해.”
“삼촌!”
“오! 프레드! 돌아왔구나?”
유마 헥센은 끔찍할 정도로 동안이어서 아직도 20대로 보였다. 아버지 말로는 이전엔 소년처럼 보였다고 했다.
지금은 미소년 같지는 않지만, 선이 고운 듯한 청년처럼 보였다. 뺨이 좀 홀쭉한 걸 빼면 별 것 없어 보인다.
“이제 막 돌아왔어요.”
“그래, 그래. 다친 데는 없고?”
둘은 반갑게 포옹했다. 프레드에게 있어서 삼촌은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으나, 어렸을 적부터 늘 그를 귀엽게 봐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제이크보다 더 믿음직한 사람이기도 했고.
“저요? 멀쩡해요. 당연히 다치지 않았죠.”
“응. 응. 잘됐네. 난 또 미식축구를 하다가 다리뼈가 부러진 줄 알았잖니.”
“아, 아닌데요.”
프레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아니라고 부정했으나 이미 들통났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의 안부 인사가 끝나고 나서 프레드가 본론을 꺼냈다.
“삼촌, 혹시 말이에요….”
“왜?”
“아버지 서재에서 이상한 걸 찾았는데 이게 뭔지 아세요?”
슈트케이스에서 꺼낸 파기나레코르를 유마에게 보여주었다. 평소 헤실헤실 웃는 낯이었던 유마는 그 책을 보자마자 안색이 굳어졌다.
“그, 그건…….”
“여, 역시 악마의 책이라던가? 저주받은 사악한 책 그런 건가요?”
“아닌데? 옆에 줄을 매달아서 형님이 늘 들고 다니던 책이야.”
“이, 이게 뭔지 아세요?”
“음. 어디 보자.”
유마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전에 하나 물어보자. 형님의 비밀 서재에 들어갔었니?”
“……네.”
“흠. 형님은 예전부터 네가 이런 일에 엮이지 않기를 원하셨는데, 네가 스스로 알아서 찾아가니 이 건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가 없겠지.”
유마는 그렇게 혼잣말하고는 이어서 말했다.
“오컬트라고 알고 있니?”
“뭐, 흑마법 같은 거 말하는 거죠? 영화에서 봤어요. 마녀 돌리틀의 이야기 같은 거라던가.”
“실제로 존재한다. 비밀스러운 의식이나 마법 같은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들은 비밀 세계라는 이름 아래 음지 깊숙한 곳에 존재한단다.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책은 그 오컬트의 잔재고.”
“그럼 아버지도 오컬티스트인가 뭔가 그런 거였어요?”
“정확히는 영성자라고 한다.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능력이 극에 다다르면 주문을 사용하거나 특별한 힘을 낼 수 있지.”
“그 대가로 악마에게 뭐 피나 영혼을 바쳐야 해요?”
“글쎄.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난 영성자가 아니었거든. 하지만 적어도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얘기와는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 비밀스러운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프레드의 내면에 이상한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렇게까지 감탄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그 비밀 세계라는 건 어떻게 알아보죠?”
“그건…….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심지어 나도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유마는 무언가 떠올리는 바가 있는 듯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샤를의 아이들은 무명교와는 전혀 얽히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그 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마도서라는 녀석은 결국 나쁜 녀석은 아니란 거네요?”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근데 봉인되어 있었단 말이지. 프레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재킷 옆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석상을 만지작거렸다.
“아무튼, 고마워요. 삼촌. 이만 돌아가 볼게요.”
“술은 적당히 먹거라.”
“아 안 마신다니까요.”
유마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프레드는 아직도 자신을 질풍노도의 시기에 다다른 청소년인 줄 아는 삼촌에 대해서 불평을 투덜거리더니 곧 밖으로 나갔다.
물론 술은 마시러 갈 거지만. 차 키를 꼽고 운전하려는 프레드가 좌석에 앉자마자 슈트케이스에서 파기나레코르가 솟아올랐다.
-자, 내 뒷조사는 다 했어?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됐는걸?”
프레드는 파기나레코르의 면상을 옆으로 치우면서 슈트케이스에 담긴 장갑을 꺼내서 손에 꼈다.
-장갑은 왜 껴?
“내가 약한 결벽증이 있어서.”
일종의 강박증 비슷하다고 하는데 프레드는 손에 다른 사람의 신체가 직접적으로 닿는 걸 싫어했다.
가족 중에서는 그 혼자만이 가진 정신병이라고 할까.
-후음. 그럼 일단 아무 데나 돌아다녀 봐. 내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가르쳐줄게.
“그럴까?”
아무 데나 돌아다녀 보란 말인가. 흠. 프레드는 좀 고민하다가 곧바로 술집으로 차를 몰았다.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말이지.
테네시 바라는 이름의 주점에 도착한 프레드는 주차하고 중절모를 썼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재즈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가수……뭐더라? 예술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셋째인 제레미는 그를 보면서 뒤틀린 청각을 가지고 있다고 어쩌고 했다.
“오, 이게 누구야?”
바 앞에 서서 유리병을 닦고 있던 험상궂은 얼굴의 흑인이 그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진 그 근육질의 남자는 존 브라운, 주점의 주인이었다.
“꼬마 프레드가 이렇게 커서 오다니 말이야.”
“잘 지냈어요?”
“또 술 마시러 왔군?”
존 브라운은 어린 프레드가 술을 마시러 와도 덥석덥석 술을 내주는 주인장이었다.
“술만큼 인생의 낙이 없는데요.”
“애송이가 나이 다 먹은 노인처럼 말하는군.”
“맨날 마시던 거로 주세요.”
껄껄거리는 존은 프레드가 좋아하는 럼주를 꺼내서 올렸다.
“네놈의 뒤틀린 미각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돈도 많다면서 좋은 거 좀 사서 마셔. 우리 가게 매상 좀 올려보자.”
“싫은 데요? 얼른 피쉬 앤 칩스 주세요.”
존 브라운은 여전히 이상한 놈이라면서 투덜거리고는 메뉴에도 없는 피쉬 앤 칩스를 만들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대충 저녁을 해결하던 프레드는 그의 앞에 누가 털썩 앉는 걸 보면서 인상을 찌푸릴 뻔했지만, 얼굴을 보자마자 반색했다.
“테사?”
“오랜만이네.”
검은색 단발 머리카락에 날씬한 몸매의 여성이 앉았다.
테사 플리테타는 어린 시절부터 같은 학교에 다닌 소꿉친구였으나 그가 유년사관학교로 떠난 이후엔 잘 만나지 못했었다.
“못 알아볼 뻔했잖아.”
“나도 말이야. 꽤 멋진 남자가 됐네. 여전히 미각이 뒤틀린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테사는 프레드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서 감자튀김을 하나 뺏어 먹었다.
프레드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테사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여자가 되어 있었다.
특유의 그 안경은 여전히 끼고 다니는 듯하지만, 관능적인 몸매가 프레드의 눈길을 끌었다.
“헤에. 어딜 봐?”
“가슴.”
“이게, 어디서 처맞으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테사는 낄낄거리면서 자신도 술을 하나 시켰다.
-와, 너 진짜 너희 아버지랑 성격이 다르구나?
“그걸 이제 알았냐?”
“응? 누구랑 얘기해?”
“아, 아니 아무것도.”
이러다 미친놈 취급당하겠군. 프레드는 앞으로 파기나레코르가 뭐라고 하던 무시하기로 했다. 테사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프레드에게 물었다.
“요즘 뭐해?”
“유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왔어. 오늘이 첫날.”
“장교로 입대할 거야?”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육군으로 갈지도 모르겠어. 선배가 육군 쪽에서 자꾸 꼬드기더라고. 탱크가 멋있지 않냐면서.”
해군이 강세인 나라에서 육군으로 간다는 건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하기도 했다. 승진도 어려울 테니까.
“너는?”
“나? 대학에 들어갈 것 같은데? 미스트위버 대학에. 고문서학 전공은 근처에서 미스트위버만한 곳이 없거든.”
“흐음 그래?”
테사는 안경을 벗으면서 하품을 했다. 벌써 옆에 술병이 10개도 넘게 쌓여 있었다.
“흐아암. 술을 꽤 오래 마셨나 봐. 슬슬 졸리는데.”
안경을 벗은 테사를 본 프레드는 몸이 굳었다. 얘가 이렇게까지 예뻤나 싶다.
“아, 요즘 공부하느라 엄청나게 졸리거든.”
“그래? 좀 쉬다 갈래?”
“호텔?”
“응.”
“그럴까.”
-뭔데 이 패턴?
파기나레코르의 물음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프레드는 목이 말라서 주전자를 찾았다. 어젯밤 테사랑 얘기하다가 ‘실수’를 저지른 건 기억이 나는데. 또 나중에 아버지가 호통을 칠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는 컵에 물을 받아서 마셨다. 침대 옆을 보니 테사는 보이지 않았다.
“음?”
시계를 보니 아직도 새벽이었다. 이 시간에 나갔을 리는 없을 테고, 화장실이라도 갔나?
프레드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장갑을 고쳐서 쓰고는 화장실 문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 소름 끼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가 기대한 대로 나체의 테사가 화장실에 있긴 했다. 하지만 등에서 나비 날개 같은 것이 자라고 있었다.
총 천연의 날개 색깔은 마치 태평양의 해변에 있는 남국의 섬 풍경처럼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이상한 종류의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테사는 마치 속죄하는 자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양손을 모은 채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나비 날개는 점차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프레드가 굳어진 표정을 하는 동안, 테사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서 프레드를 바라보았다.
“야, 너, 드, 등에 그거 뭐, 야?”
프레드는 평소 이상으로 동요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