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 본편 완결 - 김연수는 비범한 게임 폐인이었다. 뭐 예전에는 가끔 직장을 잡고는 했으나 가상현실게임, 『사이비 교주 시뮬레이터』를 접한 이후로 그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
게임사에서 대회까지 열어서 해피 엔딩을 찾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고 했으나…….
그건 결국, 사기로 밝혀졌다.
클라이언트를 뜯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것이 없다고 했으나 게임사는 호언장담했었다.
그래서 안심한 사람들은 다들 그 게임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런 대회의 끝에, 그들이 한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게임에는 해피 엔딩이 없었다. 그간 달려온 김연수의 허탈감은 너무도 컸던 것이었다.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꿈속에서 그는 어느새 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응?’
뭔가하고 보니, 아무런 이유 없이 대뜸 그런 능력이 생겨났던 것이었다. 그는 꿈을 조종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아서 꿈속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현실의 그는 점점 자금도 말라갔으며 영 좋지 못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의 꿈속에서는 무적의 존재였으며 동시에 주인공이었다.
꿈을 꾸면 꿀수록 현실은 점점 더 구체화되어갔고 도저히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자 그는 코마 상태에 빠졌다.
그는 곧 병원에 옮겨졌다.
바깥에 대해 인지할 수는 있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계속해서 꿈을 가공했다.
그리하여, 그는 관리자와 선각자를 만들고, 원탁과 렘 노인, 그 제자들 등을 만들어냈다.
이 설정은 원본 게임에는 없던 설정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사이비 교주 시뮬레이터를 기반으로 한 꿈속 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 세계를 무한하게 시뮬레이션해서 세상을 계속 반복시키면서 놀았다.
슬슬 질릴 때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 자신의 기억을 담은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자신의 기억을 담은 새 주인공이 빙의된다는 설정이다. 근래에 유행한 웹소설 설정이랑 똑같으니 재밌을 것 같네.
그리고 이왕 빙의시키는 김에, 이 세상의 운명을 뒤틀어보는 건 어떨까? 온갖 전투를 치르고 경험을 겪게 된 끝에, 결국 4차원의 벽을 뚫고 그를 만들어낸 창조주와 만나게 되는 것이지.
-어때?
샤를은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이 흔들렸다. 이게,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뭐야, 그럼……나는.”
-넌 내가 만든 주인공이야.
샤를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서.”
-응?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뭐야, 좀 더 당황하거나 놀라도 괜찮은데. 너무 냉철한 성격으로 만들었나.
“이 이후에 나와 만나서 뭔가 하겠다는 것이 있었잖아.”
-어, 그게 말이야. 너와 만난 뒤에는 그다음 스토리는 생각 안 해뒀거든. 일단 소원을 들어줄까 하는데.
“그렇게 하도록 해.”
-어?
샤를은 들뜬 김연수의 표정을 보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으나, 어차피 더 충격받을 일도 없었다.
“그래. 난 이제 너의 꿈으론 만족할 수 없게 되었거든. 우리에겐 우리의 현실이 필요해.”
-…….
“꿈을 포기해.”
-내가 공들여서 만든 건데.
아이처럼 우울해하는 김연수의 어조에서 그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거야. 그리고, 여기가 네 이야기의 끝이다.”
-……후. 그래. 결국 놔줘야할 때도 있는 거지.
김연수는 그래도 싱긋 웃었다.
-아무튼, 그간 즐거웠어. 널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거든.
“그런가.”
-응.
김연수는 샤를을 그대로 꿈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잘 지내.
“너도.”
두 사람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작별했다.
샤를을 보내자마자 김연수는 그대로 눈을 떴다.
“즐거운 꿈이었어.”
그리고나서 김연수는 다짐했다. 샤를의 얘기를 보면서 느꼈다.
“성형하러 가야지.”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얼굴이 장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생기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내린 결론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 전에.”
김연수는 자신의 꿈을 뽑아낸 뒤, 작은 유리구슬에 보관했다. 유리구슬 안의 소용돌이 치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것이 그가 만든 세계다.
“더는 지켜볼 수 없겠지만, 이러면 그 세계는 안전할 거야.”
그 구슬 옆에는 문글로즈가 그려져 있는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 카드를 보면서 김연수가 말했다.
“좀 기다려봐. 널 어떻게 구체화할지는 생각 좀 해볼 테니까.”
그의 능력이 좀 더 강해 진다면 가능할 것이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
샤를은 눈을 떴다. 어느새 그는 자신의 침실에 누워있었다. 절대자-김연수와의 대담은……. 마치 신기루 같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보인다.
헤르메스의 명령을 받고 떨어져 내라고 있었던 그 거대한 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다.
렘 노인도, 문글로즈도 없었다. 석판의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꼬르륵.
“어라, 배고픈데.”
뱃속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샤를은 반신으로서 힘을 행사해왔다. 그런데, 이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존자와의 연결점도 엄청나게 멀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심상 세계에 들어가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프세요?”
“어? 플로나?”
어쩐 일인지, 플로나가 샌드위치를 들고 샤를의 침실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설명을 해줄래? 내가 정신을 좀 놓고 온 것 같아서.”
“설명이요? 음.”
샤를의 입에 손수 샌드위치를 넣어주는 플로나의 손에서 샌드위치를 넘겨받은 샤를이 입을 오물거리면서 먹자 플로나가 말했다.
“그 의식을 치른 뒤에 그냥 없어졌어요.”
“우물우물. 없어져?”
“네. 모든 게 꿈이었다는 것처럼요. 주문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전처럼 제대로 주문을 쓰지도 못했고, 기이한 현상도 점차 사라졌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시간이 꽤 지났다는 느낌이 드는데.”
“네. 샤를 님께서 잠드신 지 벌써 7일째거든요.”
“뭐? 그렇게나 오래 지났다고?”
이상한 시간의 흐름에 샤를이 침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무튼, 이제야말로 끝났어. 모든 게.”
앞으로는 세상이 멸망한다거나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샤를은 비로소 이제야 자신의 삶을 되찾은 것이었다.
좀 기운이 풀렸다.
“잘 먹었어. 고마워 플로나.”
“저도 먹고 싶은 게 있는데.”
“응? 저녁 안 먹었어?”
“샤를 님을 간호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구나. 미안해. 가서 뭐 좀 먹고 와.”
“배는 안 고픈데요.”
“응? 그럼 뭘 먹겠다는…….”
샤를은 왠지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플로나의 붉은 눈에서 안광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
『해피 엔딩 이후의 세계』라.
샤를은 늘 갈구해왔던, 자신의 등을 계속해서 밀어댔던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이전보다는 좀 더 느긋해졌고, 조금 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그는 근래에 들어서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돈이 많이 생긴 이후부터는 취미 생활이랄까.
샤를은 이야기를 썼으나, 발간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벌써 엔딩 이후 – 20년째니까.
그는 절대자와 만난 이후로 점차 늙기 시작했다. 배고프고, 졸리는 생리적인 활동이 계속 일어났다. 반신의 몸뚱이가 아니라, 이제는 늙어 죽는 필멸자의 몸이었다.
그래서 수염도 기르고 있긴 했다.
절대자와의 대담 이후, 플로나와 결혼해서 샤를은 3남 1녀를 보았다. 더는 비밀 세계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무명 교단은 에세나에게 물려주었다. 원래부터 에세나가 담당하다시피 했으니, 에세나도 기회가 되면 다른 자에게 넘겨줄 것이다.
근래 들어 비밀 세계의 힘이 점점 약해져 갔다.
아직까지도 사악한 것들, 신비스러운 주문이나 능력이 남아있긴 했으나 그건 현실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능력의 크기가 줄어들자, 영성자들의 숫자도 덩달아 줄었다.
이 추세라면 60년 이내로 완전히 주문이나 마법 같은 것들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계와의 연결도 거의 사라졌다. 이제 괴물이나 이족은 현실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돈 많은 부자의 삶을 영위하던 샤를은, 자신이 아는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아이디어는 그가 제공했으나 사실상 돈을 불린 건 유마지만 뭐, 어차피 나중에 챙겨줄 생각이다.
다만 좀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다. 이 세상은 지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역사였다.
그러니 지구의 1930년대라…….
“이제 곧 2차 세계 대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 세계도 마찬가지로 1910년대에 1차 세계 대전이 한 번 터졌다.
끔찍한 전쟁의 참화는 비밀 세계와 완전히 연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 전쟁에서 샤를은 군인으로 복무하진 않았지만, 사업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세계 대전의 참혹함을 보아왔다.
그는 그 전쟁을 말리고 싶었지만, 역사라는 건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샤를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 있어요? 여보?”
플로나가 옆에서 다가왔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플로나는 이전의 광기가 조금 누그러든 듯했으나 여전히 샤를은 그녀에게 잡혀 살곤 했다.
“응, 아니야. 애들은?”
“다들 자요. 근데 문제가 있어요.”
“뭐가?”
“프레드가 전쟁이 난다면 입대하겠다고 말해요.”
“뭐라고?”
샤를은 눈썹을 찌푸렸다. 프레드는 그의 첫째 아들이었다. 이제 곧 20살이 되는 아이였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해.”
샤를은 그렇게 말하고는 플로나를 옆으로 끌어당기면서 같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삶이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이런 소소하고 가끔 화도 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행복한……. 그는 소원을 이뤘다. 해피 엔딩의 대가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후, 전쟁이 터지자마자 프레드가 집에서 가출해서 입단하는 바람에 샤를을 끔찍하게 고뇌에 빠뜨리게 되지만 그래도, 그건 앞으로 몇 년 뒤의 이야기였다.
<完>
이어서 외전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