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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210화 (209/221)

제210화 - 일전에도 실험해본 적이 있다. 재단의 집행부대는 트리메스가 부상을 입었을 때, 그 전투의 흔적 속에서 혈흔 일부를 채취해서 보관한 적이 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피의 주인을 추적했지만, 공허라는, 완전히 벗어난 세계에 있다는 것만 추측했을 뿐이었다.

샤를은 직접 눈앞에서 공허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봤으므로 별로 상관하진 않았었지만.

어쨌든, 직접적인 신체 일부가 있으면 상대를 추적할 수 있다는 건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샤를의 점술 능력은 그가 반신급이 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심상 세계에 있는 무존자의 힘을 빌려 쓰는 그 한계치가 늘어났다고 해야 할까.

‘만약 이대로 마지막 남은 석판까지 소화한다면 그대로 무존자와 동화해버릴 수도 있겠어.’

샤를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곱 번째 석판을 소화하고 난 뒤에, 분명히 그 이전으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확신.

“찾았다.”

딴생각을 했지만 점술은 열심히 하고 있었다. 메트로폴 근처에 있는 옛 성당이 보인다.

거리는 메트로폴 동쪽 끝. 하지만 이상한 통로를 열어뒀으므로 언제든 도시의 끝까지 갈 수 있었으므로 금방 쫓아갈 수 있다.

-우린 어떻게 할까?

루미너스가 나비를 통해서 얘기를 전달하자 샤를이 답했다.

-혹시 모르니, 기다리고 있어. 나랑 플로나만 이동한다.

*

일전, 초대받지 않은 미래의 불청객을 맞이했던 글리치 노만은, 세 차례에 걸쳐서 점을 쳐보았다.

그러나 그의 패는 모두 셋 다 대흉을 가리키고 있었다.

불청객들의 싸움은, 메트로폴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자신의 인맥을 끌어모았다.

메트로폴 전체에 걸쳐서 평민, 귀족 할 것 없이 나눠서 살고 있던 영성자들 여럿, 그리고 탄원자 교도 기사단의 단장 에버히트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제일 빨리 달려온 것은 에버히트였다. 그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탄원자의 공간 수정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가 온 것은 필연이었다.

“글리치. 무슨 일인가?”

가슴에 탄원자의 상징인 카누 위에 얹어진 겨울 꽃 문양을 하고 나타난 에버히트 기사단장의 말에, 글리치 노만은 음울한 눈동자로 말했다.

“메트로폴 전체에 걸쳐서,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등장했네.”

“이방인?”

“신적인 권능을 발휘하는 반신이 하나. 그와 대적하는 신의 화신체가 하나.”

“둘 다 듣기만 해도 소름 돋을 정도로 위험한 인물들이군.”

“기사단을 준비시키게. 아무래도 메트로폴 전역에서 위험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지 기우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도시 전체가 초토화될 지도 모른다.

“크, 큰일났습니다!”

글리치 노만의 제자 중 하나가 다급하게 문을 열면서 뛰쳐 나왔다.

“무슨 일이냐?”

“사, 사람들이 갑자기.”

“왜? 말을 해라.”

“등에서 날개가…….”

그리고 글리치 노만의 제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등에서도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이 튀어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트리메스는 그 성당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그가 바로 헤르메스의 간택을 받은 그 장소였다.

데려온 소년 트리메스를 풀어서 강당 앞으로 옮겼다. 소년 트리메스는 늘 자주 오던 성당이 아니라 다른 성당이라는 것에 의아한바.

“여긴 어디죠? 광명 교회는 아닌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신상(神像)이네요.”

주변에는 광명 교회에서 볼 수 없을 법한 이런저런 것들이 놓여 있었다.

트리메스가 말했다.

“열여섯 살 때, 나는 이 성당에 온 적이 있다.”

“미래, 네요?”

소년 트리메스의 입장에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이 성당에 도착한 나는 조용히 예배를 드렸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싶으냐? 나는 순진하게 그러고 싶다라 대답했다. 그리고 그가 답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리라.」

처음에, 트리메스는 마냥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했었으나,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헤르메스는 트리메스의 이름으 듣고, 자신의 옛 이름과 매우 닮았다 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를 고문했다.

나체로 눈을 가리고 물방울 속에서 그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피곤해서 잠에 들고 싶어도, 잠들 때쯤이면 이마에 닿은 물방울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거역할 수 없었다. 화신으로 선택받은 이후부터 트리메스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의 것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물음에 대답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악의 없는 고문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지옥과도 같았다.

하루하루 깨어나고, 잠들고, 온몸에는 열이 가득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헤르메스는 트리메스에게서 무언가 원하는 것이 없었다.

정보를 캐낼 것도 없고, 그의 복종도 바라지 않았다.

단지, 지금의 트리메스가, 자신이 쓸 용도에 지나치게 순진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천진난만한 유년 시절을 죽인 헤르메스는 트리메스의 나머지 부분도 잘라냈다.

동정심, 사랑 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까지 온갖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제거했다.

“제냐 핸슨도 그때 죽었다.”

“제, 제냐가요?”

그건 소년 시절 트리메스가 짝사랑하던 여자였다.

“널 좋아하게 만들고, 동시에 네게 증오를 느끼게 했지. 제냐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 헤르메스는 그녀를 죽이지도 않았어. 죽으면 영원히 기억에 남을 테니, 죽지 못하는 생물로 바꿔서 이계 어딘가에서 사육한다고 말이야.”

그 말에 소년 트리메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헤르메스는 그렇게 날 ‘개조’했다. 인간적인 감정을 삭제하고 나서야 나는 그의 쓸만한 장난감이 되었지. 그리고 이제 헤르메스가 내리는 모든 지령을 내가 수행해야만 했어. 죽이고 약탈하고, 거짓된 삶을 살며 필요한 순간에 언제든지 장기 말을 소모해버릴 수 있는 모략가가 되었지.”

소년 트리메스는 침묵으로 말을 대신했다. 이 성당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지옥으로 가는 입구였다.

“이곳에 발을 디딘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트리메스는 냉혹한 눈동자로 소년 트리메스를 바라보았다.

“어떠니? 네 미래가.”

“너무, 두려웠을 것 같아요.”

소년 트리메스는 트리메스를 그대로 안아주었다.

“나라면 누군가 의지하고 싶었을 거예요. 누나는 계속 울고 있었군요.”

“눈물? 난 이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아.”

“그럼 제가 대신 울어드릴게요.”

소년 트리메스는 대신 말했다.

“대신 참회해드릴게요.”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린다.

참회라. 너무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서 그 뜻조차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트리메스는 원래는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인피 가면을 이 소년에게 덧씌울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타겟을 바꿔, 자유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헤르메스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자주적인 삶을 되찾는 것. 과거로 가면서 그녀가 하려던 계획의 일 순위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왜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이 소년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쉽다. 컵에 따라진 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을, 트리메스는 하지 못했다.

*

메트로폴 전역에 계몽주의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개중 이상할 저도로 영성에 민감한 셋을 집중적으로 관리 중인지라 오히려 나머지의 정보가 늦어버렸다.

-큰일! 큰일이야!

더글라스의 다급한 외침이 나비를 통해 전달되자 샤를이 되물었다.

-왜?

-우리가 관리하지 않고 있던 나머지 계몽철학자들이 하나같이 ‘이상’해지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샤를은 이상한 통로 밖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하나같이 등에서 날개가 튀어나오고 있다고!

‘그게 무슨…….’

샤를은 당황해서 눈을 깜박였다. 분명히 계몽주의자의 뼛조각은 그가 가지고 있었다.

이제 더는 새로운 계몽주의자를 만들지 못할 터였다. 그러다가 문득 샤를이 떠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맹점이 있었다.

‘정강이뼈가 있다고 했지. 근데 정강이뼈만 있다고 생각하다니.’

갑작스럽게 트리메스를 찾았다는 보고를 플로나에게서 듣고 나서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느라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계몽주의자의 나머지 뼈는 어디에 있는 거?

‘내가 이걸 왜 간과하고 있었지?’

-이대로 이 계몽주의자들 어떻게 할까? 그 숫자를 정확히 추정할 수가 없네.

더글라스가 덧붙인 말에 샤를은 정신 차리고 뼈의 개수를 셌다. 정강이뼈에서 세 명의 계몽주의자를 만들 수 있다면…….

부활한 계몽주의자의 숫자는 최소 10명 최대 20명 정도가 아닐까 추산된다.

-그다지 많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테지.

계몽주의자라는 종족 하나하나의 위험도는 이미 경험해 본바.

샤를은 트리메스가 보유하고 있던 계몽주의자의 신체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애초에 계몽주의자들은 대부분 멸종하고 그 유해만 몇 남았을 터.

유스티나에 깃든 계몽주의자가 극히 예외적일 거다.

-더글라스. 루미너스와 함께 어디론가 대피해 있는 게 좋을 거야.

-알겠네.

아무리 루미너스라도 계몽주의자 여럿이 붙으면 위험할 거다. 잠시 피해 있는 게 좋을 터.

‘차라리 내 쪽으로 왔으면 처리할 만한데.’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다. 트리메스는 늘 그렇듯이 자신의 부하를 내세울지도 모르니까.

샤를은 옛 성당에 진입하자마자 발로 정문을 걷어찼다.

“트리메스!”

그곳엔 트리메스와, 그녀를 똑 닮은 소년 하나가 있었다.

처음엔 모녀지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보니 그 생김새가 너무도 똑같다.

마치 복제인간 마냥…….

그러다가 문득 지금 시간대가 300년 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어쩌면 저 소년이 트리메스의 과거일지도 모른다.

“그럼, 저게 너냐?”

“결국, 끝까지 쫓아왔군.”

“너라면 안 쫓아왔겠냐.”

언제든 뒤통수 칠 준비를 하는 흑막이 늘 아슬아슬 줄타기하면서 도망치는데 말이야.

샤를은 악당을 놓쳐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트리메스만큼은 끝도 없이 도망가는데 쫓을 수가 없었다.

“아하핫. 맞아. 나라도 쫓아왔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어. 나는 내가 할 일을 끝마칠 마음의 준비가 됐거든.”

트리메스는 자신의 인피 가면을 꺼냈다. 혹시 몰라 준비했던 그 인피 가면이었다.

“어? 잠깐만.”

그녀가 뭘 하려고 하는지는 딱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인피 가면에 자신의 정보를 담아서 씌우면, 새로운 트리메스의 탄생이었다.

샤를은 그 인피 가면을 보고 떠올렸다. 카오스식 전개 주문으로 함정을 파둔 인피 가면이 하나 있다.

그리고 트리메스는 그 가면을 소년 트리메스에게 덧씌우려고 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둬도 되는 걸까? 이건 아기 히틀러의 딜레마가 아닌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해서 히틀러의 아기일 적으로 되돌아 왔을 때, 그 히틀러를 쏴 죽이겠느냐는 딜레마다.

아직 죄짓지 않은 자를 심판해야 하는 가? 구할 것인가, 내버려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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