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 -어이, 통합자! 왔다.
옆에서 둥둥 떠다니던 문글로즈가 동시에 얘기하자 샤를도 느꼈다.
트리메스 특유의 영성이 지닌 색채는 너무 강하다.
잠시 느껴졌던 그 영성의 기운은 곧 거둬졌지만, 샤를은 파기나레코르가 정확히 이 시간대에 나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다려.”
샤를은 미리 나비들을 준비해서 그들의 근처에 배치해뒀다. 등불 주문을 사용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나비는 단지 샤를에게 자신들이 본 것과 들은 소리를 전달해주는 역할이었다.
동시에 나비의 환술을 이용해서 샤를은 일종의 CCTV를 구축할 수 있었다.
여러 화면에서 다각도로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데다가, 언제든 메트로폴 어디로도 이동할 수 있도록 정다면체 깃든 나무 거인의 힘을 빌려 이상한 통로까지 열어뒀다.
그간 도시를 이 잡듯이 뒤진 결과 그들이 발견한 세 철학자 중의 한 명은 확실하다고 판별했다. 나머지는 이 셋보다는 조금 자질이 떨어진다고 할까.
트리메스는 언제 나타날 것인가?
사전에 얘기할 때 여러 가지 가정이 있었다. 본인이 직접 나타나서 상대방을 회유할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하수인을 만들어서 시작할 것이다. 등등.
그러나 어느 쪽도 아니었다. 누구도 나타나지 않는다.
잠깐 기다린 결과, 샤를은 역시 그의 생각이 맞다고 느꼈다. 본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단 말이지.
지금은 개인행동 중인 파기나레코르가 정보를 물어오길 기다리려다가 멈췄다.
“잠깐, 저게 뭐지?”
화면에는 소년들이 각자 종이로 싼 우편물들을 그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이 보였다.
샤를의 옆에 놓인 카드에서 문글로즈가 끌끌 거리면서 그 화면을 직시했다.
-고전적인 수법이군. 저 물건이 바로 위험한 물건이다.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용의주도한 모습. 본인이 감지되었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계획을 변경한 셈이다.
상대를 만나지도 않고 이런 우편물을 전달한 것을 보면 이미 후보는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알았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물음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것을 느꼈다. 뭔가 있다.
-이봐?
-응?
-명령을 내려야지. 루미너스가 우편물을 제거해야 하냐고 물어보는데?
샤를은 곧바로 나비와 연결된 사람들에게 우편물을 막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대신 프란체스카 수도사에게 전달되는 우편물만큼은 내버려 두었다.
이게 기만책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프란체스카는 우편물을 받았다. 그는 수신자를 모른다는 꼬마의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종이로 싼 우편물을 들었다 놨다 했다.
무게로 봐서는 그다지 무겁진…….
“어라?”
프란체스카는 종이를 열자마자 곧바로 살짝 놀라면서 탁자 위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건 짐승의 뼈로 보였다. 젊었을 적에 장의사 일도 했으므로 해부학에도 조예가 있던 프란체스카는 그것이 곧 짐승이 아니라 인간의 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강이뼈를 동강 낸 것 같다.
“이건 대체?”
뼈를 배달한다니, 이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있나. 칙칙한 뼈에 손을 댄 프란체스카는 곧 이상한 끌림을 느꼈다.
“뭐, 뭐지?”
자세히 보니, 뼈의 사이에 난 흠집이 보인다. 그리고 그 흠집 안에서 기이할 정도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에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그 하나하나의 글자마다 엄청난 사악함이 넘실거렸다.
이건 분명하게도 이단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에 걸린 광명자의 심볼을 들고 중얼거렸다.
“빛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빛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빛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당장 이 사악한 물건을 던져버리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손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
마구 흔들어도 떼어내 지지 않는 뼛조각. 접착제라도 붙인 건가 싶어 쳐다보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의 손이 그 뼈를 아주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반응한다. 뼛조각이 손을 파고들기 시작한다는 환각이 피어오른다. 그 괴이한 장면에 프란체스카 수도사는 미쳐서 소리쳤다.
그때, 샤를이 옆에서 나타나서 그에게서 뼛조각을 빼앗은 뒤, 프란체스카 수도사의 뒤통수를 내리쳐서 기절시켰다.
“그 물건이 맞아요. 샤를님.”
샤를은 뼛조각을 빼앗아 종이로 꽁꽁 감싼 뒤에 기절한 프란체스카 수도사에게 계몽중화제를 잔뜩 먹여서 코로 꿈 조각을 뱉게 할 생각이었다.
후유증도 없고 꿈이라고 생각하겠지.
“역시 맞군.”
샤를은 자신이 든 뼛조각을 관찰했다. 계몽주의자의 정강이뼈를 삼 등분 한 것이다.
[계몽주의자의 정강이뼈]
[분류 : 유물]
[개요 : 수천 년 된 계몽주의자의 신체. 뼈 부분. 시간이 흘러서 저절로 유물이 되었다.]
[능력 : 손에 쥔 사람이 민감한 영적 자질과 동시에 계몽 철학을 갖고 있을 경우 상대방을 계몽주의자로 변이시킨다.]
[부작용 : 없음]
3등분을 한 이유는 세 명을 계몽주의자로 감염시키려고 한 것도 있지만 이것보다 더 낮은 단위로 쪼개면 유물의 효과를 적용받지 못해서겠지.
-물건 확보!
-나도 찾았어.
루미너스와 더글라스에게서 각자 나비를 통해 얘기를 전달되자 샤를은 한시름을 놨다.
해냈다-라고 하기에는 아직 술수를 부린 범인을 찾지 못했다.
‘물건을 전달한 소년들을 추궁해봐도 나오는 건 없겠지.’
여태까지의 추적처럼 흔적이 어느 순간 통째로 사라져 있다거나 할 거다.
대신 샤를은 다른 방향에서 이미 트리메스를 찾고 있었다.
*
“내, 내가 여자라고!?”
“음. 그렇게 되겠지? 여긴 별로 대화하긴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공원에 가서 얘기하는 게 어떠니?”
“어. 어.”
어어 하는 사이에 소년 트리메스는 미래의 트리메스에게 끌려와서 공원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소년 트리메스가 안경을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거짓말이죠? 사실 숨겨진 내 이복 누나라거나 사촌 누나 맞죠?”
트리메스는 끔찍할 정도로 웃음이 나오는 모습에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소년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아닌데? 난 미래의 네가 맞아.”
그러자 얼굴이 빨개져 있는 소년 트리메스를 볼 수 있었다.
그래, 이렇게 순진할 때가 있었다. 헤르메스의 화신으로 선택받기 전의 소년 시절은 이런 느낌이었다.
자연 과학에 열중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순진하게 반응하곤 했다. 영원히 오지 않을 순진한 나날들.
“그, 그러면 미래의 나는 왜 여기 왔어요? 여자가 된 이유는 뭐고.”
“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여자가 된 부분부터 들을래?”
“아, 아니요. 왜 여기 왔는지부터.”
“아. 그건 말이야.”
트리메스가 말했다.
“음. 날 속박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말이야.”
“누가 속박해요?”
“응.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하거든. 거기다 겸사겸사 부하들도 만들 겸 준비했지. 방해꾼들도 따돌릴 겸 해서 너랑 만나서 여기서 데이트 하는 거야.”
데이트라는 말에 또다시 소년 트리메스가 얼굴을 붉혔다.
“하나 말해줄까?”
“뭘요?”
“내가 살던 시절에서 여긴 300년 전의 과거야.”
“으엑, 그럼 내가 할머니? 아니지,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 있어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소년의 물음에 트리메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날 구속하는 사람 때문에.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날 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그 구속에서 좀 풀려나고 싶거든.”
“구속이라는 게, 뭔가 잘못 계약해서 그런 거 맞죠?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뭘 도와드릴까요? 법률 서비스?”
“그건 나중에 얘기할게.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어……. 저 말이에요. 미래에는 결국 어떻게 돼요?”
사악한 살인마 겸, 운명을 농락하고 조종하는 헤르메스의 꼭두각시가 되어 흑막 노릇을 하게 된단다.
트리메스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사실 옛날부터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건 아주 오래된 소망이었다. 헤르메스의 화신으로 간택된 순간부터 든 소망이다.
언제든 상대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움직여야 하는 삶의 공포란…….
근래에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 하는 것보다 헤르메스의 계획에 몸을 맡기는 날이 더 많아졌다.
트리메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이 언제였는지 종종 잊고는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외국으로 가서, 웃거나 울거나 따뜻한 감성을 느끼거나 혹은 차가운 사회의 일면을 목도하거나 그런 모든 부분들이 전부 운명의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삭제 되었다.
삶이 없는 꼭두각시는 자신의 삶을 소망한다. 그것뿐.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품을, 과거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순진한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고된 일일지 모르나, 이미 트리메스가 한 번 겪어온 길이였다.
어차피 극단적인 이기주의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약자는 잡아먹히는 거다.
그때, 트리메스는 저 멀리서 투명화를 사용한 채 날아다니는 마도서 한 권을 찾아냈다.
“성가시게.”
“네?”
“아무래도 방해꾼이 온 모양이야. 날 도와주겠다고 했지?”
“네.”
“그럼 잠시 눈 좀 감고 있어 봐.”
소년이 눈을 감자 트리메스는 커다란 검은 보자기를 아공간에서 꺼낸 다음, 그대로 소년을 감쌌다. 보자기는 한 손에 들어올 정도의 크기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 유물은 생물체의 시간을 얼려버리고 쉽게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작아진 소년을 아공간에 보관하고는 저 멀리 날아다니는 마도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귀찮게 하네.”
고열의 광선이 발사된다. 책 한 권 정도는 태워버릴 열기가 쏘아졌으나, 어느새 마도서의 주변에 펼쳐진 겨울 주문으로 인해 그 위력과 방향이 상쇄되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덮치는 감각이 들었다. 파란 바다의 색을 띠는 거대한 해머가 휘둘러지는 감각에 팔을 들어 막았지만 멀리 튕겨 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흐음.”
저 멀리 착지한 트리메스는 뒤틀린 자신의 팔꿈치를 끼워 맞췄다.
그녀를 공격한 것은 플로나 레이튼이었다. 오션 블루의 색을 띠고 있는 커다란 투핸디드해머를 들고 있었다.
“대적자의 종이구나.”
“…….”
플로나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적은 어차피 샤를이 오기 전까지 버티는 것.
그건 이미 트리메스도 알고 있는 바였다.
“어떻게 할까.”
물결무늬 파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트리메스를 감쌌다.
플로나가 빠르게 달려들어 물결무늬 파동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 역장은 단단한 장벽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예상외네. 네 주인이 벌써 내 생각을 읽고 있나?”
“…….”
“대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군. 그럼 난 먼저 가보겠다. 거대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
다가온 플로나가 거대한 둔기를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픽하고 사라져 버렸다. 감각을 넓혀서 주변을 감지해봐도 영 소득이 없다.
“또 놓쳤어.”
플로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마도서인 파기나레코르를 바라보았다.
“파기나레코르. 저 여자를 찾을 방법이 없을까?”
영체에서 현실화한 파기나레코르가 플로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법이 있긴 해.”
“뭔데?”
“상대방의 신체 일부를 갖고 점을 치는 거야.”
점술은 샤를이 전문이었지만, 플로나는 트리메스의 신체 일부를 갖고 있긴 했다.
“여기 있는 이거로도 돼?”
투핸디드 해머의 모서리에 트리메스의 혈흔 일부가 붙어 있었다. 조금 전 팔꿈치를 탈골시킬 때였다. 그 대답은 곧 나타난 샤를이 했다.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