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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206화 (205/221)

제206화 - 차가운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무명교단의 건물 중앙에는 이제 처음 보는 심볼이 올라가 있었다.

별빛 가득한 성좌 위에 수레바퀴와 눈이 그려진 표식.

얼마 전에 교단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상징으로, 무명자를 상징하는 심볼이 올려져 있었다.

그러면 샤를은 이 건물을 보면서 이것이 승리인가 잠시 고개를 갸웃해보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엔딩의 영역에 도착했다.’

보통 게임 속이었다면 이쯤에는 온갖 잡다한 일이 터진다. 갑자기 이계의 차원문 두께가 얇아지고 그 틈으로 사악한 신 넷이 지상에 강림하거나.

하늘에서 핏빛 천사가 강림해서 모든 것을 사멸하는 피 구름을 형성해서 세상을 지옥으로 빠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높이 3km의 거대한 파도가 몰아쳐 세상을 물로 뒤덮어버린다.

아니면 도저히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이계의 존재가 현실에 증식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잡아먹는 등의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사건들이 몰아쳤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단지 ‘때’가 되었을 뿐이며 이제 엔딩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샤를은 잠시 눈을 감았다. 심상 세계로 가는 것처럼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광명자가 만들어둔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광명자는 이곳을 축제의 환영이라고 불렀다.

그가 샤를에게 보여줬던 것과 유사하게 완전히 하얀색 빛만 남아있는 그 공간은 일전의 함정에서 느꼈던, 실험실의 백색 공간의 불쾌함 대신 안온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했다.

바닥에 동그란 것들은 없다. 샤를은 이 공간이 광명자가 말했던 대로 아직은 공허와 현실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직까진, 괜찮다. 샤를은 광명자만큼이나 세상을 ‘지탱’할 수는 없었으나 소멸한 광명자의 힘을 흡수한 이후로는 이 공간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손상이 갈 테니 세상은 일전에 샤를이 선언했던 대로 비밀과 현실이 뒤섞인 기괴한 세상으로 변해가는바.

너무 늦지 않도록 트리메스를 제거하고 ‘엔딩’에 도달하는 것이 샤를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눈을 뜨고 현실로 돌아왔다. 교단 내부를 정비할 시간이다. 급하게 트리메스를 쫓아갈 수도 있지만 문글로즈의 조언 덕에 잠시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차원문을 여는 능력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거 알지? 트리메스가 30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알고 있으면, 300년 전보다 조금 더 일찍의 과거로 보내 수 있어. 물론 간발의 차이로 보낼 거다.

시간 여행을 하는 후발주자로서는 상대의 시간적 좌표를 알고 있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 일찍의 시간대로 가서 더 효율적인 공격을 거행할 수 있다는 것.

트리메스가 건너간 정확한 시간대를 파기나레코르가 알고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오셨어요?”

“응.”

승강기를 타고 올라간 샤를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서있던 유마를 만났다. 유마는 샤를을 보자마자 재무제표를 그에게 건넸다.

유마의 훌륭한 재무 능력 탓에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재산을 불린 상태였다.

“대단한데?”

“이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 재산을 불리지 못한 사람이 바보인 거죠.”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유마는 정말 바보가 아니고서야 돈을 못 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가볍게 말해뒀다.

“오늘은 가지 말고 잠시 기다려.”

“예? 왜요?”

“이복형제가 한 명 더 있다.”

“네에?”

유마가 눈을 깜박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이 무슨 숨겨진 형제란 말인가?

“아버지라는 인간은 대체 어디까지 난봉꾼이었을까요? 사생아가 셋이라니.”

“더 있을 지도 모르지.”

음. 난봉꾼을 넘어서 가능충이었다. 정확히는, 요하네스 헥센의 몸을 차지한 비스타 헥센이.

활짝!

“형아 안녕!”

등장한 로렌이 문을 크게 열어젖힌 모양에 앞에 있던 비서진들이 다 놀란 것 같다.

“들어와.”

“아이고 이것 참. 나도 실례하겠네.”

그 옆에 더글라스가 붙어 있다. 샤를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아직도 같이 붙어 있나?”

“씁. 물가에 내놓은 애 같아서 도저히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말이야. 갑자기 가판대 위의 절인 청어를 그대로 집더니 생으로 처먹지 않나, 포도주를 따서 마시더니 꽐라가 돼서 난동을 부리지 않나. 하아.”

음. 원시 속에서 길러진 타잔……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로렌의 행동이 자유분방한 것 같다.

뭐 틀린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교감이나 생활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고 그나마도 교육을 해줬을 세레스는 인간이 아니라 인어였으니 이상한 행동 방식이 몸에 고정되었겠지.

“유마. 쟤가 로렌 헥센이다. 그리고 로렌 헥센. 여기는 이복형인 유마 헥센이다. 너처럼 어머니가 다른 형제지.”

“또 형아가 생겼어?”

로렌이 다가와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유마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콧김을 내뿜었다.

“귀, 귀엽네요.”

“귀엽다고?”

유마는 자신의 외모만큼이나 소녀적 감성을 갖고 있다. 사고만 치고 다니는 로렌이 귀엽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아무튼. 이 녀석은 잠시 메트로폴에 머무를 거다. 그리고 인어의 혼혈이야.”

“인어……요?”

“어머니가 인어다.”

“에에에에에!? 비, 비늘이 없는 데.”

그건 샤를도 모른다. 뭔가의 비술을 사용해서 자신의 다리를 만들어내고 비늘을 숨겼겠지.

“아무튼, 당분간 네가 돌봐줘라.”

“아, 알겠습니다.”

새로 생긴 동생이 귀여운 데다가 ‘형아’하면서 엉겨 붙으니 유마의 입고리가 귀에 걸렸다.

“진짜? 나는 이제 해방인가?”

옆에서 더글라스가 좋아하는 것은 덤이었다.

적당히 가족 상봉을 끝마친 샤를은 에세나를 들여보냈다.

“잘 지냈니?”

“네. 샤를님. 여기 말씀하신 서류에요.”

건네주는 그간 무명교단에서 고용했던 사람들에 대한 프로필을 탁하고 내려놓았다.

심상 세계의 별 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떠서 반짝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샤를을 믿는 신자들이다.

그 별에 일일이 손을 가져가서 확인할 수도 있지만, 샤를은 별에 손을 가져다 대 확인하는 것보다 이렇게 서류로 그들에 대한 정보를 읽는다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걸 느꼈다.

때론 권능보다 현실이 더 빠를 때도 있는 거다.

휙휙 넘겼다. 무명교단이 커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외부의 영성자들을 고용하고 교단 내부에서 영성자들을 길러낼 필요성이 있었다.

그들을 무명교단의 영성회원이라고 불렀다. 지금 보아하니, 숫자는 현재 200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인다.

“꽤 많군?”

“예. 무명교단이 다른 모든 사악한 사이비교들을 물리친 것부터 시작해서, 광명 교단과 협력 관계를 맺은 것까지 알아낸 야생의 영성자들이 무명교단에 입교하길 원했어요.”

“흠.”

“많은 부분에서 제가 걸러내긴 했는데 상대방의 정신을 읽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서요.”

“그렇긴 하지.”

에세나의 정신 능력은 만능이 아니었다. 가령 자기 자신조차 속이고 움직일 수 있는 영성자들은 손쉽게 에세나의 거름망을 피해서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무명교단과 대적할만한 단체는 메트로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모로 시커먼 속내를 갖고 있더라도 샤를이 멀쩡히 살아있는 동안에는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이제 소냐 에센리트를 불러줄래?”

“예.”

영성회원에 대한 검토는 더는 필요 없어 보인다. 가끔 심상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영성회원들의 별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에 대해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에세나가 나가고 샤를은 신을 잃은 신의 추종자를 만났다.

소냐 에센리트는 예전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은 꿋꿋하게 버티는 것을 보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조금 견딜 만해?”

“신을 잃어버린 사도에게 이 시간 자체가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럭저럭 입니다.”

소냐 에센리트는 예전처럼 샤를을 대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했다.

“나랑 협력한다고 해서 놀랐거든. 광명자가 죽고 난 이후로 나는 원수가 된 게 아닌가? 결국 그의 마지막은 내가 장식했으니까.”

광명자가 삶의 의지에 대한 끈을 놓아버렸다고 해도 그의 최후를 마무리한 건 샤를이었다. 그러므로 소냐 에센리트는 샤를에 대해 복수심을 불태울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협력하라고 하셨습니다. 광명자의 종이, 그 명령에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샤를은 소냐 에센리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여자가 광명자를 섬기는 것은 단지 그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의무를 내팽개치지 않는 그런 성격.

거기에 기계적인 명령 수행에 대한 의지도 있다. 성직자라기보다는 군인에 가까운 성격이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야. 이 현실에 범람하는 비이성적인 것들을 틀어막는 것. 저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현실과 비현실이 섞이는 것을 막고 싶다. 내가 광명 교단에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원하시는 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소냐 에센리트를 내보내고 난 뒤 샤를은 가장 중요한 대담을 앞두고 있었다. 그건 바로 파기나레코르와의 직접 대담이었다.

“파기. 얼른 나와.”

“히잉.”

영체 상태였던 파기나레코르가 현실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석판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참 많은 데?”

“어, 음. 나도 잘 몰라.”

“눈 돌아가는 거 다 보인다? 말 안해?”

“아, 진짜 모른다니깐! 아무튼 모름!”

“그럼 중요한 것 말고 곁가지라도 묻자.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석판을 만든 건데?”

“……음. 이게 있으면 그래도 이전보다는 낫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이전보다는 나아졌니?”

“나아졌지?”

그렇게 말하면서 파기나레코르는 샤를에게 손을 가리켰다.

“이제 기존의 엔딩을 반복하진 않잖아?”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너?”

“헤헤. 나도 잘 몰라요.”

이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는 것을 보면 도저히 말해줄 의향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파기나레코르를 고문하기에는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샤를은 파기나레코르가 석판에 대한 말을 숨기는 것이 어떤 ‘제약’같다고 느꼈다. 뭐, 금제를 걸어서 그 단어를 말하지 못하게 한다던가처럼 말이지.

샤를은 한 숨을 내쉬고는 파기나레코르에게서 신경을 끄고 대신 이번에 얻은 창을 들어서 파기나레코르에게 보여줬다.

“그럼 이게 뭔지는 가르쳐줘.”

“그거 그거임. 그.”

“또 말장난 하면 이제 페이지 찢어버린다.”

“아! 인과율의 창.”

“그건 나도 아는 데? 신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지.”

“인과율을 창의 형태로 돌돌 말아놨네. 근데 나도 이 창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몰라 쭈인. 우리는 관리자니, 선각자니 뭐라고해도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니까.”

“그 정체 불명의 선각자도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지?”

“물론이지.”

샤를은 잠시 턱을 괴었다. 이 인과율의 창을 분석하는 데는 실패했다. ‘지배의 권능’을 걸어도 아무 반응이 없고 심지어 다른 사람도 이걸 볼 수 없다. 소냐 에센리트처럼 강력한 영성자도 이 창을 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창의 위력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광명자마저 죽일 수 있는 위력의 창……. 그러나 일반적인 평범한 물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냥 투과되듯이 뚫고 지나간다.

오직 신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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