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 어부형제단의 교주 부라토스는 이미 제거된 여러 다른 교단을 탐색하고 분석했다.
그래서 왜 그들이 망했는지 여러 가지를 이유를 찾아냈다.
‘무명 교단의 교주와 엮이자마자 패배했다.’
‘메트로폴에 근거지가 있어서 공격에 취약했음.’
‘점술이나 주술로 방벽을 만들어도 상대방이 틈을 타고 본거지로 밀고 들어오면 위험함.’
‘교주가 제거 되면 교단은 금방 사라지게 됨.’
부라토스는 심해 깊숙한 곳에서 신성의 씨앗을 완전히 개화한 뒤,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었다.
기존의 영성자와는 완전히 다른 어마어마한 힘. 하지만 그런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방만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대체 가능한 요소를 넣어서 메트로폴을 점거한다.
레비아탄의 시체에서 뽑아낸 정수가 없어도, 개화한 뒤의 부라토스는 자신의 신체에서 뽑아낸 피로 어인을 제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래 남쪽 섬에 근거지를 뒀으나 이제는 아예 거대한 배 한 척을 운용하면서 그걸 근거지로 만들어서 늘 움직여 다녔다.
어차피 다른 배들은 해무 때문에 인빅타 호를 감지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배 하나는 잘 뽑았단 말이야.”
부라토스는 자신의 바이킹 수염을 쓸었다.
인빅타 호는 해적선 시절 ‘무지갯빛 지느러미 일각 고래’라는 신비한 생물을 아주 끔찍하게 살해했다.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생물들은 본능적으로 영성을 다룰 수 있었고, 배에는 저주가 걸렸다.
저주를 받아서 침몰한 배. 남극 해저 어딘가 바닥에 처박혀 있던 걸 꺼내서 자신의 본거지로 사용했다.
이 배를 뽑은 이후로 그는 누구에게도 공격받은 적이 없고 어인들을 무한정 양산해서 다시 메트로폴로 보낼 수 있었다.
‘개조’ 된 이후로 어인들은 모두 그에게 충성하게 되니까.
여러 협조자를 통해서 순조롭게 교단의 위세를 늘리고 있던 도중, 별로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메트로폴에서 많은 수의 어인이 제거되었단 소식은 그의 머릿속에서 또 다른 방법론을 제시하기에는 충분했다.
‘심해의 괴수들을 써먹어 보자.’
바다 밑에는 인간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숫자의, 거대하고 기상천외한 형태의 심해 생물들이 존재했다. 수몰왕의 권능을 사용하면 그런 생물들을 조종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 부하중 하나인 바다뱀 머리 어인 하나가 다가왔다.
“두목…….”
“쓰읍 두목이 아니라 교주님.”
“아, 교주님. 아무튼, 근처에 해군이 나타났다는데요?”
“뭐? 숫자는?”
“한 척이랍니다.”
“아, 그럼 내버려 둬. 평소처럼 알아서 해무를 뚫고 지나갈 테니까.”
그놈들의 색적 능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라, 해무 속에서 그들의 배가 스쳐 지나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그게 단순히 지나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
“해무로 들어오자마자 해군의 배가 멈췄답니다.”
“배가 멈춰……?”
그때 멀리서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물이 튀었다.
“포, 포격입니다! 교주님!”
부하 하나가 다가와서 외치자 부라토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멍청한 놈. 이 해무 속에서 포격을 아무리 발사해봐도 소용없다는 것 모르냐? 좀 호들갑 좀 떨지마라.”
이 해무는 인빅타 호에 신비한 생물이 건 저주다. 바로 ‘방향’을 찾지 못하게 하는 저주였다.
이 저주로 인해 인빅타 호는 남극으로 가서 그대로 암초에 꼴아박았고 그대로 침몰했었다.
“하지만 이 배에 포격을 가하는 건 처음이 아닌가? 어떻게 해군이 우리 배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지?”
포격이 쏜 방향을 보니 여기서 수십 킬로미터는 바깥에서 쏜 것이었다.
모든 포격은 형편없이 빗나갔지만 적이 이 배를 알아채고 여기에 포격까지 가한다는 이 상황 자체가 이상하다.
‘영성자가 탔나? 아니지. 영성자가 탔다고 하더라도 이 배를 공격할 이유는 못 돼. 이 배를 공격할 만한 사람이라면…….’
그는 섬뜩한 감각을 느끼고 외쳤다.
“당장 백병전 준비!”
“예!”
거대한 철갑선이 만들어지고 원거리에서 포격을 주고받는 이런 시대에는 시대착오적인 전술이라고 하지만, 포격 맞을 일이 없는 인빅타 호에서는 아직 현역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무언가 다가오는 작은 것들이 보였다.
*
수십 발의 주포와 부포 포격이 있었으나 전부 빗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샤를은 자신의 영적 능력으로 적의 배를 ‘감지’하고 감지된 배의 위치를 브로튼 함장에게 정확히 일러주었으나 모든 포격이 빗나간 것은 아무리 봐도 어떤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배의 해무를 없애지 않는 이상 이런 방식으로 격침 시킬 수는 없겠어.’
이 해무는 염동력으로 밀어내더라도 금방 다시 복구되는 형태라 낭비가 너무 심하다.
13인치 주포 한 방이면 저런 낡고 오래된 배는 일격에 격침이 가능할 테지만 한 대도 못 맞추면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포격으로는 정리가 안 될 것 같군. 직접 들어가서 해무의 원천을 제거하는 수밖에.”
“근접전이군요? 그럼 저도 자신 있습니다.”
소냐가 옆에서 말했다. 그녀의 능력은 함께 지내면서 샤를이 이미 알고 있었다.
광명자의 불꽃 계열 주문과 열 계열 주문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창과 방패를 들고 근접전까지 벌인다.
로렌이나 플로나야 말할 것도 없다.
“난 싸움은 못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지.”
더글라스는 한숨을 내뱉었다. 로렌의 보호자로 왔지만 더글라스는 세레스에게 바다왕의 주문을 배웠고, 그전에는 루미너스식 마탄술을 배웠으니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 가지.”
샤를이 손을 뻗자 무존자의 겨울 주문이 앞으로 뻗어지면서 바다 위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길로 사람들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샤를은 이 해무에 깃든 능력이 방향을 잃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진작에 간파하고 있었으므로, 제3의 눈을 열어서 그 능력을 무효화한 채 선두에서 뛰어들었다.
배 위에서는 어인들이 한참 난리를 치고 있었다.
샤를 일행을 발견한 펭귄 머리 어인 견시수 하나가 빼액 거리면서 샤를 일행을 향해 무어라 외쳤다.
곧이어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어인들이 들고 있던 소총을 들어서 쏴댔다.
‘이런 부분에서는 또 의외로 현대적이네.’
기껏해야 쇠뇌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들고 있는 건 신형 5연발 소총이다.
염동력으로 비틀자 탄환이 이리저리 빗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대로 밀고 들어가서 갑판 위로 뛰어 올라갔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구형 범선의 목조 갑판 위로 올라오자마자 어인들이 달려들었다.
가볍게 와류를 형성해서 어인 하나를 통째로 꼬아버리려는데 어인이 멀쩡히 움직인다.
“어?”
비틀려 있는 걸 보니 효과는 있는 것 같은데 뭐지?
샤를은 그 어인이 휘두르는 커틀러스를 피해낸 다음에서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다.
“애초에 어인도 아니었잖아?”
덩치가 크고 근육질의 게 머리 어인에게 필요한 수준의 와류 염동을 가했으나 그 아래 몸통이 오징어로 되어 있었다.
-크랴랴랴략
“키메라인가?”
이미 어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인간과 형태가 벌어졌다. 무척추 동물이라 이런 식의 강한 염동력에서도 살아남는 것 같다.
그때, 놈이 갑자기 기습적으로 산성이 가득한 먹물을 발사하길래 샤를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깜짝이야!”
조금 삐져나온 머리 끝부분이 산성으로 녹아버리고 있었다. 방심하면 안 되겠는데.
손을 꽉 쥐어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응축시킨 샤를이 외쳤다.
“이 어인들은 하나같이 기존의 어인보다 강해! 두 종류 이상의 어인이 결합한 키메라 같다!”
“걱정 마세요!”
플로나의 대검이 휘둘러지자 어인 하나가 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쪼개진 절단면에서 기이한 식물의 넝쿨이 자라서 흘러나왔다.
옆을 돌아보니 소냐 에센리트가 불꽃이 맴도는 창을 들어서 그물을 들고 있는 어인 하나를 향해 집어 던졌다.
불꽃으로 인해 살이 타는 소리가 들린다.
로렌은 강력한 손톱을 사용해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면서 어인들을 조각내고 있었고 더글라스는 뒤에서 깔짝깔짝 총을 쏴댔다.
‘흠. 뭐 대충 알아서 할 것 같은데.’
갑판 아래에 있던 어인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이런 놈들은 충분히 제거할 수 있어보인다.
“으악! 살려줘!”
더글라스가 괴성을 내지르면서 거대한 해조류가 덕지덕지 붙은 어인을 피해 도망가자 소냐 에센리트가 멀리서 광명자의 창 주문을 쏴서 어인을 소멸시키는 걸 보고 샤를은 갑판 아래를 향해 강한 힘을 집중시켰다.
집약된 염동력이 회전하면서 물리력을 발산, 갑판을 드릴처럼 뚫기 시작했다.
나무 파편이 튀고 나자 뚫린 구멍 밑으로 해마 머리의 어인이 멍청한 표정으로 샤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봐?”
*
부라토스는 심기 불편한 모습으로 선장실에 있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하늘 위에서 천장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우아아아아악!
기묘한 정신파를 내뱉으면서 해마 머리의 어인이 바싹 구워진 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해마 구이는 어떠냐. 어부형제단의 교주.”
샤를은 부라토스를 관찰했다. 땋은 바이킹 수염에 민머리. 거친 피부를 보면 그냥 평범한 사람 같고 그다지 어인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크흐흐. 교주를 죄다 죽여댔던 무명 교단의 교주가 이 먼바다까지 행차할 줄이야.”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 어인이라고 할 것 같은 부위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입은 사람의 혀가 들어가 있는 대신, 사람의 말을 하는 기이한 곤충이 들어가 있었다.
“아, 뭐냐 그 혀는. 기생충?”
“뭐, 이런 때를 대비해서 이것저것 준비를 했지.”
부라토스는 타인의 실패를 보고 배우는 타입이었다.
부라토스가 발을 구르자 하층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이할 정도로 늘어진 촉수는 움직이는 형태만으로도 혐오감과 불길함을 선사했다.
“자, 알아서 살아나 보시게.”
부라토스가 꾸물거리면서 촉수 사이로 파고들었으나 촉수는 그를 공격하지 않고 비껴가기 시작했다.
화염 주문을 퍼부었으나 촉수가 대신 가로막으면서 죽는다.
물 위에서는 어인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여기서 놓칠 수는 없기에 샤를은 비장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이건 그가 게임 속 부라토스의 특징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야! 대머리!”
그 순간, 촉수가 멈췄다.
“……뭐라고 했나.”
“대머리! 빡빡머리! 머리가 부랄처럼 생긴 부랄토스!”
부라토스의 약점……. 그것은 머리카락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이름을 멸칭으로 부르면 더 분노한다.
“이 개 같은 새끼……! 여기서 죽여주마!!”
완전히 눈이 돌아간 부라토스가 촉수들의 틈 사이에서 비집고 나와서 돌격했다.
북구의 광전사처럼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다른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었다.
‘언제 무기를 챙겼대?’
샤를은 빠르게 뒤로 회피하면서 강한 염동력을 부라토스에게 투사했지만 소용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면서 눈에 핏발이 가득한 부라토스의 전신에 기이한 빛이 어리더니 주문이나 염동력을 그대로 무산시키는 게 아닌가?
-쭈인, 너무 잔인하군.
파기나레코르가 옆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