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 로렌은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정말로 사람처럼 보였다. 튀어나온 손톱만 아니라면 말이지.
온몸을 뒤덮고 있던 비늘은 보이지 않고 마치 여러 개의 로프 다발처럼 보였던 머리카락은 하늘하늘거리며 흔들린다.
하지만 그 손은 칼날이나 총알마저도 튕겨냈던 강력하고 단단한 옛 모습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아마도 부분적으로 형태를 변환하는 비술을 익힌 것처럼 보인다.
“네놈은…….”
“로렌이다!”
“어인 사냥꾼……!”
긴장한 어인들이 몸을 움츠린 동안, 정신이 돌아온 취객 몇몇이 재빨리 탈출했다.
너무 술에 취한 취객들은 아직도 엎어져 있는 상태.
“히이.”
로렌이 씨익 웃어보이자, 이전처럼 삐죽했던 치아 대신 가지런하고 하얀 이가 보인다.
쏨벵이 어인 하나가 자신의 몸을 부풀리며 로렌을 향해 돌진했다. 그 부풀어 오른 등에는 가시 형태의 지느러미가 자라있었다.
로렌은 달려오는 쏨벵이 어인이 몸을 낮추는 것을 보면서 그대로 강철같은 자신의 손을 펴서 가시를 잡았다.
그리고는 통째로 뽑아버린다. 익숙히 보아왔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완력.
어인들은 보통 인간보다 몇 배는 힘이 강한 생물로 변하지만 로렌은 그보다 더 강한 것 같다.
쏨벵이 어인을 들어서 통째로 반으로 분리시킨 로렌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공격해!”
“여기서 놈을 잡아서 그분께 칭찬을 받자!”
“후욱, 후욱!”
흥분한 어인들이 그들의 원래 목표였던 술 취한 선주들을 포기하고는 그대로 곧바로 로렌을 향해 달려들었다.
로렌의 전투법은 이전보다 훨씬 세련되어 있었다.
단순한 짐승의 움직임처럼 네발로 기면서 달려들었던 옛날과는 달리 직립하면서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다.
곧바로 움직인 것은 칠성장어 어인이었다. 뛸 듯이 날아오른 그 어인으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입을 열었다. 나선형으로 벌어지면서 그 안에 끔찍하게 많은 이빨이 보인다.
사람이 들어가면 그대로 갈려 나갈 것 같은 모습……!
로렌은 강철 손톱을 이용해서 그대로 입의 가장자리 부분을 낚아챈 뒤에 강하게 휘두른다.
너무 빠르게 휘두른 나머지 한 바퀴 회전해 버린다.
그리고나서 달려드는 성게 머리의 어인에게 칠성장어 어인을 집어던졌다.
칠성장어 어인은 성게 머리에 꽂혀서 그대로 꼬챙이가 되어버린다.
“쿠어어어억!”
“이 자식이!”
성게 머리 괴인이 시체를 털기 위해 흐느적대는 동안 상어 머리 괴인이 달려든다.
그대로 주먹을 날리는데 로렌의 주먹에 탁하고 막힌다. 그리고 가해지는 악력.
거대한 덩치인 상어 어인이 로렌의 한 손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뿌드드득.
손의 뼈가 골절 되는 소리와 함께 상어 어인의 주먹이 찰흙 놀이를 할 때나 볼법한 부정형의 모습으로 일그러졌다.
수많은 어인들이 달려드는 동안 기회를 노린 문어 어인이 달려들어서 먹물을 내뱉었다.
먹물이 발사되어서 로렌의 전신으로 뿜어진다. 방사형으로 쏘아낸 먹물은 그대로 로렌에게 묻어서 시야가 가려졌다.
“됐다! 놈은 이제 눈을 쓰지 못해!”
“돌겨어억!”
“거북이 나가신다!”
거북 어인이 자신의 갑옷을 믿고 달려들었다. 로렌의 얼굴을 후려친 뒤, 그대로 재차 배에다가 일격을 가하려던 거북 어인은 날카로운 칼날이 등딱지조차 뚫고 들어오는 것을 봤다.
“무, 슨, 손톱이 칼날 같이…….”
그대로 심장을 들어다가 맨손으로 뽑아낸다. 꽉 쥐어버리자 심장이 그대로 터져버리고 거북 어인이 쓰러진다.
벌써 그만큼 죽자 어인들의 사기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괴, 괴물.”
“씨, 씨바 도, 도망칠까?”
도망치기는 쉽다. 어인의 권능을 사용해서 그대로 물에 녹아들면 누구도 그들을 잡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인들에게는 그들의 사정이 있었다.
“닥쳐! 로렌을 잡는 자에게는 영예로운 ‘제 3 갑판장’의 칭호를 주겠다!”
“우? 우오오!?”
“가, 갑판장이라구?”
문어 어인이 외치자 다들 눈이 돌아가서 로렌에게 달려들었다.
“그냥 덤비지 말고 무기를 써라 멍청이들아!”
문어 어인은 바닥에 놓인 그물을 가리켰다. 혹여나 필요할까봐 가져왔던 물건인데, 진짜로 필요한 일이 생겼다.
그물을 쥔 두 잉어 어인이 그물들 들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물 끝의 추 때문에 그물이 점차 크게 돈다.
“잡아라!”
“어기 여차!”
“뱃놀이 가잔다!”
여태까지 거의 한 장소에서 싸우던 로렌이 드디어 처음으로 장소를 떴을 만큼 그물은 위협적이었다.
샤를은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면서 이 인어들이 조금 더 조직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놈들은 섀터 섬에서 만났던 어인들보다 확실히 강해.’
그 어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어인들은 각 형태마다 자신들이 가진 특징이 극대화 된다.
문어라면 뛰어난 지능을 얻게 됨과 동시에 방금처럼 먹물을 뿜을 수 있게 되고, 상어는 피냄새를 훨씬 잘 맡게 되고 힘이 강해진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들의 전투를 보는 동안 샤를은 옆에 있는 선술집 주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기묘하게도, 그는 샤를처럼 고요한 눈빛으로 저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최소 영성자였거나, 혹은 그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자는 어부형제단에 협력하는 관계일 수도 있고.’
어인이 아니라고 어부형제단에 가입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물을 던져!”
“이 멍청아! 그물을 나한테 던지면 어떡해?”
“이 짬찌새끼야! 그물 한 두 번 던져보냐!”
로렌의 움직임은 탁월했다. 자신의 신체 능력을 활용해서 상대방 진형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어인들의 그물이 자기들에게 날아가면서 서로를 묶어댄다.
헥센 저택에 있었을 때에 비하면 실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지금이라면 로렌의 신체를 숙주로 기동했던 하얀 유령과도 싸워서 이길지도 모르겠는데.’
샤를이 그렇게 판단할 정도로 강하다. 하얀 유령은 세레스만 처치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놈이었다.
‘그러고보니 이제 휠레모르페 엔진은 삭제된 건가?’
로렌의 모습에서 이전에 고문당했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얀 유령의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고. 세레스가 확실히 처리한 모양.
전황은 착실하게 로렌의 승리로 굳어가고 있었다. 몇 수 더 익은 문어 어인은 잠시 뒤에 그들이 패할 것이라는 것을 읽었다.
“후, 후퇴해라!”
“물 속으로 후퇴!”
바닥에 깔린 강물이 있으므로 언제든 도망칠 수 있었다.
그물에 걸려 바둥거리던 어인들도, 로렌에게 당해서 한쪽 팔이나 다리가 날아갔던 어인들도 순식간에 물속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더니 쏜살같은 속도로 이동해서 사라지려고 했다.
그때, 어인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 어째서지?”
“어째서 우린 아직도 이 건물 안에 있는 거냐!?”
그렇게 놀란 어인 하나가 물 밖으로 나와서 입구를 바라보았다.
“가, 강물이…….”
강물이 입구에서 뚝 끊겨 있었다. 그때 개입한 것이 바로 샤를이었다.
“어딜 도망 가려고?”
‘면’의 단위에서 힘을 가할 수 있는 염동력은 상상 이상으로 편한 능력이었다.
덕분에 중간에 강물을 뚝 끊어버렸다.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샤를이 놈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막자, 이제 이 선술집은 통발 내부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통발 내부에서, 무시무시하게 강한 물고기 한 마리가 입을 벌렸다.
잠시 뒤에, 그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로렌 만이 홀로 서있었다.
“오랜만이네?”
샤를이 묻자, 로렌은 고개를 돌렸다.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로렌이 또 새하얀 치아를 내보였다.
“안녕! 형아!”
로렌은 확실히 샤를을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
너무 친근감 있는데? 생각해보니, 샤를은 로렌이 생물학적으로는 이복형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아버지의 몸을 빼앗은 비스타 헥센은 너무나 쌉가능충이었던 것.
평소에 생각해본 적 없던 형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자 오히려 샤를은 당황하게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우린 형제였구나.”
“응.”
“형아란 말은 어디서 배웠냐?”
보통 그런 말투 안 쓰지 않아? 라고 물어보려던 샤를은 로렌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더글라스가 가르쳐줬어.”
“뭐라고?”
샤를은 잠깐 당황하다가, 슬금슬금 도망치려는 선술집 주인을 향해 손을 뻗어서 염동력으로 움켜쥐었다.
“더글라스가 살아 있어?”
“응.”
“어딨는데?”
“강 근처에 있는 폐건물에.”
*
더글라스는 입김을 호 불면서 피시 앤 칩스를 만들고 있었다.
“이거 만한 게 없다니까.”
가난한 노동자들이 먹던 식사였는데, 우연찮게 그 콜르멜르 거리를 걷던 더글라스는 그곳에서 팔던 이 피시 앤 칩스의 맛에 빠져 버렸다.
고등어를 튀겨서 그 위에 레몬을 얹은 그는 비린내가 사라지는 걸 느끼고 감사히 한 입을 먹기 위해 포크를 들었다.
그때, 건물 한쪽과 연결된 강물 바닥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푸하!”
“여, 왔냐? 로렌. 이리와라 오늘 내가 메트로폴의 명물 피시 앤 칩스의 맛을 보여줄 테니까. 이전에 먹던 음식이랑은 차원이 다를……. 어?”
“진짜 있었네요?”
“어? 어? 자, 자네가 왜 여기에……?”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만.”
더글라스는 왠지 반가워졌다. 샤를과는 뭐 마음이 딱 맞는 친우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현실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동료였었다.
“이야, 정말 반갑구만 자네!”
가서 포옹해주려는 찰나, 더글라스는 샤를의 온 몸에서 생선비린내가 나는 것을 깨달았다.
“으윽, 자네 정말 냄새가 심하군.”
“하아. 내 이미지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샤를은 한숨을 쉬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면 아래에서 어인들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굴비처럼 엮여 올라왔다.
“그 능력 때문에 형아는 편하겠네.”
“이거 어디다 가져다 두면 된다고?”
“추운 곳, 아, 아니지. 냉동 창고에 넣으면 돼!”
“……맙소사.”
샤를의 등 뒤로 딸려 올라오는 어인들의 시체 수는 못해도 수백 이상으로 보였다.
“이렇게 많은 어인들을 잡았다고?”
“월척이 걸렸거든. 선술집 한쪽에 어인들이 습격하는 걸 발견했어.”
사실 놈들을 죽이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로렌은 엄청난 신체 능력으로 어인들을 갈아댔으니까.
하지만 뒷정리가 좀 걸렸다. 일단 술에 취한 취객들을 일일이 암시를 걸어야 했고 좀 멀쩡한 취객들은 죄다 등불 주문으로 기억을 조작해야했으니 뒷정리를 제외하면 그다지 문제는 없을 거다. 선수를 쳐서 도망친 몇몇도 나비를 보내서 기억을 조작시켰다.
“아, 아니 잠깐. 샤를 자네, 어인을 쫓고 있다고?”
샤를은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당연하지. 어인들이 메트로폴을 점령하려는데 막아야하지 않겠어?”
“자네는 아주 이상한 일을 부르는 체질이로구만 그래.”
“그것보다, 대체 당신은 어떻게 살아있었고 여기 왜 있는 건지 좀 가르쳐줬으면 하는데.”
더글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렌이 그런 말을 조리있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못 들었겠군. 자, 앉아보게.”
팔짱을 끼고 앉아서 이야기를 다 들은 샤를이 말했다.
“근데 왜 여기 숨어 있는 건데? 경찰국으로 안 돌아가고.”
“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찰국장으로 ‘그 여자’가 부임했다던데.”
“루미너스?”
“…….”
뭐야, 겨우 그런 이유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