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 그 남자는 메트로를 완성한 뒤에 신성의 씨앗을 발화시켜 광명자가 되었다.
“꽤 긴 시험이었지.”
신이 되는 동안, 그는 여러 시험을 겪었다. 이계에서 어떤 괴물들을 죽이기도 했으며, 그의 위에 걸맞은 것들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기도 했다.
“나는 내가 만든 메트로를 내 신위에 걸맞은 상징물로 쓰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오랫동안 손을 안 대는 사이에 알아서 강해져 버려서 말이야.”
메트로의 성능이 너무 뛰어났던 것이다. 그 뒤 알아서 자가 증식했으므로, 광명자는 결국 메트로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여러 종족이 그 메트로를 쓰고 있었던 것도 선택의 이유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을 겪은 끝에 광명자는 이윽고 자신의 신위를 공고히 만들었다. 인간이자 신인 존재가 되었다.
그가 있던 시대에는, 이런 인간에서 태어나 신이 된 존재가 여럿 있어서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던 시기였다.
“나는 더 강한 신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하던 도중, 그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기 자신을 문글로즈라고 소개했다.
“내가 가까스로 신의 말석에 도착했다면 그는 그때 신에 근접한 인간이긴 했지. 스스로를 렘의 제자라고 불렀다.”
“…….”
광명자와 문글로즈가 만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일단 계속 듣기로 하자.
“나는 그와 친구가 되었지. 뭐, 같이 사우나도 가고, 낚시도 하고, 매운탕도 끓여 먹고…….”
“예?”
샤를이 눈을 깜박거렸다. 그럼 그 하늘치 매운탕 끓이던 거, 문글로즈가 광명자에게 배웠던 건가.
“겜돌이잖아요. 왜 인싸 아저씨 같은 일을…….”
“아, 아니. 나도 남들이 해보고 싶은 건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본 것뿐이야!”
광명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아무튼, 내 얘기를 조금만 더 듣도록 해. 그 문글로즈는 누군가를 적대하고 있었지.”
“헤르메스를 말이죠?”
“알고 있었군? 하지만 그 헤르메스조차 거대한 무언가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나?”
“그게 무슨 말이죠?”
샤를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거의 무적처럼 보이는 헤르메스의 뒤에 뒷배가 있었다고?
“헤르메스는 신입니다. 그런 그가 뭘 섬긴단 말입니까?”
“섬긴다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고, 따른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군. 계몽주의자의 이론에 대해서 들었겠지?”
“이 세상은 모두 허상이고 자신들은 진실한 세상으로 떠나겠다는 얘기였죠.”
“그게 맞았다면 어떤가?”
“…….”
광명자는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하자. 누구도 실증할 수 없으니 일단 가정이라고 해두지. 이계의 신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니까 말이야.”
“…….”
“아무튼, 그런 절대자가 있고 이 세상은 절대자의 꿈이라는 것이 바로 계몽주의자의 입장이지. 그리고 문글로즈가 싸우던 적, 헤르메스도 그 입장에 동의하고 있었다.”
“……씨.”
“그게 바로 ‘선각자’. 이 세상을 깨워서 완전히 없애버리고 진실된 무언가가 되려는 것들이지.”
욕이 절로 나오는군. 샤를은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관리자는 뭡니까?”
“선각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개념이라고 할까.”
“또?”
“이미 신의 영역을 넘은 뒤부터는 전부 가정이나 추측의 영역이지.”
광명자는 자신도 100% 확신할 수 없다면서 말했다.
“관리자는 선각자의 반대되는 개념이야. 잠들고 싶어 하는 절대자의 마음이라고 할까.”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진짜 있다. 내가 이 관리자와 절대자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지한 것은 바로 배신당한 뒤였다.”
“문글로즈에게요?”
“아니.”
광명자는 그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하기를 꺼렸지만 아무튼 자신이 매우 친하게 지내던 존재에게 배신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됐다.”
그렇게 말하며 그의 옆구리에 뻥 뚫린 창 자국을 가리킨다.
“왜 배신당했죠?”
“나는 이 세상을 지탱하려고 했다.”
“지탱?”
세상이 무슨 건물도 아니고 왜 그런 표현을 썼지?
“그런 생각 안 들어봤나? 대체 메트로폴이 뭐길래? 왜 여길 점령하는 곳이 세계의 지배권을 가져가는 거지? 왜 여기인지 말이야.”
“…….”
그건 여러 번 생각해본 주제였다. 엔딩을 100번 넘게 본 이후부터 느낀 생각이지.
그리고 그건 결론을 내렸다.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가 이 메트로폴 안에 있을 거라고.
광명자는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여기가 세상의 중심인 거야.”
“선생님?”
세상에 중심이 어딨습니까? 라고 질문하려던 샤를은 자신도 모르게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하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이런 일반적인 사고를 한 결과, 샤를은 해피 엔딩에 도달할 수 없었다.
“여기에, 절대자가 있는 거다. 아니면 그에 준르는 무언가가 이 메트로폴 어딘가에 있는 거야.”
“재밌는 가설이군요.”
“글쎄? 가설일까? 나는 실제로 지금 메트로폴 전체에 행해지는 인과율을 제어하는 데 혼신을 다하는 중이다. 다른 어떤 행동도 하기 어려운 상태지.”
“…….”
“아마 이대로 가면 나는 힘에 벅차서 제풀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인과율 제어를 그만두는 순간 메트로폴에 몰린 어떤 ‘트리거’가 격발하고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지.”
그걸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치부하기에는,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게임 속 플레이를 하는 도중, 광명자는 늘 초반에 리타이어하는 존재였다.
강대한 존재였으나, 어떤 모종의 이유로 상처를 입은 이후 힘을 쓰지 못한다. 그 틈을 타, 광명자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4대 교단이 발호하고 광명 교단을 밀어내 제거해버린다.
신도들을 모두 잃고 난 광명자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고.
‘그러고 보니, 광명자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난 엔딩이 있었나?’
늘 일반적인 게임에서 광명자가 마지막까지 있었던 것은, 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때도 광명자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었다.
‘그럼 게임 속에서 광명자에게 간섭하지 못한 이유가 이거였군.’
광명자는 일종의 다른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그가 광명자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광명자가 말했다.
“그게 바로 이 세계를 지탱한다는 거다.”
“흐음. 그래서, 제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이야기가 뭐죠?”
“주의하고 있으란 말이지. 선각자도, 관리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말이야.”
샤를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문글로즈를 믿지 못하는 만큼 나도 광명자를 믿을 수 없어. 그의 이야기는 일단 유익하긴 하지만 말이지.’
완전히 모르고 싸우는 것보다 뭔가 더 있다는 정보를 얻은 건 확실히 큰 소득이다.
“이제 어부형제단을 없애버릴 생각이지?”
“그래.”
“사악한 신들의 영향력을 메트로폴에서 완전히 제거하고도 끝이 아니다. 헤르메스의 힘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샤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징표를 돌려주자 곧바로 그는 현실로 빠져 나와 있었다. 여긴 아까 그곳이다. 메트로폴 대성당 안.
광명자는 많은 걸 얘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얘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나, 나나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말하지 않았지.’
눈치를 보아하니, 분명히 알고 있다. 그가 샤를에게 주시하라고 말한 건 두루뭉술한 얘기뿐이었다.
‘로그아웃 버튼이 어떻다. 헤르메스의 뒤에 더 거대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 말뿐이잖아?’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은 광명자와는 협력관계다. 그가 이 세상을 지키려고 하는 진정성이 있다면, 샤를은 그를 신뢰할 것이었다. 목표가 같은 동안에는 서로 싸우지는 않을 거다.
그 무렵 성녀 소냐 에센리트가 샤를에게 말을 걸었다.
“그분과 얘기는 끝났습니까?”
“그래.”
그녀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고 말했다.
“어부형제단을 처리할 계획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얘기를 나눠봤으면 좋겠군요.”
“그렇지.”
“저는 당신께서 미리 사용하신 방법대로, 교주를 먼저 없애는 걸 권합니다만.”
교단을 처리할 때 제일 좋은 것은 그 우두머리를 없애는 것이다. 부하들은 아무리 죽여도 계속해서 증식할 수 있겠지만 교주는 죽으면 대체 불가다.
“하지만 적도 그걸 알고 있겠지.”
“꽁꽁 숨어버리겠군요. 그럼 그들의 영향력부터 제거할까요?”
“음. 내가 예전부터 생각하던 게 있는데. 어쩌면 교주만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샤를은 고민하다 어부형제단의 교주 부라토스를 끌어낼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슨 방법이죠?”
“도발이지.”
이건 샤를이 여태까지 게임 속 플레이를 해오면서 상대에 대해서 정통하고 있으므로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전에 사전 작업이 여러 가지 필요하겠지만.”
*
요트를 몰고 있는 브런트는 요즘 이상한 걸 느꼈다. 손님들이 죄다 경쟁자들의 요트로 가는 것이다.
손님을 받아서 강 위에서 원하는 곳으로 운송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그에게는 한숨만 나오는 일이었다. 아예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하나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상한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제일 이상한 건, 서로를 물어뜯고 죽일 듯 싸웠던 두 요트 주인이 요즘 전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로 함께 모여서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세상이 이러나.”
뒤숭숭한 소문도 돌았다. 바닷속에서 물고기 모습을 한 사람을 본 적도 있다는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브런트는 일련의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덩치 큰 남자 하나. 그리고 노인 하나, 다른 사람은 정장을 입은 평범한 남자였다.
“어서오십쇼. 반대편 부두로 가십니까?”
“그렇다네. 자, 타지.”
덩치 큰 남자와 노인은 일행인 것으로 보였으나, 정장을 입은 평범한 남자는 다른 일행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가는 방향이 같은 것 같다.
오랜만에 손님이라 그는 신이 난 상태에서 요트를 몰기로 했다.
“요즘 어떤가? 일거리는 많나?”
노인이 다가와서 그에게 물었다.
“아유, 말도 마십쇼. 요즘 손님들이 죄다 다른 곳으로 가는 지 원. 그리고 흉흉한 소문도 있습니다.”
“소문?”
“사람의 모습을 한 물고기들이 있다면서요. 강물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답니다.”
“그게 말이 되나?”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은 워낙 선주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많이 돌아서 말입니다. 그런 어인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죠.”
“그러게 말이야. 자네는 어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인의 질문은 이상한 질문이었다. 어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브런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떻게라뇨? 아무런 생각도 안 드는데요. 뭐, 눈앞에서 어인이 나타난다면 정말 기분 나쁘긴 하겠네요.”
“기분이 나쁘다? 무섭진 않고?”
“그런 물고기 따위 뭐가 무섭습니까? 나타나면 얼굴을 부숴버릴 겁니다.”
“정말로?”
노인의 질문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리자 노인의 얼굴에서 촉수가 여러 개 튀어나와 있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건 말미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다. 얼굴의 형태에서 말미잘이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그것도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덩치 큰 남자의 얼굴도 넓적한 넙치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자네도 우리와 함께하는 게 어떤가?”
브런트 덜덜 떨면서 무기를 쥐었다. 욕설을 내뱉을 정신도 없다.
“하아. 진짜로 이런 식으로 포교하고 다니냐.”
그때, 옆에 타고 있던 또 다른 일행이었던 손님 하나가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