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90화 (189/221)

제190화 - ‘착각인가?’

이상할 정도로 올라가는 승강기. 샤를의 목적이 강력한 영성자이면서 동시에 뱀파이어라는 걸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계? 환술?’

둘 중 하나는 맞긴 할 터. 정지 버튼을 연타했는데도 먹히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승강기의 입구에 염동력을 투사했다.

수 톤 짜리 철근도 구부릴 수 있는 위력의 염동력에도 버티는 승강기의 문.

‘제대로 함정에 빠졌군.’

샤를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다. 적에 대해서는 특정하지 않았을 거다. 상대는 국제적인 수준의 범죄자.

언제든 쫓길 줄 알고 있었을 테니 대상을 특정한 함정을 만들어두진 않았을 거다.

눈을 감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 다음 눈을 뜬다.

압도적인 염동력 파문이 퍼져나가면서 현실을 일그러트린다. 구부러진 공간이 그대로 찢겨나가면서 쥐어 짜낸다.

그렇게 뜯어진 공간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 샤를의 눈앞에 보인 것은 공허였다.

뒤를 돌아보니 승강기가 보인다.

‘힘으로 찢으면 공허로 나오게 되어 있는 구조였나.’

현실이 일그러지거나 부서지면 등장하는 이 공허는 익히 봐온 것이었다.

샤를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석판을 ‘흡수’할 때도 드러났었고 트리메스 교수는 이곳에 의도적으로 숨기도 했다.

이 공허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 다시 돌아올 방법도 만만찮았으므로.

그렇다고 계속 승강기에 있기는 위험했다. 언제까지고 올라갈지 모르기 때문.

벌써 승강기의 숫자는 50층을 넘어섰다.

이 호텔의 높이가 20층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한참이나 오버된 상태.

‘놈의 능력은 뭘까.’

이걸 파훼하려면 상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각자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초능력은 주문처럼 어떤 신에게 빌려온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신 영역을 영성으로 확장시켜서 만든다.

이고르를 심문할 때, 샤를은 이반의 능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제대로 설명하진 않고 효과에 관해서만 얘기했었지만.’

이반은 아무 때나 어디에서든 나타났으며, 언제나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거나 하루 만에 다른 나라로 갔다 오곤 했다고 했다.

종합해본 결과 능력은 ‘공간 조작 계열.’

공간을 조작할 수 있으니 세계의 틈새를 밀어젖힐 수도 있겠지.

그러므로 이 끝없는 승강기는 길이를 극단적으로 늘리고 환술을 건 함정이 분명하다.

제3의 눈을 열고 주변을 살폈다. 세 번째 눈은 공간의 구조를 살피고 왜곡된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긴가.”

시도 때도 없이 벌써 100층째라고 적힌 표시기에 손을 뻗어서 그대로 잡아 뜯는다.

동시에 '쿵' 하고 승강기가 멈추는 느낌이 들어서 보니, 샤를이 선택한 13층에 도착해 있었다.

띵동.

문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움직인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서 1307호에 도착했다. 예고도 없이 문을 따고 들어선 샤를은 아무도 없는 것을 보았다.

“도망쳤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문도 닫혀 있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의 함정은 미리 제작된 거고 불특정 다수에게 사용하는 것이었을 테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호텔은 잠시 머무르는 용도였는지 짐은 거의 없어 보였다.

혹시나 이 안에 숨어있을까 싶어서 이곳저곳을 수색하던 중.

‘어라 이거 봐라.’

호텔 침대 바닥. 그냥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3의 눈으로 바라보면 뭔가 있다.

공간의 틈 사이로 검은색 상자가 끼어 있었다.

‘뭐지?’

손을 뻗어서 공간의 틈에 간섭했다. 검은색 상자를 짚자 서늘함을 느꼈다.

열어보니 그 안에 샤를이 찾던 것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여기 있었군.’

트리메스의 인피 가면이다. 샤를은 희미하게 웃었다. 귀중한 물건을 이렇게 방치하듯 내버려 두다니…….

‘아니지. 지금 나는 카오스식 전개를 발동 중이니까.’

상대가 반응하지도 못하게 빠르게 들이친 것이다. 샤를이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누가 빠르던, 느렸건 간에 아무튼 샤를은 지금 그 가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럼 어디, 이 가짜 가면으로 바꿔치기해볼까.”

샤를은 인피 제작자의 금고 속에 있었던 트리메스의 인피를 꺼내 들면서 음흉하게 웃었다.

예전에 얻은 뒤로 샤를은 이 가면에 ‘작업’을 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은 상자도 쓸모가 있다. 점술의 매개체가 되거든.

‘이걸로 트리메스를 추적할 수 있겠어.’

*

어두운 무대 위에 의자 하나를 두고 트리메스는 그 위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이전의 옷이 아니라 검은색 드레스였다.

신체를 강탈하기 전, 몸은 보슈 백작 부인의 것이었으니까. 성별이 전환되었으나 트리메스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드레스를 입은 트리메스는 선한 인상의 젊은 귀부인처럼 보였다. 귀에는 수수한 귀걸이를 걸고 금색 머리카락은 묶어서 위로 올렸다.

그녀는 보석으로 세공된 부채를 들고 텅 빈 객석을 마치 상대인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놓인 체스판에는 체스의 기물만 놓여 있을 뿐, 상대가 없었으니까.

말 하나를 옮기려는 때, 옆의 그림자에서 이반이 나타났다. 험상궂은 얼굴에 머리카락 하나 없는 두상. 덩치는 엄청나게 크고 험상궂다. 얼굴에 여러 상처가 있었다.

“그 빌딩을 날려버릴 준비는 됐나요?”

간드러진 미성이 울렸다. 트리메스는 이미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에 상당히 적응한 상태였다.

세인트 생시르 거리 한복판에 있는 크라이슬러 빌딩. 이전의 소유주에서 샤를 헥센으로 이전되면서 헥센 빌딩이라고 이름이 변경된 상태였다.

그 빌딩은 이제 샤를의 무명교단의 근거지가 되었다. 추가로, 많은 교단 밖의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낮은 층에는 여러 회사의 사무실이 생겼다.

매일 같이 수많은 사람이 그 안을 들락날락했으나 그런 것은 트리메스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빌딩을 폭파하기 위해서 트리메스는 키예프 제국에 있던 그녀의 말을 불러들였다.

대량의 다이너마이트, 최신형 기관단총은 거기에 딸려오는 것이었다.

겸사겸사 여태까지 손을 놓고 있던 테러리스트의 일도 좀 하는 겸 말이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은거지가 습격당했습니다.”

“간단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흐음. 왜 그렇게 됐죠?”

“아무런 징조도 없이 뜬금없이 나타난 존재에게 당했습니다. 미리 전해주신 여러 유물이 있었으나, 작동하지 않더군요.”

트리메스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망가진 걸 보고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신비는 더 큰 신비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법이죠. 그 정도의 유물들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면 상대는 뻔하군요.”

트리메스의 대적자. 샤를 헥센이 먼저 선수를 친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헥센 빌딩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릴 계획을 말이에요.”

“…….”

“아마 몰랐겠죠. 그의 권능이 훨씬 강해진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할까요?”

상심한 표정을 짓던 트리메스는 그것도 잠시, 또 마음이 변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체크를 당했군요. 자,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트리메스는 상대의 퀸을 들어서 자신의 킹을 노리게 만들었다. 이제 그녀가 움직일 차례였다.

*

몽푀르 거리에 도착한 샤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일전에 보았던 블루 센텐스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다.

그 오페라 하우스가 유명하지만, 이런저런 다른 극장도 있었다. 이 거리 전체가 극장가인 것.

그래서 많은 극장이 모여 있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다.

‘흔적은 여기까지 딸려오는 데.’

검은색 상자에 점술을 걸어서 여기까지 추적한 샤를은 추적이 여기서 끊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근방 어디에서나 트리메스의 기운이 느껴진다. 코를 찌르는 것 같은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착각이 든다.

‘자, 어디냐.’

주변을 둘러보던 샤를은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극장 하나를 발견했다. 오히려 이상했기에 안으로 들어섰다.

위치는 거리의 중심지 쪽에 있어서 유동인구의 수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되는 그 극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매표소에는 사람이 없었으며 들어가도 어두운 조명만 남아있을 뿐.

들어가면서 샤를은 객석의 의자에 손을 댔다가 떼었다.

손에는 먼지가 수북하다. 이렇게 장사가 잘될 것 같은 곳에서 파리만 날리다니.

‘오히려 수상해.’

“어서 와라.”

객석 위에는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여기저기 난 상처. 커다란 덩치를 볼 때, 그가 샤를이 찾던 이반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 있었구나?”

“네가 그분께서 말한 ‘대적자’이겠지?”

“그렇게 말은 하데?”

“그분께서는 이번 지혜 대결에서는 패배하셨다고 스스로 인정하셨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그분의 계획을 파괴했다는 것에 대해서 경이로움을 표하겠다.”

“…….”

“하지만 나, 필멸자의 업을 벗어난 존재. 그분의 도움을 받아 불사의 업을 이어받은 ‘혈족의 아버지’ 이반은 그분에게 처음으로 항명했다!”

“……?”

“네놈을 죽이고 그분께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겠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투태세를 갖췄다. 전신이 벌크업 되듯 근육이 부풀어 오르면서 덩치도 동시에 커졌다.

한 손에는 기관단총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거대한 핏빛 낫을 들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별명으로 소개하는 놈은 오랜만에 보네?”

혈족의 아버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샤를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림자에서 알료샤의 가위검을 꺼내 들었다.

타입을 보니 완전히 격투에 미친 놈 같아 보인다.

‘근접전은 자신 있다는 뜻인가. 하지만 공간을 왜곡하는 함정을 만들 정도로 치밀한 놈이었지.’

이반이 바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었다면 이미 외국에서 붙잡혔을 테니까.

‘뭔가 살짝 마음에 걸리는데.’

트리메스가 없다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적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이반은 손을 들어서 샤를에게 총을 겨눴다.

샤를은 마주 손을 뻗어서 놈의 총에서 첫 번째 탄환이 발사되지 않도록 염동력으로 발화를 억제했다.

첫 번째 탄환이 발화되지 않으니 두 번째 세 번째 탄환도 나가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컨트롤마저도 해버리는 샤를의 술수에 이반은 그 즉시 총을 버리고 주머니에서 손망치를 꺼냈다.

야생의 맹수처럼 달려든 이반이 핏빛 낫을 들어서 휘두른다. 샤를은 몸을 뒤로 빼면서 회피했다.

‘엄청난 속도인데.’

전성기때의 알료샤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였다.

샤를은 신체적 강화가 전혀 없이, 염동력을 사용해서 상대와 근접전을 벌이기로 했다.

주먹을 뻗어서 강력한 염동력을 투사해서 놈을 뒤로 날려버렸다.

‘이 능력 너무 효율이 높아.’

상대를 포탄처럼 밀어버렸는데도 사용한 것은 아주 적은 영성뿐. 아직도 힘이 넘친다.

객석 한가운데로 날아간 이반이 미끄러지면서 객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입에 묻은 피를 닦으면서 일어났다.

투지가 가득해 보이는 눈동자는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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