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 프레데릭 웹스는 가장 최근의 기록까지 살펴보았다. 라쿤 팀의 리더로써 그에게 내려온 임무는 사라진 트리메스 교수의 추적이었다. 그가 가진 특수한 능력으로 인해 검열된 기록을 뚫을 수 없는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돈과 인력이 충분하다면 못 할 일은 없다. 사람을 풀어서 트리메스 교수를 본 사람들,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추적했다.
그 와중에 그는 키예프 제국에서 한 남자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끝났냐?”
“아직 심문 중입니다만.”
“내가 들어가지.”
“알겠습니다.”
어두 컴컴한 감옥 안에서 라쿤 가면을 쓴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프레데릭 웹스가 안으로 들어서자 엉망이 된 몰골의 남자가 나타났다.
여기저기 얻어맞고 고문당해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의 모습.
그는 입에서 피가 섞인 침을 질질 흘리면서 푸르게 물들어 부어오른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흐흐. 그 웃기는 라쿤 가면을 벗은 놈은 처음 보는군.”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실실 웃었다. 프레데릭 웹스는 지금 맨얼굴이었다.
“내 이름은 프레데릭 웹스다.”
“아, 뭐 거기 조직에서 좀 높은 직위에 있나 보지?”
“비슷해.”
프레데릭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고문 도구가 있다. 그는 그중 불에 지진 인두를 들었다.
“트리메스에 대해서 불어.”
“크크크. 절대 못 해. 날 아무리 고문해봐야 소용없을 거다.”
“너희 단체에 대해서도 불어. 인터내셔널이라고 했던가?”
프레데릭이 찾아보니, 비밀 세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반적인 공산주의 단체였다.
“아. 너희 말로는 코민테른이라고 하더군.”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프레데릭은 여전히 말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며 인두를 그냥 내려놓았다.
“너, 라쿤 가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느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여태까지 그를 고문했던 자들이 쓴 라쿤 가면에 대해 궁금하긴 했지만 그다지 몰라도 되는 정도였을 뿐.
하지만 프레데릭은 계속 말을 이었다.
“가면제작자라고 불리는 유물이 있지. 이 유물은 어떤 재료를 넣으면 그 재료를 바탕으로 가면을 만들어주거든. 그리고, 부패한 라쿤의 발에서 나온 보라색 버섯을 재료로 삼지.”
“크흐흐. 버섯으로 만들었다고?”
“근데 문제는 말이야. 이 라쿤 가면을 처음 쓸 때, 부작용이 하나 있다.”
프레데릭은 고문도구 대신 라쿤 가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주, 아주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럽거든.”
그리고 놈의 얼굴에 가면을 씌웠다. 긴 비명이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잠시 뒤.
밖으로 나온 프레데릭을 보면서 라쿤 팀원 한 명이 물었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라는 이름의 남자를 찾아라. 그가 코민테른에서 트리메스와 협력하고 있는 조력자야. 지금 메트로폴에 있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트리메스는 교수였던 시절에 잠깐 코민테른의 형성에 도움을 줬을 뿐이고 깊게 발을 들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반이라는 남자는 트리메스에게 선택받아서 영성자까지 되었으니 그에게 복종한다.
*
루미너스는 꽤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경찰국의 일을 대충 처리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집어내는 것이 그녀의 장기. 세분화해서 분석하고 그 정보를 모아서 취합한다.
그럼 어느 영성자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자신을 숨기려고 해도, 사람은 돌아다니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태로운 치안은 대개 영성자들에게 의해서 시작된다. 그러나 때로는 범죄 집단에 의해서 시작되기도 한다.
가장 첫 번째 이변은 메트로폴 내부에서 마피아들의 움직임이 극도로 줄어들었다는 점.
이건 ‘샤를 헥센’이 조각구원회를 처치한 이후로 꽤 심화한 현상인데 조각구원회가 재기하기 위한 발판으로 마피아들을 선택했기 때문.
그렇다고 해도 범죄조직이 완전히 소탕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잡으면, 더 깊은 음지로 숨어 들어갈 뿐이다.
이렇게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든 자들은 극단적인 존재들과 연관되기도 한다.
일련의 다이너마이트의 흐름, 수도의 MI7에서 조회한 화약의 거래, 외국인의 이동 경로 등을 보면 코민테른이라고 불리는 테러 조직이 메트로폴에 침투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극단적인 사회주의 단체로 자기들끼리도 서로 의견이 제대로 통합이 되지 않아서 그들이 모신 대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대장은 여럿 있었으며 그가 일으킨 일을 보고 그 명성에 이끌린다. 그중에서도 코민에서는 영웅으로 취급되는 자가 있었다.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
이 남자는 MI7에서도 국제 수사에 공조 중인 범죄자였다.
루미너스는 이반의 정보를 살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반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도 이반이었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었던 그가 사회주의 전선에 뛰어든 것은, 흔히 자본가라고 불리는 자들이 그들의 농지를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먹고살 길이 없어진 이반은 도시로 가서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고 여기서도 착취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그는 사회주의 이론에 심취했고 자신만의 길을 찾은 그는 실제로 실행에까지 옮겼다.
“철도 테러 2건. 키예프 제국에서 있었던 만국박람회의 폭탄 테러 소동. 여객선 탈취. 구빈원 원장 살해 및 여러 공장의 사장을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것이 23건.”
아나키스트이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자. 이런 자가 메트로폴로 들어오다니. 이걸 늦게 깨달은 것도 문제였다.
이미 메트로폴에서 무언가 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 루미너스는 즉시 경찰국의 얼빠진 남자놈들을 모았다.
“당장, 주요 수사관들을 다 모아오세요.”
“예. 옛! 히끅.”
케인 치안 청장은 심기가 불편해보이는 루미너스를 보고 딸국질을 했다.
맨 처음에는 만만해 보이는 줄 알았으나 그 외모의 매력에 푹 빠졌다가 추근대는 놈이 완전히 박살 나서 경찰국 바깥으로 쫓겨나는 것을 본 뒤에는 이제 루미너스는 공포의 존재가 되었다.
잠시 뒤, 고위급 경찰들이 모이자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루미너스가 그들의 앞에 자료를 턱 놓았다.
“자. 읽어봐라.”
한 부씩 인쇄해서 각자에게 읽게 했다.
“연발 권총이요?”
“정확히는 권총탄을 연발로 발사한다. 기관단총이라는 이름의 최신식 무기지. 바다 건너에서는 벌써 시카고 타자기라는 이름으로 보급되고 있다.”
이 물건은 남쪽 부두를 통해서 벌써 몇십 박스나 유입되었으며 메트로폴 전체에 풀린 이 시카고 타자기라는 별명의 총은 200정이 넘었다고 했다.
“총기의 추정 수량이 200정이야. 200정!”
루미너스가 쾅하게 강하게 바닥에 서류를 내리쳤다. 그 박력에 다들 움츠렸다.
“메트로폴 전체에 이 총이 풀릴 때까지 알아낸 사람?”
“…….”
“아주 즐겁군. 무능한 자들과 함께 일한다는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해줘서 말이야.”
루미너스는 서랍을 열어서 좀처럼 꺼내지 않던 시가를 들어서 입에 물었다.
케인 청장은 언제까지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나 꾹 참으면서 살짝 루미너스를 바라보았다.
“뭘 잘했다고 쳐다 봐!”
아직 그녀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나보다. 경험상 이런 식의 질책을 받을 때는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려서 상대방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인내하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제일 질책을 받는 것은 경찰국 산하의 치안청이 아니라, 단속청이라 다행이었다.
단속청의 청장은 루미너스에게 수차례나 폭언으로 뚜들겨 맞아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수사관들 모두에게 소총을 지급해라. 상대는 연사가 가능한 권총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다이너마이트도 있을 것이 확실해 보이니 중무장을 허락하지.”
하나같이 축 늘어진 포즈로 떨어져 나가는 걸 보면서 루미너스는 한숨을 쉬었다. MI7의 유능력자들이 그립다.
“국장님.”
“뭐지?”
그중 루이스 형사가 나가지 않고 남아서 루미너스에게 말했다.
“상대가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며 어떻게 하죠?”
“…….”
루미너스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
“그러니까, 이 이반이라는 자를 잡는데 도와달라는 말이지요?”
“그렇소.”
이제 샤를은 예전처럼 무언가 보상을 얻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흥미 본위로 움직이게 된 지 오래였다.
탐정 사무소를 열어두고 파리만 날리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의뢰를 누군가 하더라도 안 받고 다른 탐정 사무소로 넘겨버리니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탐색했는데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전혀 찾아낼 수 없었죠.”
루미너스의 명령 이후 루이스는 그가 아는 선에서 모든 힘을 동원해서 찾았다.
“부둣가부터 시작해서, 창고 단지, 공장 근처 모든 곳을 다 뒤져봤는데 없습니다. 그리고 목격자도 없습니다.”
“목격자도 없다라.”
“부두에 들어온 이후 무기가 담긴 나무 상자들이 마치 허공으로 증발한 것처럼 사라진 겁니다.”
샤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류의 사건일 수도 있겠군요.”
루이스는 아직 영성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아직 카오스식 전개 주문은 끝나지 않은 상태. 그런 상황 속에서 이렇게 의뢰가 들어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반을 찾아서 털어야겠군.’
높은 확률로 그가 트리메스의 부하일 터. 메트로폴 어딘가에 숨은 트리메스를 추적해 심문하기에도 좋다.
“이 의뢰는 제가 맡아 보죠.”
*
그날 저녁, 샤를은 곧바로 부둣가로 향했다. 노을 지는 상황이었으나 아직도 부둣가에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일찍 퇴근하는 경우는 배가 들어오지 않을 때뿐이었다.
이리저리 화물을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샤를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살폈다.
‘이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군.’
딱히 위험해 보이는 자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주변을 돌던 샤를은 가볍게 점을 쳤다.
공간 전체를 매개로 삼아 점을 쳐본 것은 처음이었으나 훌륭하게 잘 작동했다.
눈을 뜨자 화물이 내려지는 것이 보인다. 늦은 밤. 와인으로 위장한 화물. 노동자들이 내려놓자마자 곧바로 중절모를 쓴 남자들 여럿이 다가온다.
“돈은 여기 있소.”
“허. 고맙소.”
“내가 더 고맙지.”
노동자들은 이 밀수를 통해서 받은 돈을 보고 희희낙락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남자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처리해.”
“……!?”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은 그 즉시 밀수꾼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의 목을 깨물었다.
‘뱀파이어로군.’
피를 빨아서 완전히 흡혈을 끝낸 자들은 비참할 정도로 쪼그라들어 마른 밀수꾼들에게 돌이 가득 든 자루와 함께 바다에 넣었다.
이 완벽한 증거인멸을 보고 샤를은 턱을 괴었다.
‘뱀파이어라. 그놈들이 왔단 말이지.’
상대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들이 아직 이반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따로 알아봐야지.
점술 속에서 뱀파이어들은 무기가 가득 든 상자를 들고 점프해서 옆에 있는 건물의 지붕을 타고 움직였다.
무거운 것을 들었음에도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샤를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