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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87화 (186/221)

제187화 - 학생기록부에는 한 인간의 삶과 개성이 몇 글자로 압축된다.

인간의 삶이 단어로 축약되는 삶의 시작이 바로 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딱히 특이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이런저런 조사를 하다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음? 네 명이서 함께 다녔다고?”

샤를이 며칠 동안 만났었던 모든 노인들은 학창 시절에 함께 다녔던 것 같다. 사진도 있었다.

“데이비드, 왓슨, 제임스, 헨리”

흔한 이름들이군. 사진을 꺼내서 살폈다. 여태 봤던 노인들의 젊었을 적의 얼굴이다.

“헨리라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네 명이서 찍은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던 샤를은 이상한 것을 찾았다.

데이비드, 왓슨, 제임스 이 세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헨리만큼은 좀 멀찍이 떨어져서 사진을 찍었다.

헨리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화질이 낮아서 제대로 파악하긴 어렵지만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것 같다.

“왕따였나.”

어쩌면 괴롭힘당하고 있는 녀석일 수도 있다.

그때 갑자기 조명이 켜졌다. 쿠당탕 소리가 들리며 비명이 들렸다.

“끼야아아아아악!”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한 직원이 놀라서 뒤로 자빠져있다.

“괜찮으세요?”

“다, 다, 당신 누구야! 누군데 왜 그렇게 불도 다 끄고…….”

노년의 여성은 행정실 여직원으로 보인다. 그녀는 심장이 벌렁벌렁하는지 누워서 숨을 골랐다.

“아, 미안합니다. 저는 기자입니다.알아볼 사람이 있어서…….”

“기자면 낮에 왔어야죠! 거기다, 마음대로 서류를 꺼내면 어떡합니까.”

샤를은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엮이지 않으려고 했건만, 최면을 걸어서 내보내려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서 그 노인에게 가벼운 암시를 걸었다.

친밀감이 높아지게 만드는 암시였다.

“미안합니다. 중요한 일이라서 이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와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긴 제가 졸업했던 학교이기도 했거든요. 제가 53기 졸업생입니다.”

정중하게 샤를이 사과하자 그 직원은 한숨을 내뱉었다. 샤를의 외모에서 나오는 친근함과, 동시에 암시가 같이 걸리자 조금 전보다 더 차분해진 말투였다.

“후. 졸업생이면 낮에 올 것이지 대체 왜 오밤중에 불도 안 켜고 행정실에 와서는 말이에요. 일단 옆으로 비켜봐요. 서류를 다시 원래 자리에 둬야 하니까요. 어우 진짜 40년 근무하는 동안 이런 일은 또 처음 겪었네.”

“혹시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뭘 말이에요?”

직원은 샤를이 어지른 자료들을 하나하나 집어넣으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그래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13기 졸업생들에 관한 것인데.”

“13기?”

“혹시 아시는 것이 있나 해서요.”

샤를은 13기 졸업생들의 사진 중에서도 4명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직원에게 말했다.

“음. 아? 이거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직원은 자신의 안경을 들어 올리면서 기억을 되짚었다.

“아! 이 사진. 기억나요. 저 네 아이들은 그 학기에서 제일 말썽인 아이들이였죠. 졸업하고도 한참 유명했었는데. 그리운 이야기로군요.”

“그래요? 조금 더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맨입으로?”

“사례는 하겠습니다.”

“호호. 그럴 필요 없어요. 이런 늙은이가 사례 같은 걸 받아서 뭘 하겠다고. 일단 이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나 도와줘요.”

친밀함의 암시는 생각보다 잘 먹혀서 샤를은 그 직원에게서 쉽게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헨리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헨리? 그 친구는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인데. 무슨 일인지?”

“대화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 친구는 예전에 경찰로 일했던 적이 있죠. 지금도 래보 거리 근처에 있는 카페테리아를 개조해서 그집 지하에 살고 있다고 하니.”

“예?”

래보 거리는 경찰 및 공무서들이 즐비한 거리였고 샤를도 자주 지나치는 편이었다. 그런 곳에 있었다니…….

노인에게 정보를 듣고 나서 다음날 새벽 일찍 자리를 나선 샤를은 어젯밤 직원에게 들었던 주소를 찾아갔다.

“이 카페테리아는 몇 번이고 지나쳤던 것 같은데.”

카페테리아의 사장이 누군지 알 수 없었으나 사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냥 지나칠 때 봤을 뿐인데.

그가 찾던 사람이 여기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이 잠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염동력으로 열쇠 형태의 압력을 주면 아주 손쉽게 문을 딸 수 있었다.

지하로 향하는 문을 찾아서 들어간다.

“음. 여긴 보관창고고.”

창고 옆에 나 있는 가벼운 철문. 들어가려고보니, 잠금 장치로 묶여 있었다.

감각을 확장해서 염동력을 벽 너머로 투사하고 나니, 안쪽에 자물쇠의 개수를 볼 수 있었다.

“몇 개야?”

8개는 되는 잠금장치들이 문 안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데다가 체인까지 걸려 있다.

샤를은 헨리라는 노인이 왜 이렇게까지 문을 잠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염동력을 투사해서 가볍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보안이 철저한 이유가 있었군.”

이 안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황량한데다가 마치 작업실 같았다. 아니, 작업실 그 자체다.

샤를은 작업실 천장에 매달린 것을 살폈다. 마치 푸줏간의 고기라도 매달린 것처럼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인피 가면.”

사람의 얼굴 가죽으로 만든 가면이 건조 작업을 위해 그 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때, 더 안 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한 노인이 나타났다. 양손에는 손 망치와 조각칼을 들고 있었다.

“그으아아아아!”

그는 문답무용으로 샤를에게 달려 들었다가 그대로 염동력에 붙잡혀 턱하고 허공에 매달렸다.

바둥바둥거리는 그의 신체를 속박한 샤를은 입만 움직일 수 있게 열어서 물었다.

“인간의 얼굴 가죽으로 가면을 만들고 있었나? 헨리?”

“……그르르르르.”

마치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는 헨리는 속박되어서 허공에 고정되어 =있는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말해.”

배에 강력한 충격이 들어서자 헨리가 커헉하는 바람빠지는 소리와 함께 말을 뱉었다.

“개, 개자식 날 죽여라.”

“그럴 수는 없지.”

헨리의 오른손의 검지를 염동력으로 꺾자 뿌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헨리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이 소리는 거리 전체에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했지만, 샤를이 쳐둔 결계 덕에 흡음되고 있었다.

“꽤 놀랐어. 거리 한복판에 대놓고 이런 식으로 작업장을 만들어두다니. 대담하군.”

대체 누가 평범한 카페테리아 지하에 이런 작업장을 만들었을 거라고 상상했겠는가. 그것도 경찰국이 엎어지면 코닿을 만한 곳 근처에 말이다.

“듣자하니. 전 경찰이었다지?”

“…….”

뿌드득.

“으아아아아아악! 그래. 그랬다!”

“경찰국에서 무슨 일을했지? 대답이 없거나 이상한 소리를 할 때마다 앞으로 손가락이 하나씩 부러질 거야.”

“아악! 시, 심문이 내 일이었다!”

“고문 기술자였군. 고문 경찰이지?”

“그렇다.”

전근대 경찰들은 폭력과 고문이 주를이었다. 범죄자를 심문하는데 윤리나 인권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당장 대한민국의 몇십 년 전만 해도 이런 고문 경찰들은 널렸었다.

“경찰일 때는 못 했을 테고. 은퇴하고 이 작업장을 차렸나?”

“크르르. 그렇다.”

“왜?”

“경찰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지. 인피 가면의 작업장을 차린 이후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부유해졌다.”

“이런 걸 누가 사는 데?”

“크크크. 당신 같은 영성자들, 얼굴을 바꾸고 싶은 권력자들, 변장을 목적으로 한 수요는 얼마든지 있지. 인피를 얼굴에 덧씌우고 이런저런 화학처리를 하면 감쪽같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이런 기술은 어디서 익혔지?”

“고문 기술자로 일하면 뭐든 배우게 되지. 사람의 피부를 포로 떠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이야. 난 내 재능을 살려서 이 업계에 투신한 것뿐이야.”

헨리는 실실 웃었다.

카오스식 전개 주문은 트리메스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생각난 것은 트리메스가 가면으로 사람의 몸을 빼앗는 것이 떠올랐다.

“트리메스에게도 인피를 팔았나?”

“트, 트리메스? 그게 누군데.”

“선한 인상에 안경을 쓴 청년 말이야.”

“…….”

“대답이 없군.”

뿌드득.

“으아아아아아악.”

세 번째 손가락이 작살났음에도 헨리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샤를은 지속적인 고문으로 그를 괴롭힐 수도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떠올랐기에.

“고등학교 동창들은 기억나나? 데이비드, 제임스, 왓슨…….”

“그새끼들은 왜!?”

헨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들의 근황은 별로 안 궁금한가?”

“그놈들이 뭘 하고 살던 아무래도 상관없지.”

정작 그자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일이었지만, 이 헨리라는 자에게는 분명히 끔찍한 일이었겠지.

“하나 가르쳐주지. 제임스는 죽었다. 심장마비로.”

“……?”

“왓슨은 감옥에 가있다. 구속당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지.”

“…….”

“데이비드는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지.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들과 함께 말이야.”

“크흐흐흐.”

헨리는 우습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다 자기 업보에 맞춰서 살았군. 데이비드는 그나마 멀쩡한 놈이었거든. 왓슨과 제임스가 날 괴롭힐때,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 크흐흐.”

헨리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몰라도 여태까지 꾹 다물고 있던 고객에 대한 정보를 불었다.

“트리메스는 내게 자신의 얼굴을 본딴 인피를 만들게 했다. 매우 특별한 공정을 거쳐야 했지.”

“몇 장이나 만들었지?”

“세 장. 놈은 자신의 정수라면서 웬 이상한 기름 같은 것을 주었다. 그 기름의 양이 적어서 딱 세 장 분량밖에 만들지 못했지. 그중 한 장은 웬 귀부인이 가져갔다.”

귀부인? 보슈 백작부인이 확실해보이는군.

“나머지 두 장은?”

“이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하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여기 지하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

“이반?”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 웃기는 이름인 것을 보니 아마도 가명이겠지.”

이반. 들어본 적이 있다. 풍차의 속에 있던 악마에게서 들었지. 광대를 해방시킨 것이 바로 그놈의 짓이다.

‘그럼 이반이라는 놈도 트리메스의 부하겠군.’

“창고 어디?”

“저쪽에 있다.”

어느새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그가 손을 뻗자 샤를은 강철로 된 금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염동력으로 열어버리려는 찰나,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군.’

이 주문의 구조에는 강제로 파괴하려고 하면 스스로 폭발해 자폭하는 기능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정확한 열쇠가 없는 이상 열지 못하는 구조의 마법.

“이거 열쇠는?”

“나도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샤를은 열쇠 구멍이 꽤 크다는 걸 깨달았다. 일반적인 열쇠로는 안 되고. 음.

“마치 지팡이가 하나 들어갈 법한 크기네….”

공원에 있던 데이비드라는 노인에게 받은 지팡이를 들었다. 그 지팡이의 끝에는 특이한 홈이 나 있었다. 맨 처음에는 그냥 긁힌 흔적이라고 치부할 정도였으나.

지팡이를 들어 홈에 맞추자 단번에 들어간다.

딸깍.

“어, 어떻게 열었지?”

헨리의 질문을 무시하고 샤를은 지팡이를 돌려서 금고를 열었다.

안에는 트리메스의 얼굴과 똑같은 인피 가면이 놓여 있었다.

‘이걸로 놈의 부활 포인트를 하나 파괴했다.’

이반이라는 놈이 가지고 있는 인피 가면만 파괴하면 트리메스가 부활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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